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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118화 (118/170)
  • 118화

    “미쳤군.”

    그 광경을 지켜보던 누군가가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바로 제크였다.

    제크는 중심이 잘 잡힌 롱소드를 들고 있었는데, 막 병사의 목을 벤 후였다.

    “미쳤어. 괴물 새끼들.”

    그는 연신 중얼거리며 다시 검을 휘둘렀다.

    성벽 위.

    크룩, 케륵, 적의 마법사 등등.

    평범을 한참 초월한 괴물들이 싸우는 동안 이곳에선 평범한 자들의 싸움이 이어지고 있었다.

    물론, 제크도 그중 한 명이었다.

    ‘나도 제법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호진을 처음 봤을 때를 생각했다.

    첫 인방은 건방졌고, 그다음엔 재수없었으며.

    마지막엔 두려웠다.

    ‘그때도 저 정도로 강했던 건가?’

    그가 힘을 드러냈을 때 느껴지던 무형의 압박감.

    얕보이기 싫어 그도 수그리지 않긴 했지만, 그 힘은 간단히 이겨 낼 수준이 아니었다.

    그와 원활하게 얘기가 끝난 후로도 불쑥불쑥 두려움이 치밀었다.

    나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게 느껴졌다.

    ‘나도 알고 있었어.’

    그는 불쑥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열심히 검을 휘둘렀다.

    다른 괴물들과 비교를 해서 그렇지 제크도 결코 약한 편은 아니었다.

    병사 수십의 목을 베어 넘기는 동안 그의 몸엔 생채기 하나 없는 게 그 증거였다.

    다만 비교를 한 대상들이 너무 터무니없었을 뿐.

    ‘이곳에선 산을 무너트리고 바다를 가른다는 게 단순히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페일은 호진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그는 전투와 전혀 상관이 없었으니까.

    주로 경영, 전략을 파고든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벨루곤을 야금야금 잡아먹고 있다.

    그 능력은 제크로서도 십분 이해하고 감탄하곤 했지만, 그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은 공유할 수 없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이 엑스트라에 불과하다는 공포.

    다른 이들이 저 앞에 달려 나가는 동안 자신은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존재감에 대한 공포.

    그런 것을 페일과 나눌 수는 없었다.

    듣기로는 페일은 벨루곤을 잡아먹는 작업이 끝나고 나면 호진의 군대로 아예 합류한다고 했다.

    전략에 대한 이해가 특출 났으니.

    페일이 능력을 발휘한다면 아주 뛰어난 결과를 얻을 수 있겠지.

    어느새 그의 검은 피가 엉겨붙어 검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후우우우우웅-!

    하지만 제크는 어느 순간 검을 휘두르는 걸 멈출 수밖에 없었다.

    싸움을 멈춘 건 제크만이 아니었다.

    모든 이들이 다시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까 전 환하게 빛나던 팔치온이 벌이는 일을.

    ‘신의 힘’이 지상에 강림하는 것을 넋을 놓고 바라 보았다.

    * * *

    나는 공중에 떠 있는 팔치온을 노려보며 말했다.

    “듣던 것과 다르군.”

    “무엇이?”

    그가 입을 여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게 그는 지금 신의 힘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상태이기 때문이다.

    “아주 욕심이 그득한 사람이라고 들었거든. 권력욕이 말이야.”

    팔치온은 내 말에 피식 웃었다.

    “바하툴 님에 대해 아는 게 없나 보군.”

    그의 몸을 감싼 신성한 갑주.

    게다가 손에 들린 워 해머는 아까 전과 전혀 다른 기세를 내뿜고 있다.

    바하툴의 사제 중에서도 최고위 사제나 교단에서 손에 꼽히는 성기사들만이 쓸 수 있는 권능이다.

    일명 ‘강림’.

    신의 힘을 자신의 몸에 받아들여서 평소보다 곱절은 강한 힘을 발휘하는 능력이다.

    바하툴의 신도들이 무섭다고 평가받는 점도 그 점이다.

    미친놈들인데다가 강하기까지 하니까.

    “바하툴 님은 선택받은 종족인 인간만을 위한 신이시다.”

    그가 천천히 망치를 들어 올린다.

    주변의 공기가 날카롭게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손에 들린 해머가 몇십 배로 커진다.

    “욕심은 인간을 좀 더 높은 위치로 갈 수 있게 해 주는 원동력. 그것을 부정할 이유가 없지.”

    아득하게 드리운 그림자를 보며 난 뇌령을 일깨웠다.

    키잉-

    그의 망치가 향하는 곳은 정확히 나를 향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방향엔.

