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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131화 (131/170)

131화

남자는 잠시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신색을 회복하고는 대답했다.

“…유스칼이라 불러 주시오.”

“알겠습니다.”

잠시 어색한 공기가 감돌았다.

자신을 유스칼이라 말한 그는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플레이어라. 이 사막에 온 이후로는 처음 보는군요.”

“그렇겠죠. 이곳까지 찾아올 사람은 없었을 테니까요.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제국에 있지 않습니까?”

유스칼은 화린의 말에 그녀를 빤히 보았다.

“당신도 제국에 있었던 겁니까?”

“예. 그리고 당신도 그곳에서 이미 본 적이 있습니다.”

“하하. 생각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었구려.”

유스칼은 호탕하게 웃다가 돌연 정색을 했다.

“서바이벌에서 살아남는 건 힘들었을 텐데.”

“뭐, 저도 이름만 랭커였던 건 아니라서요.”

제국.

이 대륙에서도 가장 번창한 국가.

아이러니한 건 제국에서 스타팅한 플레이어도 결코 평화롭지는 않았다는 거다.

오히려 그곳은 플레이어들에겐 지옥이었다.

그들의 튜토리얼은 ‘서바이벌’이었으니까.

유스칼은 곧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우선 얘기라도 들어보죠. 따라오시오.”

그는 그리 말하고서 등을 돌려 천막으로 들어갔다.

화린과 페일도 잠깐 시선을 교환한 후 그를 따라 들어갔다.

“우선 물이라도 좀 드시오. 시원하지는 않다만.”

유스칼은 이미 천막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화린은 슬쩍 유스칼 뒤에 서 있는 소년을 보았다.

아직 화린과 페일을 경계하고 있는지 소년은 손에 활을 들고 있는 채였다.

“머리에 뭐가 박힐까 봐 물 마시는 것도 무섭네요.”

화린은 유스칼이 건넨 물 컵을 받으며 말했다.

“이해해 주시오. 이곳에서 다른 사람을 믿는 건 굉장히 쉽지 않은 일이거든.”

“조언 감사합니다.”

화린과 페일은 물을 마신 후에 유스칼의 건너편 의자에 앉았다.

“천막이 많던데 다른 사람들은 어디 간 겁니까?”

“이 천막만 진짜고, 나머지는 환영이요. 이곳에선 얕보이면 안 되거든.”

환영이라.

화린은 설핏 미소를 지으면서도 속으로는 감탄을 했다.

들어오는 길에 가까이서 봤지만, 환영이라곤 전혀 못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까지 온 이유가 무엇이오?”

“이미 짐작하고 있지 않습니까?”

화린은 질질 끌 거 없이 바로 본론을 얘기했다.

“당신을 스카웃하러 왔습니다. 저희와 함께하시죠.”

“‘저희’라.”

유스칼은 손에 들린 잔을 빙빙 돌렸다.

“다른 이들과의 접촉을 최소로 했고, 정말 필요한 물자를 사는 것조차 이중, 삼중을 거쳐서 구입했는데 그대들은 나를 찾아왔구려.”

그의 말마따나 유스칼의 위치를 찾는 건 굉장히 힘들었다.

우연히 들어온 첩보가 아니었다면 이 사막에 있는 것조차 몰랐으리라.

“우연이라도 정보력이 받쳐 준다는 얘기겠지.”

하지만 우연 또한 결국은 실력이다.

만약 페일이 대륙 곳곳으로 확장하고 있는 정보망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그런 첩보를 받지도 못했을 테니까.

“그리고 당신 둘은 집단의 수장 같지도 않구려. 랭킹 37위랑 영리해 보이는 소년을 졸로 부릴 수 있는 집단이라.”

유스칼은 아주 작은 단서들만으로 화린을, 나아가 화린이 속한 집단을 평가했다.

“수장은 플레이어요?”

그리고 핵심을 짚었다.

