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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128화 (128/170)

128화

난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계단은 제법 깊었지만, 남자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난 정말 유령이라도 본 건가?

그런 의문이 떠올랐다.

이 던전은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의문투성이다.

이제는 그걸 재차 언급하는 게 새삼스러울 정도로.

곧 계단이 끝나고 긴 복도가 보였다.

“아.”

그리고 복도를 둘러보자마자 어떤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난 바로 그곳으로 다가갔다.

‘해골.’

세 구의 해골이다.

그것도 엉망진창으로 뒤섞인 해골.

난 잠시 고민을 하다가 그것을 저번처럼 잘 모은 후 한쪽에 옮겨 놓았다.

그 후에야 다시 복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는데, 아주 짧은 간격으로 계속 해골이 늘어져 있는 게 보였다.

처음부터 무시하고 넘어갔다면 모를까, 이제 와서 그냥 지나가는 것도 마음에 걸렸기에 그것들을 모두 정갈하게 정리해 두었다.

솔직히 유령 같던 그 남자의 모습도 신경 쓰이고.

결국, 해골을 정리하면서 걷다 보니 복도의 끝에 도착했다.

‘이번엔 짧네.’

해골을 정리하면서 오느라 시간이 좀 걸렸을 뿐 복도의 길이 자체는 아주 짧은 편이었다.

중간에 다른 통로나 문을 본 적도 없고.

난 복도를 따라 쭉 이어져 있던 해골 더미를 떠올렸다.

해골이 혼자서 솟아난 건 아닐 테니, 이 복도에서 과거에 무언가 일이 벌어졌었을 터.

이 방 너머에는 그 원흉이 있는 걸까?

내가 위층에서 봤던 ‘재앙’이라는 괴물?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

여러 의문을 뒤로하고 난 문을 밀었다.

우선 부딪치고 보는 거다.

끼익-

낡은 경첩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제법 넓은 방이 드러났다.

말 그대로 넓은 방이다.

이것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점이다.

그 전 층에서도 방은 제법 많았다지만, 괴물을 상대할 땐 거의 넓은 공동에서 싸웠었다.

그렇다고 이 방 안에 괴물이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뭐 하는 곳이지?’

그런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그냥 평범하게 생긴 방이었다.

이쯤 되니 이곳이 정말 신전이 맞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어린애가 설계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뒤죽박죽인 구조와 용도를 알 수 없는 시설들.

“이게 끝인가……?”

난 멍하니 방을 보았다.

우웅-

잠시 후 반응이 온 건 방 내부에서가 아니라 바로 내 인벤토리에서였다.

슬쩍 인벤토리를 열자마자 종이와 펜, 잉크가 튀어나왔다.

자연스레 남자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그도 이 종이와 펜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스스슥-

종이에 글자가 적혀 나간다.

난 혹시 그 남자가 유령이 되어 펜을 조종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음.”

보이고 싶을 땐 모습을 보이고, 아닐 땐 숨길 수 있다든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종이에는 금세 글자가 빽빽하게 적히고 있었다.

난 그 종이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종이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우리는 속았다. 정확히 말하면 잘못 알고 있던 우리의 잘못이겠지만…….

* * *

“후우.”

난 잠시 펜을 멈추며 한숨을 내쉬었다.

본래 던전을 탐사할 땐 주의할 게 몇 가지 있다.

그중에서도 지금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건 ‘어떤 상황에서도 미리 결론을 내지 마라.’였다.

우리는 이곳이 고대 신의 ‘신전’이라고 생각했다.

괴물이 나타났을 때엔 평범한 가디언의 역할이라고 생각을 했다.

감히 신의 성역을 침범한 침입자들에게 벌을 주기 위한 괴물들이라고 말이다.

“으으.”

옆에서 앓는 소리를 내는 동료를 힐끔 살피고는 다시 펜을 들었다.

-이곳은 단순한 신전이 아니다.

신전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신도들이 신을 숭배하기 위해 만든 장소.

하지만 이곳은 애초에 신도들을 위한 장소가 아니었다.

신을 숭배하기 위한 장소는 맞지만.

그게 무슨 말이냐고?

간단한 이야기다.

이곳은 신에게 제물들을 바치는 장소인 것.

