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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125화 (125/170)

125화

난 천천히 그곳으로 다가갔다.

놈의 정수리 앞에서 잠시 고민하다가 무기를 검의 모양으로 한 상태로 그대로 찔러 넣었다.

“으.”

아무리 많은 전투를 겪었다지만, 남의 정수리를 헤집는 게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머리를 그대로 반으로 가른 후 손을 쑥 집어넣었다.

꿀렁거리는 감촉과 함께 손이 안을 파고든다.

콱.

난 눈으로 안쪽을 확인한 후 빛나는 물체를 잡았다.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지만, 힘을 주어 잡아당기자 곧 쑥 딸려 나왔다.

“으.”

팔에는 초록색의 불쾌한 건더기들이 잔뜩 묻어 있었다.

난 바람까지 일으켜 털어 낸 후에 손에 들린 물건을 살폈다.

‘이런 게 왜 머릿속에 있데.’

그것은 큐브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푸른색의 빛을 사방으로 뿜어내고 있었는데, 용안을 해제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흐음.”

쓸모가 있으니 이렇게 거창한 모양새일 텐데.

난 우선 그걸 탈탈 턴 후 인벤토리 안에 집어넣었다.

‘또 다른 단서가 없으려나.’

혹시 몰라 괴수의 시체를 한 번 더 확인해 봤지만, 특별한 건 없었다.

난 시선을 돌려 이 넓은 홀을 살펴보기로 했다.

그 탐험대는 이곳을 ‘둥지’라고 불렀지만, 정작 둥지와는 거리가 먼 생김새였다.

오히려 신전에서 볼 법한 건축양식이라고 할까.

‘그러고 보니 신전은 맞네.’

전투하면서 언뜻 보긴 했지만, 벽면에는 무언가가 조각되어 있었다.

‘예전에 다른 신전에서 봤던 거랑 비슷하네.’

성산에 있던 탑의 지하.

그곳에는 뇌신이 대지의 신 혹은 지룡의 권속에 맞서 싸우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었다.

그때는 그냥 단순히 둘이 사이가 안 좋은 건가, 생각했었지.

‘지금은 무슨 사건이 있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아쉽게도 이곳엔 그 이후의 일이 아니라 그 이전의 일이 조각되어 있었다.

뇌신이 권속들을 모으고, 도시와 마을을 만들고, 거대한 괴물을 해치우고 그런 것들.

약간 그것을 보고 있자니 의문점이 드는 게 있었다.

‘뇌신의 영역이 얼마나 넓었던 거지?’

분명 본거지는 성산에 있는 그곳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이곳의 조각을 보고 있으면 오히려 여기가 더 번창했던 것 같은 모양새다.

‘흠.’

뭐, 조각을 새긴 시기랑 도시가 만들어진 시기가 다를 수도 있겠지.

하여튼 이곳까지 뇌신의 신전이 있는 걸 보면 그 영역이 상당히 넓었던 것 같긴 하다.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난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홀을 열심히 탐색했다.

다른 걸 떠나서 적어도 탐험대가 이곳에 와서 남긴 흔적 정도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탐험대는 분명 말뚝과 구슬 등을 챙겨서 이 둥지에 왔다는데 왜 그 방에는 말뚝이랑 구슬이 그대로 남아 있는지도 궁금하고.

괴수와 맞서 싸웠다면 하다못해 흔적 같은 거라도 남아 있어야 할 텐데.

‘깔끔하네.’

깔끔했다.

아까 전 내가 싸웠던 흔적과 약간 세월의 흐름이 있는 걸 제외하면 다른 누군가가 싸웠던 모습은 전혀 없는 것이다.

“흠.”

난 인벤토리에서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무언가 못 보고 지나친 게 없나 확인할 요량으로.

툭-

그런데 돌연 인벤토리에서 꺼낼 생각 없던 물건이 같이 딸려 나왔다.

바로 첫 번째 서랍에 있던 종이와 펜, 잉크였다.

난 멍하니 그것을 보았다.

인벤토리에서 내가 원하지 않는 물건이 딸려 나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건에 ‘에고’라도 있다면 모를까. 인벤토리는 단순히 창고고, 내가 원하는 걸 생각하면 그게 딸려 나오는 구조니까.

스윽-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펜이 혼자서 우뚝 섰다.

