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모두 정지.”
나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왜?”
화린이 바로 내게 물어왔다. 나는 놈들의 동태를 주시하며 말했다.
“전방에 카멜레온 열여섯 마리가 잠복해 있어.”
“네팔루치아 광신도들?”
“응.”
그녀는 내 말을 곧잘 알아들었다.
카멜레온.
녀석들에게 카멜레온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 생김새 때문이 아니다.
전신에 비늘이 듬성듬성 나 있는 것. 그리고 혀와 눈이 도마뱀의 그것과 닮은 것을 제외하곤 인간과 비슷했으니까.
‘누굴 노리고 있는 거지?’
놈들이 카멜레온이라고 불리는 건 딱 저 능력 때문이다.
주변과 동화하는 능력.
나조차도 용안을 쓰기 전까진 놈들이 숨어 있단 걸 몰랐었으니.
저 능력에다가 신체 능력도 우수한 편이라 ‘암살자’로 꽤 유명한 종족들이다.
종족 전체가 네팔루치아라는 신을 모시는 광신도인 걸로도 유명하고.
“케르륵. 저 앞에 누군가가 숨어 있는 겁니까?”
잠시 고민을 하고 있는데 케륵이 내게 질문을 해 왔다.
“응. 딱 저쪽에.”
케륵은 내가 가리킨 곳을 보다가 곧 발견을 못 했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케를.”
난 턱을 긁적였다.
놈들이 암살자로 유명하긴 하지만, 그건 저 특유의 동화 능력 덕분이다. 그런데 내 눈엔 저들이 숨어 있는 게 훤히 보인다.
그렇다면야 뭐.
“우선 조지고 봐야지.”
케륵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그럼 제가 손을 써도 되겠습니까? 케르르를.”
“그래. 한번 해 봐.”
어차피 직접 손을 쓸 생각도 없었다. 호미로 막을 것, 가래로 막을 필요는 없으니까.
케륵은 바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카멜레온들은 눈치를 챘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진 미동도 없이 엎드려 있다.
하긴 이런 평야에서는 섣불리 움직이는 게 더 눈에 띄겠지.
“신의 말씀으로…….”
케륵의 주문은 끝을 향해 달려간다. 놈들은 그것도 모르고 멀거니 이쪽을 보고 있다.
그리고 케륵은 어느 순간 확 고개를 쳐들며 지팡이를 뻗었다.
“벼락 사슬!”
파지지직!
지팡이 끝에서 푸른 번개 줄기가 튀어나간다.
번개 줄기는 정확히 내가 가리켰던 지점을 향해 날아갔다.
카멜레온들도 그걸 보고 뒤늦게 피하려 했지만, 번개 줄기는 이미 맨 앞에 있는 놈을 덮치고 있었다.
“샤아아아악!”
번개에 직격당한 놈의 모습이 드러났다. 다른 이들도 그제야 카멜레온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파직!
그리고 번개 줄기는 한 놈에서 끝나지 않았다.
눈을 까뒤집고 벌벌 떠는 놈의 몸에서 다시 한 번 전격이 튀어 오르더니 양 갈래로 나뉘어 뻗친다.
파지직!
“샤아악!”
“키엑!”
이어서 다시 또 각각 두 줄기로 나뉘고, 또다시 두 줄기로 나뉜다.
이내 벼락 사슬은 카멜레온 열여섯 마리를 모두 묶어 놓았다.
모두 푸른 전격에 휩싸여 몸을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은 주술의 위력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케르륵. 가서 포위해.”
“케룰!”
“케를, 케르!”
파박.
케륵의 명령에 고블린들이 늑대를 타고 앞으로 쭉 달려 나갔다.
카멜레온들은 제대로 반항도 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고블린들에게 둘러싸였다.
나도 펜릴을 움직여 천천히 그쪽으로 다가갔다.
“케를!”
“켈! 켈!”
가까이 가니 고블린들은 그새 카멜레온들을 가운데로 모아 놓았다.
난 펜릴의 등에서 뛰어내려 놈들의 앞에 섰다.
내가 가까이 가니까 한 놈이 살짝 정신을 차렸는지 이를 드러냈다.
“샤아……! 악!”
빡!
하지만 놈은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고블린이 휘두른 몽둥이에 바로 조용해졌다.
난 놈에게 질문했다.
“왜 여기에 있던 거지?”
머리를 얻어맞고 끙끙거리던 다시 입을 열었다.
“샤아아! 샤아아…….”
난 다시 고블린에게 눈짓했다.
“캭!”
빠악!
곧바로 고블린의 몽둥이가 놈의 머리통을 내리찍는다.
“알아듣게 말해. 인간 말 할 줄 알잖아.”
“끄으.”
그는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내가 다시 눈짓하려 하자 바로 입을 열었다.
“말, 말하겠습니다. 그!”
놈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 할 때 갑자기 이상한 조짐이 보였다.
