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수십 개의 검날이 달빛을 받아 반짝인다.
몽환적이면서도 섬뜩한 광경.
-크윽.
네팔루치아는 자신을 둘러싼 검들을 보고 당황스러워했다.
-이딴 환상 따위!
놈은 몸을 뒤틀며 거칠게 그 사이를 빠져나가려 했다.
사아아악!
-끄아악!
하지만 그 검들은 결코 환상 따위가 아니었다.
네팔루치아의 검은 거죽 곳곳이 난자당한다.
“어때? 이것도 재밌나?”
난 놈을 보며 씩 웃었다.
-이! 이딴 검!
놈은 더욱 커다랗게 괴성을 질러 대며 팔을 휘둘렀다.
챙!
파악!
네팔루치아가 팔을 휘두를 때마다 검이 깨진다.
아무리 녀석이 분신이라 해도 악마는 악마. 풍월검도 본체라면 모를까 이 스킬로 소환해 낸 검들은 내구력이 약하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괜히 힘 빼지 마.”
사악.
검들은 놈이 부수는 것보다 더 빠르게 생겨났다.
만월(滿月)
한 달 중 가장 달빛이 강할 때.
달빛은 온 세상을 굽어살피고, 달빛이 닿는 모든 곳에 검은 존재한다.
“놀아 보자, 한번.”
“좋지.”
게다가 난 혼자가 아니다.
수인 왕국 최강자. 황금 갈기의 힘도 볼 수 있겠군.
-버러지들. 너희들이 그렇게 원한다면 보여 주지!
콰아아아앙-!
네팔루치아 또한 상황이 심상치 않은 걸 깨달았는지 재빨리 소리쳤다.
빠직-
놈의 겉가죽에 거미줄 같은 실금이 퍼지더니 껍질 같은 것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져 내린다.
팍!
“캬아아아악!”
“키아악!”
게다가 돌연 놈의 뒤쪽 풀숲에서 인들이 튀어나왔다.
난 한눈에 그들이 아까 전 이성을 잃은 채로 배회하던 수인들인 걸 깨달았다.
-날 막는 것만 신경 썼나 보구나. 크흐흐.
놈의 말대로 이 주위를 감싼 결계는 대 악마용이다.
수인인 그들이 넘나드는 것엔 전혀 문제가 없겠지.
“그래서 뭐?”
근데 그게 뭔 상관인가.
“입만 좀 그만 나불대고 덤벼. 악마가 자존심도 없냐?”
“흐흐. 자넨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군.”
나와 황금 갈기는 웃음을 흘렸다.
먼저 행동을 개시한 건 황금 갈기. 그는 양손을 활짝 펼치며 함성을 내질렀다.
-크허어어엉!
단지 울음소리일 뿐인데도 수인들이 움찔 떠는 게 보인다.
팍!
그는 강철 같은 손톱을 앞세워 수인들에게로 다가갔다.
난 그걸 보면서 검을 천천히 위로 들어 올렸다.
자유분방하게 허공에 떠 있던 검들이 동시에 내가 들고 있는 검을 따라서 하늘을 본다.
“우리도 놀아 보자!”
그리고 검을 앞으로 뻗었다.
콰가가가가가!
동시에 모든 검이 한 번에 네팔루치아를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놈의 거죽에 빨간 줄이 연이어 생겨난다.
나도 앞으로 달려나갔다.
파아악!
놈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네팔루치아의 몸 곳곳이 갈라지더니 하얀 포자 같은 게 사방으로 뿜어졌다.
게다가 이어서 촉수 수십 갈래가 뻗어져 나와 그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들을 쳐내기 시작했다.
휘이-
난 주변에 바람을 불어 포자를 밀어냈지만, 별안간 등 뒤에 따끔한 느낌이 들었다.
“우욱.”
그리고 바로 포자의 효과를 알 수 있었다. 마치 노이즈가 낀 것처럼 일렁거리는 시야.
강한 구토감과 함께 시야에 이상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잔뜩 움츠리고 있는 남자.
그가 마치 확대되는 것처럼 가까워지더니 고개를 확 돌린다.
평범해 보이는 남자의 얼굴이다.
-왜?
그가 내게 물었다.
-왜 절 죽인 겁니까?
고저가 없는 음색.
그는 돌연 눈을 부릅떴다. 그의 눈꼬리에서 빨간색 액체가 아롱거리더니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남자는 말 그대로 피눈물을 흘리며 외쳤다.
-왜! 왜 저를 죽이신 겁니까.
철벅.
그가 내 양어깨를 붙잡았다. 그의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어 있어 옆을 보니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꺄아아아아아악!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며 내게 달려오는 여자.
-아악!
다리가 날아간 채로 내게 기어오는 남자.
