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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111화 (111/170)

111화

일기가 좋은 날.

진흙 같은 어두운 밤.

호진은 도시 위를 활강했다.

그의 밑으로는 도시의 풍경이 빠르게 지나간다.

‘어딨냐.’

호진은 황금색 눈으로 사방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용안은 모든 부정한 효과를 꿰뚫어 보는 힘을 지니고 있지만, 그 강약을 조절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호진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너무나 많은 정보가 한 번에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뭔 주술이 이렇게 많이 걸려 있어?’

도시 황금 갈기는 성벽이 없다.

그렇다고 단순히 엔트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성벽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엔트와 함께 강력한 주술들.

주술을 전문으로 익히는 묘족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주술사들이 존재한다.

‘그거 믿다가 이 사달이 난 거지만.’

물론 주술이 만능은 아니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신과 악마는 일반적인 법칙들을 넘어서 있다.

그 불가해한 힘으로 사람들을 휩쓴다.

전작에서도 악마 진영과 인류 진영은 각자 모시는 사람의 힘을 바탕으로 몇 번이나 부딪쳤다.

‘전략가 같은 또라이도 있었고.’

개중엔 전략가처럼 마물의 힘까지 끌어들이는 놈도 있었다.

아직도 어떻게 마물을 끌어들일 수 있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후.’

호진은 길어지려는 생각을 정리하며 눈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목표한 바가 보였다.

숲을 뛰어다니고 있는 인형.

분명 육안으로 보일 만한 위치인데도 놈은 실루엣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찾았다.’

호진은 씩 웃으며 빠르게 밑으로 내려갔다.

그의 몸은 달빛과 바람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속도는 한 줄기 바람과 같았다.

* * *

휘이이-

바람이 불고.

나무 위에 올라가 있던 남자는 갑작스러운 오한에 몸을 떨었다.

갑자기 이상한 불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안녕?”

그리고 그 불안감은 곧 현실로 드러났다.

사내는 갑자기 앞에서 불쑥 튀어나온 허연 얼굴에 깜짝 놀랐다.

“으억!”

자신이 서 있던 곳이 좁은 나뭇가지란 걸 잊었는지, 그는 뒤로 물러나다가 떨어질 뻔하기까지 했다.

“누, 누구냐.”

사내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고.

호진은 흥미로운 눈으로 사내를 살폈다.

‘이놈은 뭐지?’

그의 앞에 있는 놈이 자신의 예상과는 살짝 달랐기 때문이다.

머리 위로 솟아난 검은색 고양이 귀. 엉덩이 뒤로 살랑이는 꼬리.

분명 묘족이고, 저 생김새를 보니 어둠 송곳니도 맞는 거 같다.

‘뭐 이렇게 어리숙해 보여?’

그런데 이런 일을 벌인 놈이라고 보기엔 너무 어리숙해 보이는 게 문제.

‘아니, 겉모습만으로 판단하면 안 되지.’

그러나 호진은 곧 마음을 다잡으며 놈에게 성큼 다가갔다.

“어둠 송곳니. 맞나?”

호진의 말에 사내는 몸을 움찔 떨었다.

“아비를 죽인 장자. 네팔루치아의 사도들을 끌어들인 반역자. 맞나?”

“그, 그건…….”

사내는 그저 주춤거리며 나무 몸통 쪽으로 물러날 뿐 아무런 반항이 없었다.

그는 갑자기 발악적으로 외쳤다.

“내,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 아니다.”

“뭐?”

호진은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하고 싶어서 한 일이 아니다?”

사악-

그의 검이 검집을 빠져나와 은빛 궤적을 아로새긴다.

“크윽.”

어둠 송곳니는 자신의 목젖에 닿은 검날을 보며 침음성을 흘렸다.

달빛을 은은하게 반사하는 검날은 아름다웠고, 그만큼 치명적으로 보였다.

“죽은 사람도 죽고 싶어서 죽은 건 아닐걸.”

어둠 송곳니는 입을 우물거리기만 할 뿐 말을 하지 않았다.

호진은 그를 빤히 노려보다가 뒷덜미를 강하게 내리쳤다.

“커윽!”

어둠 송곳니의 몸이 축 늘어진다.

호진은 그를 어깨에 둘러 매고서 몸을 날릴려다가 문득 그를 봤다.

‘…너무 세게 때렸나?’

어둠 송곳니의 입에서 거품이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음.”

호진은 어떻게든 되겠지, 라고 생각하며 다시 몸을 날렸다.

* * *

케륵은 부지런히 발을 옮겼다.

“케르륵.”

