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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109화 (109/170)

109화

“알지. 아주 자세히.”

“그래. 그럼 얘기가 한결 쉬워지겠군.”

황금 갈기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네팔루치아의 아이들.

그들의 본래 이름이 뭔지, 언제부터 그렇게 불렸는지는 모른다.

그들은 수인이되, 정작 수인들에겐 인정받지 못하는 종족이다.

광신도.

악마의 씨앗.

게임 내의 사람들은 그들을 그렇게 부르곤 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이 모시는 신인 네팔루치아가 악마였으니까.

“놈들이 본격적으로 본모습을 드러낸 건 악마 전쟁. 그 전까지는 같은 수인으로 취급해 줬었고.”

“그때는 각자 부족을 이뤄서 살았었으니 알 수도 없었겠군.”

“그렇지.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목숨을 끊어 극락으로 보낸다니. 그런 미친 교리가 어딨나?”

나도 그의 의견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팔루치아라는 악마는 사실 엄청 안 유명한 놈이었다.

유저들이 추정하기로는 고대의 악마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생각할 뿐.

그런데 카멜레온들은 어떤 경로로 그 악마를 접한 후 섬기기 시작했다.

“악마 전쟁 땐 끔찍했었지. 바로 전까지 웃고 떠들던 놈들이 발톱으로 심장을 뚫고, 칼로 목을 그어 댔으니.”

그가 말하는 악마 전쟁.

그것이 네팔루치아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다.

과거 악마들은 대대적으로 자신의 추종자들을 이끌고 전쟁을 일으켰다.

다행히 모든 종족들은 힘을 합쳐 악마들을 몰아내었고, 네팔루치아의 아이들도 그 이후 음지로 숨어들었다.

“하여튼. 수인 왕국을 세울 때 나는 당연히 네팔루치아의 아이들은 배제했네.”

“미친놈들까지 끌어들일 수는 없으니까.”

“맞아. 난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했었어.”

“순진했군.”

그는 별다른 반응 없이 묵묵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순진했지. 경험도 부족했고. 놈들의 음습하고 비열한 습성을 몰랐었네.”

나는 머릿속으로 상황을 그렸다.

네팔루치아의 아이들이 단순히 암살 집단이었다면 지금처럼 악명이 높지는 않을 거다.

그들이 악명을 얻은 가장 큰 이유는 악마 전쟁 때의 동족 살해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다른 이유로 더 악명이 높다.

나는 황금 갈기를 보며 말했다.

“놈들의 세뇌 주술은 상당히 까다로워. 시간도 오래 걸리고, 그 효과도 그리 강하지는 않지만.”

그도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이었다.

“그래, 그 대신 아주 오래가지. 광신도가 되는 거야.”

종족 전체가 미친놈들이다.

그들과 깊이 엮이는 자는 언젠가 파멸을 맞이한다.

대장로는 장자를 죽이지 않음으로써 그 대가를 치르게 됐다.

나는 회한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황금 갈기를 물끄러미 보다가 입을 열었다.

“나도 얘기할 게 하나 있어.”

본래라면 굳이 얘기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두 사건 사이에 연관성을 발견했으니, 정보를 공유하는 게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될 터.

“뭐지?”

“오는 길에 네팔루치아 놈들에게 습격을 당했어. 그것도 거의 대여섯 번이나.”

“뭐?”

그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나는 그에게 자세한 정황을 설명해 주었다.

이윽고 얘기를 모두 들은 그는 눈을 날카롭게 좁히더니 사나운 기세를 뿜어냈다.

“어떤 개 같은…….”

그는 수인 언어에서 욕설로 추정되는 단어들을 연이어 말한 후에야 진정했다.

“그래, 내통자가 있다는 거군.”

황금 갈기는 여전히 화가 난 듯 보였지만 이를 악물며 참아 내고 있었다.

“산 채로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놈들. 뱀보다 못한 새끼들.”

여기서 뱀은 용인들을 가리킨다.

이상하게도 호인들은 예로부터 용인들과 사이가 안 좋았다.

“나도 바로 말을 꺼낼 생각은 없었어. 수작질을 한 놈이 누군지 모르니까.”

그러면서 그를 빤히 보았다.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우선 자네는 아닌 것 같군.”

“그걸 말이라고.”

황금 갈기는 이를 드러내며 성난 표정을 지었다.

“난 그 개 같은 새끼들이랑은 상종도 안 하네. 만약 내 앞에 있었으면 바로 산 채로 찢어 놓았겠지.”

“음. 그거 참 든든하네.”

만약 황금 갈기가 우릴 노렸더라면 상당히 곤란했을 것 같다.

