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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100화 (100/170)

100화

서부전선 근방.

어두운 숲길을 누군가가 걷는다.

“씨발, 씨바알…….”

작고 여린 인형. 그녀의 몸 곳곳에는 깊고 얕은 상처들이 아로새겨져 있다.

바로 일전에 레살라의 사제로 변장하고서 원정단을 따라다니던 진서연이었다.

비틀비틀. 그녀는 위태로운 몸놀림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필, 하필 왜.”

진서연은 걸음을 옮기면서도 귀기 어린 얼굴로 계속 중얼거렸다.

부스럭.

그때 그녀 근처의 풀숲으로 무언가가 지났다.

“히익.”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허둥지둥 도망치려다 풀숲에서 웬 토끼 한 마리가 튀어나오는 걸 보고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씨바알.”

진서연은 쫓기고 있었다.

원정대를 따라다니며 한 명씩 제물을 바치는 건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고 강인한 전사들의 영혼을 제물로 바칠 수 있었다.

그 결과, 사용 가능한 주문의 등급도 올라가고, 힘도 꽤 강해졌지만.

‘어떻게 꼬리를 밟힌 거지?’

문제는 그런 행동이 누군가에게 발각되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악마 진영 플레이어라면 무조건 피해야 할 인물에게.

‘악마 사냥꾼이라니.’

악마 사냥꾼 알파.

그자가 바로 진서연을 쫓는 이의 정체였다.

악마 사냥꾼은 특별한 존재다.

수를 다 합쳐도 두 자릿수를 넘지 못하며, 그 존재 자체가 베일에 싸인 이들이다.

과거에 성녀로 플레이를 했던 진서연조차도 그들이 어떤 집단 소속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하지만 ‘알파’는 악마 사냥꾼 중 예외적인 인물이었다.

특히 플레이어들에게.

‘하필이면 그 악마 도살자 년이.’

전작에서는 숱한 악마 진영의 플레이어들이 알파의 손에 의해 죽었다.

그러고는 꼭 이 한마디를 남겼다.

‘나는 알파. 너희 악마의 종복들의 씨를 말리기 위한 존재.’

그녀의 눈이 다시 떨려온다.

검은 로브. 검은색의 가면. 기괴하게 생긴 톱니 모양의 검.

자신을 향해 사형 선고를 내렸던 악마 사냥꾼.

‘회개하라.’

톱니 모양의 검이 들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서연은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그녀의 귓가로 알파의 마지막 말이 맴돌았다.

‘회개하고 회개하라. 그것이 신의 뜻이니.’

부르르-

서연은 오한이 든 것처럼 몸을 떨었다.

그녀는 알파에게서 도망친 것이 아니었다. 알파는 그녀를 일부러 놓아주었다.

알파의 유명한 특징 중 하나였다.

그 악마 사냥꾼은 일부러 사냥감을 붙잡았다가 놓아주길 반복하곤 했다.

그것이 진정으로 회개하는 방법이라면서.

‘미친년.’

그야말로 광기가 느껴지는 여자였다. 하지만 진서연은 쉽게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돼.’

그녀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서부전선으로 향했던 이유도 누군가를 만나기 위함이었고, 다행히 알파를 만난 것도 목적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서연은 주변을 불안한 눈으로 응시하면서도 끊임없이 발걸음을 놀렸고.

점점 나무도 무성해져 갔다.

햇빛조차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빽빽해진 숲은 음습한 습기를 머금고 있었다.

나뭇잎과 풀 등이 썩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숲은 생각보다 은밀하고 어두운 장소다.

그리고 서연이 찾아가는 이는 그런 장소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딱 지금 같은 곳을.

스스스-

가끔 풀이 스치는 소리라도 나면 화들짝 놀라는 그였지만 멈추는 일은 없었다.

이제 그녀가 걷는 길엔 햇빛이 한 점도 들지 않았다.

억센 풀을 헤치며 나아가는 그녀의 귓가로 다시 한 번 풀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개 같은 짐승 새끼들…….”

서연은 지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작은 짐승들의 기척 하나하나에 반응하다 보니 피로가 굉장히 심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바로 알아채지 못했다.

이번에는 소리가 약간 다르다는 것을.

스으으으-

악마 사냥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착각이 있다.

‘악마’라는 절대적인 악을 사냥하는 이들인 만큼 무언가 고결하고, 정의롭지 않을까 하는 착각.

하지만 그런 건 성기사들에게나 어울리는 말들이다.

기실 악마 사냥꾼들은 그런 것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다.

바로 지금처럼.

스으으.

서연은 문득 주변이 이상할 정도로 어둡다는 걸 깨달았다.

단순히 나무가 햇빛을 가려서 그런 정도가 아니었다. 어떤 ‘어둠’이 그녀의 주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스으.

또한, 오싹한 한기가 그녀의 살결을 자극했다.