화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남들에게 막 말하고 다닐 정보는 아니지만, 눈앞의 이 남자를 잡기 위해선 숨기지 않는 게 나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유스칼은 턱을 괴며 다시 물었다.

“그럼 그자는 제국 출신이오?”

제국.

그 단어에 화린은 유스칼의 눈을 빤히 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흐음.”

유스칼의 눈이 빛났다.

“제국 출신이 아닌 자가 패권을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오? 당신도 알지 않소. 그곳에 도사리고 있는 괴물을.”

화린은 유스칼의 말에 눈을 감았다. 떨리는 눈동자를 감추기 위해서.

‘괴물.’

그녀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모습이 떠올랐다.

제국에는 아주 많은 플레이어가 있었다.

다른 곳의 상황은 모르지만, 적어도 수십 명이 넘는 플레이어가 한자리에서 시작했다.

그중에는 눈앞의 유스칼을 포함해 랭커도 여럿 있었고.

하지만 그녀가 제국을 떠나기 전 남았던 플레이어의 수는…….

고작 다섯 명.

“그자가 대단하단 건 저도 알고 있어요.”

화린은 손을 콱 쥐며 말했다.

“하지만 이 넓은 대륙에 제국만 있는 건 아닙니다.”

그녀는 그를 생각했다.

괴물이라.

“괴물은 기껏해야 괴물일 뿐이지요.”

아무리 힘이 세 봤자 무얼 하나.

“저는 왕을 모시고 있습니다.”

힘이 전부인 세상이라지만 괴물은 괴물일 뿐이다.

믿고 의지할 수도 없고,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그리고 그는 마경 출신입니다.”

이번엔 유스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마경에 대해 모르는 플레이어는 없다.

그곳에 대한 악소문도. 미칠 듯이 괴랄했던 난이도도.

“함께 가시지요.”

화린은 유스칼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 * *

“흐음.”

남자는 손가락으로 턱을 긁었다.

그의 시선은 높은 절벽 아래 넓게 펼쳐진 평야를 향해 있었다.

뒤로 질끈 동여맨 머리. 둥그런 안경알.

전략가는 흥미로운 눈으로 전황을 살폈다.

“생각보다 끈질기군.”

평야엔 군대와 마물들이 부딪치고 있었다.

전략가는 이따금 입을 열어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전황엔 큰 변화가 있었다.

“제가 내려갈까요?”

“아니요. 아직 너무 이릅니다.”

전략가는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목소리에 단호하게 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는 시선을 평야에 고정시킨 채 계속해서 무엇을 말했다.

그것이 바로 그의 능력 중 하나였다. 마물들을 조절하는 능력.

이렇게 먼 거리임에도 그는 마물들에게 간단한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전략가는 한참 동안 명령을 내리다가 어느 순간 고개를 내저었다.

“오늘은 안 되겠군.”

그는 손가락을 탁 쳤다.

그러자 군대와 맞붙고 있던 마물들이 움찔 몸을 떨었다.

-키에에에에!

가장 앞에서 싸우던 마물들은 앞뒤를 가리지 않고 달려든다.

반면에 뒷열에 있던 마물들은 바로 등을 돌려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마물들이 달아나는 걸 보면서도 눈앞에 달려드는 마물들을 상대하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 그냥 밀어붙이면 바로 끝낼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렇습니까?”

전략가는 이번에야 등을 돌려 자신을 향해 말하는 이를 보았다.

“아. 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확실히 그러고자 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저 정도는 밀어 버릴 수 있지요..”

전략가는 빙긋 웃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텁.

그리고 벌벌 떨고 있는 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이렇게 의견 개진을 하는 것 또한 아주 좋습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놓치는 게 있을 수도 있으니.”

“가, 감사합니…….”

“그런데.”

콰악!

갑자기 전략가의 손이 ‘그녀’의 머리칼을 콱 움켜쥐었다.

“머리가 달려 있으면 좀 생각을 하고 말하는 게 어떨까요? 그렇게 쓸모없는 말이나 하라고 당신을 살려 둔 거 같습니까?”

