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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119화 (119/170)
  • 119화

    “기도?”

    팔치온은 사나운 웃음을 지었다.

    그는 시시각각으로 우그러지고 있었지만, 그 기세만은 여전했다.

    “삶과 죽음은 신의 뜻. 신에게 구태여 목숨을 구걸할 이유는 없지.”

    그오오-

    오히려 점점 강렬해지기까지 했다.

    난 알 수 없는 그 느낌에 더 강하게 힘을 주었다.

    무언가 수작을 부리기 전에 완전히 목숨을 끊을 생각으로.

    “오히려 그 반대.”

    쿠웅-

    하지만 난 무언가가 일어날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목숨을 잃더라도 신의 뜻을 행한다면 그보다 기쁜 일이 무엇이 있으랴?”

    쿵-

    진동이 인다.

    그것은 팔치온의 심장에서부터 시작된 진동이었다.

    우직-

    내 힘을 막던 팔치온의 팔이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꺾였다.

    조금만, 조금만 더하면 끝낼 수 있다.

    이놈의 목숨을 끊을 수 있다.

    “이호진이라고 했나?”

    그러나 팔치온은 아주 환하게 웃었다.

    어떤 인간이 죽음 앞에 저리도 순수하게 기쁜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까?

    그는 나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팔치온이 힘을 쭉 뺀다.

    그와 동시에 내 팔은 놈을 처참하게 우그러트렸지만.

    “뇌신의 종자. 그들의 유일한 희망. 분명 시간이 지나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강해지겠지.”

    녀석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에 대해 물어보려 했지만, 그는 틈을 주지 않았다.

    “그러니 여기서 같이 가자. 신의 품으로.”

    난 그를 막지 못했다.

    그의 몸을 감싸던 갑옷과 새하얀 망치가 빛의 입자로 환해 퍼져 나갔다가 다시 그의 몸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가자!”

    광기 어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몸에서 생기가 점점 사라지더니 순식간에 비쩍 마른 미라가 되었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 주문을 완성한 것이다.

    난 침을 꿀꺽 삼키며 하늘을 보았다.

    내 힘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드리웠던 먹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새하얀 빛기둥.

    아까 전 팔치온이 힘을 개방하며 나타났던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힘이 느껴진다.

    말 그대로 저것은 신의 힘이다.

    비유적인 표현도 아니고, 과장되어 말하는 것도 아니었다.

    화아아아악-!

    난 바닥으로 내려오는 빛을 보며 생각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괜찮겠네.’

    곧 좁은 빛기둥이 나 한 명에게 떨어져 내렸다.

    * * *

    난 눈을 끔벅거렸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내 시야에는 작은 컴퓨터가 놓여 있었다.

    [안녕하세요, 카이저 님. 오랜만에 인사드립…….]

    그 화면에 떠 있는 건 한 통의 메일.

    그것도 절대 잊을 수 없는 내용의 메일이었다.

    “에이, 게임은 무슨.”

    그런데 그다음은 내 기억과 달랐다.

    내 몸이 스스로 움직이더니 메일 창을 꺼 버린 것이다.

    동시에 머릿속으로 이질적인 생각이 들려왔다.

    ‘재밌게 하긴 했었지. 그래도 이제 와서 무슨 게임이냐.’

    뭐지?

    난,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 몸은 계속해서 스스로 움직였다.

    그 과정에서 내 의지라고는 전혀 개입되지 않았다.

    “후우.”

    담배를 입에 물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나 하러 가야지.”

    그리고 곧 난 일어나 어딘가로 갔다.

    내가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걸까?

    난 움직이는 몸과 별개로 골똘히 생각했다.

    분명 변경백을 치러 갔었다.

    전쟁이 시작되고, 잠시 후 난…….

    ‘변경백 팔치온과 싸웠었지.’

    분명 그랬었다.

    난 흐릿한 기억을 되짚다가 가까스로 마지막 순간을 떠올렸다.

    팔치온이 꽤 강했었지.

    그래도 예상 범위 안이었어.