어디에선가 황금색의 안개 같은 것이 흘러들어오더니 카멜레온들의 몸에 빨려 들어갔다.
그러자 직후 한 놈의 전신에서 밝은 광채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후우우우웅-!
게다가 연쇄 작용처럼 다른 놈들의 몸에서도 빛이 뿜어져 나왔다.
“아, 씨발.”
나는 뒤늦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깨달았다.
“이렌! 뇌조! 보호막!”
내 명령에 이렌과 뇌조가 순식간에 얇은 막을 만들어 냈다.
초록빛과 황금빛이 어우러진 막 뒤로 모두를 물리고 난 맨 앞으로 나섰다.
곧 놈들의 몸이 직접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밝게 빛났고.
콰아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빛이 번쩍였다.
강렬한 충격파가 막을 두드린다.
불안하게 일렁거리는 막에 기운을 불어넣으며 난 주변을 살폈다.
‘어디지.’
아까 전 안개가 흘러온 쪽을 보았다. 그리고 그 방향에서 작은 실루엣 하나를 발견했다.
폭발의 잔력은 거의 다 해소된 상태다. 나는 망설임 없이 몸을 날렸다.
‘뇌룡 질주!’
콰앙-!
몸이 벼락같이 튀어나간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지고 놈의 실루엣이 바로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도착했을 땐 이미 놈의 모습이 천천히 드러나고 있었다.
“하.”
난 허탈한 심정으로 놈을 내려다봤다.
놈의 안면은 보랏빛으로 변해 있었다. 독약 같은 걸 삼켜 자결한 듯했다.
‘개 같네.’
다른 카멜레온들과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훨씬 작은 체구와 몸을 감싼 검은색의 로브.
바로 주술사였다.
‘주술사가 안 보일 때부터 알아채야 했는데.’
네팔루치아 놈들을 접할 일이 별로 없다 보니 잊고 있었다.
보통 녀석들은 암살조 여럿과 주술사 하나가 같이 움직인다는 것을.
나는 한숨을 내쉬며 놈의 시체를 들고서 무리로 돌아갔다.
“건진 건 이놈 시체밖에 없군.”
시체를 앞으로 툭 던졌다.
다른 놈들의 시체는 이미 폭발에 휩쓸려 갈기갈기 찢겨나간 후였다.
난 시체를 늑대 하나에 실어 두라고 시킨 후, 우선 다시 출발하자고 말했다.
약간 들떠 있던 분위기는 삽시간에 가라앉았다.
“우릴 노린 걸까?”
펜릴 위에 올려 타자 화린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마도.”
“누가 의뢰를 한 거겠지? 네가 네팔루치아랑 엮였을 리는 없고.”
“응. 나도 처음 봐.”
누굴까.
그리고 더욱 큰 의문은.
‘어떻게 우리가 이 방향으로 갈 거란 걸 알았을까?’
우리가 수인 왕국으로 갈 거란 걸 아는 사람은 극히 소수다.
여기에 없는 사람 중에 아는 건 기껏해야 크룩이나 철우 형 정도.
‘아니, 성에서 멀지 않은 곳이니 여러 군데에 매복하고 있었을 수도.’
생각해보니 폴그룬의 존재만 안다면 루트를 몇 가지로 좁히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습격이 있을지도.
“이번에도 편하진 않겠네.”
난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화린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계속해서 이동했다.
몇 날 며칠을 잠깐씩만 쉬면서 움직였고, 습격 또한 끊임없이 이어졌다.
뇌조가 지속해서 경고해 준 덕분에 피해는 일절 없었지만, 별다른 소득도 얻을 수 없었다.
“놈들 목적이 사람 미치게 만들려는 거면 이미 성공한 것 같네.”
난 신경질적으로 투덜거렸다.
지금은 진흙같이 어두운 밤.
수인 왕국에 거의 다 와 가는데도 놈들은 끈질기게 기습을 해 왔다.
“정말 더럽게 귀찮네.”
화린도 내 옆에서 내 말에 동의하듯 말했다.
난 얼굴이 보랏빛으로 변한 채 죽은 카멜레온들의 시신을 봤다.
놈들은 우리가 직접 죽이지도 않았다. 좀 수세에 몰릴 것으로 보이자 바로 자결해 버린 거다.
“처음 주술사를 알아채지 못한 게 컸어. 전력이 그대로 노출됐으니.”
절로 한숨이 나온다.
네팔루치아의 주술사들은 기실 전투력은 별 볼 일 없는 족속들이다.
그 주술 실력이 그리 뛰어나지도 않거니와 주문의 종류도 협소한 편이니까.
다만 놈들의 자폭이랑 통신 주술은 상당히 까다롭다.
“우선 계속 움직이자고.”
어차피 수인 왕국으로 들어가면 놈들도 함부로 접근하지 못할 거다.
아마도.
