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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138화 (138/170)
  • 138화

    검성과의 싸움이 단기 결전으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도, 전투가 끝나기 전에 마물 군세가 개입하리라는 것도 예상하였다.

    애초에 어느 정도 의도한 것이기도 하고.

    “이거 표정들이 왜 그러십니까?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인데요.”

    물론, 마물 군세 측에 지휘관이 있으리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저만한 규모의 마물을 지휘관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는 없을 테니까.

    이런저런 일들을 예상했고, 대부분은 들어맞았다.

    다만, 어쩐지 저 남자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묘한 불안감이 들었다.

    “너는 누구냐.”

    연합 측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바로 발렉투스의 질문이었다.

    “저 말입니까?”

    마물의 지휘관은 그 질문에 생글생글 웃으며 자신을 가리켰다.

    “제임스라고 합니다.”

    얼굴에 로브를 푹 눌러쓰긴 했지만, 그 눈동자가 시리도록 푸른 건 감춰지지 않았다.

    난 생각했다.

    전략가의 수하라면 물론 평범하지 않겠지.

    그리고 그중에는 플레이어가 있을 수도 있다.

    다만 플레이어가 있다면 그 플레이어가 누군지에 대해서는 쉬이 예측할 수 없었다.

    본래 전략가는 무리를 짓는 걸 즐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말 하기 부끄럽지만 공간술사라는 이명으로 불리기도 하지요.”

    그렇기에 ‘공간술사’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도 기민하게 대응할 수 없었다.

    쿵-

    쿠궁-

    전략가는 어찌하여 저런 규모의 마물을 보냈는가?

    무시하기엔 꺼림칙하고, 전력으로 맞부딪치기엔 부족한 규모.

    ‘방심하게 만들기 위해서군.’

    이 정도면 상대할 수 있다. 대응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을 만들게 하기 위해서.

    쿠웅- 쿵-!

    사내의 머리 위로 핏빛의 균열이 떠오른다.

    애초에 공간술사란 무엇인가.

    그것은 마법, 그중에서도 공간 계열 마법에 전념한 이들을 가리킨다.

    물론 흔하지도 않고, 흔할 수도 없다. 공간 계열의 마법은 기존 마법 중에서도 극상의 난이도에 속했으니.

    그렇기에 기존 게임 내에서도 공간술사라 불리는 이는 단 한 명뿐이었는데.

    저 모습을 보니 어쩐지 저놈이 그놈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

    균열이 갈라지며 그 사이에서 마물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린다.

    -키에에에에에엑!

    첫 번째로 모습을 드러낸 건 칼날마귀.

    강력한 데다가 자존심도 강해 무리를 짓지 않는 그 마물이 한 번에 열 마리나 튀어나왔다.

    그 뒤를 잇는 마물들도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놈들이었다.

    공간 이동에도 한계가 있긴 한지 일정 크기 이상의 마물은 없었으나, 그 크기가 작다고 얕잡아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일반적인 병사들은 셋이 모여도 마물 하나를 상대하지 못하니까.

    게다가 칼날 마귀 정도 되면 병사 수십이 있어도 잡을 수 없다.

    과거 탈로스 하나를 상대할 때도 사제 여러 명과 우리 일행들이 다 같이 덤비지 않았었나.

    연합 측을 보니 이미 안색이 파리하게 질려 있었다.

    그 황 윤 또한 질린 얼굴을 하고 있을 정도니.

    그나마 검성 정도만이 평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크루룩.”

    뭐, 우리는 조금 사정이 달랐다.

    크룩은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호전적인 기세를 내뿜었고, 철우와 이렌 또한 그저 흥미롭다는 듯 마물들이 튀어나오는 걸 구경할 뿐.

    나는 피식 웃으며 마물들을 소환하고 있는 남자를 보았다.

    여유만만한 그 낯짝을 보고 있으니 어쩐지 손이 근질거렸다.

    예전 게임이나 만화를 보면 적이 준비를 하는 동안에는 기다려 주곤 하던데.

    파직-

    그때마다 항상 의문이 들곤 했었다.

    왜 공격을 하지 않는 걸까?

    콰르르르르릉-!

    난 양손을 들어 마물들을 향해 뻗었다.

    주변 일대의 기운들이 양손으로 빨려들었다가 거친 굉음을 내뿜는다.

    난 그 기운을 압축할 대로 압축했다가 한순간 탁 놔 버렸다.

    기이이잉-

    마물과 내 사이에 기이한 소음과 함께 일직선의 선이 그어지고.

    우르르릉-

    우렛소리가 났다.