    나도 그에 대비해서 여러 가지를 생각했었고.

    최후의 수단으로 오버 클럭까지 썼었는데…….

    ‘자기 희생 주문이라니.’

    그것까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고위 사제 혹은 성기사들이 자신의 목숨과 영혼을 바쳐 완성되는 주문.

    난 조사 과정에서 변경백이 욕심 많은 사람이라 생각했었다.

    애초에 낮은 지위에서 그만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려면 웬만한 욕심이 없고서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고.

    권력욕. 상승욕. 그런 것들도 다 욕심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팔치온은 마지막 순간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나를 죽이려고 한 것이다.

    ‘그럼, 난 죽은 건가?’

    난 멍하니 앞을 보았다.

    내 몸은 어느새 바깥으로 나와 있었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난 일을 했고. 끝나고 친구를 만났다.

    부모님과 전화를 하고 그저 평범하게 일상을 살았다.

    그 속에 게임에 대한 생각이라곤 단 일 푼도 없었다.

    나는 멍하니 게임 속에서 죽었을 수도 있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주문은 그 정도로 강렬했으니까.

    다만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지는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왜 내 몸을 이렇게 제3자의 입장처럼 보고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건.

    ‘안의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우리 왕국의 전력이 결코 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전쟁 전이라면 모를까. 우리는 이미 변경백을 쳤다.

    그 이후 전쟁이 계속 이어질 것은 당연한 수순.

    만약 내가 없다면 그런 전쟁에서 폴그룬 왕국은 결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으리라.

    ‘돌아갈 수는… 없는 건가?’

    그런 생각을 했을 때.

    갑자기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럴 수도 있지.

    난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난 내 의지로 몸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누, 누구?”

    -메일을 받지 않았다면, 받았어도 이렇게 무시하고 게임에 접속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평범하게 살고 있었을 수도 있지.

    “누굽니까!”

    나는 더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잠시 정적이 흐른 후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지만 넌 그러지 않았어. 결국 게임에 접속했지.”

    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침대 위에 앉아 있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뇌신?”

    “고블린들을 만난 게, 내 힘을 얻은 게 우연이라 생각하느냐?”

    난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

    “여의주를 얻은 것도, 대지의 신의 파편을 얻은 것을 우연이라 생각하느냐?”

    마치 고장 난 기계에 대고 말을 하는 것 같다.

    내 질문은 전혀 들리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으니.

    “너를 신의 사도로 인정한 것도, 내 대리자로 삼은 것도 모두 우연이라 생각하느냐?”

    “도대체!”

    그래서 난 참을 수 없어 고함을 질렀다.

    “도대체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 겁니까? 예?”

    그제야 뇌신은 바로 입을 열지 않고 날 빤히 보았다.

    그 숨 막힐 듯한 정적에 다시 입을 열려 했지만,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 게임 속으로 들어온 게 우연이라고 생각하느냐?”

    이번엔 나도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질문,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다지 듣고 싶지 않은 질문이었으니까.

    내가 대답을 하지 않는 사이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너는 ‘우리들’의 기억 일부를 보았었지. 그 이상의 정보는 자격이 없어 보여 주지 않았지만.”

    문득 나는 그의 눈이 슬퍼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봤을 땐 그의 눈은 여느 때처럼 아무런 감정도 담겨져 있지 않았지만.

    “이제는 때가 되었구나. 아니, 정확히 말하면 더는 미룰 수 없는 거지만.”

    그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난 그가 나에게 걸어오는 걸 가만히 바라봤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오는 걸 보면서도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는 손을 들어 천천히 내 머리 위로 올렸고.

    손바닥이 내 얼굴을 감쌌을 때, 나는 다시 어딘가로 추락하는 느낌을 받았다.

    * * *

    “야!”

    누군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

    고개를 슬쩍 돌리자 초록빛 머리의 여자가 보였다.

    “이게 정말 마지막 맞지?”

    무슨 말이냐 물어보려 하는데 다시 또 내 입이 스스로 열렸다.

    또 시작인가.

    “응. 이것만 끝내면 돼.”

