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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114화 (114/170)

114화

마치 한낮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벼락과 함께 들이닥친 굉음 때문에 귀에서는 연신 삐- 하는 소리가 울렸다.

난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악마가 있던 곳을 곁눈질했다.

그럴 확률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지만, 혹시라도 악마가 저 공격에서도 살아남는다면 바로 대응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미리 몸을 뺀 후 내 옆에 선 황금 갈기도 질린 듯한 표정이었다.

“대단하군. 저것이 자네가 말하던 그 신의 힘인가?”

“그렇지.”

정확히 말하면 내 힘과 피 같은 신화 포인트가 합쳐진 연계기지만.

쉬이익-!

곧 회색빛의 연기가 피어올랐고, 천천히 벼락이 내리친 곳의 광경이 드러났다.

“…엔트가 싫어하겠군.”

“음.”

황금 갈기가 문득 중얼거린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에 있는 나무들은 새까맣게 타 버린 채 꺾였고, 바닥 또한 완전히 거멓게 물들어 있었다.

우린 주의 깊게 수북이 쌓인 잿더미를 살폈다.

꿈틀.

그때 잿더미 사이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우리는 바로 그곳으로 달려갔다.

‘이걸 버텼다고?’

내심 악마의 끈질긴 생명력에 감탄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잿더미에 다가가 꿈틀 거리는 것을 보니 맥이 탁 풀렸다.

-키에에.

그곳엔 부정형의 액체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벼락에 온몸이 찢기고 불탄 채로 고작 이 한 줌의 파편만을 남긴 것이다.

이것도 살아남은 거라면 살아남은 거라고 할 수 있지만…….

“내가 처리할게.”

황금 갈기는 고개를 끄덕였고, 난 바로 검을 들어 올렸다.

굳이 스킬 같은 걸 쓸 필요도 없이 적당한 전격만을 흘려 파편을 푹 찌르니.

-끼아아아아아아악-!

듣기 거북한 비명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동시에 전투가 끝났음을 알려 주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네팔루치아의 분신을 처리하였습니다.]

[네팔루치아의 본체가 일정 수준 약화됩니다.]

[최초로 악마를 처치하였습니다.]

[칭호 ‘악마 사냥꾼’이 주어집니다.]

[악마 사냥꾼 - 모든 악마 계열 하수인에게 15%의 추가 피해를 준다. 마 속성 마법에 10%의 저항력을 얻는다.]

[신화 포인트가 상승합니다.]

[신화 포인트가 상승합니다.]

[신화…….]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그야말로 메시지의 홍수였다.

악마의 본체도 아니고, 고작해야 분신을 죽였을 뿐인데도 보상이 아주 후하다.

‘최초인 데다가, 죽인 게 악마이기 때문이겠지.’

나도 이 시기에 수인 왕국에 도착하지 않았다면 분신이라도 악마를 만날 일은 없었을 거다.

놈들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없으니.

‘아직 악마 진영까지 내 소문이 퍼지진 않았군.’

만약 그랬다면 자신의 본체를 이렇게 허무하게 소멸당하게 두지 않았으리라.

나는 간단히 생각을 정리하며 황금 갈기를 보았다.

“그럼 돌아가죠.”

* * *

“그쪽 막아!”

광장에선 격한 소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황금 갈기와 호진이 자리를 비운 후 이곳에서도 곧바로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크아아-!”

완전히 넋을 잃은 묘족들은 거칠게 날뛰었다.

“한 명이라도 놓치면 안 돼!”

놈들은 본능에 이끌리듯 한 방향을 향해 자꾸 몸을 날렸는데, 바로 호진이 이동한 방향이었다.

본능을 잃으니 자동으로 사라진 악마를 쫓아 움직이려 하는 것이다.

“크윽.”

화린은 검에서 불꽃을 일으키지 못한 채 열심히 휘두르기만 했다.

호진과 황금 갈기가 이들을 죽이지 못하고 살려 두라 명령했기 때문이다.

화린과 케륵, 이렌은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묘족을 막았다.

“케르륵! 거기! 너무 거칠게 손을 쓰지 마라!”

케륵은 직접 몸을 쓰는 것보단 수인 전사들을 움직여 전황을 조율했다.

“바람이여!”

또한, 이렌은 정령의 힘을 시기적절하게 이용하며 빠져나가려는 수인들을 철저히 막았다.

묘족들은 이성을 잃은 채 목숨을 도외시한 채 달려들었지만, 다행히도 그들을 막는 것은 제법 잘 이뤄졌다.

“크으으으!”

