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101화 (101/170)

101화

나는 뇌조에게 말해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갔다.

모두의 시선이 나한테로 쏠려 있다.

이제 제법 시선을 받는 것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었는데.

‘진짜 많네.’

여전히 부담스러운 걸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거 같다.

난 오연한 표정을 유지하려 애쓰며 입을 열었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느릿한 말투와 강렬한 시선으로 대중의 주의를 끈다.

나는 특별해 보여야 한다.

위엄 있고, 강렬하고, 카리스마 있는 왕이 되어야 한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보다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는 게 중요하다.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손짓과 목소리 톤, 시선 모든 걸 계산해서 행동했다.

이 연설은 그룬의 도움이 아주 컸다.

그에게 근래 며칠 동안 효과적인 연설로 대중들의 마음을 끄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모두 형제이며 가족이다. 그 생김새는 다를지라도 벼락 신의 아래에서 우리는 모두 똑같은 존재들이니까.”

벼락 부족의 오크, 트롤, 고블린, 사람.

벨루곤에선 제크와 페일이 자신의 조직원들을 보내왔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엘루와 마틴도 요정족들과 사람들을 보내왔고.

심지어 한쪽엔 펜리르와 늑대들마저 얌전히 무릎을 꿇고 내 말을 듣고 있었다.

내가 이곳에서 행했던 모든 행동이 씨앗이 되어 이 자리에서 새싹을 피우고 있다.

“우리는 아직 약하다.”

하지만 그 새싹이 어떤 열매를 맺을지는 앞으로의 행동에 따라 달라지겠지.

난 이제 겨우 한 걸음을 내디딘 것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일개 고블린 부족에서 오크 부족을 흡수했고.

트롤 부족까지 흡수한 다음엔 대부족이 되었다.

나아가서 마경 외곽 일대를 모두 정벌하였으며, 이제는 마경 바깥까지 나왔다.

나는 긴 연설을 이어 가다가 적절한 시기가 되었을 때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나는 신의 대리자이며, 너희들의 아버지이자, 형제이고, 지도자이다.”

그리고 뇌룡창을 하늘 높이 들어 올리며 뇌령을 강하게 자극했다.

콰르르르릉-!

이번엔 우레 소리가 내 가슴에서부터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여전히 하늘에 가득한 먹구름이 내 기운과 공명하며 푸른 전격을 튀어 올린다.

이번엔 단순히 보여 주기식 무력행사가 아니었다.

근래에 안 쓰고 모아 두었던 신화 포인트. 그리고 계속 아껴 두었던 VVIP 특전 중 하나.

[500만 신화 포인트 미만 아이템 50% 할인권]

애초에 왕이 될 수 있는 최저 신화 포인트 조건이 250만이다.

그것 때문에 이 특전을 봤을 때부터 이 순간에 사용하고자 마음먹고 있었다.

“백성들이여!”

창에 맺힌 푸른 전격이 이제는 하늘과 이어지며 커다란 기둥을 만들어 낸다.

“이것은 신의 뜻이요 신의 은혜로다!”

후웅-!

난 하늘 높이 몸을 띄웠다가 그 기둥을 바닥으로 내리찍었다.

콰르르르르르릉-!

전격이 불길한 굉음을 내며 날 올려다보고 있는 이들에게로 떨어져 내린다.

콰아아아아앙-!

전격이 모든 이들의 몸에 빨려 들어가며 세상을 하얗게 물들인다.

물론, 갑자기 내가 미쳐서 이들을 공격한 건 아니다.

우우우우웅-!

전격에 몸을 부들부들 떨던 모두의 몸이 하얗게 빛나며 강렬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신화 포인트 2,500,000P가 소모됩니다.]

[부족원들 전원에게 희귀 특성 ‘벼락’ 부여]

무려 부족 내 전원을 대상으로 하는 특성 부여 권능.

곧 몸을 떨던 이들이 한 명씩 정신을 차리며 몸에서 전격을 뿜어낸다.

우리 부족원이 아닌 그림자 요정족과 마틴의 백성들은 황망한 눈으로 그런 사람들을 보았다.

이제 우리 부족의 병사들은 한 명, 한 명이 일개 병사의 수준을 넘어서는 무력을 지니게 된 거다.

“이건 시작일 뿐이다!”

나는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의 벼락 부족은 앞으로 왕국 ‘폴그룬’으로서 온 대륙에 벼락 신의 말씀을 널리 퍼트릴 것이다!”

케륵과 크룩이 준비한 대로 내 말을 이어받으며 소리친다.

“우리의 지도자이신 왕에게 예를 표하라!”

곧 모든 사람들이 몸을 바짝 엎드려 나에게 절을 한다.

이내 그것을 신호로 내 눈앞에 새로운 창이 떠올랐다.

