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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141화 (141/170)

141화

바하트리스의 수도 벵칼.

우리는 그 앞에 진을 치고 있는 상태였다.

그중에서도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내 전용 막사.

하지만 지금은 한 명의 사람이 더 있다.

“그게 끝이냐?”

“예, 예.”

난 몸을 떨고 있는 사내를 보며 턱을 괴었다.

“대답은 좀 있다 들려줄 테니 대기하고 있거라.”

“알겠습니다!”

곧 사내는 내 축객령에 밖으로 나갔다.

난 사내에게서 시선을 떼며 내 손에 들린 종이를 다시 확인했다.

‘생각보다 싱겁군.’

그것은 바하트리스의 수장인 공작이 보낸 편지였다.

정확히 말하면 항복 문서라고 해야 할까.

여러 미사여구를 사용해 썼지만, 그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항복하겠다.

완전히 항복할 테니 나의 지위만 보장해다오.

뭐, 그런 내용이다.

하긴 지금 바하트리스의 상황이 말이 아니긴 하다.

지금과 같은 꼴이면 에바 왕국이 승리하더라도 놈들은 다시 일어설 수 없다.

아마도 여러 이유를 들어가며 에바 왕국에게 집어삼켜지겠지.

놈은 그걸 알고 아예 우리에게 빨리 항복하고서 자신의 지위를 일정 수준 보장받고자 한 것이다.

‘운이 좋은 놈이군.’

하지만 그 전제도 어디까지나 에바 왕국이 ‘이겼을 때’를 말하는 것이다.

만약 에바 왕국마저 진다면?

먼저 선전포고를 한 놈들을 가만 놔두지는 않았겠지.

“흐음.”

난 탁자를 손으로 두드리며 고민했다.

바하트리스의 수도를 함락하는 건 시간문제다. 그러나 수를 따져 보면 항복을 받아들이는 게 훨씬 이득이다.

우린 일직선으로 뚫고 오느라 다른 영지들을 모두 점령한 것도 아니고, 곧 에바 왕국을 상대하기도 해야 하니까.

그러니 항복을 받아들이긴 할 거지만.

‘생각날락 말락 한데…….’

내가 지금 고민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전령이 와서 항복을 말할 때부터 무언가 재밌는 게 생각나려 하는데.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문득 무언가를 떠올렸다.

‘그래.’

난 씩 웃으면서 바깥에 대기하고 있는 이를 불렀다.

재밌는 계획이 있다.

* * *

에바 왕국은 그야말로 쾌속이라 할 정도로 빠르게 진격하고 있었다.

에바의 귀족들은 처음 바하트리스가 밀린다는 소식엔 비웃었었다.

고작 야만인들한테 처참하게 깨졌다고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과시라도 하듯 검성을 보냈다.

그들의 머릿속엔 만약 또다시 지더라도 검성이 있다면 무참하게 깨지진 않을 거란 계산도 있었다.

그래서 검성을 보낸 후 에바는 대군을 동원하여 바하트리스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은 며칠 전 새로운 소식을 들었다.

-검성이 사망했다!

그 소식은 에바의 귀족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검성이 누군가.

에바 왕국의 살아 있는 전설.

에바 왕국을 다른 왕국들보다 한 단계 더 높게 평가받게 한 인물.

그는 ‘장수’는 아니었지만, 그 무력 하나만으로 전선의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검성과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의 실력 자체를 헐뜯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그에 대한 믿음은 절대적이었고.

그렇기에 더더욱 충격적이었다.

‘병사들에게 이 소식이 절대 퍼지지 않도록 하라!’

그렇기에 귀족들은 병사들에게로 그 소식이 안 퍼지게 조치했다.

가장 먼저 그 소식을 가져온 전령의 목을 날려 버리고, 누구든 그 소식을 흘리는 자가 있으면 엄하게 벌할 것이라 말했다.

그렇게 에바 왕국은 진군했다.

병사들의 사기는 높았지만, 지휘부의 사기는 어느 때보다 낮은 상태로.

그리고 바하트리스의 수도인 벵칼에 근접했을 때, 지휘부는 막사에 모였다.