무언가 변화가 생긴 것은 한참 시간이 지난 후였다.

계속해서 빠져나가려고 날뛰던 묘족들이 돌연 멈춰 서서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캬아아아아악!”

그리고 처절한 목소리로 비명을 질러 대기 시작했는데, 다른 이들은 무언가 일이 벌어지는 건가 생각해 더욱 긴장했다.

풀썩-

하지만 그들은 직후 바닥에 쓰러졌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비명을 지른 이후에 정신을 잃은 것이다.

“뭐지?”

모두 어안이 벙벙한 채로 바닥에 쓰러진 묘족들을 보았다.

‘기절한 척하다가 다시 빠져나가려는 건가?’

얼마나 그들의 행동이 격렬했었는지 그런 생각을 하는 이도 있었다.

우우웅-

다행히 그런 걱정을 불식시키려는 듯 허공의 한 지점에서 푸른빛과 함께 파문이 번져 나갔다.

곧 그곳에서 세로로 줄이 그어지더니 쫙 틈이 벌어지며 두 명이 걸어 나왔다.

“후우. 여기도 끝났나?”

먼저 바닥을 디디며 말을 한 건 바로 호진이었다.

바로 그의 뒤에 나타난 황금 갈기는 말없이 묘족들이 쓰러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전하!”

화린과 이렌, 케륵은 밝은 표정으로 호진을 불렀다.

호진도 씩 웃어 그들에게 화답해 준 후, 황금 갈기를 올려다봤다.

황금 갈기는 그 눈빛의 뜻을 이해하고서 깊게 숨을 들이마시었다.

곧 그의 입이 다시 열리며 커다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악마는 죽었다!”

묘족들은 악마에게 홀려서 이성을 잃었던 것이었으며, 악마를 죽였으니 그들은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왔노라. 하고서 모두에게 알렸다.

모여 있던 이들은 굳은 표정으로 그의 말을 들었고.

황금 갈기는 약간 지친 듯한 표정으로 마지막 말을 뱉었다.

“그러니 모두 해산하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사건의 끝이었다.

* * *

‘죽겠네.’

난 침대에 누워 가만히 천장을 보았다.

다른 일행들에겐 들어오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두었기에, 누군가 노크를 해 오던가 하는 일도 없었다.

난 편안하게 침대에 누워, 끙끙 앓았다.

‘후유증이 이렇게 심할 줄은 몰랐는데.’

풍월검에 전격을 부여하고, 뇌신에게 직접 배운 뇌룡창의 삼식을 사용했다.

그 후유증이 어찌나 거셌는지, 이젠 제법 레벨이 오른 이 신체로도 고통이 상당했다.

특히 직접 창을 던진 오른팔은 바늘로 콕콕 찌르고 있는 것만 같다.

“후우.”

난 길게 숨을 내뱉었다.

뭐 새삼스레 내 힘이 부족하다 뭐하다 하는 거로 궁상을 떨 생각은 없었다.

상대의 힘이 예상보다 강한 것일 뿐. 나도 분명히 발전하고 있었으니까.

그저 어떻게 하면 더 빨리 강해질 수 있을까.

그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 뿐.

‘그래도 소모한 신화 포인트는 거의 회복했네.’

막대한 양의 신화 포인트를 쓰긴 했지만, 악마를 잡음으로써 삼분지 이 정도는 회복했다.

또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황금 갈기에게 아주 확실한 빚을 지워 두었지.’

이제 새삼스레 동맹을 하니 마니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황금 갈기가 체면 불고하고 모른 척하면 모를까.

이 정도나 도움을 주었는데 그냥 넘어갈 리는 없으니까.

‘아마도 내일쯤 부르겠지?’

오늘은 사건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플 테니.

난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우선 오늘은 자고…….

똑똑-

라고 생각하려는 찰나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누구냐.”

오늘은 찾아오지 말라고 분명히 일러두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키는데 예상외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얀 발톱입니다.

아니, 오히려 친숙한 목소리인가.

일이 있을 때마다 그가 찾아왔었으니까.

난 몸을 일으켜서 문을 열었다.

“황금 갈기가 불렀나?”

“아닙니다.”

그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대답했다.

“그러면?”

“잠시 후에 다시 만나겠지만 대신 저에게 물건을 따로 전하라 하셨습니다.”

“물건?”

그를 멀뚱히 보고 있자 그는 가볍게 두 번 손뼉을 쳤다.

그러자 복도 저편에서 시종들이 무언가를 들고 걸어왔다.

그들이 들고 있는 건 아주 큰 상자였다.

