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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124화 (124/170)

124화

난 책을 계속 읽었다.

탐험 일지와 일기의 중간쯤 되는 내용이었는데, 쓴 사람의 개인적인 얘기도 꽤 되었다.

하지만 그 내용만은 아주 알차다고 할 수 있었다.

특히 마지막엔 딱 내가 원하던 것이 있었다.

탁-

난 책을 덮고서 품 안에 소중하게 챙겼다.

그 괴물 ‘재앙’이라 했던가.

이 책을 읽고 나니 왜 아무런 공격도 안 통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만약 이걸 안 봤다면 계속해서 개고생했겠지.

난 책의 저자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방문으로 걸어갔다.

다행히 나는 저자보다는 상황이 나았다.

그는 재앙을 죽이는 방법을 시행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구구절절하게 써 놨다.

예를 들면.

-재앙을 죽이는 것. 우리는 비록 방법을 알지라도 그것의 성공 여부는 오롯이 신의 뜻에 달렸다.

-신께선 우릴 보고 있을까?

라는 말이 적혀 있을 정도다.

글만 봐도 불안함, 초조함, 걱정 같은 감정이 전해진다.

난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 주변에서 재앙이 움직이는 소리는 안 들렸다.

난 책의 저자처럼 마주치는 것만으로 죽음을 걱정해야 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마주쳤을 때 귀찮으리라는 건 여지없이 확실한 사실.

놈이 향하는 통로를 다 부수면서 깽판이라도 부리면 답이 없으니까.

‘쭉 걸어가서 세 번째 문.’

들어오는 건 개구멍 같은 통로를 통해서였지만, 본래 정식적인 입구는 이쪽이다.

아까 전의 방을 거점으로 탐험대는 주변을 쭉 정찰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재앙을 물리칠 방법을 찾은 거고.

‘첫 번째.’

문은 긴 복도와 연결이 되어 있는데 책에 나온 대로 문이 하나씩 보였다.

그 안이 궁금하긴 했지만, 우선 목표 지점부터 찾기로 했다.

‘책은 중간에 뚝 끊겨 있었지.’

재앙을 물리칠 방법까지는 나름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조금 내용이 이어지다가 뚝 끊겼는데.

‘재앙도 아직 건재하고.’

그 물리치는 방법을 완료했다면 내가 놈을 볼일은 없었겠지.

그렇다는 건…….

“세 번째 문.”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세 번째 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난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끼이익-

경첩이 녹슬었는지 듣기 싫은 소음이 났다.

안이 꽤 어두워 전격을 피워 올렸다.

“음.”

난 그 후 바로 백골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은 방의 중간쯤에 엎드린 듯한 자세로 놓여 있었다.

가까이 가서 살펴봤지만, 골격 상 남자의 것 같다는 정도만 알 수 있었다.

난 그걸 옆으로 조심스럽게 옮겨 놓았다.

그 후 다시 고개를 들어 방을 확인해 보니 가장 안쪽에 놓인 제단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난 그곳으로 가서 제단 위에 놓인 물건을 집어 들었다.

이게 바로 재앙을 처리할 수 있는 물건.

난 호기심 어린 얼굴로 그것을 살폈다.

* * *

“후우.”

일지 마지막 페이지.

더 쓸 내용이 있는데 잉크가 떨어졌다.

난 아쉬운 표정으로 그것을 보았다. 인제 와서 방으로 돌아가 잉크를 챙길 수는 없다.

“그럼 자네가 이것들을 방으로 가지고 가게.”

“알겠습니다.”

우리는 각자 물건 하나씩을 동료 한 명에게 건넸다.

그는 이번 탐험대의 막내다.

탐험 과정에서 다리가 크게 다쳐 이번 일을 하는 동안 그는 방에서 대기를 하라 했다.

우리가 다 실패한다면 그도 똑같은 운명을 맞이하겠지만…….

‘아냐,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안 돼.’

믿어야 한다.

성공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움직여야 한다.

난 재단 위에 있는 물건을 움켜쥐었다. 뒤돌아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동료들을 향해 말했다,

“하나씩 받아.”

다행히 물건의 수는 사람 수와 딱 맞았다.

모두 하나씩 나눠 준 후 말했다.

“가자.”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난 일부러 가장 앞서서 문을 열었다.

나까지 겁먹은 모습을 보였다간 아무것도 못 한다.

우리는 복도로 나와서 쭉 걸었다.

난 평소 재앙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녀석이 평소에 머무는 곳을 확인할 수 있었다.

