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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102화 (102/170)

102화

“무슨 일 있으십니까?”

내가 미간을 찌푸린 채 가만히 있자 케륵이 말을 걸어왔다.

난 손사레를 치며 말했다.

“아냐, 잠깐 생각할 게 있어서. 먼저 마시고 있어.”

마침 화린과 철우 형 등도 내려오고 있기에 자연스레 케륵과 크룩을 그들에게로 떠밀었다.

그들이 어색하게 얘기를 나누는 걸 확인하고서 다시 고개를 돌렸다.

‘으음.’

퀘스트 창을 다시 확인하니 여전히 그곳엔 두 개의 퀘스트가 있었다. 난 둘 중에 ‘왕의 길’을 먼저 클릭했다.

[왕의 길]

[왕국 ‘폴그룬’은 아직 부족한 것이 많은 국가다. 국왕 ‘이호진’은 이하의 조건을 충족하여 왕국 폴그룬을 번듯한 왕국의 자리에 올려놓아야 한다]

[1. 부속 도시의 수]

[2. 기반 시설]

[3. 문화]

[4. …….]

.

.

.

으. 끝도 없네.

왕의 길이라는 퀘스트는 예전에 한번 수행해 본 적이 있다.

과거 전작을 플레이했을 때도 왕국을 세웠었기 때문이다. 그때도 저 조건 충족한다고 개같이 굴렀었는데…….

뭐, 그래도 이미 염두에 뒀던 것들이다. 이미 짜 둔 계획도 있고.

‘그럼 다음은.’

난 다시 퀘스트 창을 열어 ‘?’라고 표시된 걸 클릭했다. 무려 ‘신’이나 되는 양반이 준 퀘스트인데 대단한 거겠지.

곧이어 퀘스트 창이 떴다.

[아직 확인할 수 없는 퀘스트입니다. 특정한 조건을 충족할 시 내용이 드러납니다.]

이건 또 무슨.

“에이…….”

아니, 난 뭐 맨날 얻는 것마다 조건부야. 이왕 주는 거 좀 제대로 주면 덧나? 응? 팍팍.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파직-!

그런데 갑자기 내 갑옷에서 튀어 오르는 이 스파크는 뭘까.

파지지지지직-!

갑자기 뇌룡갑에서 전격이 크게 일더니 내 몸을 파고든다.

“끄아… 읍!”

갑작스러운 고통에 순간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간신히 입을 다물었다.

다행히 주변을 둘러보니 내가 뭘 했는지 본 사람은 없는 듯했다.

‘이건 갑자기 왜 이래?’

난 의문 어린 시선으로 뇌룡갑을 보다가 문득 아까 전 일이 떠올랐다.

분명 뇌신이 내 갑옷에 무슨 기운 같은 걸 불어넣었고, 신묘한 기운이 깃든다고 했었는데.

‘이거, 뭐 이상한 거 넣어 놓은 거 아니야?’

그런데 그 생각을 하자마자 갑자기 한 번 더 갑옷에 전격이 튀어 올랐다.

파지지지직-!

“으, 으!”

으! 씨발! 개 같은!

아니, 왜 이렇게 아픈 거야 이거? 그것보다 도대체 왜 이러는데?

난 벌게진 눈으로 바로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했다.

[뇌룡갑 (흉갑)]

[유일]

[신수 ‘뇌룡’의 비늘로 만들어진 갑옷. 알 수 없는 이유에 의해 아이템의 성능이 일부 제한되어 있다.]

[방어력 + 350]

[마법 저항력 + 100]

[전격 속성 친화력 200% 상승]

[35% 확률로 투사체 속성 공격 면역]

[전격 속성 피해 면역]

[스킬 ‘뇌룡 질주’ 사용 가능]

[‘신의 파편’이 깃들어 있음]

[숨겨진 조건 달성 시 추가 능력 개방]

난 쭉 설명을 읽어 내려가다가 마지막쯤에서 멈췄다.

‘신의 파편?’

이게 무슨 의미일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부지불식간에 입을 열었다.

‘뇌룡 멍처…….’

파지지지지지직!

“읍!”

다시 또 일어난 전격. 적응되지 않는 고통. 그리고 자연스레 이해가 갔다.

‘이 갑옷에 신의 의지라도 깃든 거야?’

분명히 자기와 관련된 욕을 할 때마다 전기 충격이 일어났던 거 같은데.

그럼 내가 말한 거나 생각한 걸 보고 있기라도 한 건가?

‘어쩐지 기분 나쁘…….’

파직.

‘…지 않고 아주 좋은걸. 신의 보살핌을 받는 기분이야. 너무 행복해.’

살짝 스파크가 튀었다가 잠잠해졌다. 이건 백 프로다.

‘아니, 이건 사생활 침해 아닙니까?’

