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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143화 (143/170)

143화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그러면.”

내가 뭐라 윽박지르기도 전에 레온이 끼어들어 말했다.

“대충 지어서 말이라도 해 드릴까? 흠. 어디 보자. 그래, 사실 이건 함정이오. 본대는 지금 에바 공작을 필두로 하여 이곳을 칠 준비를 하고 있지.”

그가 비아냥거리듯 중얼거렸다.

“이렇게?”

씩 웃으며 날 바라보는 레온.

한눈에 봐도 무언가에 분노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기묘한 건 그 분노가 오롯이 나를 향한 게 아닌 것 같다는 거였다.

나는 제크에게 들었던 정보 하나를 다시 곱씹었다.

‘에바 공작이 제국에 붙은 것 같다고 했지.’

본래 에바의 왕 못지않은 위세를 부리던 인물이다.

그의 본명은 따로 있지만, 보통은 성인 에바로 부르곤 한다.

그가 왕국의 이름과 같은 성을 지닌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는 왕족 중 한 명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가 왕족이라 해도, 이름이 아니라 왕족임을 드러내는 성으로 불리는 건 결코 정상적인 일이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왕권이 굉장히 약하게 보일 수도 있으니까.

“흠.”

난 레온을 빤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가 언제 없어진 거지?”

“없어졌다고 하기도 그렇군. 난 그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했었다. 그가 먼저 출격을 했고, 난 그 뒤를 이어서 출발했었지.”

그는 짤막하게 몇 가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딱히 숨길 필요도 없다는 듯 술술 말하는 그를 보며 난 턱을 쓰다듬었다.

그의 얘기가 끝난 후, 난 생각을 정리하며 말했다.

“그럼 에바 왕국이 제국의 허수아비가 된 건 언제부터지?”

모든 상황을 종합했을 때 나오는 당연한 결론.

특출 나지는 않아도 어린 나이치고 무난하게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는 왕 레온.

왕가의 혈통으로서 호시탐탐 권력을 노리고 있지만, 때를 기다림인지 아직 잠잠한 에바 공작.

둘에 관한 얘기는 근 몇 달 사이에 많이 바뀐 듯했다.

자포자기한 얼굴로 별다른 부정을 하지 않는 레온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다.

“…몇 달 전이었지.”

그는 곧 음울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 * *

몇 달 전.

제국에서 사자를 보내왔다고 한다.

왕국과 제국의 번영을 위하여 관계를 더욱 튼튼히 다지자.

뭐 그런 이야기였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사자가 구체적인 조건들을 나열하기 전까진 말이다.

사자, 즉 제국이 내민 조건은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이러했다.

제국의 속국이 되어라.

거절한다면 그 뒷감당은 알아서 해야 할 거다.

말이 제안이지 숫제 협박이나 다를 바 없었다.

왕은 생각할 것도 없이 거절했다.

제국의 힘이 강성하다고 하나, 에바 왕국이 저항 한번 하지 않고 접어 줄 정도는 아니었다.

차라리 전쟁에서 패배해 속국으로 들어간다면 모를까.

“우리도 마음이 편하진 않았지.”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제국의 제안을 거절한 이상 무언가 제스처가 있을 거란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레온은 이런저런 방면으로 정보를 모으고, 병사들의 훈련을 강화하며 기다렸다.

“그런데 놈들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수작질을 걸더군.”

그는 자조를 지으며 설명했다.

그 얘기를 모두 듣고 나니 왕이 그것을 생각하지 못한 게 오히려 정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왕족이라는 놈이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건 생각 못 했나 보군.”

“하하. 그렇지. 탐욕이 강한 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에바 공작.

그가 몰래 제국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제국의 속국으로 들어가는 대신, 자신이 왕이 되는 걸 지원받기로 한 것이다.

그 이후의 일들은 뻔한 얘기들이었다.

레온은 뒤늦게 그 정황을 파악했고, 무언가 해 보려 했을 땐 이미 많은 게 변한 뒤였다.

그는 거의 허수아비나 다름없는 신세로 전락했고, 요직은 친 제국 파 귀족들이 꿰차기 시작했다.

레온은 이른 나이에 즉위한 데다가, 선왕이 급사한 탓에 왕권이 굉장히 축소된 상태였다.