편의상 우리는 그곳에 ‘둥지’라는 명칭을 붙였다.

놈은 휴식기와 활동기가 있는데, 지금은 휴식기이다.

재앙은 휴식기 동안은 둥지에 박혀서 꼼짝도 안 한다.

그 이유에 대한 것까지는 모르지만, 놈에게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닐까 짐작하고 있다.

그렇기에 작전을 결행하기엔 지금이 딱 알맞다.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놈의 둥지 앞에 도착했다.

“후우.”

난 길게 숨을 내쉬며 문을 노려보았다.

거대한 문을.

* * *

“여긴가.”

놈의 둥지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까 전 방에서 이곳까지 오는 경로 자체가 일직선으로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난 인벤토리에 넣어 뒀던 물건을 꺼내 손에 들고서 문을 보았다.

“후.”

숨을 내뱉으며 뇌령을 자극했다.

키잉-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전신에 전격이 피어오른다.

인사는 제대로 해 줘야지.

전격을 발로 한껏 모으며 발을 세게 뻗었다.

콰앙!

거대한 문이 발길질에 훅 나가떨어진다.

난 날아가는 문 너머를 살폈다.

-크으웅?

안쪽에서 어떤 울음소리가 들린다.

놈이다.

쾅!

난 바로 발을 박찼다.

몸이 훅 앞으로 쏘아져 나간다.

거대한 홀 가운데 웅크려 있던 놈이 느릿하게 몸을 일으키는 게 보였다.

어차피 내가 자신을 공격할 수 없으리라 생각하는지 놈은 여유만만한 태도였다.

교훈을 좀 줘야겠는걸.

난 왼쪽 손에 들린 작은 구슬 중 하나를 놈에게 휙 던졌다.

파앙!

구슬이 놈의 몸체에 닿는 순간 청명한 소리와 함께 놈의 몸이 움찔 떨렸다.

난 바로 오른쪽 손에 들린 말뚝을 구슬이 닿은 지점에다가 휘둘렀다.

푸욱!

말뚝이 놈의 몸을 파고들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

처참한 비명.

놈이 고통을 느낀다는 증거였다.

“정신이 번쩍 들지?”

원래 방심하고 있을 때 쳐 맞는 게 제일 아픈 법이다.

놈에게 그런 교훈을 안겨 주며 몸을 벌떡 일으킨 놈에게 다시 구슬을 던졌다.

파앙!

그리고 바로 말뚝 박기.

푸욱!

-키이이이익!

두 번째 말뚝을 박자마자 뒤로 확 물러났다.

후웅-!

놈이 등 뒤의 촉수를 주변으로 확 휘둘렀기 때문이다.

콰가가가가가!

돌가루가 비산한다.

난 놈의 몸을 노려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말뚝이 박힌 지점을.

‘정말이네.’

약간 흐릿한 회색빛이었던 놈의 몸체 중 말뚝이 박힌 곳 주변만 선명한 검은색을 띠고 있었다.

난 놈의 공격을 피하며 접근해 그 검은색인 부분에 창을 찔러 봤다.

푸욱!

공격이 먹혀들었다.

-캬아아!

콰앙!

놈이 있는 힘껏 난동을 부리는 통에 뒤로 물러나야 했지만, 난 미소를 지었다.

이 구슬과 말뚝은 각각 다른 능력이 있다.

구슬은 놈의 몸을 ‘현상계’로 불러오는 것.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갈 테니.

그렇기에 이 말뚝이 필요한 거다.

이 말뚝은 놈의 몸을 이곳에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이 말뚝을 박아 놓은 부위는 언제든 공격할 수 있다.

‘어깨랑 팔.’

지금 내가 말뚝을 박은 곳은 어깨와 팔.

놈이 방심한 사이에도 급소는 철저히 가리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러면 틈을 만들어 내면 되지.’

하지만 이제 공격할 수단이 생긴 이상 걱정할 필요는 없다.

틈이 없으면 만들면 되는 거니까.

쾅!

이번엔 내가 놈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휘휘휘휙!

놈은 여섯 개의 촉수를 채찍처럼 화려하게 휘둘렀다.

그러면서도 양팔이나 다리를 이용해 공격해 오니 피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뭐, 그래 봤자지만.

‘쇼크웨이브!’

난 순식간에 놈의 몸에 접근해 창을 내려찍었다.

정확히 말뚝이 박힌 곳 옆.

파지지지지직!

그곳을 중심으로 전격이 퍼져 나간다.