    한창 병사들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성벽이 있었다.

    자신의 병사들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우리 측의 병력까지 날려 버릴 속셈인 것이다.

    놈이 공격을 펼치는데엔 시간이 걸려 평소라면 그냥 피했을 테지만, 이런 상황인 이상 맞받아치거나 막을 수밖에 없다.

    애초에 놈도 거기까지 생각을 하고 공격을 펼친 듯했다.

    “그러면 자신의 병사들을 제 손으로 죽이는 것도 상관없나?”

    “저들은 용감한 전사. 죽어서 신의 품에 안길 것이다.”

    완전히 미친놈이군.

    난 뇌룡창을 붙잡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 안에 깃든 다른 힘까지 한 번에 끌어올려야 한다.

    휘이이이이-

    창을 중심으로 날카롭게 바람이 회오리쳤다.

    바람의 힘이 뇌룡창의 힘과 천천히 융합한다.

    어울리지 않는 속성이었으나 강제로 그것을 한 자리에 모은다.

    파직. 파지직.

    강렬하게 끌어올린 기운은 바람에 깃들어 푸른 전격을 피어 올렸다.

    ‘뇌령 각성.’

    한 단계 더 나아가 뇌령을 각성시켰다.

    이 정도면.

    아슬아슬하게 동급.

    ‘신기.’

    바람은 점점 구체적인 형태를 만들었다.

    그 바람길을 따라서 전격은 더욱 강렬하게 튀어 올랐다.

    후웅-!

    슬슬 놈의 망치도 아래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 넓은 전장을 단숨에 집어삼키려는 듯 험악한 기세를 내뿜으면서.

    난 창을 잡은 손 모양을 부드럽게 바꿨다.

    웅-

    갑옷에서 만족스럽다는 듯 약한 진동이 울려왔다.

    ‘뇌룡.’

    창을 앞으로 쭉 뻗었다.

    회오리바람이 앞으로 쭉 뻗어 올라간다.

    그 바람길에 깃들어 있던 전격은 점점 구체적인 형상을 띠기 시작했는데.

    하얀 비늘에서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전격을 뿜어내는 용의 형상.

    신성한 신의 망치와 뇌룡이 격돌한다.

    훅-!

    주변의 공기가 모조리 그 지점으로 빨려들어 갔다가.

    후웅!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고.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이내 화려한 폭발을 자아냈다.

    지상에서 저런 폭발이 일어났다면, 이 전장 전체를 모두 살라 먹었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압도적인 폭발의 향연에 나 또한 식은땀을 흘리며 창을 다잡았다.

    폭발과 함께 피어오른 아지렁이 같은 것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뜨기 힘들었다.

    “아쉽군!”

    그리고 그사이 놈의 목소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콰앙!

    반사적으로 창을 들어 올렸고, 그 끝에 묵직한 무언가가 걸렸다.

    첫 타격 이후 난 창을 살짝 비틀며 그대로 쭉 밀어내려 했다.

    덜컥-

    “크윽.”

    하지만 그것은 단단히 고정이라도 된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뇌조!’

    난 급히 뇌조를 불렀다.

    손을 쭉 뻗자 내 몸이 대각선으로 훅 딸려 올라갔다.

    “그 한 방에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이 인간 참 악취미네.

    공간이 일렁거림과 함께 그의 모습이 또다시 불쑥 튀어나왔다.

    난 그제야 저 일렁거림 자체가 그의 능력 중 하나라는 걸 깨달았다.

    ‘아까 전 썼던 능력들이 신성력으로 강화된 건가?’

    언뜻 보기엔 그 능력 간의 간극이 컸으나, 저 정도의 무식한 신성력이라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

    갑자기 공간을 격하고 튀어나오던 놈의 무기와 분신들.

    팔치온은 아예 그걸 넘어서서 자신의 몸 자체를 원하는 곳으로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콰앙! 쾅!

    난 창으로 놈의 망치를 걷어 내며 아예 바닥으로 쭉 내려갔다.

    그는 공간을 이동하고, 불쑥불쑥 팔이나 다리, 무기 등만을 보내 호진을 공격했다.

    그 거친 공세가 멎은 것은 호진으 발이 땅에 닿은 순간이었다.

    둘은 잠시 거칠어졌던 숨을 진정시키며 서로를 노려보았다.

    “자신감이 지나치십니다그려.”

    “말했지 않나.”

    쿵!

    다시 한 번 일렁거림과 함께 들어오는 공격.

    이번엔 간격이 극도로 좁아 검의 형태로 바꿔 간신히 경로를 비틀었다.