서연은 깨달았다.

알파가 왔다는 것을.

“흐으으.”

서연은 괴상한 숨소리를 내었다. 그녀의 옆구리와 팔뚝에 나 있는 상처들이 욱신거렸다.

“여깄었구나?”

그리고 별안간 그녀의 귓가로 목소리가 들렸다.

아주 평온한 목소리다.

마치 잠시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평온한 목소리.

서연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뒤돌아본 그녀의 눈에 검은색의 로브와 가면이 비췄다.

“그리 멀리 가지는 못했네.”

알파는 덤덤한 말투로 톱날 검을 빙빙 돌렸다.

피와 살점이 덕지덕지 엉겨 붙어 검붉은 색의 칼날. 그것은 기묘한 빛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악마 사냥꾼은 악마를 사냥한다.

그들은 항상 절대적인 악을 마주해야 했고, 이겨 내야 했으며, 죽여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악마를 닮아 갔다.

서연의 눈앞에 있는 알파처럼.

기긱-

괴상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가면이 기괴하게 비틀린다.

가면이 웃는 얼굴의 형상을 만들어 낸다.

서연의 몸은 이미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나,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그녀는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면서 말했다.

알파는 고개를 비틀며 의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유?”

서연은 뒷걸음질을 치고 알파는 천천히 그녀에게 걸어간다.

“어긋난 길을 걷고 있는 어린 양들을 바른길로 돌려놓기 위해서.”

그그그.

알파가 길게 늘어트린 검이 땅을 그으며 듣기 싫은 소음을 만든다.

“잘못된 것의 품에 든 이들을 신의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해서. 그러니.”

“흐으윽!”

서연은 정신없이 뒤로 물러나다가 발뒤꿈치가 턱 무언가에 걸린 것을 느꼈다.

어떻게 할 틈도 없이 그녀의 몸이 뒤로 넘어간다.

알파는 쓰러진 그녀 앞에 우뚝 멈춰섰다.

“회개하라.”

악마 사냥꾼의 검이 높이 들어 올려진다.

악마 추종자의 숨결을 거두기 위해서 톱날 검은 불길한 빛을 번쩍인다.

휘이이익.

검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카각-!

하지만 검은 서연의 머리통에 닿기 전에 멈추었다.

정확히 말하면 옆으로 튕겨 나갔다.

돌연 어떤 검이 불쑥 튀어나와 그녀의 검을 옆으로 쳐낸 것이다.

알파는 번쩍 고개를 들어 검의 주인을 찾았다.

“칼날 귀.”

가면 속 알파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진다.

칼날 귀.

상급 마물에 랭크되어 있는 강력한 괴물.

키킥.

호리호리한 몸뚱이. 어린아이가 찰흙으로 빚어 놓은 것 같은 제멋대로의 생김새.

또한, 칼날 귀의 양손은 검으로 이루어져 있다.

까득까득까득.

게다가 불청객은 칼날 귀만이 아니었다.

어딘가에서 이를 가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사방으로 출렁거리고 있는 검은 액체가 나타났다.

특이종 마물.

그슨대.

놈이 몸을 질질 끌면서 칼날 귀의 옆에 섰다. 게다가 그 뒤로도 마물들이 끊임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알파는 입술을 짓씹었다.

그녀로서도 칼날 귀와 그슨대를 포함한 마물 떼를 상대하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우선 악마 추종자부터!’

알파는 빠르게 판단을 내리고 다시 검을 휘두르려고 했다.

카가가각!

하지만 그녀의 시도는 다시 칼날 귀의 검에 의해 가로막혔다.

“그만.”

그리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알파는 마물 사이에서 걸어 나오는 남자를 봤다.

뒤로 꽉 넘겨 묶은 말총머리.

동그란 은색 태의 안경. 도드라진 광대뼈와 날카로운 눈매.

동대륙의 것으로 보이는 복식.

“누구냐.”

알파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마물들은 남자의 명령을 따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얌전히 서 있는 것을 봤다.

“알파. 그 위명이 쟁쟁한 악마 사냥꾼이 이곳까지 온 이유가 무엇이오?”

남자는 알파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되레 질문을 했다.

그러다가 남자의 시선이 슬쩍 바닥에 쓰러져 있는 서연을 스쳐 지나갔다.

“아니, 알 것 같군요.”

그는 고개를 저으며 혼자서 답을 내렸다.

“이거 본의 아니게 공사다망하신 알파님의 일을 방해하게 됐군요.”

남자는 유들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명백히 조롱의 뜻이 담긴 말이었다.

“누구냐.”

알파는 이를 악물며 다시 한 번 질문했다.

마물을 상대하는 것이 부담스럽긴 해도 이길 자신은 있었다. 다만 무리해서 싸울 필요가 없기에 자리를 피하려고 했을 뿐.