시간이 흘러서 신도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됐지만, 이 장소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우리는 그런 곳에 제 발로 들어온 것이다.

‘멍청한 새끼.’

난 한참 전에 죽었던 동료를 떠올렸다.

탐색을 진행하느냐 멈추느냐 고민할 때 의견이 갈려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던 동료.

그때 그의 시체 근처에는 웬 제단이 하나 있었다.

그때엔 단순히 괴물이 나타나서 그를 죽였다고 생각했지만, 여기까지 오고 나니 일의 전체적인 윤곽을 파악할 수 있었다.

놈은 멈춰 있던 이 신전을 재가동시킨 거다.

바로 놈의 ‘피’를 제단에 바쳐서.

‘피는 예로부터 강력한 주술적 의미가 있지.’

피를 받은 제단은 그것을 제물이 들어왔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하여 그 ‘수확자’들, 우리가 재앙이라 이름 붙였던 괴물들은 제물을 받아 가기 위해 나타난 것이고.

“후우.”

이제 와서 누굴 탓하랴.

그들은 이미 싸늘하게 식은 시체이거늘.

우리는 지금 지하 3층까지 내려왔다.

그 괴물들이 지하 2층까지 따라왔기 때문이다. 주변을 정찰하던 동료 한 명은 괴물이 나타났을 때 목숨을 잃었다.

또한, 아래로 내려오는 길을 찾는 과정에서 다른 동료들이 상처를 입었다.

차례차례 숨을 거두고 남은 건 이제 우리 둘뿐.

난 끊임없이 몸을 경련하는 동료를 보았다.

여기는 아무것도 없다.

식량은 거의 다 떨어졌고, 혹시나 해서 챙겨 둔 이끼조차도 바닥을 보인다.

그렇다고 위층에 다시 올라갈 엄두도 안 난다.

굶어 죽는 것보다 그 괴물에게 죽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 괴물에게 죽었을 때 내 ‘영혼’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니 두렵다.

우리의 혼은 사후에 신의 품으로 간다고 한다.

하지만 이 던전은 애초에 우레의 신이라 불리는 신에게 영혼을 바치기 위해 만들어진 곳.

그렇다면 괴물에게 죽었을 땐 내 영혼은 그에게 가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우레의 신은 내 영혼을 어디다 쓰는 것이지?

쿠웅!

문밖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난 흠칫 놀라 몸을 떨었다.

이곳엔 분명 아무것도 없다.

‘정말 아무것도 없나?’

머리가 혼란스럽다.

이곳까지 내가 어떻게 내려왔었지?

이 방은 무엇을 하는 곳이었지?

난 종이에다가 무언가를 적어 내리고 있었다는 것도 잊어버렸다.

손이 이상하게 꼬여 결국 펜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쿠웅!

문밖에서 한 번 더 큰 소리가 났다.

신음하고 있는 동료는 전혀 눈치를 못 챈 모양이다.

하긴, 그는 사경을 헤매고 있을 터.

지금 이 순간에 저 소리에 신경을 쓰고 있는 건 나밖에 없다는 거다.

쿠웅!

고개를 돌리고 싶지 않다.

고개를 돌려 문을 보면 안 될 것 같다.

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쿠웅!

“아아.”

하지만 왜일까.

내 고개가 돌아가는 것은.

저 문을 향해 시선이 돌아가는 이유는.

저 문.

저 문!

문의 작은 구멍 사이로 눈동자가 보인다.

그가 왔다.

* * *

-이곳엔 분명 아무것도 없다. 없, 없드. 다. 없나? 무. 머머?

난 인상을 찌푸리며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나름 담담한 어조로 적어 내려가던 문장은 마지막에 가선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특히 마지막 문장은 아예 낙서한 듯 이상한 선들이 그려져 있었다.

마치 무슨 일이 벌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난 종이를 내려다보다가 펜이 아예 멈추는 걸 확인하고서 천천히 정보를 정리해 봤다.

‘그 재앙이라는 괴물은 본래 역할이 있었나 보네.’

이곳은 평범한 신전이 아니었던 듯하다.

‘인신 공양을 하는 장소였나?’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아예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물론 인신 공양을 해도 괜찮다는 뜻이 아니라 그 당시의 시기를 고려해서 생각한 것이다.

