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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103화 (103/170)

103화

“절 가르쳐 주시겠다는 겁니까?”

“그래.”

“무엇을요?”

그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내가 들고 있는 창을 가리켰다.

“그건 그냥 들고 있으라고 준 것 같냐?”

난 그의 말에 창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 보면 아주 단순하게 생기긴 했지만, 그 형태나 무게, 그리고 중심 등은 뇌룡창과 비슷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너는 약한 편이 아니야. 오히려 꽤 강한 편이지.”

뇌룡은 무덤덤하게 그리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힘이 오롯한 네 것이 아니라는 거다.”

그의 말이 날카롭게 내 정곡을 찔렀다.

“시스템, 뇌룡창, 뇌룡갑, 뇌령, 뢰신. 그중에 온전한 너의 힘이 도대체 무엇이냐?”

그는 가일층 박차를 가해 가며 나를 꾸짖었다.

처음엔 반발심이 들었지만, 그의 말을 들을수록 그의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볼 것 없이 이번에 철우 형과 싸웠을 때만 생각해도 그렇다.

20이 넘는 레벨 차.

성유물 풍월검.

뇌령과 뇌룡 무구들을 사용하지 않고 싸웠다지만, 저 두 가지만으로도 격차가 커야 정상이다.

그런데 정작 결과는 어땠나.

풍월검의 능력에 의지해서야 겨우겨우 철우 형의 기술을 막는 데 성공했다.

“그래도 자만하지 않는 점은 칭찬해 주지.”

뇌룡도 내 생각을 읽은 건지 피식 웃으며 말해 왔다.

“그럼 제게 창술을 알려 주시는 겁니까?”

“그래.”

그는 손을 들어서 또 창 한 자루를 소환했다.

“애초에 네가 쓰는 뇌룡섬, 뇌룡 질주, 신기 뇌룡 같은 걸 누가 만들었다고 생각하냐?”

뇌룡이 창을 탁 잡으며 내게 물었다.

“생각해 본 적 없었겠지.”

그는 다 안다는 듯 날 보며 씩 웃었다.

“그렇죠.”

난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아이템에 속한 스킬이라고 생각했을 뿐. 기원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고민해 본 적 없던 것 같다.

“애초에 난 그 스킬이라는 개념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고차원의 기술을 가르쳐 봤자 무얼 할 수 있겠느냐.”

뇌룡은 스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천천히 창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본래 뇌룡섬은 그런 기술이 아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쿠궁-!

그때 갑자기 울리는 거대한 진동음.

휘이이-

이어서 그에게서 강렬한 압박감이 피어올랐다.

근처에 서 있던 나는 그 영향을 직격으로 받았다. 난 순간적으로 그 압박에 비틀거렸다가 간신히 똑바로 섰다.

하지만 그는 아직 본격적으로 움직인 것도 아니었다.

난 그가 창을 천천히 뒤로 당기는 것을 보았다.

창극, 창대, 그의 손으로 막대한 기운이 몰려든다. 그의 몸은 탄력 있는 활처럼 휘어서 창을 쏘아 낼 준비를 한다.

그의 왼손은 느슨하게, 오른손은 창대를 꽉 붙잡고 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의 한 발이 앞으로 나아가며 허리가 비틀어진다.

파아앙-

이내 왼손을 쭉 펴면서 오른손을 밀어 찌르는데 커다란 파공성이 울려 퍼진다.

파지직-

그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궤적을 따라 우렛소리와 함께 파괴적인 뇌전이 튀어 오른다.

창 곳곳이 펴지며 한 점을 찌른다.

모든 기운이 앞으로 쏟아진다.

공간이 반으로 갈라진다.

콰르르르르르릉-!

뒤늦게 앞으로 쏟아지는 번개 줄기들.

“하.”

난 멍하니 그 모습을 보았다.

기술의 정체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이것이 뇌룡섬이다.”

뇌룡은 창을 거두며 날 돌아보았다. 막대한 위력의 기술을 쓰고서도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다.

“어떻게.”

난 허탈한 음성으로 그에게 물었다.

지금까지 내가 썼던 기술이 과연 저것과 같은 기술이 맞나 의심이 갈 정도였다.

“어떻게는 무슨. 애초에 네가 쓰는 그 스킬이라는 게 반쪽짜리일 뿐.”