분명 내 기억 속에도 남아 있는 얼굴들이다.
내게 죽은 사람들.
“아.”
휘이이이익!
그 때문일까. 난 검은색의 기둥이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야 그 존재를 깨달았다.
콰앙!
복부에 욕지기가 치밀어오를 정도로 격렬한 고통이 느껴졌다.
난 나무에 부딪혀 바닥을 구르고 나서야 내 상태를 깨달았다.
‘정신 간섭 계열.’
허공에는 여전히 무수한 포자들이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었다.
-크흐. 자신의 죄가 그리 두렵던가?
“그래. 네놈이 육탄 공격만 할 리가 없지.”
네팔루치아의 주 분야는 세뇌를 비롯한 정신 계열 공격이다.
휘이이익!
난 연이어 날아오는 촉수를 피해 내며 다시 검을 조종하는 것에 집중했다.
화악!
또한, 바람을 조종하는 것까지 신경 써야 했다.
처음은 방심해서 당했다고 해도, 다시 또 당할 수는 없었으니까.
난 마음을 다잡으며 가슴 어림으로 기운을 집중시켰다.
키잉-
뇌령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깨어난다.
파지직-!
몸 주위로는 푸른색의 전격이 튀어 오른다.
파직!
난 전격에 닿은 포자들이 부스러지는 걸 확인하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황금 갈기는.’
난 문득 황금 갈기가 걱정되어 그쪽을 살폈다.
“크허엉!”
콰직!
푸화아아악!
그리고 보자마자 바로 걱정을 접었다.
그의 몸에는 이미 포자가 쌓여 있는데도 벌게진 눈으로 미친 듯이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포자가 효과가 없는 건 아닌듯하고, 오히려 그 효과로 더 난폭해진 것 같았다.
‘쪽팔리네.’
난 이를 악물며 기운을 끌어올렸다.
‘뇌룡 질주.’
그리고 전신의 전격을 한 방향으로 집중시켰다.
쾅!
몸이 앞으로 쏘아진다.
난 바로 앞으로 다가온 악마 놈의 머리통을 검으로 내려찍었다.
-캬악!
악마의 머리통이 반으로 쪼개졌다가 다시 붙는다.
-필멸자는 나를 죽일 수 없… 쿠엑!
헛소리하길래 이번엔 주둥이를 엑스자로 그어 놓았다.
-이놈!
연이어서 놈의 몸을 난도질하는데 악마가 소리치더니 거칠게 몸을 흔들었다.
팍!
놈의 몸에서 촉수 수십 다발이 확 뻗어져 나왔다가 내게로 날아온다.
여기까지는 지금까지와 똑같았지만, 별안간 촉수 다발이 한데 뭉쳤다가 그물처럼 펼쳐졌다.
난 급히 검을 내 주위로 끌어모아 앞을 막았다.
출렁!
“윽!”
하지만 촉수는 마치 액체처럼 부드럽게 통과해서 내 몸에 달라붙었다.
꽈드득!
게다가 그것은 날 감싸자마자 내 몸을 으스러트릴 듯이 옥죄었다.
-이 쥐새끼 같은 놈!
네팔루치아는 다른 한쪽 팔을 들어 그대로 나를 향해 내리치려고 했다.
하지만 이 전장에는 나 혼자만 있는 게 아니다.
“크허엉!”
어느새 다른 수인들을 모조리 쓰러트린 황금 갈기가 악마의 다리를 양팔로 붙잡았다.
“이 뱀 같은!”
꽈득!
그는 그대로 힘을 주더니 허리를 뒤로 젖혔다.
-크윽?
악마는 버티려 했지만, 황금 갈기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대로 몸이 휘청였다.
“크아아아아아!”
황금 갈기는 그대로 악마의 몸을 들어 올렸다가 허리를 튕겨서 한쪽으로 내던졌다.
꽈르르릉!
나도 그 틈을 타 전력으로 전격을 뿌려서 구속에서 벗어났다.
꽈아아앙!
악마는 커다란 소리를 내며 결계에 부딪쳤다.
난 곧바로 악마를 향해 내달리는 황금 갈기를 향해 소리쳤다.
“황금 갈기!”
“왜!”
“놈 시선을 계속 붙잡고 있어!”
“알겠다!”
난 황금 갈기가 악마에게 몸을 내던지는 걸 본 후에 상점 창을 열었다.
‘구입. 구입. 구입. 구입.’
그리고 정신없이 아이템을 사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렸을 땐 보유하고 있던 신화 포인트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후우.”
난 상점 창을 닫으며 검을 꽉 쥐었다.
스스스-
허공에 떠 있는 검들을 하나둘씩 없앤다.
예상보다 놈의 재생력이 뛰어나 다른 방식으로 공격을 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웅웅-!