    그다음 이어지는 수십, 수백 줄기의 벼락.

    무대는 이미 준비되었고, 더 이상 전력을 숨길 필요는 없다.

    콰과과과과과과과-!

    본 무대의 막이 올랐다.

    * * *

    쏟아지는 벼락 줄기에 가장 먼저 대응을 한 건 거대한 마물들이었다.

    처음 도착했던 마물들의 군세는 대부분이 거대한 덩치를 가진 놈들이었는데, 균열에서 쏟아지는 놈들을 보니 왜 그런지 알 수 있었다.

    덩치가 작은 놈들은 직접 소환할 수 있으니, 균열을 통해 소환할 수 없는 덩치를 가진 놈들만 끌고 온 것이다.

    -끼에에에에에에엑-!

    쾅! 콰광!

    마물들이 몸을 던져 제 등으로 벼락을 막아 낸다.

    아니, 그것은 막아 낸다기보단 일방적으로 유린당하는 것이었다.

    마물들의 거죽이 아무리 단단하다고 하나 벼락을 막아 낼 정도는 아니었고.

    제 놈들의 밑에 다른 마물들이 있는 탓에 피하거나 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이놈들이.”

    균열을 유지한 채 마물들을 소환하고 있던 놈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균열을 유지하는 건 상당히 심력을 쏟는 일이었고, 여러 가지 복잡한 조건이 필요했다.

    그중에는 굳이 적들이 있는 곳까지 온 다음에 소환해야 하는 이유 또한 있었다.

    “이익!”

    남자는 처음 여유는 온데간데없이 균열을 유지하는 데에 집중했다.

    “다들 달려들어!”

    그리고 멀뚱멀뚱 서 있는 마물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키아아아아아악!

    마물들은 명령을 내리자마자 순식간에 앞으로 내달렸다.

    “크라아아악!”

    마물들이 폴그룬, 그리고 연합 측의 병력과 맞붙는다.

    콰르르르릉-!

    그 와중에도 벼락은 끊임없이 쏟아져 내리며 마물의 본진을 유린하고 있었다.

    그나마 남자에게 위안점이 있다면 죽는 수보다 소환되는 수가 더 많다는 것 정도.

    하지만 그런 위안 또한 오래가지는 않았다.

    콰릉-

    폴그룬의 측에서 갑자기 새하얀 빛기둥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호진이 힘을 개방했다.

    * * *

    온 시야가 하얗게 변했다가 다시 제 색을 되찾는다.

    압도적인 전율.

    온몸을 짜릿하게 울리는 느낌.

    난 손을 앞으로 슥 뻗었다.

    콰르르르르릉-!

    내 손이 가리키는 지점에서 전격 구체 수십 개가 생겨났다.

    꽈아아아아아아아앙-!

    그것은 연쇄적으로 터져 나가며 주변의 마물 수백 마리를 단숨에 집어삼켰다.

    뇌신은 나에게 ‘그릇’을 만들어 주겠다 했었다.

    그럼 그 그릇이란 무엇인가?

    다른 말로 말하자면 그것은 일종의 자격 같은 거다.

    거대한 힘을 가질 수 있는 자격.

    그 토대.

    즉, 그것 자체만으로는 별다른 힘이 없었다.

    그 그릇에 무엇을 채워 넣느냐는 내 몫이었고, 나는 힘겹게나마 첫 번째 힘을 채워넣을 수 있었다.

    휘이이이-

    내 주변으로 흐릿한 인형들이 갈라져 나오며 그 인형들이 제각각 다른 힘을 부렸다.

    수십, 수백을 넘는 인형들.

    그것은 회색빛의 연기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것의 정체는 바로 뇌신의 신전에 갇혀 있던 영혼들이었다.

    ‘갈 곳이 없는 영혼들아.’

    난 그들에게 자유를 줄 힘은 없었다. 그것은 엄연히 신의 영역이었으니까.

    나는 겨우 그것의 단초를 맛보았을 뿐, 아직 그 힘은 멀기만 했다.

    다만, 나는 그들에게 어느 정도 위안을 줄 수는 있었다.

    ‘마음껏 날뛰어라.’

    그들이 가진 강렬한 적의를 마물들을 향해 집중시켰다.

    이것은 사령술 같은 게 아니다.

    영혼들이 모두 같은 소리를 내며 전격을 퍼붓고, 돌풍을 일으킨다.

    오오오오오오오-!

    사령도, 유령도 아닌 순수한 영혼의 힘.

    그것은 다루기 힘든 일이지만, 내 통제에 들어와 더욱 강렬한 위력을 만들어 냈다.

