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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126화 (126/170)

126화

호진은 몸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정체불명의 큐브와 열쇠.

그것은 호진을 새로운 공간으로 인도하는 물건이었다.

타악-

호진은 발이 땅에 닿는 감촉을 느끼자마자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시 모를 함정이나 적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한참을 그런 후에야 호진은 안심을 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진짜 악취미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호진은 유독 뇌신과 엮일 때마다 공간 이동을 했었다.

자주 겪으면서도 적응이 안 되는 게 있다면 바로 이 멀미.

머리는 어질어질하고 속은 뒤집힐 듯 요동친다.

호진은 잠시 쉬다가 다시 일어났다.

‘그냥 평범하게 계단으로 내려가게 해 주지.’

속으로는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말이다.

그는 찬찬히 주변을 둘러봤다.

무언가 전에 있던 곳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이었다.

좀 더 음습하다고 해야 하나.

“흠.”

호진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뇌신이 성질이 고약하다곤 하나 그 성질이 음습하거나 그러진 않았었다.

또한, 다른 신전에서는 이런 느낌이 전혀 없었고 말이다.

‘뭐 때문일까.’

호진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벽에 손을 뻗었다.

‘이끼.’

벽을 타고 오른 초록색의 이끼들.

그것뿐만이 아니라 벽에는 금 같은 게 가 있었다.

‘엄청 낡았네.’

낡은 것 자체가 이상한 건 아니다.

문제는 바로 위층에선 그런 느낌을 전혀 안 받았다는 점이다.

물론 단순히 층이라고 하기엔 전혀 다른 방법으로 내려오긴 했지만.

‘그리고 습기도 높다.’

호진은 찬찬히 손가락을 비벼 보았다.

무언가 축축한 느낌이 들었다.

‘여기도 평범한 곳은 아니군.’

하긴.

아직 다른 괴물들의 행방도 모르는 상태.

이곳에 나머지 네 마리가 다 모여 있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애초에 분위기 자체가 으스스하기도 하고.

“후읍.”

호진은 숨을 길게 들이쉬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위층과 달리 방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구조 자체는 훨씬 단순하다고 할까?

그저 복도가 길게 이어져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게 호진에겐 그리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마치 괴수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군.’

왠지 깊이 들어갈수록 불쾌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직선으로 쭉 이어진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

호진은 손에 들린 창을 꽉 고쳐 잡으며 언제든지 찌를 준비를 했다.

호진은 신경을 얼마나 예민하게 곤두세웠는지 시야에 닿지 않는 곳도 훤히 보이는 것 같았다.

‘……!’

그렇기에 자신의 왼쪽 앞에서 무언가의 움직임을 보기도 전에 느꼈다.

제법 넓은 크기의 구멍.

사람 한 명은 충분히 들어갈 정도다.

신기한 건 이상하게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점.

호진도 만약 신경을 곤두세운 상태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지나쳤을 거다.

파악!

호진은 그곳으로 날카롭게 창을 뻗었다.

막 구멍 밖으로 몸을 내밀려던 이가 콰당 엉덩방아를 찧었다.

“히익!”

그대로 창을 밀어 넣으려던 호진은 구멍에서 난 소리에 우뚝 손을 멈추었다.

“누구냐.”

호진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구멍 안에 있던 건 바로 사람이었다.

“저, 저, 저는.”

어찌나 피골이 상접해 있는지, 거의 뼈밖에 안 남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호진은 그의 대답을 기다리면서도 창을 거두진 않았다.

“저는 일, 일개 탐험가일 뿐입니다. 기사님.”

“탐험가?”

“예, 예.”

호진은 의심을 거두지 않은 채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곳에서 튀어나오려고 한 거지?”

“여기는 원래 제가 지나다니던 통로입니다. 그리고 기사님이 있으신지도 몰랐습니다.”

탐험가라는 남자도 놀랐던 마음을 많이 진정시켰는지 제법 조리 있는 말투로 말했다.

“흐음.”

호진은 우선 창을 거뒀다.

“이곳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해 봐라.”

“예, 예.”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가 잠시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보았다.

“그런데 다른 곳으로 이동해도 되겠습니까? 여기는 위험해서요.”

“위험하다고?”

“예. 언제 ‘재앙’이 나타날지 모릅니다.”

* * *

‘으음.’

난 앞서 걷고 있는 탐험가의 등을 보았다.

어찌나 삐쩍 말랐는지 걷는 것만으로도 위태위태해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까 전 남자의 말을 듣고 생각한 ‘가능성’을 떠올리면…….

‘이상하네.’

그런 말밖에 할 수 없다.

하, 그냥 단순하게 싸우고 뭐 이런 시련이면 안 됩니까, 뇌신님.

인상을 찌푸리며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곧 넓은 공간이 나왔다.

왠지 데자뷰가 느껴진다.

“여깁니다.”

그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팔을 벌렸다.

좁은 굴을 따라서 방에 도착한 것이다.

위층에서와 같은 경험이지만, 정작 방은 훨씬 초라했다.

아니, 애초에 방도 아니지.

동굴 바닥에 천을 깔아 둔 것뿐이니까.

난 뒷덜미를 긁적인 후 바닥에 앉았다.

“아까 그 얘기, 더 자세히 말해 주실 수 있습니까?”

“예, 그러죠.”

남자도 내 맞은편에 앉았다.

“아까 제가 간단하게 설명해 드렸었죠. 이곳엔 괴수가 있다고.”

“예, 그것도 네 마리나 되는 괴수가요.”

“맞습니다. 저희들은 놈들에게 재앙이라는 이름을 붙였었죠. 지금은 그 이름으로도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는 괴수에 대해 자신이 아는 것을 설명해 주었다.

얘기를 다 듣기도 전에 난 확신했다.