“이것은 공식적인 보상과 별개로 황금 갈기께서 드리는 선물입니다.”

“호오.”

난 시종들이 조심스레 방 한쪽에 상자를 내려놓는 것을 보았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는 고개를 꾸벅이고서 천천히 문을 닫고 사라졌다.

‘무언가 전할 말이라도 더 있을 줄 알았더니.’

…대전사가 의외로 한가한 자리인가?

난 목덜미를 긁으며 상자를 잡아끌고서 침대 앞으로 갔다.

‘어디 보자.’

침대에 앉아 상자 뚜껑을 들어 올렸다.

상자 내부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건 푸른빛으로 빛나는 메이스였다.

만약 내가 보통 사람이었다면 무슨 물건인지 확인하는 데 애를 먹었겠지만.

‘탐색.’

난 스킬을 써서 간단하게 해결했다.

곧 아이템 정보를 살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옵션을 보니 내구도가 아주 높고, 파괴 불가 옵션이 붙은 아이템이었다.

이런 무기라면 아주 요긴하게 쓸 만한 물건이었다.

상자 안에는 메이스 말고도 전체적으로 무기가 많았다.

‘수인들은 무기를 별로 안 써서 그런가?’

수인은 무기를 쓰는 이보다 본신의 힘을 이용한 전투법이 더 발달되어 있다.

아마도 이것은 우연한 경로로 얻은 물건들을 털어 내려는 의도가 담긴 선물이 아닐까.

뭐, 나야 좋지만.

난 제법 만족한 얼굴로 물건들을 모두 챙겨 두었다.

보석류는 팔아서 예산에 보태면 될 것 같고.

무기류는 슬슬 시작하려 생각했던 일에 큰 도움이 될 듯싶다.

난 상자 안에 담긴 내용물을 모두 깔끔하게 챙기고서 뚜껑을 닫았다.

‘이제 자자.’

그리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잠시 후를 위해서라도 슬슬 눈을 붙여야 할 때니까.

* * *

“그렇기에 우리 수인 왕국은 오늘부로 왕국 폴그룬과 동맹 관계를 맺는다!”

왕궁의 발코니에 선 황금 갈기는 근엄한 표정으로 그리 소리쳤다.

악마를 처리한 다음 날, 그러니까 어저께 동맹과 보상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끝내고.

오늘은 그것을 백성들에게 직접 선포하는 날인 것이다.

“와아아아아!”

우리가 악마를 처리하는 것에 큰 도움이 된 걸 미리 알렸기에, 백성들의 반응도 제법 호의적이었다.

왕이 말하는 거니 그냥 환호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황금 갈기의 연설이 끝난 후 우리는 조용히 떠날 준비를 마쳤다.

“조심히 가게.”

황금 갈기가 아쉽다는 듯한 눈빛을 하며 말한다.

그는 성대하게 환송식을 하겠다고 했지만, 내가 결사반대했다.

그런 쪽팔림은 내 왕국에서만으로도 족하니까.

“다음에는 꼭 제대로 한잔하지.”

그의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는 말투에 나는 픽 웃었다. 아쉬운 게 그쪽이었나.

“그리 오래는 안 기다려도 될 거요. 조만간 또 볼일이 있을 테니.”

다분히 많은 의도를 내포한 내 말에 황금 갈기 또한 마주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기대하고 있지.”

우리는 마주 손을 잡고 서로를 바라봤다가 동시에 손을 놓았다.

“그럼 진짜 가겠소.”

“알겠네.”

우리는 황금 갈기가 마련해 준 마차에 올라탔다.

올 때는 펜리르의 등을 타고 왔지만, 가는 길은 조금 편하게 가고 싶었다.

황금 갈기가 보상으로 준 금은보화를 실어 가기도 해야 했고.

“넌 내내 쉬기만 했으니까 좀 더 일해야 하는데.”

난 마차가 출발하기 전 고개를 불쑥 내밀어 펜리르에게 말했다.

마차 옆에 서 있던 펜리르는 움찔 놀라며 나를 보았다.

-뭐, 뭘 말입니까.

“단서 찾으라고 보냈더니 아무것도 못 찾고. 묘족들 상대할 땐 구경만 했다며?”

-그건 제가 덩치가 커서 다른 사람들이 다칠까 봐 그런 겁니다!

“결론은 아무것도 안 한 거 맞잖아.”

-그, 그게. 그래도.

더 놀리면 침울해질 게 뻔해 나는 적당히 놀리고 손을 저었다.

난 다시 앉아 마차의 벽에 기대었다. 머지않아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돌아가면.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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