우린 펜리르와 늑대 위에 자리를 잡고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인 왕국과 가까워진 지금까지도 누가 우리를 노리는 건지에 대한 단서는 전혀 없다.
다만, 나는 얼마 전부터 문득 든 생각이 있었다.
우리의 수인 왕국행을 알고 있는 사람이 내부자들 말고도 또 있다는 것.
애초에 우린 초대를 받고 가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수인 왕국에서도 분명 여럿은 우리가 방문하리라는 걸 알고 있을 거다.
‘만약 그곳에 우리를 노리는 놈이 있다면 무언가 반응이 있겠지.’
난 그리 생각하며 창을 만지작거렸다.
날 방해하려는 놈이 누구든 간에 당하고만 있을 생각은 없다.
‘만나면 머리통을 쪼개 주지.’
창대를 꽉 쥐며 속으로 다짐했다.
* * *
저 멀리 숲이 보인다.
드디어 수인 왕국에 도착했다.
-바로 앞입니다.
“그래.”
저곳은 단순한 숲이 아니다.
수인 왕국이 저 숲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저 숲 자체가 왕국이자 성벽이다.
우리는 쭉 이동해 숲 바로 앞에 멈췄다.
스스스으으-
우리가 가까이 가니 나무가 스스로 움직여 앞을 가로막는다.
이렇게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더 신기했다.
난 목소리를 가다듬고서 입을 열었다.
“엔트 어르신. 저는 폴그룬 왕국의 왕으로서 수인 왕의 초대를 받고 찾아왔습니다.”
조용하다.
잠시 기다렸지만, 대답은 없다.
민망함을 느끼며 다시 말해 볼까 고민할 때쯤 나무가 천천히 움직였다.
스스스-!
가장 앞에 서 있던 나무의 가지들이 천천히 옆으로 물러나고.
분명히 고만고만한 크기의 나무들이 있던 곳에 갑자기 압도적인 크기의 거목이 나타났다.
‘엔트는 마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한다더니.’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갑자기 솟아난 나무를 보니 신기하기만 했다. 게다가 그 나무엔 눈, 코, 입까지 달려 있었다.
나무가 부르르 떨리더니 감겨져 있던 눈이 번쩍 떠졌다. 그리고 천천히 입이 열렸다.
-숲의 아이들과 영물 그리고 인간이라. 신기한 조합이구나.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거대 나무, 즉 엔트는 차례대로 이렌과 케륵, 펜리르, 그리고 나를 보며 중얼거렸다.
-아니, 평범한 인간도 아니군.
엔트는 나를 보며 한마디 더 덧붙였다.
“저 들어가도 되곘습니까?”
난 공손한 말투로 엔트에게 말했다.
카멜레온 놈들 때문에라도 빨리 들어가서 쉬고 싶었다. 그런데 엔트는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고오얀놈. 어디 말도 안 끝났는데 들여보내 달라 말라냐!
그러더니 별안간 꾸짖는 듯한 말투로 내게 말했다.
나는 물론 순식간에 다른 이들의 눈썹도 휘어져 올라갔다.
-내에가 말이여. 이런 말은 안 하려고 그랬는데, 요새 어린 애들은 너무 버릇이 없어 버릇이! 응? 맨날 어른 말하는데 끊어 먹고. 무시하고!
난 그의 말에 목덜미를 긁적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말이 길어질 것 같은 예감에 얼른 인벤토리에서 물건 하나를 꺼냈다.
“이건 선물입니다, 어르신.”
-으응? 지금 선물로 내 마음 풀려고 그러는 거라면 안 통하…….
엔트가 말하는 건 무시하고서 쭉 물건을 내밀어 그의 뿌리 위에 올려 두었다.
범상치 않은 광채를 품고 있는 초록색의 구슬.
바로 ‘숲의 정기’라는 아이템이다.
엔트는 멍하니 그걸 보더니 순식간에 가지로 구슬을 휘감았다.
그리고 말없이 가지를 흔들어 주변의 엔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스스스-
엔트들 사이로 길이 나타났다.
-흠흠. 절대 선물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네. 수인 왕이 초대했다고 하니 오래 붙들고 있기 그래서 그런 거지. 얼른 가게나.
“감사합니다.”
난 웃으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숲의 정기는 엔트를 비롯해서 자연계 종족에게는 보물과도 같은 아이템이다.
마틴에게 받은 거였는데 정작 나나 우리 동료들에겐 필요가 없어서 잘 보관해 놨던 아이템이다.
거대 엔트를 지나서 안으로 들어가자 조용히 눈앞에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엔트 대장로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엔트 대장로의 축복으로 숲에서 모든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최초로 엔트 대장로와 우호 관계를 맺어 ‘숲의 친구’ 칭호를 획득합니다.]
난 갑작스러운 메시지의 향연에 잠시 멍하니 있다가 속으로 생각했다.
‘완전 아낌없이 주는 나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