놈이 말한 게 내가 위층에서 해치운 놈과 같은 놈이란 걸.

그리고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또 생각한 것이 있다.

“이걸 한번 봐 보시겠습니까?”

난 품에 손을 넣는 척하며 인벤토리에서 책을 꺼냈다.

바로 탐험가의 일지였다.

“그건.”

탐험가는 그걸 보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이건 탐험가님의 물건인가 보군요.”

“마, 맞습니다. 탐험을 하는 도중 잃어버렸습니다만.”

난 그에게 책을 내밀었다.

그는 책을 펼쳐서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즉, 이 남자가 바로 저 책을 쓴 탐험가라는 것이다.

영락없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난 책을 살피고 있는 그를 빤히 보다가 다시 물었다.

“이곳에서 계속 살고 계셨던 겁니까?”

“아, 예.”

“먹을 것은요?”

이곳엔 먹을 것이라곤 전혀 없어 보였다.

그의 상태도 좋아 보이진 않았고.

그는 볼을 긁적이면서 대답했다.

“바깥 통로에 이끼 같은 게 있습니다.”

“그 초록색 이끼요?”

“예, 보셨나 보군요. 전 주기적으로 밖으로 나가서 그 이끼를 긁어다가 먹었습니다. 상태는 보시다시피 말이 아니지만, 적어도 죽지는 않더군요.”

이끼만으로 사람이 살 수 있는 건가.

하긴, 저 남자의 모습을 보면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게 생겼다.

난 몇 가지 질문을 더 하고 싶었지만, 우선 그에 앞서 인벤토리에서 몇 가지 물건을 더 꺼내 들었다.

“잠시 기다리십쇼.”

냄비와 물, 그리고 몇 가지 재료.

남자는 그걸 보자마자 눈을 찣어져라 크게 떴다.

아까 전 책을 봤을 때보다, 아니 심지어 처음 날 봤을 때보다도 더 격렬한 반응이었다.

“우선 물부터 드세요.”

난 적당히 미지근한 온도의 물을 건넸다.

남자는 그걸 받자마자 벌컥 들이키려고 했다.

“천천히 드세요.”

난 일부러 물통을 다시 붙잡고 그에게 말했다.

“아, 알겠습니다.”

조심스레 다시 물통을 기울이는 남자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남자의 몸 상태는 극히 안 좋다.

오랜 기간 제대로 된 음식을 섭취하지 못했으니 소화기관도 말이 아닐 터.

이때 딱딱한 음식을 먹으면 제대로 소화도 못 하고 탈이 날 거다.

난 물에다가 아주 간단하며 소화가 편한 재료들만 넣어서 묽은 죽을 만들었다.

“자, 드십쇼.”

그걸 소화하기 편할 정도로 식힌 후에야 남자에게 내밀었다.

요리하는 내내 남자가 어찌나 뜨거운 눈으로 보던지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난 가만히 그가 죽을 다 먹기를 기다렸다.

한참 후 그가 죽을 바닥까지 비운 후 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저도 위층에서 재앙을 보았습니다.”

“아, 위층이라면.”

그는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내 말에 얼굴을 굳혔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한 마리가 남아 있었겠군요. 나머지 네 마리는 이곳에 있으니.”

“예, 그래서 그런데 그 괴물들이랑 당신이 이곳으로 내려온 경위에 대해 말해 주시겠습니까?”

남자는 처음 봤을 때보다 많이 경계심이 풀려 있었다.

특히 물과 죽을 건넨 이후론 더더욱.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는 자신의 책을 펼쳐 마지막 페이지를 확인한 후 다시 나를 봤다.

“그때는 도저히 답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남자는 천천히 자신의 얘기를 말해 주었다.

몇 명 남지 않은 일행.

밖에 도사리고 있을 괴물들.

남자는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다.

이대로 얌전히 죽는 날을 기다릴 뿐.

“하지만 딱 한 명, 여전히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동료가 있었습니다.”

남자 자신을 포함해 다른 동료들이 모두 자포자기하고 있을 때, 그 동료만은 계속 바깥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괴물들도 계속 돌아다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게 가능했다고 한다.

“곧 저희들도 동료의 모습을 보고서 의욕을 되찾게 됐죠. 마지막엔 모두 다 같이 번갈아 가며 바깥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그들은 처음 두 갈래로 나뉘었던 동료들이 죽었던 곳에서 계단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게 바로 이곳으로 통하는 곳이었습니다.”

이미 출구는 막힌 상태. 그들은 그게 유일한 희망이라 생각하고 이곳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이 내려오자마자 계단 위에서 굉음이 들리더니 계단이 막혀 버렸다고 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게 오히려 악수였습니다. 저희는 던전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와 버린 거죠.”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출구와는 더 거리가 멀어 보였으니.

“처음엔 그래도 재앙 놈들이 없는지라 마음은 편했습니다만, 어느 날 놈들이 이곳에도 나타났습니다. 그것도 한 번에 네 마리가.”

그때 동료 하나가 또 목숨을 잃었다 한다.

그 이후로는…….

더욱 암울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난 모든 이야기를 들은 후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모든 얘기를 듣고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두 가지나 있었다.

우선 첫 번째로 혼자서 움직이던 펜과 종이.

“이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걸 보더니 고개를 내저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비슷한 걸 쓰긴 하지만, 그건 여기 있거든요.”

그러면서 그는 한쪽에 놓인 가방에서 펜대와 잉크를 꺼내보였다.

의문이 해결된 건 아니었지만, 난 우선 고개를 끄덕이고서 다음 질문을 했다.

“당신이 이 던전에 들어올 때의 날짜가 언제였습니까?”

“예?”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날짜를 말해 주었다.

“그렇군요.”

난 남자의 대답을 곱씹었다.

남자가 말한 날짜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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