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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144화 (144/170)

144화

갑작스럽게 결정한 건 아니다.

이미 전쟁이 벌어지기 전부터 세워 두었던 계획이니까.

난 처음 왕국을 세웠을 때부터 내가 부재해도 잘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했다.

물론 케륵을 비롯해 크룩이나 철우 형, 이렌 등등.

뛰어나고 믿을 만한 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잘 돌아가는 것도 확인했고.’

저번에 내가 없을 때도 잘 운영하는 걸 확인했으니 크게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저번처럼 완전히 갇혀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일이 있으면 수정구를 통해서 연락을 주고받으면 되리라.

내가 이번에 떠나는 목적은 단 하나다.

더 강해지는 것.

왕국이 강성해지는 것 또한 내 힘이 강해지는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번 전쟁에서 절실하게 느꼈듯이 이곳은 단순히 강한 병력만으로는 전쟁을 수행할 수 없다.

중요한 건 바로 한 명의 전사였다. 평범한 병사 수십, 수백의 몫을 하는 전사.

마법사, 검사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적들에게 위압감을 주고, 그것을 넘어서서 실제로 상대 병력을 압도할 수 있는 전사.

이번 전쟁은 어땠는가?

분명 폴그룬의 병력은 상대보다 훨씬 열세였다.

그런데 폴그룬은 바하트리스 공작의 항복을 받아 내는 걸 넘어서 에바의 왕을 포로로 사로잡기까지 했다.

적들의 중요 전력들은 크룩을 비롯한 이들에게 분쇄되었고.

반대로 폴그룬은 상대를 처참하게 무너트렸다.

‘더 강해져야 해.’

또한, 꼭 왕국을 위해서가 아니라도 강해져야 할 이유는 많았다.

기실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고 봐야 했다.

뇌신이 그에게 남긴 유산.

신의 그릇.

그리고 그릇을 채우기 위한 힘들.

그릇은 말대로 그릇에 불과할 뿐.

그 내용물이 더 중요하다.

지금 고작 한 가지 힘을 수습했을 뿐인데도 그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힘을 쓸 수 있다.

뇌령은 이전과 다르게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기운을 담게 됐고, 그 위력도 훨씬 강해졌다.

그러므로 떠나야 한다.

난 턱을 쓰다듬었다.

떠나기 전 할 일과 누구를 데리고 떠날지를 고민했다.

* * *

며칠 후.

나는 본래 범죄 도시란 이름이 붙었던 도시의 앞에 서 있었다.

벨루곤.

이곳에서도 참 별의별 일이 다 있었지.

“케르륵. 호진 님과 같이 이곳을 오는 건 처음인 것 같군요.”

“생각해 보니 그러네.”

난 기분 좋아 보이는 케륵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크룩. 저도 처음입니다.”

그 옆에는 크룩도 있었다.

그렇다.

이번 여정의 동료는 바로 케륵과 크룩이었다.

폴그룬 왕국에서 나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지위인 놈들이다.

“그런데 너희 정말 자리 비워도 되는 거지?”

난 케륵과 크룩을 보며 물었다.

케륵이 흠칫 놀라더니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미 사제들에게 교육을 철저히 했습니다.”

“크루룩! 저도입니다! 그리고 철우가 있으니 괜찮습니다!”

“그래. 그래.”

난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둘은 내가 누구를 데려갈지 고민하자 자기들이 가겠다며 열심히 어필했다.

다른 이들도 아니고 이 둘이 자리를 비워도 될까 고민했지만, 몇 주 자리 비우는 것 정도는 상관 없다고 한다.

‘보통의 왕국이었으면 같이 가자고 해도 싫어하지 않았을까.’

이들도 권력자들 아닌가.

예전에 작은 부족이었을 때라면 모를까, 지금은 엄연히 꽤 큰 규모의 왕국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자신의 자리에 대한 걱정보다는 앞으로의 모험에 더욱 신나 보였다.

크룩은 그렇다 쳐도 케륵은 의외인걸.

‘하긴 어차피 무력이 중요한 사회니.’

나중에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후라면 모를까 지금은 정치력보다는 무력이 더 중요하다.