    “응당 그래야 할 일에 자신감 따위는 필요 없다고.”

    콰앙!

    하지만 뒤에서 휘둘러진 해머는 피할 도리가 없었다.

    “크윽!”

    난 앞으로 튕겨나갔다가 그가 다시 공격하는 걸 보고 아예 앞으로 굴러 버렸다.

    쐐액!

    튕기듯이 일어나 검을 낮게 휘둘렀다.

    사악!

    그의 정강이를 베는 감촉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파지지지직!

    그리고 검을 따라 흘러 들어간 전격이 그의 몸을 일순간 멈추었다.

    바로 그 틈을 타서 난 뇌령을 강하게 자극했다.

    후유증이고 뭐고 신경 쓸 틈이 없다.

    모든 힘을 끌어내.

    그를 단숨에 끝내야 한다.

    [뇌령 – 오버클럭(Over clock)]

    온몸에 강렬한 하얀빛이 터져 나온다.

    [전설급 특성 뢰신(雷身)이 신화급 특성 뢰신일섬지체(雷身日閃肢體)로 격상합니다.]

    신경 말단 하나하나에 전격이 깃드는 느낌이다.

    짜릿함을 넘어서 통증이 느껴질 정도의 감각.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감각은 예민해지고, 체감하는 시간의 흐름은 느릿해졌다.

    [뇌룡갑에 깃든 힘이 뢰신일섬지체와 반응합니다.]

    [신의 힘 일부가 깃듭니다.]

    게다가 이번엔 뇌룡갑에서 밝은 빛이 퍼져 나오더니 더욱 힘이 강해졌다.

    난 뇌룡창을 우그러트리듯이 쥐어 잡았다.

    이번엔 저번처럼 일격을 찔러 넣고 끝낼 싸움이 아니다.

    이 힘은 말하자면 거대한 물줄기다. 난 여전히 일개 인간일 뿐이고.

    하지만 난 그 거대한 물줄기를 내 몸 하나로 컨트롤해야 한다.

    “무어어엇이느야아아 그으으 히이이임으으으은!”

    팔치온의 말이 고장 난 테이프처럼 늘어지게 들린다.

    투웅-

    난 발을 뻗었고.

    내 몸은 이 느려진 시간 속에서도 제법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경악한 표정이 다급한 표정을 띠기 시작한 건 이미 내가 그의 앞에 섰을 때였다.

    웅-

    그의 몸 주위기 일렁거리더니 흐릿해지려고 한다.

    난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놈의 몸을 잡아챘다.

    일렁거림과 함께 반쯤 사라졌던 놈의 몸이 내 손에 쭉 딸려서 다시 빠져나온다.

    난 그의 몸을 그대로 바닥에 패대기쳤다.

    콰- 아- 앙!

    그의 몸이 땅바닥에 부딪쳤다가 위로 다시 튀어 오른다.

    아직 그는 자신이 무슨 상황을 겪었는지 이해 못 한 듯, 그저 놀라운 표정뿐이었다.

    난 무기를 건틀렛으로 바꾸며 천천히 튀어 오르는 그의 몸을 다시 내리찍었다.

    콰지직!

    그의 몸을 감싼 갑옷이 움푹 파인다.

    아예 몸통에 구멍을 낼 생각으로 친 건데 생각보다 방어력이 뛰어나다.

    “이이이이 개애애새끼가!”

    그리고 그때쯤 내 인지도 천천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느릿하게 흘러가던 주변 광경이 빨리 감기를 하듯 움직이더니 그의 몸이 다시 사라졌다.

    “쿨럭. 크으우웁.”

    팔치온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나타나 무언가를 게워 냈다.

    핏물과 내장 조각들이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게 보였다.

    파직.

    물론 봐줄 생각 따위는 없다.

    몸을 날려 회전시키며 그대로 내려찍었다.

    쿵!

    그가 손에 들린 해머를 쭉 들어 올려 내 공격을 막으려 했다.

    콱. 콰지직.

    하지만 건틀릿은 놈의 해머를 그대로 위에서부터 우그러트리며 바닥으로 처박았다.

    쾅!

    그는 연신 허공에서 사지의 한 부분을 튀어나오게 하며 호진을 밀어내려 했다.

    가슴팍이 크게 우그러진 후로 그의 입에선 계속해서 핏줄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큰 내상을 입었다는 증거다.

    “끄윽!”

    놈에게선 이제 여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난 놈을 짓눌렀다.

    “신에게 기도라도 해 봐.”

    우지직-

    점점 바닥으로 찌그러지는 놈에게 말했다.

    “살려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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