그는 창을 한 바퀴 돌리며 나에게 말했다.

“후우. 어차피 나도 바로 네게 이런 걸 하라고 하진 않을 거야.”

“그럼 뭘 배웁니까?”

“뭘 배우긴.”

뇌룡의 입꼬리가 양쪽으로 말려 올라가며 새하얀 이가 드러났다.

“우선 찌르기부터다.”

그는 턱짓으로 내 창을 가리켰다.

“만 번.”

“예?”

“만 천 번.”

난 바로 창을 들어 올렸다.

창을 쥐고서 슬쩍 그를 곁눈질하니 바로 목소리가 들렸다.

“만 이천 번.”

이런 씨발.

난 기억나는 대로 자세를 잡고서 창을 찔렀다.

* * *

“아.”

난 눈을 끔뻑였다.

먼저 보이는 건 새하얀 천장.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환한 햇빛이 창문 안으로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아…….”

조심스럽게 상체를 일으켰다.

의외로 통증 같은 건 전혀 없었다. 그저 살짝 피로함이 느껴질 뿐.

“돌아왔구나.”

난 팔과 목을 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에서 느끼던 통증이 이어지지는 않는구나.’

일어나자마자 근육통 때문에 죽어 나갈 줄 알았는데.

“끄응.”

그래도 컨디션이 좋진 않았다.

몸 대신 정신이 피곤하다고 해야 하나.

안에서 족히 반나절은 넘게 찌르기만 했다. 조금만 자세가 틀려도 창대로 얻어맞으면서 말이다.

‘이젠 꿈에서도 시달리겠네.’

난 고개를 절레절레 휘젓다가 몸에 걸치고 있던 뇌룡갑을 보았다.

‘인벤토리.’

그리고 바로 벗어서 인벤토리에 넣어 버렸다.

어제 뇌룡, 정확히 말하면 그의 파편과 얘기를 하며 이 갑옷에 그의 의식이 깃들어 있다는 걸 들었다.

‘본체가 네놈 좀 팍팍 굴리라고 넣어놓은 거 같던데?’

분명 그런 말을 했었다.

난 다시 한 번 한숨을 쉬며 방 밖으로 나갔다.

“전하! 편안히 주무셨습니까?”

밖으로 나가자마자 누군가 아침 인사를 건넸다.

고블린. 분명 3등급 사제 중 한 명이었다.

“어, 나 목욕탕 가 있을 테니까 아침 식사 좀 준비해 줘.”

“예! 케룰.”

고블린이 다른 이에게 지시를 내리는 것을 들으며 복도를 걸었다.

해가 정오에 떠 있는데도 복도에 지나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늘은 아예 쉬는 날로 정하기도 했고, 숙취 때문에 다들 뻗어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난 멀쩡하네?’

갑작스럽게 꿈속에서 뇌룡을 만나고, 수련을 하고 뭐 이런 일 때문에 까먹고 있었다.

어제 엄청나게 퍼마시고 아예 필름까지 끊겼었는데, 두통과 메스꺼움 같은 게 전혀 없다.

‘신기하네.’

난 이유를 잠깐 생각하다가 좋은 게 좋은 거지, 라고 생각하며 다시 걸었다.

“으흠.”

얼마 지나지 않아 목욕탕이 보였다. 나는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응?’

그런데 목욕탕 안에 이미 수증기가 가득했다.

누군가 이미 들어와 있다는 뜻인데. 눈을 가늘게 뜨며 확인하니 곧 탕 안쪽에 실루엣이 언뜻 보였다.

“누구냐.”

나는 그 실루엣을 보며 말했다.

실루엣이 내 목소리에 순간 움찔 놀라는 게 보였다.

“지, 진이야?”

뒤늦게 돌아온 대답에는 나 또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신전 안에, 그것도 목욕탕까지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적다.

심지어 그 사람이 여자이기까지 한다면 선택지는 세 명 이하로 줄어든다.

“…화린?”

난 조심스럽게 물었다.

실루엣은 잠깐 요동치더니 곧 대답을 들려주었다.

“…으응.”

“미, 미안. 나갈게.”

나는 곧바로 몸을 돌렸다. 문을 다시 열고 나가려는데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진아.”

“응?”