이곳은 지금 시기상으로 치면 중세 시대와 비슷하다.

그런데 이 신전은 적어도 몇백 년 전에나 만들어진 듯했다.

우선 이 탐험가라는 남자도 100년 전의 사람인데 그의 처지에서도 이곳을 던전 취급했으니까.

‘그다음. 그 남자는 이곳까지 왔던 것 같은데.’

난 방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 남자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그 동료의 흔적도.

복도까지 쭉 백골이 이어져 있던 걸 생각하면 의아한 부분이다.

만약 그가 죽음을 맞이했다면 이곳에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하지 않나?

난 우선 아예 방 한쪽에 놓인 침대로 가서 걸터앉았다.

지금까지의 패턴을 보면 항상 이렇게 쉬고 있을 때 무언가 일이 벌어지더라고.

어차피 오면서 확인한 바로는 이곳에 다른 통로 같은 건 없었다.

이 방도 아주 단출해서 숨겨진 비밀 통로 같은 건 없어 보이고.

‘으. 피곤하네.’

이 던전에 들어온 이후로 휴식다운 휴식을 취한 적이 없어서 그런지 피로가 쫙 밀려왔다.

난 벽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신경은 예민하게 유지한 채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쿠웅-!

내가 다시 눈을 뜬 건 문 너머에서 들리는 커다란 소음 때문이었다.

쿠웅-!

무언가가 땅에 끌리는 소리.

난 눈을 가늘게 뜨며 눈을 노려보았다.

쿠웅-!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무언가가 2층에서 내려온 걸까?

우선 괴물인 것 같지는 않다.

놈은 움직일 때 저런 소리를 내지 않으니까.

오히려 두 발 달린 것이 무거운 것을 끌면서 다가오는 소리가 나고 있다.

난 무기를 꺼내어 검의 형상으로 바꾼 후 문으로 다가갔다.

쿠웅!

그 와중에도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난 바로 문을 열지 않고 그 옆으로 가서 섰다.

이 방에 볼일이 있다면 이 안으로 들어올 터.

검을 거머쥔 상태로 놈을 기다렸다.

쿵!

이번엔 소리가 문 바로 앞에서 났다.

난 조용히 문을 보았다.

‘바로 안 들어오네.’

정체 모를 놈은 문 바로 앞에 멈춰 선 듯 조용했다.

그때 문손잡이 쪽에 난 작은 구멍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나는 그 구멍 사이로 눈동자가 이곳을 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콰앙!

난 기다릴 것 없이 바로 문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거친 소리와 함께 문이 터져 나갔다.

하지만 검 끝에는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난 우선 문을 발로 걷어찼다.

콰직!

문이 아예 뜯겨 복도 쪽으로 떨어져 나갔다.

‘어디 갔지?’

그런데 복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사이에 몸을 숨기기라도 한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득 뒷덜미 쪽에서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다.

파악!

바로 몸을 돌리며 검을 휘둘렀다.

이번엔 검 끝에 무언가가 베이는 느낌이 들었다.

스으으으-

내 뒤에는 허름한 거적때기를 걸친 놈이 서 있었다.

어느새 뒤로 이동한 것일까.

난 복도에 나와 있는데 놈은 방 안에 있었다.

순식간에 위치가 뒤바뀐 것이다.

녀석은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는데 안에 무언가가 담긴 보따리였다.

아마 저걸 끌고 다녀서 소리가 난 것 같은데.

“누구냐.”

난 검을 놈에게 겨눈 채 물었다.

하지만 녀석은 대답 없이 손을 들어 올렸다. 난 반사적으로 몸을 옆으로 틀었다.

콰앙!

내 바로 뒤의 벽이 움푹 파였다.

놈이 무언가 힘을 쓴 것이다.

대답할 생각은 없다는 건가.

쉬익!

검을 휘두르고 놈은 피한다.

제법 빠른 몸놀림이다. 녀석이 손을 뻗을 땐 여지없이 벽 한 부분이 터져 나갔다.

“나는.”

몇 번 검을 휘두른 후에야 놈은 입을 열었다.

듣는 것만으로도 거북한 느낌이 드는 목소리였다.

“영혼의 수확자.”

녀석은 손에 들린 보따리를 움켜쥐며 말했다.

“제물이여,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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