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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140화 (140/170)

140화

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잘못 알았나 보군. 난 황제가 아니라 왕이다.”

내 말에 그녀는 나에게 달려들며 대답했다.

“난 그저 전언을 전할 뿐. 너의 대답엔 관심 없다.”

휘익!

클로가 앞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다.

작은 동작으로 피한 난 손을 앞으로 뻗으며 전격을 방출했다.

파직-!

전격이 그녀의 몸을 집어삼키려는 찰나, 몸이 희미해지며 죽 늘어나더니 내 오른쪽에서 다시 공격이 튀어나온다.

카가각!

창을 검으로 바꾸며 난 공격을 미끄러트렸다.

그런데 내 검을 따라 미끄러지던 그녀의 클로가 어느 순간 훅 사라졌다.

휘이이-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클로와 몸, 전부가 검은 안개로 화했다.

“말하자면 전략가의 꼭두각시라 이건가?”

난 검을 옆으로 휘두르며 말했다.

쉬익-

“아니.”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내 뒤에서 들려왔다.

콰앙!

“딱히 미물들의 일엔 별 관심이 없는 편이라.”

뒤로 전격을 뿜어내며 그녀의 공격을 밀어내고 다시 한 번 검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한 번 전혀 다른 방향에서 나타났다.

‘안개로 변한 건가? 아니면 안개 안에서의 이동?’

난 전격을 사방으로 뻗어냈다.

파지지직!

안개가 점하던 공간을 푸른 전격이 뒤덮는다.

‘피해는…….’

그 결과를 보기도 전에 다시 한 번 클로가 내 목덜미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콰앙!

공격을 쳐내면서도 안개가 조금이나마 옅어진 걸 확인했다.

‘있긴 있군. 하지만 미묘해. 큰 타격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

그렇다면 본체는 어디 있단 말인가?

나는 난데없는 수수께끼에 눈을 가늘게 뜨며 검을 들었다.

비록 한낮이지만, 이 상황에 어울릴 만한 기술이 있다.

‘개방.’

검을 중심으로 강렬한 바람이 불어온다.

난 검을 앞으로 뻗으며 집중했다.

단순히 기술을 발동하는 걸 넘어, 그 원리를 체득하기 위해 노력했었다.

그렇기에 쓸 수 있다.

우웅-!

삭월이 한낮의 대지에 내린다.

콰가가가가각-!

순식간에 내 주위의 모든 공간에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진다.

본체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면 주변을 다 베어 보면 될 일이다.

안개는 당황한 듯 이리저리 이지러지더니 곧 한곳으로 모였다.

난 그 모습을 보며 비아냥거렸다.

“미물한테 맞아도 아프긴 한가 보지?”

그녀가 걸친 갑주엔 우그러지고 찢긴 흔적이 가득했다.

저 안개가 정확히 무슨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타격을 입는다는 건 확인했다.

그녀는 말없이 나를 노려보더니 별안간 혀를 찼다.

“쯧.”

그와 동시에 그녀가 손을 뻗자 아래에서 차원 문을 유지하고 있던 제임스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자만하지 마라, 미물.”

제임스는 그녀와 나를 휙 둘러보더니 빠르게 무언가를 외웠다.

도망갈 생각이군.

난 힘을 끌어올리며 전장을 내려다보았다.

마물 중 제법 강력한 개체들은 어느새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싸우러 온 게 아니라 전황이 불리하니 마물을 회수할 시간을 벌러 왔던 거군.

강력한 마물이 무한정 있는 건 아닐 테니.

제임스는 제법 빠르게 사람 크기만 한 포털을 만들었고, 둘은 그곳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그 순간을 기다렸던 나는 재빠르게 손을 휘둘렀다.

콰르르르르릉-!

비축해 두었던 힘을 남김없이 포털 안으로 털어 넣었다.

“이런……!”

막 포털 안으로 집어넣었던 여자의 얼굴에 당황한 듯한 표정이 떠오르고.

우웅-

포털이 닫혔다.

“선물이다, 전략가.”

난 들을 사람 없는 말을 만족스러운 웃음과 함께 중얼거렸다.

애초에 저 여자를 일격에 죽일 수는 없었다. 힘의 격차가 있다곤 하나 압도적으로 죽일 정도는 아니었으니.

그리고 제임스는 비슷하면서 다르다.