    곧 고개가 돌아가고 난 내가 어떤 넓은 홀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 전에 어떤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는 것도.

    “진짜 지긋지긋하다.”

    “나도. 좀 쉬고 싶다.”

    게다가 같이 있는 일행들이 꽤 많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검정 머리. 갈색 머리. 초록 머리. 흰 머리.

    나까지.

    총 다섯 명이 이 홀 안에 있었다.

    내가 몇 번 기억 속에서 봤던 이들과 일치하는 구성이다.

    이 다섯 명이 한자리에 있는 건 처음 봤지만.

    “그럼 이제 진짜 진입한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

    그리고 곧 몸이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난 멀거니 노란색의 뒤통수를 보았다.

    ‘아!’

    이번에도 어떤 몸에 갇힌 줄 알았는데 슬쩍 내려다보니 내 몸이 반투명한 채로 둥둥 떠 있었다.

    ‘이건 또 저번이랑 비슷하네.’

    난 천천히 가운데로 향하는 이들을 따라 움직였다.

    그들은 웬 검은색의 구슬 앞에 서 있었다.

    “우선 다들 고생 많았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이것만 끝내면 푹 쉬자.”

    노란색 머리의 사내. 즉, 뇌신은 그렇게 말하고서 구슬에 손을 올렸다.

    화악-

    하얀 빛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구슬에서 피어오른 빛은 점점 방 안을 가득 메웠고, 잠시 후 빛이 가셨을 때 나는 무언가를 볼 수 있었다.

    ‘메시지 창?’

    바로 내가 줄곧 봐 왔던 메시지 창과 비슷한 것이었다.

    [최종 목표 클리어]

    [The END GAME Clear]

    “좋았어!”

    갈색 머리의 사내가 손을 불끈 쥐며 소리쳤다.

    “진짜 끝났어! 너희도 메시지 보이지?”

    “어. 정말 끝이구나.”

    검은 머리의 사내는 묘한 표정으로 자신 앞의 메시지를 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 검은 머리의 사내가 저 갈색 머리 남자. 지룡을 죽였던 사람이었지.

    ‘대화 내용을 봐서는 무언가 더 있는 거 같긴 하지만.’

    뇌신이 무슨 의도인지는 몰라도 그는 자격이 되었다고 이제 정보를 보여 주겠다고 했었다.

    갑자기 현실 세계의 모습을 본 건 무엇이고, 뇌신이 어떻게 나와 대화를 나눈 건지.

    이 장면은 또 무엇인지 궁금한 건 많았지만, 우선은 이 장면에 어떤 단서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난 집중해서 그들을 보았다.

    “뭔가 허무한걸.”

    “허무하긴. 여기까지 들어오는데 고생했던 거 생각 안 나? 일주일이 넘게 싸웠는데.”

    “그렇긴 한데.”

    검은 머리의 사내는 초록 머리 여자의 말에 머리를 긁적였다.

    아까 전 보았던 괴물들의 시체가 많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일주일이나 싸웠다니.

    뇌신이나 지룡의 힘을 일부분이나마 본 내 입장으로선 얼마나 강력한 적이었을지 상상도 안 갔다.

    “자, 그럼 돌아가자. 진짜로.”

    곧 그들은 방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응?’

    그런데 방의 구석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검정색의 부정형 액체.

    그것은 끊임없이 꿈틀거리더니 어딘가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아무도 그걸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꾸물-

    그것은 천천히 기어가더니 곧 누군가의 발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바로 검은 머리 사내의 발이었다.

    “그래, 가자.”

    곧 그들은 웃으면서 홀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검은 머리 사내의 몸에 무언가가 엉겨 붙고 있음에도 아무도 그걸 신경 쓰지 않았다.

    난 멍하니 그것을 보았다.

    “보았나?”

    그리고 갑자기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뭐, 뭡니까.”

    그곳에는 나와 같이 반투명한 몸의 뇌신이 서 있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검은 머리의 사내에게 달라 붙은 액체를 가리켰다.

    “저게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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