난 최대한 점잖은 어조로 뇌룡갑에 대고 항의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신이 직접 준 선물이라길래 뭐 대단한 거라도 되는 줄 알았더니.

‘무슨 거짓말 탐지기도 아니고.’

나쁜 말 할 때마다 전기 충격을 주네.

난 목덜미를 벅벅 긁으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아이템과 다른 것들에 대한 탐구는 나중에 더하기로 하고.

우선 날 뒤통수에 꽂히는 뜨거운 시선에 화답부터 해 줘야 할 것 같다.

“전하!”

내가 뒤돌자 누군가가 익살스러운 말투로 나를 불렀다.

‘보나 마나지.’

“그래, 불렀느냐.”

철우 형이다.

난 억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철우 형 말고도 다른 사람들, 그리고 케륵과 크룩도 같이 있었다.

그 잠깐 사이에 술을 얼마나 처마신 것인지 벌써 바닥에는 빈 술통 두 개가 굴러다닌다.

철우 형은 나에게 다가와 잔 하나를 내밀며 말했다.

“이 미천한 신하가 감히 전하에게 술 한잔 올려도 되겠습니까?”

거참. 아주 열과 성을 다해서 놀리네. 난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잔을 받아 들었다.

“그래. 한 잔 따라 보거라.”

“예이.”

자그마한 술병에서 투명한 액체가 쭉 흘러내린다.

물씬 풍기는 향은 아주 좋았다. 그런데 자그마한 술병과 투명한 액체라?

“이건 뭔가?”

오늘 준비한 술은 이게 아닌데?

엘 루가 가져온 술이 아닌가도 싶었지만, 향을 맡아 보니 확연히 다른 종류였다.

철우 형은 나에게 흐흐. 움침한 웃음을 지으며 말해 주었다.

“전하의 즉위를 축하하고자 제가 특. 별. 히. 구해 온 술입니다.”

의심스러운 눈으로 잔을 내려다보는데 철우 형이 바로 잔을 높이 들며 건배를 외쳤다.

“전하의 즉위와 왕국 폴그룬의 탄생을 축하하는 의미로 건배!”

“와아아! 건배!”

“거어언배!”

“건배!”

주변에 있던 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잔을 부딪친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도대체 뭔 술을 가져온 거야.’

잔뜩 거부감이 들었지만,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도 술을 쭉 들이켰다.

‘오!’

향긋한 냄새가 훅 올라온다.

혀끝에는 달달하면서도 알싸한 맛이 부드럽게 감돌았고.

과일 향과 꽃향기가 입안 가득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꿀꺽.

그리고 술이 혀를 넘어서 목으로 들어간 순간.

‘……?’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분명히 꿀처럼 달고 크림처럼 부드러웠던 액체가 식도로 진입하는 순간.

‘……!’

강렬하게 목을 불태운다. 액체 한 방울 한 방울이 식도에 방화를 저지르고 있다.

내 식도의 모양이 눈에 잡힐 듯 선명하게 느껴졌다. 정말로 과장 하나 없이.

그리고 결국 난 입을 열었다.

“크으으으으!”

자동으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철우 형이 그런 나를 보며 히죽히죽 웃었다.

“술맛 좋지 않습니까?”

“좋네, 좋아.”

술맛은 정말 좋다. 밖에서 우연한 기회에 먹어 본 몇십만 원짜리 양주보다 더 맛있다.

그런데.

“골로 가기 딱 좋아.”

이거 도대체 도수가 몇 도야?

딱 한 잔을 마셨는데 얼굴이 화끈화끈하다. 속은 말할 것도 없고.

뭔가 더 얘기할 생각해 입을 열려는데 누군가가 또 불쑥 끼어들었다.

“전하! 제 잔도 받으시죠!”

바로 크룩이었다.

이놈도 철우 형이 준 술을 먹었나? 벌써 얼굴이 벌겋다.

“그래. 그래.”

나는 크룩이 신나게 따라 주는 술을 받아 마셨다.

이건 그나마 도수가 약한 거라 다행이네. 난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양한 종족이 한데 모여 술과 음식을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고, 춤추고, 노래하고 있다.

‘좋네.’

처음에는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국경 마을에서 축제했을 땐 얼마나 어색했던가. 서로 눈치 보고.

그래서 그 이후로는 항상 축제가 있을 때마다 사제들이 먼저 나서서 종족을 신경 쓰지 말고 어울리라고 명령을 해 뒀었다.

지위가 높은 이들이 나서서 먼저 그런 모습을 보여 주면 다른 이들도 거부감이 덜할 테니까.

난 연신 술을 들이켜며 흐뭇하게 웃었다.

처음엔 게임을 클리어한다는 목표 하나만 보고 달렸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자주 주변을 둘러보게 된 것 같다. 그러면서 새로운 목표가 하나씩 생기기도 했고.

이를 테면…….

“진아! 내 잔도 받아야지!”