그를 죽이는 건 쉽지만. 후폭풍을 감당하기 힘들다.

그가 쓰는 힘은 ‘차원’ 그 자체. 자폭이라도 하면 나는 괜찮아도 이 일대의 병사들이 모두 휩쓸릴 수도 있으니.

포털을 통해 적 본진에 재밌는 선물을 안겨 준 것만으로 만족해야지.

“후.”

난 작게 숨을 내쉬며 전장을 바라보았다.

연합군의 병사들은 이미 기세가 꺾인 채 소극적인 저항만 하고 있다.

마물들은 강한 놈은 모두 빠져나가고, 잔챙이들만이 발악하고 있고.

지휘관도 사라졌으니 금세 토벌될 것이다.

“대승이군.”

난 귀궁 황 윤이 막 제압당한 채로 무릎 꿇리는 걸 확인하고 만족스럽게 중얼거렸다.

* * *

우리 측의 피해는 경미했다.

아무래도 이렌이 정령을 이용해 병사들을 케어한 게 주요했다.

적들은 우리 군에게 큰 피해를 주기 힘든데, 우리 군은 적들에게 쉽게 피해를 주었으니까.

뭐, 그걸 떠나서 양측 병사들의 기량이 다르기도 했고.

일반 병사들은 우리 군의 병력이 전격만 내뿜어도 쉽게 무력화되곤 하니.

“이걸로 적의 진군도 늦춰지겠군.”

“그렇습니다. 비록 에바 왕국의 전력이 도착하기 전이라 하나, 바하트리스의 병력은 물론 검성까지 사망했으니까요.”

대승을 거둔 만큼 우리 군의 사기는 더더욱 높아졌다.

기실 이번 작전은 복잡하거나 엄청나게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우리 군의 가장 뛰어난 장점이 무엇인가.

바로 압도적인 무력이다.

우리 측의 지휘관 전력은 경미한 부상이 끝인 데 반해 상대 측은 한 명을 제외하고 전원 사망했다.

그것도 그 한 명인 귀궁은 포로로 붙잡혔고.

그런데 우리 측의 병사들마저 일반 병사들을 둘 이상 상대한다.

부족한 거라곤 오롯이 ‘수’에서 밀린다는 것 정도.

만약 연합군이 처음부터 막대한 물량을 기반으로 밀고 들어왔다면 우리도 힘들었을 거다.

아니면 애초에 마물들이 온다고 할 때 전선을 확 뒤로 물려야 했다.

이번처럼 진격하지도 않고 후퇴하지도 않고 지지부진하게 멈춰 있을 게 아니라.

결국은 상대방은 방심해서 진 거다.

“이제 우리가 딱히 수적 열세라고 할 수도 없겠군요.”

“그렇지. 에바 왕국 측에서 병력을 파견하긴 할 테지만 다른 것보다 지휘관이라 할 만한 놈들이 없으니까.”

“그러면 우선 에바 왕국의 병력이 도착하기 전에 진군하는 게 낫겠군요. 바하트리스 놈들에게 최대한 피해를 주는 방향으로.”

난 철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에바는 최강의 전력인 검성을 잃었다.

바하트리스는 전력 대부분을 잃었다.

병사들이야 아직 여유가 있겠지만, 솔직히 이 전쟁이 끝나더라도 놈들은 재기하기가 힘들 거다.

최소 십 년 이상은 걸리겠지. 강자는 원한다고 양산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우리는 회의를 통해 곧 결론을 내렸다.

바하트리스에 진군한다.

목표는 에바 왕국이 도착하기 전에 바하트리스의 수도를 치는 것.

‘벵칼.’

한 번 갔었던 곳이다.

거리상으로는 에바 왕국보다 오히려 우리 쪽이 더 가깝다.

적의 반항이 있을 테지만, 우리는 쭉 밀고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다.

* * *

호진의 군대는 바하트리스를 빠르게 밀고 나갔다.

처음 성 몇 개를 침공했던 것과 달리, 이번엔 거의 일직선이라고 해도 될 만큼 앞만 보고 진격했다.

목표는 벵칼.

에바 왕국보다 일찍 도착하기 위해서 오롯이 속도에 집중하여 가로막는 모든 걸 파괴하며 진격했다.

물론, 피할 건 피하고 지나갔지만.