그의 뒤로는 총 세 명이 따라오고 있었다.

하얀 발톱과 화린, 그리고 이렌.

그들은 따로 수행해야 할 임무가 있었기 때문에 숲을 걷고 있었다.

호진이 자리를 비운 지금은 케륵이 리더다.

“케룩.”

그는 침착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폈다.

이따금 다른 이들에게 명령도 내리며 쭉 앞으로 나아갔다.

“켈!”

그리고 어느 순간 케륵이 휙 손을 들어 올렸다.

모두 그걸 보고서 멈춰섰다.

“전방에 있다.”

케륵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정보를 알렸다.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서 케륵을 따라서 조용히 앞으로 나아갔다.

부스럭-

앞의 풀숲이 살짝 흔들린다.

케륵은 지팡이를 앞으로 쥐며 천천히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한 번에 잡아야 한다.’

케륵은 호진이 신신당부했던 내용을 떠올리며 신중하게 주문을 외었다.

시야를 가로막은 이 풀숲을 지나고 나면 주문은 바로 발동될 것이다.

“상황이 이상하오.”

“어떻게 된 것이오? 얘기와 다르지 않소!”

케륵은 풀숲의 중간을 지났을 때쯤, 저 앞에서 대화 소리를 들었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소. 하지만 상황은 다시 통제될 것이오.”

“그러니까 그 변수가 뭐냐고! 하다못해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나 알려 줘야 되는 거 아니오?”

“맞아! 그 황금 갈기 놈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 통에 숲으로 나오는 것도 힘들었다고!”

대화의 내용은 심상치 않았다.

케륵은 아주 천천히 발을 앞으로 뻗었다.

투웅-

풀숲의 끝에는 결계가 쳐져 있었다. 케륵은 뛰어난 주술사인 만큼 바로 그 효능을 파악했다.

그는 주문을 외우는 걸 멈추지 않고서 이렌에게 슬쩍 눈짓했다.

이렌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허공에 무어라 중얼거렸다.

그러자 모두의 몸 주위로 푸른색의 빛줄기가 휘감겼다.

‘됐어요.’

이렌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얼마 전 새로 생긴 능력 중 하나인 ‘동화’ 능력이었다.

카멜레온처럼 은신과 관련된 능력은 아니었고, 경계, 탐지, 알람 등의 주술을 무시하는 효능이 있었다.

그걸 보여 주듯이 케륵이 앞을 가로막고 있던 결계를 그대로 통과했다.

“케헤루! 벨!”

케륵은 결계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큰 소리로 주문을 외웠다.

작은 공터에 모여 있던 사람, 아니 수인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날아든다.

“마하쿠! 밀! 츌라!”

물론 케륵은 신경 쓰지 않고서 지팡이를 빙빙 돌렸다.

그리고 수인 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지팡이를 앞으로 확 뻗었다.

“멈추어라!”

후웅-!

지팡이에서 환한 기운이 뻗어 나간다. 그 기운은 순식간에 수인들의 몸을 휘감았다.

“뭐야 이……?”

수인 들은 당황스러워하며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그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심지어 입과 혀까지 굳었는지 말도 하다가 멈추고서 눈알만 데룩데룩 굴렸다.

“화린, 하얀 발톱. 시작하시게.”

케륵은 주술이 완벽히 먹혀든 것을 확인하고서 뒤로 물러났다.

이젠 화린과 하얀 발톱의 차례다.

“어디 보자.”

화린은 몸을 풀며 수인들에게로 다가갔다. 그녀는 수인들을 유심히 살폈다.

수인들은 각자 이상한 가면 같은 걸 쓰고 있었는데, 다들 인간의 특징이 강한지라 겉모습만으로는 종족을 구분하기 힘들었다.

하얀 발톱도 그녀를 따라서 수인들을 살폈다.

“이자는 묘족이네요. 여우족도 있고.”

“이 사람은 견족입니다.”

수인 셋은 빠르게 판별되었다.

이제 남은 건 다른 한 명.

대화 내용상으로는 이들 셋이서 항의를 하고, 나머지 한 명이 받아주는 쪽이었다.

“그럼 어디 보자. 확인 들어갑니다. 짜라자라잔, 짠.”

화린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손을 뻗었다.

그리고 휙.

마지막 수인의 가면이 벗겨졌다.

“사쿠라네?”

화린은 당황한 나머지 무심코 헛소리를 했다.

“아, 아니. 이놈이 아닌데?”

화린은 고개를 돌려 하얀 발톱을 보았다가, 케륵을 보았다.