“지금 둘이서 할 얘기가 있어. 난 괜찮으니까 이리 와 볼래?”

화린이 차분한 어조로 내게 말했다. 그 말투에 나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건가.

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살짝 돌리다가 탕 근처로 다가갔다.

“말해.”

“응.”

촤르륵.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는데 귓가로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무시하려 해도 묘하게 신경 쓰이는 소리였다.

“너…….”

화린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여전히 숙맥이구나?”

“응?”

그녀의 신형이 순식간에 가까워진다. 시야 끝에 무언가 하얀 천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화린은 날 보며 깔깔거리며 웃었다. 처음부터 놀릴 작정이었구만.

“재밌냐?”

“응. 꿀잼.”

그녀는 킥킥거리며 다시 물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난 작게 한숨을 쉬며 탕 한쪽의 탈의실로 가서 준비된 옷으로 갈아입었다.

혹시라도 손님과 같이 목욕을 할 경우가 있을까 봐 설치해 둔 거다. 옷도 목욕용 옷이고.

화린도 이걸 입은 거고.

나도 바로 탕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첨벙-

뜨끈한 열기가 순식간에 몸을 휘감고 타오른다.

“후. 시원하다.”

입에선 자연스레 탄성이 터져 나왔다. 역시 피로 해소에는 탕만 한 게 없지.

등을 기대고서 눈을 감고 있는데 곧 화린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넌 숙취 없어?”

“어. 멀쩡한데.”

말을 하며 자연스레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빨간색의 머리칼이 물에 젖은 채로 물 위로 퍼져 있다.

물밑으로는 어슴푸레하게 그녀의 몸이 비치고 있다. 제법 두께감 있는 가운 형태의 옷이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다.

“너는? 괜찮아?”

화린의 눈이 천천히 나를 향한다.

눈동자가 마주치는 순간 이상하게 이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결국, 난 그녀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고개를 다시 앞으로 돌렸다.

“음. 아침에 일어났을 땐 죽을 것 같았는데 탕에 몸 좀 담그고 있으니까 괜찮아진 거 같아.”

“다행이네.”

대화가 오가고 다시 침묵이 찾아온다.

왠지 모르게 그녀도 오늘따라 말수가 적었다.

우리는 조용히 앉아서 탕을 즐겼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화린이 질문을 해 왔다.

“앞으로는 어떻게 할 거야?”

반사적으로 뭐를? 하고 물어보려다가 입을 닫았다.

당연히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느냐 물어본 거겠지.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머지않아 전쟁을 할 거야. 근처에 변경백이 있거든.”

“쉽지 않겠네. 변경백 정도 되면 그 자체 무력도 높을 텐데.”

“그렇지. 최소 3등급 이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열심히 정보를 모으고 있긴 한데, 변경백에 대한 정보는 접근하는 것 자체가 힘들더라고.”

이름 같은 사적인 정보야 쉽게 알아낼 수 있었지만, 정작 백작의 전력은 오리무중이다.

소문으로는 3번의 승급을 한 기사라는 말도 있고, 누군가는 4번이나 승급을 했다고 한다.

뭐가 맞는지는 몰라도 정말 만만치 않은 상대일 거란 건 확실하다.

“전쟁이라.”

그녀가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그럼 이제 바로 전쟁 준비에 들어가는 건가?”

“응. 그래야지.”

새로 합류한 병력들을 본격적으로 본대에 녹아들게 해야 한다.

사제들도 현재는 그 수가 적으니, 적절한 인재를 찾아서 더 많이 등용할 필요가 있다.

오랜만에 떠돌이 상인 켈도 불러서 무기나 방어구 좀 사야 하고.

철우 형이 데려온 모험가 중 일부는 벨루곤으로 보내서 제크를 도우라고 하고.

그 외에도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화린아.”

“응?”

“너 수인족들 본 적 있지?”

“어, 철우 오빠 세력에도 여럿 있었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그 수인족들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거야.”

“뭐?”

화린이 획 고개를 돌려 내 쪽을 본다. 나도 그녀를 보면서 말했다.

“한번 해 봤으니까 두 번은 쉽게 할 수 있지?”

아주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변경백의 영지를 기점으로 반대편. 그곳에는 작은 왕국이 있다.

인간들의 왕국이 아닌 수인들을 위한 왕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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