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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90화 (90/170)
  • 90화

    그녀의 눈은 딱 봐도 혼란으로 가득 차 있었다.

    “향덕? 그게 무슨 뜻입니까?”

    때마침 칼이 나와 향덕, 아니 화린을 향해 질문했다.

    나는 입을 열려 했지만, 그 전에 화린의 목소리가 치고 들어왔다.

    “잠깐!”

    다시 모두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지, 지금 이럴 때가 아니에요. 그…….”

    분명 처음 그녀가 입을 연 건 우발적이었던 것 같지만, 갑자기 그녀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나도 그녀를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거라 장난을 치긴 했지만, 심상치 않은 표정에 얼굴을 굳혔다.

    반가움은 나중에 표현해도 되는 거니까.

    “아직 끝난 게 아니에요.”

    화린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히 우리는 의아함을 느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좀비 놈들, 아니 그들은 이미 다 죽었는데.”

    성질 급한 벤이 다시 나서서 질문했다. 중간에 좀비들이 그녀의 동료들이었다는 걸 떠올렸는지 조금은 얌전한 말투로 바뀌었지만.

    “아뇨,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화린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고는 주변을 휘휘 둘러보더니 다시 다급하게 말했다.

    “우선 여길 떠나야 해요. 빨리요.”

    아직 명확한 이유는 못 들었지만, 어차피 상대가 화린이라는 걸 확인했으니 우리는 군말 없이 그녀 말대로 자리를 옮겼다.

    그녀는 앞서서 걸어가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풀숲이 무성한 곳에 들어가서야 걸음을 멈췄다.

    화린이 그곳에 자리를 잡고 우리보고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해서 우리는 그 좁은 곳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그래서 그 문제라는 게 뭐요?”

    벤은 불편하게 쪼그려 앉은 상태로 화린에게 톡 쏘듯 물어봤다.

    그녀는 잠시 주저주저 하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저희는 보르헤트 숲 근처로 임무를 나갔었어요.”

    저희라는 건 그녀와 그녀의 파티원들을 말하는 거겠지.

    “그런데 임무를 수행하는 도중 갑자기 그 명… 아니, 저주받은 달이 떴었죠.”

    그녀는 차분하면서도 빠르게 상황을 설명했다.

    화린은 처음엔 보르헤트 숲에서 마물을 상대하다가 근처에 있는 아지트로 대피했다고 한다.

    애초에 맡은 게 장기 임무였기에 그녀의 파티는 넉넉한 식량과 식수를 가지고 아지트에서 끝까지 버티다가 복귀할 예정이었지만.

    “그놈이 나타났어요.”

    그녀는 무언가를 떠올리고 있는 듯 크게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듀라한.”

    “듀라한?”

    화린이 말하자마자 누군가가 깜짝 놀란 듯 되물었다.

    이번엔 벤이 아니라 칼이었다.

    거의 항상 무표정하던 그가 처음으로 깜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 못지않게 놀란 상태였다.

    “듀라한이라니. 정말입니까?”

    “네.”

    모두 침음성을 흘렸다.

    마물 듀라한.

    저번에 대마물전 특화 사제들과 합심해서 싸웠던 탈로스는 본래는 중상(中上)급의 마물이었다.

    그런데 듀라한은 무려 상급에 랭크된 마물.

    정확히 말하면 상상(上上)급.

    나도 전작을 플레이할 때 한 번 잡았던 적이 있는데,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고스펙이었을 때다.

    그것도 나와 비슷한 스펙의 유저 세 명과 같이 싸웠고.

    “그럼, 그. 실례되는 질문이겠지만. 어떻게……?”

    칼은 약간 조심스러운 말투로 그녀에게 물었다.

    그 듀라한을 상대로 어떻게 살아남은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화린이 철급의 용병이라지만 듀라한을 앞에 두고 비교하면 태양 아래의 반딧불이나 마찬가지.

    “그건…….”

    그녀는 입술을 잘근 씹고서 다시 말을 이었다.

    “본래 보르헤트 숲엔 모험가가 많아요. 아마 그 당시에도 최소 몇십 명은 있었을 거예요. 그중에는 은급의 용병도 있었고요.”

    이어지는 말은 더 충격적이었다.

    듀라한은 모험가를 직접 죽이지 않았다.

    놈은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찾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입히기만 하고 지나갔다고 한다.