[왕국 ‘폴그룬’을 건립하였습니다!]

[플레이어 최초로 왕국을 건립하는 놀라운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칭호 ‘최초의 왕’을 획득합니다]

[신화가 새롭게 쓰여집니다!]

[대량의 신화 포인트 획득!]

[대량의 신화 포인트 획득!]

[대량의…….]

순식간에 소모되었던 포인트와 기운들이 다시 채워진다.

난 그 고양감을 음미하며 천천히 케륵의 옆으로 내려갔다.

언제 갖다 놓았는지 케륵과 크룩의 사이에 화려하게 장식된 의자가 있었다.

“케르륵. 이곳에 앉으시지요.”

“그래.”

난 케륵의 말대로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손을 들어 말했다.

“모두 이제 축제를 즐겨라!”

결국, 오늘도 기, 승, 전 축제다.

와아아아아아아-!

부족원들, 아니 이제 왕국이지.

백성들은 손을 높이 들어 환호성을 질렀다.

외곽 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들이 술동이와 음식들을 나르기 시작한다.

난 신전 위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철우 형과 화린도 아래로 내려오라고 손짓했다.

그럼 오늘은 나도 한 번 즐겨 볼…….

즐겨…….

갑자기 몸이 축 늘어지면서 수마가 확 몰려든다.

이거 설마 또…….

* * *

“흐억!”

난 크게 숨을 내쉬면서 몸을 일으켰다.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한 후에야 천천히 떨리는 몸이 진정되었다.

“일어났구나.”

누군가의 목소리에 난 고개를 들었다. 그곳엔 한 사내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여긴…….”

게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나도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난 양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린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좀 부를 거면 말 좀 하고 부르면 안 됩니까?”

사내는 내 말에 씩 웃더니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도 저번보단 낫지 않나? 이번엔 육신도 그대로 놔두고 정신만 불렀는데.”

“예?”

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럼 제 몸은 여전히 그 의자에 앉은 채로 있는 겁니까?”

“그렇지.”

“기절한 채로?”

“응.”

사내는 무엇이 즐거운지 빙글빙글 웃으며 대답했다.

난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냐고 물어보려다가 문득 생각난 그의 정체에 말문이 막혔다.

“당신은 신입니까?”

“신?”

그는 턱을 쓰다듬었다.

“글쎄. 그렇게도 볼 수 있지. 아이들이 뇌신이여, 뇌신이여, 할 때는 조금 오글거리긴 하지만.”

뇌신. 그리고 뇌룡.

거의 확신하고 있긴 했지만, 당사자에게 직접 들으니 그 무게감이 달랐다.

나는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려고 입을 열었다.

“그럼…….”

“잠깐.”

하지만 그는 손을 들어 올리며 내 말을 멈췄다.

“궁금한 게 많은 건 이해하지만 지금은 안 돼.”

“예?”

“너에겐 아직 자격이 없어. 아니, 정확히 말하면 ‘격’이 부족하지.”

그가 나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그 순간 갑자기 정신이 멍해졌다. 마치 머릿속에 뿌옇게 안개가 끼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런 나를 보고 씩 웃더니 손뼉을 두 번 쳤다.

짝짝.

그 소리와 함께 바닥에서 환한 빛이 일었다.

“자, 이걸 봐.”

그의 말에 홀린 듯이 바닥을 내려다보니 그곳에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바로 도시 ‘폴그룬’의 모습이었다.

폴그룬이 높은 하늘에서 보는 것처럼 작게 축소되어 보였다.

“겨우 저 작은 도시 하나가 너의 전부다.”

그는 단호한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아. 물론 네가 한 일을 헐뜯는 건 아니야. 넌 아주, 아주 잘해 주고 있어. 기껏해야 고블린 백몇 마리인 부족에서 이 정도까지 온 것만 해도 대단하지.”

이어서 달래는 듯한 말을 잇긴 했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이미 짐작이 갔다.

“다만.”

짝.

그가 한 번 더 손뼉을 치자 보이는 풍경이 바뀌었다.

폴그룬은 거의 엄지손톱만 한 크기로 축소되고, 폴그룬 근처의 도시, 평야, 숲, 산 등등이 같이 보였다.

“아직 멀었다는 걸 말해 주는 거야. 솔직히 왕국이라 하기엔 너무 부족하잖아?”

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한 게 있으면 우선 제대로 왕국이라 할 만한 걸 만들어 봐. 그때는 몇 가지 질문쯤은 받아 주지.”

그는 다시 손뼉을 쳤고, 바닥의 풍경은 다시 축소되며 폴그룬만을 비추었다.

“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그는 바닥을 가리켰다.

“우선 칭찬할 건 해 줘야지. 상을 하나 내려 주마.”