에바 공작은 반면에 경험이 풍부하고 노련한 귀족이었고, 왕족이라는 핏줄 탓에 은근하게 많은 귀족들의 지지를 받는 이였다.

그런 그가 제국의 지원을 받기까지 했으니 그 영향력이 순식간에 확대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번 전쟁도 에바 공작이 강하게 밀어붙인 결과라는 거군.”

“그렇지.”

난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레온을 보며 턱을 긁적였다.

결국, 그 에바 공작이 어디로 간지는 알 수 없었다.

먼저 출발한 게 분명한데 어느 순간부터 흔적도 끊기고, 소식도 끊겼으니.

우선 철우 형을 보내 그들의 흔적을 찾으라고 하긴 했지만…….

난 몇 가지 질문을 더 한 후 더는 얻을 정보가 없을 거라 판단했다.

짝짝.

난 손뼉을 두 번 쳤다.

“들어와.”

곧 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주술사들이 들어왔다.

레온의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풀어 뒀던 주술을 거두고 재워라.”

“케르를. 알겠습니다.”

주술사들은 꾸벅 고개를 숙이고서 지팡이를 흔들었다.

이 주술사들은 전투 능력은 약하다. 그래서 전투에서도 거의 뒤로 빠져 있었고.

다만, 이들의 능력은 다른 것에 특화되어 있었다.

바로 심문과 고문.

“무, 무슨?”

곧 정신을 차린 듯 레온이 당황한 목소리를 내었지만, 난 그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에게 걸어 두었던 주술은 간단했다.

레온의 나에 대한 감정을 ‘매우 호의적’으로 느끼도록 만든 것이다.

주술 중에서도 지성체의 감정을 건드리는 건 굉장히 고난이도의 술법이었다.

애초에 지속 시간도 십 분이 채 되지 않고.

여튼 쓸 만한 정보들은 모두 얻었다.

이제 뒷정리 좀 하고 쉬자.

* * *

벵칼은 수도인 만큼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 많았다.

성내에서 벌어진 전투 때문에 성내 곳곳이 피해를 보았으나, 공작이 빠르게 나서서 정리한 덕분에 금세 복구될 것으로 보였다.

내내 경계를 서며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편히 휴식을 취하게 된 건 제크가 가져온 소식 때문이었다.

-에바 공작이 회군하여 왕국으로 돌아갔다.

그야말로 골 때리는 소식이었다.

‘애초에 이걸 노린 건가?’

왕과 거슬리는 귀족들을 한데 모아 놓고 적군한테 드랍하는 것?

그렇게 왕이 이긴다면 기회를 봤다가 한 몫 얻으려 끼어들고.

실패하면 지금처럼 미련 없이 회군하는 건가?

영리하다기보다는 그야말로 치졸하고 얍삽한 행위였다.

물론 정치란 건 항상 깨끗하기보단 더럽다곤 하지만.

왕을 따라 진군한 병사들의 수도 만만치 않은데 그들을 단순한 희생양으로 던질 여력이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 곧 다시 그걸 떠올렸다.

‘제국을 믿는 거군.’

공작은 제국의 속국으로 들어갈 생각일 테고.

그러니 이 피해쯤은 어떻게든 극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걸지도.

아니면 미리 제국과 합의를 한 후에 움직임일 수도 있고.

“으으음.”

난 인상을 찌푸리며 팔짱을 꼈다.

기실 되짚어 보면 우리에게 딱히 나쁠 건 없긴 하다.

어찌 됐든 우리는 적은 피해로 바하트리스를 점령했고, 에바의 왕을 사로잡았다.

에바 공작이 야심만만한 인물이라 해도, 왕을 그냥 놔두진 않을 거다.

오히려 자신의 권력을 다지기 위해 왕을 이용하려 하겠지.

왕이란 건 상징성만으로도 쓸모가 아주 많으니까.

그러니 결과적으로 이득이긴 한데.

“제국이 생각보다 더 저돌적이네.”

신경 쓰이는 건 바로 제국이었다.

대륙에서도 손에 꼽히는 초강대국. 검성 같은 이들이 서너 명이나 있고, 그보다 더한 강자들도 있다.

돈, 무력, 영향력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국가이다.

본디 게임에서 제국은 그 영향력에 비해 크게 힘을 쓰는 일이 거의 없었다.