말뚝 근처를 제외하고는 직접 공격이 불가능하지만, 이렇게 간접적인 공격은 먹힌다.

-끄우워어어!

놈이 처량한 울음소리를 낸다.

난 무시하며 바로 구슬과 말뚝을 놈의 목 근처에 박아 넣었다.

도중에 촉수로 방해한 탓에 목 중앙에서 살짝 빗겨 나간 위치였다.

녀석은 계속해서 공격하며 나를 방해하려 했고, 난 놈의 공격을 피하며 계속 추가타를 꽂아 넣었다.

놈에게 큰 기술을 먹여 경직되면 여지없이 말뚝을 박아 넣었다.

제단에서 챙겨온 말뚝은 총 열 개.

놈의 몸에는 총 여덟 개의 말뚝이 박혀 있다.

양팔과 다리, 머리, 목, 어깨 그리고 가슴.

공격을 넣기도 더욱 쉬웠다.

처음엔 계속 날카로웠던 놈의 공격도 시간이 갈수록 느릿해졌다.

착실하게 데미지가 쌓이고 있단 증거다.

‘저 머리를 공격해야 하는데.’

문제는 그 와중에도 놈이 급소는 귀신같이 방어하고 있다는 것.

아예 촉수 두 개는 방어를 위해 따로 빼둔 듯 급소를 노릴 때만 휘둘렀다.

촉수에까진 말뚝을 박지 못했으므로 어쩔 수 없이 번번이 물러나야 했다.

“후읍!”

파앙!

푹!

좀 더 시간이 지나 남은 말뚝 두 개마저 놈의 몸에 박아 넣었다.

투둑-

그리고 그때 놈에게 변화가 생겼다.

말뚝이 박힌 곳 사이사이 하얀색의 선 같은 게 생긴 거다.

전체적으로 보면 몸에 금이 가 있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이제 놈의 몸은 회색과 검은색이 반씩 뒤섞인 점박이 같은 모습이었다.

‘뇌룡 질주! 뇌룡섬!’

공격을 한 번 할 때마다 놈은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었다.

게다가 놈의 몸에는 점점 하얀 선이 늘어만 갔다.

마치 깨지기 직전의 도자기처럼.

놈의 모습은 위태위태해 보였다.

-캬아아아아악!

난 풍월검의 힘까지 끌어다 쓰며 놈의 주변을 빠르게 이동했다.

푸욱!

어깨에 검을 박아 넣고.

능숙한 몸놀림으로 촉수를 피했다.

‘틈!’

그리고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놈의 정수리가 훤히 드러나 있던 것이다.

난 망설일 것 없이 검을 들어 놈의 정수리에다가 박아 넣었다.

푸우우욱!

검이 거칠 것 없이 머리를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크우.”

그 순간 놈의 움직임도 우뚝 멈추었다.

난 놈이 언제 공격을 해 올지 몰라 신경을 곤두세웠지만, 놈에게서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죽었냐?”

난 발로 놈의 머리를 툭툭 찼다.

“어?”

그러자 놈의 머리가 그대로 휘청거리더니 앞으로 넘어지기 시작했다.

쿠우우우웅!

“이크.”

난 바로 뛰어올라 옆의 바닥에 착지했다.

놈의 몸이 바닥과 부딪치며 먼지 바람을 훅 피워 올렸다.

난 먼지바람이 가라앉은 후 가까이 다가가 녀석의 몸을 몇 번 더 툭툭 쳤다.

“진짜 죽었네.”

놈의 눈에선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난 생각보다 허무한 놈의 죽음에 약간 허탈했다.

물론 싸움의 과정을 보면 결코 순탄했다고 할 수는 없었다.

제법 많이 얻어맞기도 했고.

이 말뚝이랑 구슬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공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테니까.

“후.”

난 길게 숨을 내쉰 후 몸을 풀었다.

그러고 보면 이제 겨우 던전에 들어온 첫날이다.

뇌신의 말대로라면 이곳을 전부 탐색하려면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걸릴 거라고 했었는데.

“음.”

그가 잘못 생각한 게 아니라면 여기까지가 던전 전체로 보면 초입이라는 거겠지?

난 그렇게 생각하며 놈의 몸을 다시 살폈다.

‘용안 개방.’

아예 용안까지 써 가면서 말이다.

시야가 바뀌고, 놈의 몸이 환하게 빛난다.

겉보기로는 그저 평범한 사체였지만…….

놈의 정수리 쪽.

정확히 말하면 그 안쪽에서 무언가가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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