남자의 손끝에 환한 빛이 어리더니 그 빛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 빛은 나풀거리며 날아가다가 바닥에 비치는 폴그룬의 상공에 멈춰 섰다.

파아아악-!

그리고 돌연 푸른빛이 도시의 주위로 퍼져 나가더니 그 주위를 감싸는 푸른 막이 생겨났다.

[도시 폴그룬에 ’뇌신의 가호‘가 부여되었습니다]

“이건 간단한 방어 마법 같은 거야. 적어도 저번 같은 마물의 습격 같은 거에 당할 일은 없을 거다.”

말이야 간단해 보이지만, 푸른 막은 딱 봐도 강렬한 기세를 뿜고 있었다.

내가 사용했던 결계 아이템과는 비교도 안 되는 급의 결계일 거다.

“그리고 이건 너에게 주는 선물.”

사내는 다시 한 번 손을 뻗어서 나를 가리켰고, 이번엔 푸른빛이 뻗어 나와 내 몸속으로 흡수되었다.

[뇌룡갑의 봉인이 한 단계 해제됩니다.]

[퀘스트 ‘?’가 생성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확인해 봐.”

그는 거기까지 말하고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뭔가 얘기를 더 해 주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부족하네.”

그는 머리를 벅벅 긁더니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사내는 그렇게 말하며 나에게 손을 내두르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뿌옇던 정신이 일부 깨어졌다.

파직- 파지직-

또한, 몸에서 전격이 뿜어져 나와 나를 감싸고 나자 드디어 ‘내 뜻대로’ 입을 열 수 있었다.

난 소리쳤다.

“잠깐!”

의아한 얼굴로 되돌아보는 그를 보며 침을 삼켰다.

하고 싶은 질문은 많았지만, 아까 전 상황을 생각하면 여러 번 질문을 할 기회는 없을 거다.

그렇다면 오롯이 그에게만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을 해야 한다.

난 긴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시스템… 시스템을 믿지 말라는 건 무슨 뜻이었습니까?”

사내는 내 말에 눈을 가늘게 뜨더니 이내 입꼬리 한쪽을 비틀어 올렸다.

“시스템이라. 그래, 내가 그런 말을 했었지.”

그는 의자의 한 귀퉁이에 손을 올려 기대면서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짧게 말해 주지. 자세히 말하기엔 나도 위험하거든.”

“예.”

그의 눈빛이 놀라우리만치 차갑게 식는 게 보인다.

그가 입을 열었다.

“시스템과 너희들을 여기로 데려온 놈이 과연 무관할까?”

“예?”

“여기까지. 가라.”

난 다시 입을 열려고 했다.

그러나 이번엔 아무런 반항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고.

손가락을 부딪친다.

딱-

* * *

“허억!”

답답한 숨이 한 번에 터져 나온다.

몸을 벌떡 일으키려다가 난 내가 의자에 앉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케륵?”

바로 옆에 서 있는 이가 날 보며 의아한 듯 울음소리를 낸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바로 케륵이었다.

난 오른쪽을 보았다. 그곳엔 크룩도 서 있었다.

다시 한 번 고개를 돌리니 그곳엔 축제가 한창인 게 보였다.

“시간,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크루룩. 무슨 시간 말입니까?”

“축제. 축제를 시작한 지 얼마나 됐지?”

크룩과 케륵은 내 말에 의아한 빛을 비추긴 했지만, 곧 차분하게 대답했다.

“케륵. 이제 약 삼십 분 정도가 지났습니다.”

“삼십 분?”

나는 그의 대답을 곱씹다가 문득 하늘을 보았다.

그곳엔 짙은 푸른색의 결계가 둘려 있었다.

“저건. 저건 언제 쳐진 거지?”

“예? 크룩. 결계 말입니까?”

“그래.”

크룩의 표정은 더욱 알쏭달쏭해졌다.

“족장님이 연설하실 때 신의 선물이시라며 내려 주시지 않았습니까. 분명 ‘뇌신의 가호’라고.”

난 그 말에 순간 멍해졌다.

아니. 난 그런 말을 한 적도, 행한 적도 없었다.

난 다시 뭐라 말하려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 무려 신과 대화를 나눈 거다. 무슨 일이 있다고 해도 놀랍지 않다.

“후우.”

나는 한숨을 내쉬고 나서 신과 했던 대화를 하나씩 되짚어 봤다.

새로 얻은 정보는 거의 없지만, 나쁜 건 아니었다. 꽤 얻은 것도 많고.

‘그러고 보니 무슨 퀘스트도 있었던 것 같은데.’

난 미간을 찌푸리며 속으로 퀘스트 창을 불러서 열었다.

곧 눈앞에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퀘스트]

[? - 전설]

[왕의 길 – 희귀]

그곳엔 두 가지 퀘스트가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