    땅이 갈라지고, 벼락이 몰아치고,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바람이 분다.

    마물들은 그 와중에도 미친 듯이 인간들에게 달려들었다.

    물론 나도 인간과 마물들을 하나하나 완전히 분리할 순 없기에 그것은 옳은 선택이기도 했다.

    -키에에에에엑!

    그러나 그것 또한 미봉책에 불과할 뿐.

    우리 측도 달려드는 마물들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으니.

    난 마물을 소환해 내고 있는 남자의 안색이 시시각각 창백해지는 걸 확인하고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쉬이이이이이익-!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압도적인 무위를 뽐내고 있는 자.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마물 수십 마리의 목이 날아간다.

    그것도 칼날 마귀 세 마리를 상대하며 동시에 하는 검격이 그 정도의 위력을 내고 있다.

    확실히 검성이라는 칭호에 어울리는 남자다.

    ‘아쉽군.’

    저 정도의 남자가 같은 편이었다면 쓸 곳이 많았을 텐데.

    마물들은 지금도 순식간에 목숨을 잃어 가고 있다.

    대부분은 내 힘에 의한 것이었다.

    그 결과 남자가 자신만만하게 등장한 것이 무색하게 마물 군세는 궤멸할 것이다.

    그렇다면 저 검성의 칼날도 다시 우리를 향하겠지.

    우우우웅-

    난 창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본래 검은색이던 창대는 새하얀 빛에 휩싸여 있었다.

    내가 의지를 발하자 순식간에 창은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기세와 별개로 주변은 점점 고요해져 갔다.

    마치 태풍의 핵에 있는 것처럼.

    난 어깨를 천천히 뒤로 당겼다.

    뇌신과 둘이 있던 나날 동안 아주 많은 걸 배웠다.

    특히 이 ‘투창’에 한해선 그를 많이 따라잡았다고 생각한다.

    내 몸은 활시위처럼 꺾였고, 창에는 영혼들이 들러붙었다.

    팡-

    난 시위를 놓듯 창을 앞으로 쏘아 냈다.

    창에 붙은 영혼들은 창을 더욱 빠르고, 강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그에 그치지 않고 창이 흐릿하게 일렁거리더니 순식간에 수십 개로 불어났다.

    저 하나하나는 허상이면서 동시에 실존한다.

    그 모든 위력이 같지는 않겠지만, 어느 하나 무시할 수는 없는 위력을 담고 있다.

    검성 발렉투스 또한 그 힘의 파동을 느꼈는지 칼날 마귀를 상대하던 도중 검을 크게 휘두르며 거리를 벌렸다.

    곧 그의 눈이 쏟아지는 창의 비를 발견했다.

    그 압도적인 광경 앞에서도 그는 주늑들거나 하지 않았다.

    쉬이-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검을 들어 올릴 뿐.

    그는 검을 옆으로 베었다.

    곧 창과 검이 맞부딪쳤다.

    콰아-!

    거대한 굉음이 터져 나오다가 사라진다.

    몇몇 창이 남자의 몸에 닿지 않고 주변에 떨어져 내린다.

    검성의 주위에 있던 마물과 병사들은 창에 닿자마자 순식간에 소멸되었다.

    단순히 허상에 불과한 창들조차 저만한 힘을 담고 있는데.

    검성은 이 공격을 직접 상대해 막아 낼 수 있을까?

    휘이이이-!

    제각각 전투를 하고 있던 모두의 시선이 일순간 검성에게로 향했다.

    모두 단편적으로나마 아까 전의 공격의 위력을 느낀 것이다.

    검성의 주변으로는 먼지바람이 피어올랐기에 바로 확인할 수 없었다.

    휘이-

    내가 손을 들어 바람을 거두자 천천히 그 모습이 드러났다.

    “쿨럭.”

    검성의 피를 토했다.

    그의 검은 반으로 꺾여 있었으며, 눈에는 실핏줄이 터져 있었다.

    “대단하군.”

    그는 그 상태에서도 나를 똑바로 올려다보며 말했다.

    평소라면 이 타이밍에 비아냥댔겠지만…….

    어쩐지 이번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도 보답은 해야겠지.”

    검성은 반 토막 난 검을 들어 올리며 덤덤히 중얼거렸다.

    우웅-!

    그의 검 위로 흐릿한 무언가가 일렁거리며 솟아올랐다.

    난 창을 앞으로 뻗으며 그에게 말했다.

    “덤벼라.”

    그것이 내가 그에게 해 줄 최선의 말이었다.

    비록 적인 상대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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