그러나 딱 봐도 수상한 남자가 나타난 순간 그녀는 생각을 바꿨다.

저 남자는 위험하다.

그러니 처리해야 한다, 라고.

“흐음.”

남자는 안경을 벗더니 손수건 같은 것을 꺼내어 안경알을 닦으며 말했다.

“본명을 말하긴 그렇고.”

그는 깨끗하게 닦인 걸 확인한 후 다시 안경을 썼다.

고개를 치켜드는 남자의 입꼬리가 비뚜름히 휘어 있다.

“그냥 전략가라 부르십시오.”

* * *

도시 폴그룬.

근래에 내내 번잡하던 이 도시는 오늘따라 더욱 시끌시끌했다.

바로 오늘 왕국 선포식 및 왕 즉위식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만은 일부 행사를 진행할 이들을 빼고는 모두 휴일을 누리고 있었다.

각자 손에 음식이나 음료 등을 들고 주변에 있는 이들과 화목하게 떠들고 있다.

신전의 높은 곳에 서 있는 이들도 그런 광경을 신기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봐도 봐도 적응이 안 되네요.”

“그러게. 생각도 못 한 광경이야.”

철우와 화린이 먼저 얘기를 나누고.

“그래도 보기는 좋군요.”

“흠. 난 아직도 적응이 안 되우. 이렇게 평화로운 모습이라니.”

이어서 칼과 벤이 그 말을 받았다.

그 뒤로는 다른 모험가들도 서 있었다.

이들은 합류한 지 얼마 안 된 만큼 나중에 소개하기로 하고, 오늘 행사는 이곳에서 구경하기로 한 것이다.

“그나저나 난 아직도 신기하다. 호진… 님이 족장이라니.”

“그쵸? 전 처음 왔을 때 얼마나 놀랐는데요. 다들 막 족장님, 족장님 하면서 달라붙는데, 저흰 어색하게 뒤에 서 있고.”

철우의 떨떠름한 말투에 화린이 옆에서 열정적으로 맞장구쳤다.

화린과 벤, 칼은 그때의 모습을 생각하며 살짝 몸을 떨었다.

철우가 호진에게 자신이 족장이라는 얘기를 들은 건 도착한 다음 날이었다.

첫날엔 전략가에 관한 얘기를 나누다가 호진이 말하는 것을 깜빡했기 때문이다.

“이거 금 등급 모험가라고 으스댄 게 부끄러운걸.”

금 등급도 나름 뛰어난 성과였지만, 아무래도 이런 규모의 세력의 장을 맡은 것에 비교하면 손색이 있었다.

특히 철우도 작은 규모나마 세력 하나를 만들려고 했었기에 더욱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아. 아.

그때 그들의 바로 밑에서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두 아래를 보았다.

-잘 들리나?

그곳엔 화려한 의복을 걸친 케륵이 서 있었다.

케륵은 웬 주먹만 한 구슬을 들고 있었는데, 마이크와 비슷한 용도의 아이템이었다.

“예!”

신전의 앞에 마련된 광장에 서 있던 사람들은 큰 목소리로 화답했다.

케륵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수정구를 만지작거렸다.

-그럼 행사를 시작하겠다. 케르륵.

그의 말에 시끌벅적하던 광장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케륵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나서 말을 이었다.

-큼큼. 일전에 말했던 것처럼 오늘은 우리 대벼락 부족이 위대한 왕국으로 다시 태어나는 날이다!

케륵은 느릿한 말투로 그렇게 말하고서 슥 광장을 훑어보았다.

모두 또렷한 눈망울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케륵은 완전히 준비되었다고 판단하고서 천천히 손을 들어 하늘 위를 가리켰다.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위대한 대족장!

콰르릉.

케륵이 딱 하늘을 가리킨 순간 성 위로 새카만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그 완벽한 타이밍에 사람들이 오오- 하며 탄성을 터뜨렸다.

-벼락 신의 대리자이자 징벌자이며, 지혜롭고 강하시며, 자애로우신 우리의 가장 위대한 형제!

케륵의 목소리가 점점 더 격정적으로 변한다.

먹구름에는 푸른 전격이 흐르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위협적일 정도로 막대한 전격이다.

-왕을 맞이하라!

꽈르르르르르르릉-!

먹구름에서 한 번에 수십 다발의 전격이 바닥으로 내리꽂힌다.

그 전격이 내리치는 것은 오롯이 한 지점.

신전의 허공에 푸른 전격이 모여들며 점점 더 강렬한 빛을 뿜어내었다.

스으으으-!

빛이 가시며 그곳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온몸이 전격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새. 그 위에 유유히 팔짱을 끼고 서 있는 남자.

바로 이호진이였다.

와-!

광장에 더없이 격렬한 환호성이 울려 퍼진다.

그는 오만한 표정으로 바닥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그냥 평범하게 등장할걸.’

의외로 아직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호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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