그는 척 보기에도 상대하기 만만치 않은 자였으니까.

‘본래 게임에서도 상당히 높은 티어의 NPC였지.’

물론 게임과 똑같이 생각하진 않는다. 게임의 지식은 이젠 그저 참고용일 뿐.

난 짧게 생각을 정리하며 심각한 표정의 황금 갈기에게 말했다.

“뭐, 결국은 간단하네.”

황금 갈기는 날 보았고, 나는 짧게 말했다.

“어둠 송곳니를 찾아야지.”

결국 모든 단서를 쥐고 있는 건 놈이다.

* * *

다음 날.

우린 다시 내 침실에 모여 있다.

“어둠 송곳니. 어둠 송곳니. 어둠. 송곳니. 어둠…….”

“그만. 정신 사나워.”

난 방 안을 이리저리 휘적거리며 다니는 화린을 제지했다.

그녀는 무언가를 떠올리려는 듯 연신 같은 이름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화린은 내가 제지하자 침대 끝에 털썩 주저앉았다.

“왜 기억이 안 나지? 왜 안 날까? 분명히 들어본 이름인데.”

“나야 모르지. 잘 생각해 봐.”

난 심드렁한 말투로 답했다.

처음에 그녀가 저랬을 땐 나도 나름 관심이 있었지만, 그게 삼십 분을 넘기고 한 시간을 넘겼을 때쯤엔 흥미를 잃었다.

어둠 송곳니라.

내가 무슨 탐정도 아니고 이름 하나 가지고 사건을 해결할 능력은 없다.

그래서 난 이렌과 뇌조의 힘을 십분 활용하기로 했다.

휘이이-

살짝 열어 둔 창가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뒤이어 초록빛의 연기가 흘러들어왔다.

난 이렌을 보았다.

“확실하게 보이는 건 없데요.”

실망할 뻔했지만 이렌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뇌조가 무언가를 발견한 것 같다는데요? 자세히 확인해 본다고 어딘가로 날아갔대요.”

“그래?”

그러고 보면 뇌조는 카멜레온들이 숨어 있던 것도 아무렇지 않게 발견했었다.

무언가 새로운 단서를 찾아오면 좋을 텐데.

“후. 내가 제일 하는 게 없네.”

난 창가를 힐끔 보고선 한숨을 내쉬었다.

본래는 간단하게 동맹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그래도 덕분에 동맹은 문제없게 됐잖아?”

“그렇긴 하지.”

황금 갈기의 첫 태도로 보면 얘기가 좀 길어질 수도 있겠다 싶었었다.

그런데 예상치 않은 일 때문에 주도권이 우리 쪽으로 확 넘어왔다.

그래. 뭐, 내가 하는 일이 있나 없나가 뭐가 중요한가. 좋은 게 좋은 거지.

나는 길게 숨을 내뱉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돌아올 소식을 기다리며.

똑똑.

하지만 먼저 찾아온 소식은 내가 예상하지 않은 형태였다.

-호진 님.

하얀 발톱의 목소리.

왠지 데자뷰가 느껴지는걸.

난 바로 문을 열었고, 약간 피로한 기색의 하얀 발톱을 볼 수 있었다.

“무슨 일이지?”

“황금 갈기 님이 모셔 오라고 말하셨습니다. 그… 좀 급박한 일이어서, 괜찮으시면 바로 안내해도 되겠습니까?”

무언가 또 일이 벌어진 건가?

난 손짓으로 다른 일행들을 불러 모아 그를 따라갔다.

“자세한 건 직접 보시면 아시겠지만, 새벽간에 도시 한복판에 누군가 글자를 써 놨습니다.”

“글자를?”

“예. 심지어…….”

난 그의 설명을 굳은 표정으로 들었다.

정말 그의 말대로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이렇게 과감하게 일을 벌일 줄은 몰랐는데.

곧 우리는 하얀 발톱을 따라 도시의 한복판에 도착했다.

그곳엔 이미 황금 갈기와 여러 명의 수인들이 서 있었다.

“오, 왔군.”

황금 갈기는 어제와 다름없는 태도로 나를 반겼다.

하지만 나는 마냥 웃으면서 인사 할 수는 없었다.

“이것도 목격자는 없는 건가?”

“그렇네. 감쪽같군. 하하. 목격자가 없다니.”

그는 웃음소리를 내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나는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글자가 써져 있었다.

새빨간 색에 지독한 피비린내를 풍기는 글자.

“matado.”

황금 갈기가 뭐라 말했다.

그는 날 돌아보면서 설명했다.

“수인족의 언어로 복수라는 뜻이네.”

“복수라.”