    사람들이 놈의 의도를 알게 된 것은 며칠 후, 중상을 입었던 사람들이 돌연 좀비가 되었을 때였다.

    “생각해 보면 듀라한은 애초에 좀비화 현상이 일어날 걸 염두에 두고 행동했던 것 같아요.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상처를 입혔죠.”

    아예 죽여 버리면 시체를 놔두고 이동할 테니까. 라고 그녀는 짧게 덧붙였다.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상처를 입은 동료들을 데리고 다녔고, 그 동료는 갑자기 좀비가 되어 사람들을 습격했다.

    듀라한은 그 이후로도 나타나서 계속해서 같은 짓을 반복했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그 대목에 이르러서 벤과 칼은 약간 맥이 풀린 듯한 표정을 지었고, 이어서 벤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그럼 뭐가 문제요? 결국, 듀라한은 이제 없단 말 아니요?”

    “아직 좀비로 변한 모험가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기껏해야 오십 마리 정도 아뇨? 한곳에 우르르 몰려 있으면 모를까. 놈들이 우릴 쫓아서 다 같이 사이좋게 몰려들 일은 없을 테고.”

    아주 타당한 말이었다.

    듀라한을 상대하는 일이라면 모를까.

    흩어져 있는 오십 마리 정도의 좀비가 근처에 있더라도 뚫고 지나가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화린은 여전히 어두운 표정이었다.

    곧 그녀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소매를 걷어 올렸다.

    “이게 문제죠.”

    화린의 새하얀 팔뚝이 훤히 드러나고 숨겨져 있던 무언가가 드러났다.

    나와 칼은 동시에 할 말을 잃고서 멍하니 그것을 보았다.

    오직 벤만이 그것의 정체를 모르는지 우리들의 얼굴을 번갈아 봤다.

    “이게 뭔데 그래?”

    벤이 화린의 팔뚝을 가리킨다.

    그곳에는 검은색으로 소용돌이 모양의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

    “어둠의 표식.”

    “어둠의 표식?”

    칼은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린 후 벤에게 그것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간단히 말하면 추적 마법 같은 거야. 다른 점은 그녀의 위치를 시전자뿐만 아니라 다른 놈들도 안 다는 거지.”

    “주변에 있는 모든 좀비와 마물들이 그녀를 쫓는단 의미입니다.”

    “뭐?”

    벤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가 자신의 입을 막았다.

    칼은 침통한 표정으로 이어서 설명했다.

    “표식은 기본적으로 상급 마물 이상이 부리는 주술이야. 몇몇 지능 있는 개체들이 쓰는 수법인데.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해주가 불가능해.”

    “맞아요. 듀라한은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이 표식을 심어 놨죠.”

    “듀라한이 사라졌을 때쯤엔 사람들보다 마물의 수가 더 많았을 테고. 그 표식을 단 이상 도시로 들어갈 수도 없었겠군요.”

    “네. 마물이 준동한 이상 성벽엔 사제들이 배치되어 있을 테니까요.”

    사제들은 표식을 인지할 수 있었다.

    어둠의 표식을 단 사람이 마물을 달고서 성벽으로 다가온다면 아마도…….

    “도시에 갔다면 마물이 아니라 병사들한테 죽을 확률이 더 높았겠죠.”

    화란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표식을 해주하려면 도시로 들어가야 하는데, 정작 표식이 있으면 도시로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니.”

    물론 평소의 수도의 주둔 병력이라면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수도도 명월 기간 동안 공습을 받았을 테고, 그 이후 마물을 끌고 나타난 사람들을 반길 리 없었을 거다.

    귀족이나 권력자라면 모를까.

    그들은 일개 모험가에 불과했으니까.

    “악랄하군.”

    만약 듀라한이 그 모든 걸 계산하고 한 행동이라면 정말로 악랄한 짓이었다.

    아마도 사람들은 끝까지 한 줄기 희망을 놓지 못한 채로 쫓고 쫓기다가 죽었을 거다.

    “개 같은, 아니 아주 씨발 놈이구만. 그놈.”

    벤은 자신이 더 흥분해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나도 듀라한의 악랄함과 그 정도로까지 지능적인 행동을 했다는 것에 놀랐다.

    벤과 칼은 가슴에 무언가가 턱 얹힌 것 같은 표정으로 화린의 팔뚝을 보았다.

    분위기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졌다.

    특히 칼은 몇 번이나 입을 떠듬거렸다가 다시 닫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긴 침묵을 깬 건 화린이었다.