서부 전선이 무너진 이후로는 마물들을 퇴치하는데 앞장섰으며, 국가를 확대하는 것보다는 다른 국가들 간의 전쟁을 중재하는데 앞장서는 쪽이었다.

분명 그랬을 텐데.

‘이미 다른 것보단 같은 걸 찾는 게 더 쉽겠지만.’

게임의 스토리와는 큰 폭으로 바뀌었으니 제국도 달라졌을 수도 있긴 할 거다.

이미 에바 왕국의 사례에서 보이는 것처럼 달라진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다만 걱정되는 것은 바로 제국이 움직였을 때의 결과였다.

가끔 힘을 쓰는 것만으로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던 제국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대륙의 운명은 얼마나 큰 폭으로 바뀌겠는가.

무엇보다 제국에는 플레이어들이 일관적으로 말하던 ‘그 여자’도 있고.

근 몇 달간 아주 순조롭게 영토를 확장하고 있지만, 어째 항상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만 든다.

* * *

일주일 후.

우리는 에바의 왕 레온. 그리고 몇몇 포로들을 데리고 왕국으로 돌아갔다.

모든 인원이 돌아간 것은 아니고, 벵칼에는 철우 형이 일부 병력과 함께 남기로 했다.

계약서도 더욱 세세하게 수정을 했으니 바하트리스 공작도 함부로 딴생각을 품지는 못할 거다.

왕국으로 돌아와 병력들을 본래 거주하던 곳으로 배치하고, 포로들은 폴그룬 성에 가둬 두었다.

뭐 말이 가둬 둔 거지, 거의 다 고위 귀족들인지라 제법 화려한 저택을 지어서 거주하게 했다.

에바 공작을 바로 칠까도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그건 무리일 거라고 판단했다.

제국과 손을 잡은 정황이 있는 이상 제국에서 원군을 파견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에바 공작보다 그의 뒤에 버티고 있는 제국을 경계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것보다 이젠 진짜로 우리 왕국도 내실을 다질 시기가 되었다.

워낙 확장을 위한 확장에 집중한지라 민심부터 시작해서 신경 쓰고 관리해야 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식량도 이젠 내 포인트만으론 안 되고.’

그리고 과거엔 식량의 많은 부분을 내 포인트로 해결했지만, 이젠 그럴 규모를 훌쩍 뛰어넘었다.

가끔 포인트에 여유가 있고, 틈이 날 때마다 창고에 식량들을 쌓아 두긴 했지만, 이젠 농사가 주 식량원이 될 거다.

난 일정 규모 이상의 도시나 마을은 꼭 주술사. 즉, 사제를 보냈다.

그들에겐 ‘농사’에 대한 지식도 철저하게 교육했으므로 식량 생산 증대에도 기여를 할 것이다.

‘왕국을 세운 게 엊그제 같은데.’

난 오랜만에 상태 창을 열어 확인했다.

뇌신은 상태 창에 의지하지 말라고 했었다.

가끔 성장이나 그런 것을 체크하는 것까진 괜찮지만, 의지하는 순간 그것이 없어졌을 때의 폐해도 클 것이라고.

여튼, 그래서 이번엔 ‘왕’에 대한 것들 위주로만 살폈다.

처음 왕에 즉위했을 때 몇 가지 조건들이 주르륵 나열되었었는데.

“거의 다 충족됐네.”

그때는 기가 질릴 정도였던 조건들이 어느새 거의 다 충족되어 있었다.

나머지도 아직 충족을 못 했을 뿐, 시간이 지나면 충분히 충족을 할 수 있을 것 같고.

‘이번 전쟁을 한 게 이득이었네.’

특히 전쟁에 관련된 조건도 있었는데 그게 이번 일로 거의 다 해결이 됐다.

이 조건들을 채우고자 막 전쟁을 벌이고 다닐 수도 없으니, 이번 일이 벌어진 건 행운이었다.

다른 것보다 우리 병력 측에 거의 피해가 없었으니 이런 말도 할 수 있는 거긴 하지만.

“흐음.”

난 상태 창을 닫고서 창밖을 보았다.

오랜만에 돌아온 폴그룬의 신전.

그중에서도 내 방의 창문을 통해 바깥의 정경이 보인다.

이 주 후면 다시 또 이곳을 떠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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