아직 우리 앞에는 적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

“멈춰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앞에 있는 이가 우리를 멈춰 세웠다.

우린 벨루곤으로 바로 들어갈 수도 있는데, 일부러 성벽 바깥에서 줄을 서 있었다.

일부러 허름한 차림을 하고 간단하게 주술을 사용해 인상을 바꿨기에 우리를 알아보는 이는 없었다.

그건 성문을 지키는 경비병 또한 마찬가지였다.

“신분증.”

경비병은 짤막하게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난 자연스럽게 내 모험가 패를 건넸다.

하지만 케륵과 크룩은 말똥말똥 나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너희 둘은?”

“케르를?”

케륵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하지 않자 경비병이 인상을 일그러트렸다.

난 잽싸게 품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내어 건넸다.

“죄송합니다. 아직 이들이 말이 서툴러서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슬쩍 주머니를 열어 보였다.

그 안에는 은빛의 동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흠흠. 그렇군.”

경비병은 그제야 인상을 풀며 주머니를 받아 들었다.

“예, 예. 앞으로 많이 배워야지요.”

“그래.”

난 고개를 끄덕이는 경비병을 그대로 지나치려 했다.

내 뒤를 따라서 케륵이 지나가고, 크룩이 그 뒤를 따라오려는데.

“잠깐.”

경비병이 다시 창을 내밀며 막아 세웠다.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경비병을 보자, 그는 씩 웃으면서 말했다.

“이 친구는 누구지?”

그는 주머니를 슬쩍 보이며 말했다. 난 바로 그 의미를 알아챘다.

한 명당 주머니 하나라 이건가.

난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으며 품에서 주머니 하나를 더 꺼냈다.

“이 친구도 아직 배움이 많이 부족합니다.”

경비병은 주머니를 받아 들고선 나름 근엄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래. 수고하도록.”

“예, 에.”

난 꾸벅 고개를 숙였다가 문득 생각난 것처럼 입을 열었다.

“그런데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됩니까?”

“음?”

경비병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마치 그건 니가 알아서 뭐하게? 라는 느낌의 눈빛이었다.

난 둥글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앞으로 도시에 자주 올 텐데 이왕이면 경비병님이 있을 때 들어오려고요. 헤헤.”

“아아. 그렇군.”

그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신의 이름이 폴스라고 했다.

난 수고하시라고 한 후 크룩, 케륵과 함께 성벽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바로 제크가 머무는 아지트로 향했다.

그와 페일이 도시를 점령한 후 그의 조직은 일개 건달패거리에서 도시의 권력 집단으로 바뀌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아지트도 이전의 건물에서 도시 한복판에 서 있는 작은 성으로 바뀐 것이다.

그 앞에는 두 명의 사내가 지키고 있었는데 우리가 다가가자 그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서 물었다.

“안녕하십니까. 무슨 볼일로 오셨습니까?”

이놈들은 그래도 경비병보다는 눈썰미가 있나 보다.

뭐, 그렇다고 썩 좋게 보이지도 않았다.

“제크나 페일한테 물주 왔다고 전해라.”

“알겠습니다.”

이놈 새끼들. 지들 사는 곳엔 똘똘한 놈으로 세워 두고, 경비병은 저런 모지리로 세워 놨어?

“확인되었습니다. 안으로 뫼시겠습니다.”

“그래.”

난 돌아온 사내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복도의 문 중 한 곳을 열고 들어가자 그곳엔 제법 화려하게 생긴 응접실이 있었다.

“오셨습니까.”

“왔군.”

그 안으로 들어가자 페일과 제크가 인사를 했다.

그래도 먼저 와 있긴 하네.

“오랜만이야.”

“오랜만은 무슨. 저번에도 봤는데.”

“너 말고.”

난 꼬박꼬박 대꾸하는 제크에게서 고개를 돌려 페일을 보았다.

“너 말이야. 잘 있었나?”

“예. 벨루곤으로 돌아오니 조금 심심하긴 하지만요.”

페일이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는 이전 멜리움 왕국과의 전쟁에선 전술을 짜는 곳에 속해 있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다시 벨루곤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긴 하지만.

“그래. 심심하긴 하겠지. 그래 보이더라.”