“폴그룬의 병력들이 벵칼 근처까지 접근했다 합니다.”

“놈들의 전력은 제법 강합니다. 벵칼에 들어가 수성을 하는 게 현명하리라 생각됩니다.”

이런저런 의견을 내며 목소리를 높이는 귀족들을 살피던 왕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바하트리스 공작이 순순히 성문을 열 것 같소?”

그의 말에 귀족들도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확실히 쉽게 문을 열어 주진 않을 겁니다.”

왕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폴그룬의 기세가 생각보다 거세, 바하트리스의 피해가 심대합니다. 나름 대등한 관계를 유지했을 때라면 모를까. 지금 상황에선 우리도 경계하려 하겠지요.”

바하트리스가 에바 왕국을 경계하듯, 에바 왕국도 그 점을 염려하고 있었다.

물론 바하트리스에 대한 탐욕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전쟁 이후의 얘기.

그들로서도 우선은 폴그룬을 상대하는 게 급했으니까.

다만 그것을 어떻게 보여 줄까가 문제였다.

단순히 우리는 그럴 생각 없다. 그러니 안심하라. 이렇게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선은 전령을 보내 공작이든 밑에 수하든 한번 대면을 하자고 하는 게 어떻소?”

왕은 그리 말했고, 귀족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바하트리스와 에바 왕국은 분명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묶였었지만, 결국 이런 느슨한 신뢰 관계가 그들에게 패배를 안겨 주었다.

아직 에바 왕국의 전력은 건재하다 해도 승기는 그들에게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그걸 모르고 있다.

“전하!”

더 자세한 사항들을 정하고 있는데 밖에서 누군가가 말해 왔다.

곧 들어온 이는 전령 중 한 명.

그는 바하트리스에서 전령을 보내왔다고 말했다.

왕과 귀족들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 전령을 안으로 들여보냈고.

“바하트리스 공작께서 성문을 열 테니 바로 들어오시라 하셨습니다.”

전령은 의외의 말을 전했다.

바하트리스는 그들의 병력을 수도로 들이기로 한 것이다.

다만 전령은 한 가지 조건을 덧붙였다.

“대신, 이 협의서에 동의하시는 조건입니다.”

전령은 그러며 종이를 하나 꺼내 들었다.

거기에는 폴그룬 왕국과 전쟁이 끝난 뒤에 평화 협정을 가지는 것.

폴그룬 왕국에 승리할 시 어떤 조건으로 비율을 나눌지에 대한 것.

등등.

에바 왕국에서도 조건으로 생각했던 것들이 있었다.

그들로서도 크게 무리한 조건은 없었고, 결국 한시가 급한 상황이기에 그들은 간단한 상의 후에 협의서에 동의하였다.

다음 날. 에바 왕국은 벵칼의 성문을 통과하였다.

“잘 오셨소.”

바하트리스 공작의 환대하에 그들은 수도 안에 자리를 잡았다.

병력 편제는 우선 하루 휴식 후에 본격적으로 하기로 하고, 수도 외곽쪽에 너른 공터가 있어 그곳에 병사들이 주둔하기로 했다.

에바 왕국에서도 혹시 바하트리스가 다른 마음을 품은 건 아닌가. 그런 걱정을 하긴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들이 벵칼 안으로 들어온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이 다른 마음을 품더라도, 성벽 바깥에서 공성전을 벌이는 것보다는 안에서 싸우는 게 나으리라 생각했고.

협의서의 조건 같은 게 매우 구체적인 것으로 보아 크게 의심할 만한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튼, 그것과는 별개로 병사들은 진군이 끝나고 잠시나마 휴식을 한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에바 왕국의 병력의 수는 만약 바하트리스와 전투가 벌어지더라도 충분히 압도할 만한 전력이었다.

또한, 지휘관들의 무력도 차이가 크게 났다. 바하트리스의 강자들은 대부분이 이미 죽었기에.

그리고.

그들은 바하트리스가 야만인, 몬스터들의 국가인 폴그룬과 손을 잡으리라고는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는데도 말이다.

* * *

어두운 밤.