바하트리스 측의 저항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호진은 더욱 과감한 작전을 진행했다.

호진, 크룩, 철우만으로 이루어진 별동대.

지휘는 오롯이 이렌에게 맡긴 채로 셋은 먼저 나아가 길을 텄다.

성을 지키고 있는 이들이라 해 봤자 기껏해야 2성, 3성에 불과했고.

호진은 걸어 다니는 재앙이라 할 만한 위력을 선보이며 성을 격파했다.

크룩과 철우는 그보다 부족하지만 괴물 같은 기세를 보이는 건 마찬가지였고.

바하트리스의 수도에선 당연히 난리가 났다.

본디 바하트리스에선 폴그룬 왕국의 전력이 만만치 않다고는 하나,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우선 첫 번째로는 폴그룬이 멜리움과 전쟁을 했을 때의 양상 때문이었다.

폴그룬은 전쟁의 중간부터는 호진이 거의 자리를 비운 상태였고, 그렇기에 지금과 같은 압도적인 무력을 선보이지 못했다.

두 번째로는 폴그룬의 주전력의 무력 자체가 그 당시보다 월등하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호진이 뇌신의 신전을 다녀온 후 큰 폭으로 강해졌는데, 그것은 단순히 그만 강해지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호진은 왕이며 동시에 신의 사도이자 대리자다.

그는 뇌신이 남긴 힘의 일부를 흡수했고, 그것은 본래 부하 및 백성들에게 내리는 축복 또한 더욱 강해진다는 결과를 낳았다.

거기에 멜리움 왕국과 전쟁을 하며 어마어마한 신화 포인트를 획득했고, 그걸 다시 병력을 강화하는 데 썼다.

이렌은 이미 한차례 진화를 마친 상태로 일전에는 겨우 부족 단위를 강화하는 데 그쳤다면, 지금은 족히 일군을 아우르는 힘을 쓸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바하트리스는 며칠 만에 수도에 이르는 성들을 모두 함락당했다.

* * *

“고, 공작 저하. 폴그룬의 병력이 수도 바로 앞까지 진격했다 합니다.”

“바투스 성이 함락당했다고 합니다!”

“진격을 늦추러 출격했던 바툼 백작의 병력이 궤멸당했다고 합니다!”

바하트리스의 수도 벵칼.

그곳의 심부, 바하트리스 공작은 곳곳에서 날아오는 소식에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급보의 대부분은 성이 함락당했다거나, 병력이 궤멸당했다는 소식뿐이었다.

에바 왕국의 병력이 지척까지 왔다곤 하나, 이젠 전쟁의 승패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바하트리스 공작은 생각했다.

‘에바 왕국이 이긴다고 해도, 그건 우리가 이기는 게 아니다.’

‘이번 전쟁으로 주 전력 대부분을 상실했다.’

‘그것은 곧 스스로 방위를 할 능력 자체를 상실했다는 뜻. 이대로 에바 왕국이 승리한다면 놈들은 그 이빨을 우리에게 들이밀겠지.’

분명 폴그룬군 또한 바하트리스 왕국을 가로지르며 손해를 입었겠지만, 결국은 그게 모두 죽 쒀서 에바 왕국에게 갖다 바치는 꼴이 된 거다.

‘어떻게 해야 하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

놈들에게 수도에 들이닥치기 전에. 에바 왕국이 도착하기 전에. 무언가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대로는 모든 게 끝날 테니.

바하트리스 공작은 심복들마저 물린 채 장고의 시간을 가졌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후에 바하트리스는 결정을 내렸다.

“당장 전령을 불러와라!”

그는 몇몇 심복과 전령을 부른 상태에서 말했다.

“우리는 폴그룬에게 투항한다.”

에바 왕국이 아니라 폴그룬 왕국에게 항복을 하겠다고.

그들은 폴그룬보다 에바 왕국이 더 무서웠다.

무엇보다 그는 폴그룬의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놈들 수뇌부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아.’

그 무력이 강하다곤 하나, 애초에 폴그룬 왕국이 함부로 영토를 넓히지 않은 이유는 그곳을 모두 다스릴 만한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하트리스를 점령한다 해도, 그곳을 다스릴 만한 인력이 부족하다는 뜻.

바하트리스 공작은 전쟁의 승패보다 실리를 더 중요시하는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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