“끄, 끄으윽.”

그녀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전략가를 올려다보았다.

“죄, 죄송합니다.”

“죄송하다고 할 거면 처음부터 그럴 짓을 하지 말았어야죠. 예?”

그는 머리를 움켜쥔 손을 탁 풀었다.

전략가는 여전히 웃는 낯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뒷배가 든든하신 분이라 험하게 다룰 수도 없고.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전략가의 날카로운 말에도 그녀, 진서연은 그저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을 뿐이다.

“죄, 죄송…….”

“그만. 딱 한 번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는 평야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들은 잘 육성된 병사들입니다. 마물들을 상대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병사들은 마물들의 처리를 거의 끝내 가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그리 약해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그래 봤자 저들은 미끼일 뿐입니다. 본대는 아직 나오지도 않았죠.”

“그, 그렇습니까?”

“예. 왜냐하면 마법사가 없잖습니까.”

“아.”

진서연은 그제야 전략가가 말하고자 하는 걸 깨달았다.

“정말로 아끼는 병사라면 마법사를 처음부터 동원했겠지요. 저들은 우리가 전력을 확실하게 쏟아붓는 때를 기다리는 겁니다. 한 번에 밀어 버리려고.”

“그, 그렇군요.”

“그래도 이해는 하는 거 같아 다행입니다.”

전략가는 거기까지 말하고서 발을 떼었다.

“당분간은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제물을 받치는 데에 주력하세요. 곧 큰 전투가 있을 테니.”

“예.”

그는 그대로 숲속으로 걸어들어갔다.

혼자 남은 진서연은 멍하니 그가 간 쪽을 보다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X 같은 새끼.’

그녀는 제로를 피하기 위해 전략가를 찾아왔다.

결과적으로 그 덕분에 목숨을 부지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더 X 같은 새끼였어.’

전략가는 상상 이상으로 미친놈이었다.

평소엔 정중한 것 같으면서 이따금 광기를 드러내곤 하는데, 그 타이밍을 전혀 종잡을 수가 없었다.

“후우.”

그녀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전략가는 그녀를 딱히 감시하거나 하진 않았다. 원한다면 언제라도 도망가라는 듯이.

하지만 그녀는 몸을 일으키더니 전략가가 향한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래도 저만한 새끼가 없지.’

그녀는 호진에게 당한 후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런 그녀가 내린 결론은 전략가에게 꼭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것.

바로 전략가의 힘 때문이었다.

그와 그의 마물 군세.

‘이호진이라는 놈도 비할 바가 못 된다. 저 새끼는 말 그대로 괴물 새끼야.’

그녀는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이호진을 생각했다.

그때는 그놈도 이해가 안 갈 정도로 강하다고 생각했었다.

시간이 지난 만큼 더 강해지긴 했을 테지만.

‘그래도 저놈한테는 안 되지.’

강한 자가 살아남는 세상.

그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전략가에 꼭 붙어 있을 생각이었다.

* * *

넓은 대전.

아니, 정확히 말하면 대전이었던 곳.

“후욱. 후욱.”

“그래도 영 못 쓸 정도는 아니구나.”

두 남자가 마주 서 있다.

온몸에 처참한 상처를 입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는 남자.

반면에 맞은편에 서 있는 남자는 생채기 정도만 입었을 뿐 아주 멀쩡해 보였다.

“하지만 아직 부족해. 왜 그 힘을 쓰지 않는 거냐?”

“이건 제 힘이 아닙니다.”

“네가 가지고 있는데 왜 네 힘이 아니지?”

지금은 잠시 소강상태다.

뇌신은 고집스런 얼굴의 호진을 향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이게 어떻게 제 힘입니까?”

둘은 잠시 말없이 서로를 보았다.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입을 연 건 또 뇌신.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벌써 네가 여기 온 지 한 달하고도 보름이 흘렀다.”

뇌신은 그의 가슴팍을 가리켰다.

“이제 슬슬 받아들여라. 그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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