난 목덜미를 긁었다.

그야 저렇게 화려하게 글자를 써 놨는데 긍정적인 내용은 아니겠지만.

“너무 노골적인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그런 생각을 하며 그 점에 대해 말하려고 황금 갈기를 보는데 뒤에서 손길이 느껴졌다.

“응?”

화린이 내 옷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니 내게 더 가까이 다가온다.

‘귓속말.’

그녀가 입 모양으로 그렇게 말했고, 나는 허리를 좀 숙여서 귀를 가까이 댔다.

‘복수, 수인 왕국, 어둠. 이거 제가 아는 퀘스트예요.’

화린의 말이 끝나자마자 고개를 돌리며 그녀를 보았다.

그녀의 눈빛엔 확신이 서려 있었다.

난 목덜미를 한 번 더 긁적이고서 황금 갈기를 보았다.

“미안한데, 잠깐 동료랑 얘기 좀 나눠도 될까? 우리도 의견을 좀 교환하려고.”

“아. 당연하지. 도움을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애초에 그가 요청했던 건 사령술사인 케륵의 힘을 빌려 달란 거였기 때문에, 우리가 계속 도와주는데 고마움을 느끼는 듯했다.

선선한 대답에 나는 잠시 화린만 데리고서 구석진 곳에서 얘기를 나누었다.

“무슨 얘기야. 웬 퀘스트?”

“그게 나도 계속 긴가민가했었어. 근데 저 글자 보니까 생각났어.”

화린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퀘스트 내용이 조금 달라. 그것 때문에 헷갈렸던 거고.”

“뭐라고?”

난 미간을 찌푸렸다.

“다른 거랑 착각하는 거라면?”

이건 신뢰의 문제가 아니었다.

퀘스트의 내용을 가지고 깊게 개입했는데 헛다리를 짚는다면 단순히 망신을 당하는 것으론 끝나지 않을 테니까.

“아니, 확실해. 한번 들어봐.”

그녀는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의 말을 듣고 나서야 왜 그녀가 그렇게 확신을 하는지 이해했다.

“확실히 비슷, 아니 거의 똑같네.”

“응. 그냥 종족이랑 이름만 조금씩 다르고 상황이 완전히 똑같잖아.”

지금까지 고민하던 내용들은 모두 털어 버렸다.

이제 판단해야 하는 건 우리의 행동을 화린이 말한 그 퀘스트에 맞추느냐 아니냐이다.

“그래. 확실히 걸어 볼 만해. 애초에 퀘스트 대로라면 더 위험해질 테고.”

난 그렇게 말했지만, 쉽게 발을 떼지 못했다.

“우선, 우선은 내가 기회가 되면 말을 꺼낼게.”

“알았어.”

우리는 다시 중앙의 공터로 돌아갔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케륵은 사령술로 혈액의 출처를 조사했다고 한다.

“짐승 아홉 마리의 피가 섞여 있다고?”

“케르륵. 그렇습니다.”

황금 갈기는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재밌군. 재밌어.”

그는 글자를 뚫어지라 봤다.

“아홉 마리라. 네팔루치아 놈들이 제물을 받칠 땐 꼭 아홉 종의 제물을 받치곤 했지.”

“그건 그렇지만.”

황금 갈기가 획 고개를 돌려 날 보았다.

“나도 바보는 아니네.”

그는 이를 드러내며 말을 이었다.

“자네 말대로 너무 노골적이야. 그리고 그건 네팔루치아의 방식이 아니지.”

“하지만 네팔루치아의 협력자라면 얘기가 다르죠.”

어둠 송곳니를 생각하며 말했다.

퀘스트 내용을 알고 나니 이 글자의 광경도 다르게 보였다.

“만약 정말 똑똑한 놈이라면.”

난 시야를 낮추며 글자를 관찰했다.

“아주 노골적으로 행동해서 다른 걸 감출 수도 있겠죠.”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도 있지 않나. 난 다시 일어서며 허리를 쭉 폈다.

잠시 각자 생각을 하느라 대화가 소강상태에 접어 들었다.

키루루루루-

그때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뇌조가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아빠!

뇌조는 천천히 내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응.”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부리에 물려 있는 무언가를 보았다. 난 순식간에 홀린 듯이 그것을 살폈다.

뇌조도 그 시선을 느꼈는지 약간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다.

-카멜레온들은 없었는데, 수상한 게 있길래 주워 왔어.

그건 바로 보랏빛 보석이 박혀 있는 펜던트였다.

“와…….”

난 말이 안 나와 입을 떡 벌렸다.

뇌조가 퀘스트 핵심 아이템을 주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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