잠시 딴생각을 하자 귀신같이 화린이 내게 다가와 술을 따랐다.

얜 완전히 취했네. 어이구. 술을 따르는 거야 바닥에 붓는 거야?

“건배!”

머리칼만큼이나 빨간 얼굴로 신나게 잔을 부딪치는 화린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래. 건배!”

잔이 부딪치며 술 방울이 튀어 오른다.

기분 좋은 밤이었다.

* * *

“으음.”

뒤척이다가 슬쩍 눈을 떠서 앞을 보았다.

눈앞이 완전히 캄캄하다.

‘아직 밤인가 보네.’

다시 눈을 감았다.

좀만 더 자자…….

.

.

.

“야.”

“으음.”

“야, 안 일어나?”

“아, 오 분. 오 분만…….”

도대체 누가 자꾸 깨우는 거야.

난 손을 허공에 휘저으며 다시 옆으로 돌아누웠다.

“어쭈?”

등 뒤에서 또 목소리가 들린다.

뻐어억!

“아악!”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난 무언가에 얻어맞은 등을 부여잡으며 벌떡 일어났다.

“누구냐!”

자연스레 허공에 손을 뻗으며 인벤토리를 불렀다.

휘적-

“뭐? 누구냐?”

근데 손이 그대로 허공을 휘젓는다.

당황스러움을 느낌과 동시에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따악!

그 사람은 번개같이 내 이마를 주먹으로 가격했다.

막아 보려 했지만,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였다.

말 그대로 번개 같은 속도.

“뇌신?”

난 황당한 말투로 뇌까렸다.

노란색의 머리,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 그 와중에 오연한 빛의 눈.

내가 봤던 모습보다 훨씬 어려 보였지만, 한눈에 그임을 알아봤다.

“뇌신은 무슨. 이땐 신도 아니었는데. 뇌룡이라고 불러라.”

그런 나에게 뇌신은 알쏭달쏭한 말을 했다.

“그건 또 뭔 소리입니까? 아니, 그보다 또 언제 절 불러낸 겁니까?”

난 의아함을 가득 담은 표정으로 물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는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던 것 같은데.

“술은 무슨. 잔뜩 취한 채로 뻗어서 잠든 놈이.”

“제가요?”

난 미간을 찌푸리며 기억을 떠올려 보려고 했지만, 전혀 생각나는 게 없었다.

“쯧쯧. 고작 술 몇 잔에 뻗다니. 왕이라는 이름이 부끄럽구나.”

“아니 그게 왕이랑 무슨 상관이……!”

뇌신이 주먹을 꽉 쥔다.

“있죠. 제가 술이 좀 약해서요. 죄송합니다.”

아까 맞아 보니까 많이 아팠다. 굳이 매를 벌 필요는 없지. 난 다시 처음의 질문을 했다.

“그래서 무슨 일인 겁니까?”

“무슨 일은. 애초에 난 널 부른 것도 아니다. 여긴 너의 세계니까.”

“예?”

내 반문에 뇌신이 미간을 확 찌푸린다.

“멍청한 표정하고는. 그리고 뇌룡이라고 불러라. 계속 속으로 뇌신, 뇌신 하지 말고.”

그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서 말을 이었다.

“여긴 너의 심상 세계다. 난 그 안으로 들어온 거고. 전에 했던 것처럼 내가 직접 움직이기엔 제약이 이만저만이 아니거든.”

난 여전히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후. 그래, 뭔 개소리인가 싶겠지. 그냥 간단히 말해서 이게 더 효율적인 방법이라 이거다. 대신 포기해야 할 게 많았지만.”

뇌신, 아니 뇌룡은 자신의 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건 내가 어렸을 때 신이 되기도 전의 모습이다. 단순히 겉모습뿐만 아니라 힘, 능력, 심지어 기억마저 대부분이 온전치 않지.”

난 그의 말을 듣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뇌룡갑에 쓰여 있던 문구.

“그럼 신의 파편이라는 게?”

“그래. 말 그대로 난 신의 파편. 일부분일 뿐이지.”

뇌룡은 거기까지 말하고서 날 빤히 보며 말했다.

“딱 보니까 그래서 왜 이런 일을 한 거냐 묻고 싶은 표정이군?”

“어차피 속마음도 읽고 있는 거 아닙니까?”

“응. 근데 얼굴에도 멍청하게 생각이 드러나 있길래.”

그는 피식 웃더니 갑자기 허공에 손을 뻗었다.

슈슉.

그러자 허공에서 갑자기 창 한 자루가 튀어나왔다. 그는 그것을 잡아 바로 나에게 던져 주었다.

“받아라.”

텁.

난 엉겁결에 창을 받아 들었다. 아주 기본적인 모양의 창이다.

“이제 자세 잡아 봐.”

“예?”

“그놈의 예는. 척 보면 몰라?”

그는 날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네놈 수련 좀 시키려고 그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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