마지막에 남은 검은 여섯 자루.
수는 줄어들었지만, 안에 담긴 기운은 그 전보다 강대하다.
난 다른 쪽 손을 뻗어 인벤토리에서 뇌룡창을 꺼내 쥐었다.
파지직!
난 아예 눈을 감으면서까지 집중했다.
따로 몇 번 연습했었긴 하지만, 실전에선 한 번도 사용해 본 적 없는 기술이다.
집중해야 한다.
파직. 파직-!
뇌룡창으로 흘러 들어간 기운이 더 강렬하게 증폭되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지금까지와 그리 다를 바 없다.
파지직!
난 창으로 증폭시킨 기운을 다시 내 몸으로 가져왔다.
살짝 짜릿한 느낌이 들었지만, 여기까진 괜찮다.
이제 다음은.
그 기운을 그대로 오른손으로 옮긴다.
우우웅!
풍월검에서 강렬한 반발감이 일어난다.
난 그것을 무시하며 계속해서 기운을 밀어 넣었다.
전혀 다른 속성을 불어 넣는 일은 굉장히 복잡하고, 까다로운 일이었고.
난 그것을.
무식할 정도로 막대한 양의 기운으로 극복했다.
파지지지지직-!
풍월검에 전격이 튀어 오른다.
허공에 떠 있는 검들도 예외는 없었다.
여지없이 푸른 전격을 띠고 있는 검을 보며 난 네팔루치아와 황금 갈기에게 시선을 돌렸다.
“크아아!”
콰앙!
황금 갈기는 날렵한 몸놀림으로 촉수들을 피해 내며 끈질기게 악마에게 달라붙고 있었다.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유의미한 데미지를 입히지도 못하고 있었다.
난 양손에 쥔 무기를 꽉 쥐며 허공에 떠 있는 검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악마에게로 쏘아 냈다.
파악!
검이 푸른 궤적을 남기며 악마에게로 날아갔다.
푸욱!
푹!
다섯 자루의 검이 머리, 양팔, 양다리에 박힌다.
-크아악!
악마는 거칠게 몸을 흔들며 사방으로 촉수를 뿜어내었다.
콰아앙-!
내 주변으로도 아슬아슬하게 촉수가 스쳐 지나간다.
가까이 있던 황금 갈기도 땀을 뻘뻘 흘리며 촉수를 막아내고 있다.
‘뇌룡창 제 삼식(三式).’
하지만 난 주변의 상황을 모조리 무시하며 내가 해야 할 일을 했다.
오른쪽 뒤로 온몸을 기울이며 팔을 팽팽하게 뒤로 당긴다.
“흐읍!”
자세를 잡고서 한 발을 앞으로 내디딘다.
다시 허리를 튕기듯이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며, 자연스레 가슴과 어깨도 허리를 따라 움직였다.
온몸의 근육이 한 지점을 향해 나아간다.
마치 활시위를 잡아당겼을 때처럼 팽팽해져 있던 근육이 확 풀어지며 그 힘은 고스란히 오른손으로 집중되었다.
‘놓는다.’
그리고 난 길게 뻗어 나간 오른손을 가볍게 펼쳤다.
‘벼락 창.’
난 푸른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는 창을 보았다.
휘-
굉음 같은 건 없었다. 전격에 휩싸인 창은 그저 마땅히 가야 할 길을 가는 것처럼 매끄럽게 날아갈 뿐이다.
-이건 또 무슨!
촉수 조종하랴 황금 갈기 상대하랴 바쁘던 악마는 뒤늦게 내 창을 발견했다.
발견해 봤자 할 수 있는 건 없을 테지만.
푸욱!
창이 악마의 가슴을 게걸스럽게 파헤치며 꽂혀 들어간다.
투쾅-!
동시에 악마의 몸이 확 들리며 뒤로 날아갔다.
하지만 단순히 투창할 목적이었으면 풍월검을 미리 꽂아 넣지는 않았을 거다.
파지직!
악마의 가슴 정중앙에 박힌 창에서 푸른 전격이 퍼져 나간다.
이윽고 그 전격은 사지와 머리통에 박힌 검에 닿았다.
콰르르르릉!
악마의 몸은 사나운 전격에 뒤덮여 그 모습을 제대로 보기도 힘들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놈을 보며 난 상점 창을 다시 열었다.
그리고.
‘보유하고 있는 권능 전체 사용.’
아까 전 샀었던 권능 모두를 발동 시켰다.
[‘신성한 벼락’을 사용합니다.]
[‘신성한 벼락’을 사용…….]
[‘신성한 벼락’…….]
[…….]
[권능이 하나로 합쳐져 막대한 위력을 발휘합니다.]
수백 줄기의 벼락이 악마 한 명에게 내리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