난 웃으며 말했다.

“경비병 꼬라지를 보니까 많이 심심하긴 한 거 같아. 아주 개판이던데?”

난 짤막하게 방금 전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뇌물 받고 보내주는 거 자체를 욕하진 않을게.”

뇌물이야 뭐. 받을 수도 있지. 그것도 좋은 행위는 아니지만.

“근데 상대가 누군지 자세히 확인하지도 않고 무조건 뇌물 받았다고 들여보내? 적이 침입해 오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이곳에 예전처럼 자유 도시로 남아 있다면 모를까, 이곳도 이젠 엄연히 내 영토 중 일부다.

제크도 굳은 낫빛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경비병에 대엔 합당한 처벌을 내리기로 했다.

“아직 범죄의 도시라는 딱지를 떼기엔 이른 것 같네.”

“그렇네요. 아직 멀었습니다.”

페일은 내 말에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여기까진 어디까지나 곁가지에 불과하다.

난 길게 끌 거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화린과 트렌이 맡은 일은 잘돼 가고 있나?”

“아, 그렇습니다. 이틀 전에도 필요한 자재들을 가지러 오셨었습니다.”

화린과 트렌.

둘에게는 따로 임무를 맡겨 뒀었다.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장소가 이 근방에 있었는데.

이곳은 그 장소로 가기 전 겸사겸사 들른 것이다.

“네가 보기엔 어때?”

페일이랑 잠시 얘기를 나누려는 목적도 있고.

페일은 내 질문에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사람을 모으는 속도가 빠르더군요. 물론 사람이 모이는 건 반길 일이나, 혹여 첩자가 껴 있지는 않을까 걱정됩니다.”

“흠. 그건 그렇지.”

본래는 내가 직접 확인해야 했으나, 전쟁을 수행하느라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다.

난 이야기를 좀 더 나누다가 바깥으로 나왔다.

“안 자고 가는 겁니까? 크룩.”

“그래. 갈 길이 바빠.”

크룩은 내 대답해 시무룩한 듯 축 쳐졌다.

난 피식 웃으며 앞으로도 쭉 노숙 해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난 속으로 생각했다.

벨루곤은 확실히 예전보다 활기가 줄어 있긴 했다.

그런데 꼭 나쁘게 볼 수는 없는 게 페일과 제크가 도시를 점령한 이후로는 범죄자들을 모두 싸그리 청소했다 한다.

불법적인 일들이 그와 함께 쓸려나갔고, 그만큼 사람도 줄었다.

그런데 벨루곤은 활기가 줄어 있기만 할 뿐, 엄청나게 침체되어 있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범죄자 청소로 인한 부작용을 잘 컨트롤해 끝냈다는 거겠지.

역시 제크는 몰라도 페일은 일처리가 깔끔하다.

속으로 그런 평가를 내리며 우리는 부지런히 걸었다.

벨루곤에서 약 세 시간 정도를 걷자 자그마한 숲이 나타났다.

이곳엔 딱히 이름이랄 게 없었다.

바로 인공적으로 만든 곳이기 때문이다.

가까이 다가가자 몸 주변으로 어떤 기운 같은 게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후웅-

난 가볍게 기운을 두르며 그대로 지나쳤다.

케륵과 크룩도 나를 따라 하며 어렵지 않게 통과했다.

일종의 마법 결계 같은 것인데, 그 해답을 알고 있어 통과하는 건 아주 쉬웠다.

만약 아무것도 모르는 이가 접근하려고 한다면 재밌는 일이 벌어질 거다.

“화린!”

숲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난 큰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휘이이이-

숲은 정적에 휩싸인 듯 조용했는데, 이 또한 이 일대에 설치된 결계의 역할 중 하나였다.

이 안에서는 바로 근방이라도 소리나 빛 같은 것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

이곳은 일종의 비밀 훈련장이었으니까.

부스럭-

뭐, 그렇다고 바로 앞에서 풀이 흔들리는 거까지 못 느낄 정도는 아니다.

곧 풀숲에서 붉은 머리칼이 팍 튀어나왔다.

“오! 왔어? 아니, 왔습니까?”

화린의 발랄한 환대에 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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