에바 왕국의 귀족들은 성내에서 수면을 취하라는 권유를 거절하고서 병영의 가운데에 막사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바하트리스, 에바 왕국의 병사들 모두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수도는 한밤중인데도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성벽의 위에는 여러 병사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호진도 섞여 있었다.

‘흠.’

호진은 성벽을 걸으며 에바 왕국의 병사들이 모여 있는 것을 봤다.

‘게임에서 볼 땐 별생각 없었는데.’

그는 전투가 아니라 다른 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바로 에바 왕국의 멍청함에 대한 것을.

‘어떻게 귀족이나 왕국들이 저렇게 무능할 수 있지?’

게임일 때는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야 게임이니까.

무능할 수도 있고, 타락할 수도 있고, 멍청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현실이 되고 나니 그들의 멍청한 모습은 굉장히 이질적이었다.

‘그렇다고 모든 귀족이 멍청한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이 그렇다면 모를까, 다 그런 것도 아니다.

검성, 황 윤 이런 이들은 전투 능력뿐만 아니라 그 지휘력 또한 준수했다.

“으으음.”

호진은 고민을 이어가다가 답을 내리지 못했다.

어차피 오늘 밤이 지나고 나면, 그들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있으리라.

너희들은 왜 그렇게 멍청하게 선택을 했냐고.

그 멍청함이 호진에게 많은 이득을 주긴 했지만 말이다.

“모두 내가 신호를 주면 시작해.”

호진은 품에서 구슬 하나를 꺼내서 말했다.

물론 그것은 통신구였고, 곧 소식은 모두에게 전파되었다.

벵칼의 곳곳에 숨어 있던 이들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어두운 골목을 지나 모두 한 방향으로 모여든다.

많은 수가 움직이는데도 그들의 움직임은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

다만 그들의 몸 근처에 어려 있는 초록빛 기운만이 은은하게 빛날 뿐이다.

시작은 늘 그렇듯.

크룩의 함성이었다.

“크라아아아아아아아-!”

대기를 진동시키는 거대한 포효.

그 포효에 걸맞은 거대한 덩치.

크룩은 몸을 키우는 것과 동시에 자리를 잡고 있는 병영을 발로 쓸어버렸다.

“으아아악!”

갑자기 한밤중에 날벼락을 맞은 에바의 병사들이 소리 질렀다.

“적습, 적습이다!”

당연히 그들은 바로 상황 파악을 하지 못했다.

도대체 저 괴물은 어디서 나타난 거란 말인가?

이 성에 미리 숨어 있기라도 했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머리 위에서는 이번엔 벼락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콰르르르릉-!

에바 왕국에 마법사가 있긴 했지만, 그들도 주문을 외우는 데엔 시간이 걸렸고.

방어 마법이 완성됐을 때쯤엔 수백의 병사가 이미 벼락에 당한 후였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막 막사에서 빠져나온 왕과 귀족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늘에서 이상한 쇠구슬들이 떨어져 내리고, 거대한 덩치의 오크는 난동을 피우고 있다.

그리고 벼락까지 곳곳에 떨어져 내리고 있으니.

폴그룬의 기습은 그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더군다나 그들을 더욱더 당황하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전원 발사-!”

성벽 위에서 우렁차게 울려 퍼진 목소리였다.

몇몇 이들은 몰랐으나, 왕은 그 목소리를 익히 알고 있었다.

바하트리스와 교류를 할 적 직접 본 적 있는 ‘궁사’였으므로.

‘귀궁?’

왕은 표정을 굳힌 채 성벽 위를 올려다보았다.

과연 그곳에는 귀궁이 목청을 높여 가며 궁사들에게 명령하고 있었다.

파바바바박!

“으아아악!”

바하트리스는 본래 궁병들로 유명하다.

그런 궁병들의 매서운 화살이 자신들에게로 향하니, 그 위력은 상당히 치명적이었다.

“모두 막사 뒤로 엄폐해!”

목소리를 높여 가며 명령을 내리긴 하지만,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병력이 밀집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인 이 상황에서 왕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웬 남자가 마치 ‘신’ 같은 위세로 둥둥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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