끼릭-

게다가 잉크 뚜껑까지 끼릭거리면서 열린다.

‘이건 또 뭔…….’

황당한 상황에 가만히 보고 있으니 펜은 혼자 움직여 잉크를 끝에 묻히고 종이 위로 향했다.

난 목덜미를 긁적이며 아예 그 앞에 앉았다.

무슨 분신사바라도 보는 느낌이긴 하지만, 뭔가 단서를 얻을 수 있으면 그게 좋은 거니까.

곧 글자가 적히기 시작했다.

-난 길게 숨을 내쉬며 문을 노려보았다. 거대한 문을.

-두 손을 앞으로 뻗어 문을 밀었다. 그 거대한 크기가 무색하게 문은 손쉽게 밀렸다.

-곧 둥지의 모습이 시야 가득 들어왔다.

-그리고 우리는 알 수 있었다.

-여긴 ‘둥지’ 같은 게 아니라고.

* * *

여긴 둥지 같은 게 아니다.

이곳까지 향하는 동안 간신히 유지하던 희망과 자신감이 무너져 내렸다.

기껏 깊은 곳에 묻어 뒀던 공포와 불안함이 머리를 치켜들었다.

“아, 아니야.”

등 뒤에서 누군가가 말하는 게 들려왔다.

그런데도 난 고개를 돌리지 않고 앞을 보았다.

충혈된 눈으로 이를 악물면서도 그 앞을 보았다.

그곳에는 우리가 ‘재앙’이라 부르는 괴물이 있었다.

“우린 죽을 거야!”

누군가가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내지른다.

마음 같아서는 나도 그러고 싶은 심정이다.

재앙.

아니, 이제는 재앙‘들’이라고 해야 할까.

무려 다섯 마리나 되는 괴수가 이곳을 보고 있으니까.

“흐흐.”

입에서는 실성한 듯한 웃음이 터져 나온다.

항상 우리만 보면 미칠 듯이 달려들었던 괴수들이 우리를 가만히 보고 있다.

마치 여유를 부리듯.

제 발로 아가리 속으로 걸어 들어온 사냥감들을 구경하듯.

그 투명한 눈깔로 우리를 보았다.

“다들!”

난 한 손에 들린 구슬을 앞으로 휙 집어 던졌다.

놈들이 구슬을 보고는 움찔 놀란다.

“구슬 던지고 도망쳐!”

내 명령에 모두 뒤를 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구슬을 던진 사람도, 아닌 사람도 있었다.

뭐라 다그칠 수는 없었다.

나도 몸을 돌려 정신없이 도망가기 시작했으니까.

-크워어어어어!

쾅! 쾅!

놈들이 뒤에서 쫓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쿵!

“끄아아아악!”

사람의 비명.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그저 나는 달리고 또 달렸다. 방을 향해서.

괴물들이 침범할 수 없는 곳을 향해서 열심히 내달렸다.

비명과 무언가가 찢기고 밟히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방에 있었다.

네 명의 동료들은 나처럼 혼이 나간 표정으로 거칠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어떻게 방까지 왔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났다.

그저 마지막으로 방에 들어오기 직전 놈의 촉수 하나가 내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 기억만 선명하다.

“흐윽.”

살아남은 동료 중 유일한 여자인 에스티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여자인 동생과 함께 탐험대에 지원했었다.

하지만 이곳에 여자는 그녀 하나뿐.

나는 그녀를 보다가 다시 고개를 떨궜다.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고개를 떨구고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희망이 사라진 후 남은 건 지독하리만치 어두운 절망뿐이었다.

* * *

“으음.”

난 펜이 멈출 때까지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마침내 펜이 멈춘 순간 답답한 숨을 토해 내었다.

“후우.”

머리가 복잡하다.

괴수는 다섯 마리였고.

이들은 결과적으로 괴수를 아예 퇴치도 못 했던 건가?

의문은 하나도 해결되지 못하고, 오히려 더 늘어나기만 했다.

‘아니, 무슨 시련이 이래요? 그리고 도대체 신전에 저런 괴물은 왜 있는 겁니까?’

난 답답한 마음에 갑옷을 두드리기까지 하며 질문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전혀 없었다.

그러고 보면 이곳에 들어오기 직전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바보, 멍청이. 신이면서 하는 거 없는 무능력자. XX.’

욕까지 해 봤다.