둘의 얼굴에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놈. 이놈이 여기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하얀 발톱 또한 황망한 얼굴로 그의 얼굴을 보았다.

얼굴이 드러난 수인은 눈알만 데룩데룩 열심히 굴리고 있었다.

만약 얼굴을 움직일 수 있었으면 잔뜩 일그러트린 표정을 짓고 있었을 거다.

“얘 황궁에 가둬 놓고 심문한다고 했잖아요!”

마지막 수인.

그는 광풍 송곳니였다.

* * *

“어찌… 어찌 된 일이냐.”

황금 갈기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 내재된 화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 그게.”

그걸 느꼈는지 황금 갈기의 뒤에 서 있는 남자는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부엉이 수인이자 감옥을 지키는 간수는 텅 빈 감방을 보았다.

이곳엔 딱 한 명의 죄수만이 수용되어 있었다.

그것도 바로 어제 들어온 죄수가.

“내 눈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황금 갈기는 형형하게 빛나는 눈을 돌려 간수를 보았다.

“이곳에 있어야 할 광풍 송곳니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간수는 그 눈빛 앞에서 당장이라도 실금을 할 것 같은 두려움에 머리가 하얗게 물들었다.

그는 아무 말도 안 하면 더 분노를 돋울 거란 생각에 간신히 입을 열었다.

“분명, 분명 조금 전까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제가 계속 보고 있었는데!”

“그래?”

황금 갈기는 다시 고개를 천천히 돌려 쇠창살을 붙잡았다.

끼이-

그리고 천천히 힘을 주었다.

끼끼기기기긱-!

쇠가 마치 엿가락 늘어지듯 양쪽으로 휜다.

황금 갈기는 창살을 휘어 제 몸이 들어갈 만한 공간을 만들어 내고서 훌쩍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안쪽을 샅샅이 살피다가 나무토막을 발견했다.

“흐음.”

이 나무토막은 묘족들이 종종 주술에 사용하곤 하는 매개체였다.

그는 나무토막을 뚫어져라 보다가 꽉 쥐었다.

콰드득.

“재미있는 장난을 쳤구나.”

황금 갈기가 입꼬리를 양쪽으로 쭉 올렸다.

입은 호선을 그렸지만, 그것은 결코 미소라고 할 수 없었다.

마치 맹수처럼 날카로운 이를 드러낸 채 그는 들끓는 살의를 조용하게 벼리고 있었다.

“아주 재미있어.”

그는 다시 창살 밖으로 나와 힐끔 부엉이 수인을 보았다.

불쌍한 간수는 황금 갈기가 순간 발산한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거품을 문 채 쓰러져 있었다.

황금 갈기는 손에 남아 있는 나무 부스러기를 바닥에 털어 내고서 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올라.

복도에 도달한 후 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었다.

“여- 봐- 라-!”

그리고 소리쳤다.

왕궁 전체가 그의 목소리에 흔들거렸다.

각자 방에 있던 시종과 기사들 등등 모든 이들이 복도로 뛰쳐 나왔다.

“…시종들은 들어가라.”

그의 말에 시종들은 머뭇거리며 다시 들어갔고, 기사들은 앞으로 다시 모여들었다.

황금 갈기는 그들을 보며 말했다.

“너희들은 당장 나가 묘족 연놈들을 모두 잡아들여라.”

한 단어 한 단어에서 분노가 서려 나온다.

“갓난아기, 노인, 그런 것들을 신경 쓰지 말고. 묘족과 관련이 있는 자들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짐승의 왕, 맹수 중의 맹수.

수인 왕국의 왕.

그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었다가 내뱉으며 말했다.

“왕궁 앞으로 잡아들여라.”

황금 갈기는 거기까지 말하고서 등을 돌렸다.

기사단은 왕명을 수행하기 위해 바로 썰물처럼 왕궁 밖으로 빠져나갔다.

황금 갈기는 텅 빈 복도를 따라 걸으며 생각했다.

‘이호진.’

그가 말해 주었던 계획.

그 안에서는 황금 갈기 또한 하나의 체스 말에 불과하다.

‘불만은 없다.’

그런데도 그는 불만을 느끼지 않았다. 그에겐 항상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시했었으니까.

이번도 마찬가지다.

모든 일이 호진이 말했던 대로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나도 그에 맞추어 어울리면 될 뿐.’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모든 일이 끝나면 그의 시간이 올 것이다.

늙은 호랑이를 우습게 여기기 시작한 자들에게 본보기를 보여 줄 시간이.

단지 그때까지는 참을 뿐.

황금 갈기는 호진이 오기를 기다리며 복도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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