그래도 반응이 없다.

이거 이럴 양반이 아닌데?

속으로 욕이라도 하면 번개같이 몸을 지져 대던 사람이었는데.

“음.”

난 뒷덜미를 긁적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펜은 마지막 문장을 쓴 후 다시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난 그것들을 다시 인벤토리에 집어넣은 후 문이 있던 자리로 걸어갔다.

우선은 이곳까지 오면서 봤었던 방을 한번 확인해 볼 생각이다.

난 복도로 가서 왔던 길을 되짚어 가며 방을 하나씩 확인해 봤다.

방 대부분은 텅 비어 있었다.

무언가를 발견한 건 중간쯤 왔을 때 들어갔던 방에서였다.

‘도망가다 죽은 사람들인가.’

바로 해골 세 구.

뼈만 남았는데도 그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죽었는지 생생하게 보였다.

몸이 반절로 끊어진 사람.

사지가 찢긴 사람.

머리가 통째로 없어진 사람.

괴수들에게 도망치다 이 방까지 온 후 죽은 듯했다.

그 외엔 특별한 점이 없었기에 난 그들의 해골을 한데 정갈하게 모아 둔 후 방을 나왔다.

그 이후로도 방은 거의 비어 있었고.

맨 처음 침대가 있던 방에 가기 직전에 있는 문을 열었을 때의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곳에 다 모아 뒀었나 보네.’

바로 광석들이 가방 가득히 들어 있었다.

따로 챙겼다더니 이곳에 모두 모아 놓았나 보다.

나도 우선은 그것들을 모두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쓸모도 많고 비싼 물건이니까.

‘음?’

그렇게 광석을 다 집어넣었는데 물건 하나가 덩그러니 남아 있는 게 보였다.

“열쇠?”

바로 열쇠였다.

회색의 울퉁불퉁한 열쇠.

난 그것까지 챙겨 든 후에 밖으로 나와 첫 침대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 후 우선 아까 전 얻었던 큐브를 자세히 살펴볼 생각으로 꺼내 들었다.

우우우웅-!

그것은 여전히 새파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아까 전 홀에선 다른 곳으로 통하는 통로는 없어 보였다.

지금까지 내가 둘러본 구역이 끝이 아니라면 어딘가로 이어질 통로가 있을 텐데.

‘다 부수기라도 해야 하나.’

난 그런 생각을 하며 턱을 괴었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열쇠를 큐브 위에 얹은 순간.

우우웅-!

“응?”

갑자기 열쇠가 큐브와 함께 격렬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난 갑작스러운 상황에 그것을 보고 있었다.

열쇠는 큐브와 함께 둥실둥실 떠오르기까지 했고, 돌연 방까지 빛이 나기 시작하는 거 아닌가.

“뭐, 뭔데?”

열쇠가 큐브와 함께 방의 정중앙으로 둥실둥실 떠 간다.

그리고 큐브가 빠른 속도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스윽-

그것은 마치 본래 있어야 했던 곳에 있는 것처럼 바닥의 정중앙을 파고 들었다.

열쇠는 그 큐브 위로 세로로 서더니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키릭-

열쇠가 큐브에 꽂혔다.

그다음 천천히 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는데, 마치 잠긴 문을 여는 것 같았다.

키릭!

* * *

어떤 거대한 대전.

곳곳에는 섬세하고 화려한 조각상들이 널려 있고, 황금과 보물들이 쌓여 있다.

그곳의 상석에는 한 남자가 앉아 있다.

그는 지루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영상 같은 게 출력되고 있었는데, 바로 호진이 있는 방을 비추고 있었다.

“이제야 내려오네.”

그는 권태로움이 밴 목소리로 턱을 긁적였다.

남자의 옆에는 투박해 보이는 창이 있었는데, 놀랍도록 호진이 지니고 있는 창과 비슷한 모양새였다.

그는 영상을 더 보다가 손을 휘저어 없애 버렸다.

“하암.”

길게 이어지는 하품.

그는 의자에 푹 몸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이곳은 뇌신의 신전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래층에 있는 곳이다.

남자는 그곳에서 호진을 기다렸다.

‘아직 한참은 더 걸리겠네.’

호진의 앞에 남은 시련들과 이곳까지의 거리를 생각하며.

아직 며칠은 더 자도 되겠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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