    그녀는 무언가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절 놓고 가세요.”

    “예?”

    “마물들은 저를 쫓아올 거예요. 저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면 안전하게 도시로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하, 하지만.”

    “어차피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없었어요. 여러분들이 저 때문에 죽는다면 그게 더 불편할 거예요.”

    화린은 자조 어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입꼬리가 어색하게 굳어 있어서, 그녀의 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조용히 벤과 칼의 반응을 보았다.

    둘 다 망설이는 듯한 얼굴이었다. 당연한 반응이다.

    누구라도 자진해서 죽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표식이라도 없다면 모를까 화린을 데리고 도시까지 돌아가도 들어가지 못할 확률도 있었다.

    다시 입을 연 건 칼이었다.

    “저는 화린 씨와 함께하겠습니다.”

    “예?”

    이번에 놀란 건 오히려 화린이었다. 벤 또한 눈을 크게 뜨며 칼을 보았다.

    “사실 전 게럴드 씨한테 목숨을 빚진 적이 있습니다. 고작 몇 달 전이었죠.”

    그는 담담하게 몇 달 전 자신과 동료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게럴드가 구해 주었던 경험을 얘기했다.

    “그분은 절 기억 못 하실 것 같지만. 그래도 목숨 빚을 갚을 기회를 놓칠 수는 없죠.”

    칼이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이미 결심을 한 듯 그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그럼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나는 벤이 말하기 전 먼저 손을 들며 말했다.

    “귀여웠던 향덕이를 생각해서라도.”

    그리고 슬쩍 화린을 보며 말했다.

    다른 이들의 표정에 다시 의문이 떠올랐지만, 화린은 얼굴을 붉히며 입술을 깨물기만 했다.

    “도대체 어떻…….”

    그녀가 나를 보며 질문할 기색이기에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표식에 관련해선 제게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칼이 날 휙 돌아보며 물었다.

    “네. 해 봐야 알겠지만요. 약화하는 것 정도는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서 벤을 돌아보았다.

    이런 건 확실하게 하고 가야지.

    “벤 씨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화린이 말을 꺼낸 이후로 내내 고민하는 듯한 표정이었던 벤.

    “후우.”

    그는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에 당황해하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빨리 표식을 약화하는 작업이나 해. 저 여자 얘기대로라면 여기도 안전하지 않은 거 같은데.”

    툴툴거리는 말투이긴 하지만 자신도 참여하겠다는 뜻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화린에게 다가갔다.

    “시간이 없으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가방을 뒤지는 척하면서 포인트 상점 창을 열었다.

    나로서도 이 어둠의 표식을 해주하는 건 불가능하다.

    딱히 주술에 관한 지식이 없기도 하거니와, 포인트 상점에서도 해주와 관련된 건 없었으니까.

    하지만 약화하는 것은 다른 문제.

    “여깄다.”

    난 곧 찾던 물건을 사서는 가방에서 손을 쑥 꺼냈다.

    손에 들린 건 푸른빛을 띠는 구슬이었다.

    “이건 어둠의 힘과 상극되는 힘이 담겨 있는 구슬입니다. 표식을 아예 없애진 못해도 약 하루 정도 억누르는 건 가능할 겁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바로 구슬을 화린의 팔뚝에 가져다 댔다.

    “앗!”

    살짝 따끔할 거다. 뇌기(雷氣)가 담겨 있으니까.

    포인트 상점에서 산 다용도 구슬에 내 뇌기를 담은 것이다.

    미약한 기운에 불과했지만, 어차피 이 이상 사용했다간 힘을 억누르는 걸 넘어서 아예 팔을 못 쓰게 만들지도 모른다.

    “됐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약간 신기한 듯 팔을 들어 보였다.

    새카만 색이던 문양이 아주 연한 회색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흐음.”

    칼은 그걸 흥미로운 눈으로 봤지만, 나는 손을 들어 질문을 미리 막았다.

    “바로 움직이죠. 오랫동안 한자리에 있었으니 분명 마물들이 가까이 접근해 있을 겁니다.”

    “그러지.”

    합당한 말이었기에 다들 바로 무기를 똑바로 들고서 떠날 채비를 했다.

    나도 등에서 풀었던 가방만 다시 단단하게 고정하고 검을 들었다.

    화린은 떠나기 전 봤었던 마물과 좀비의 종류와 숫자에 대해 간략히 말해 주었다.

    “그럼 출발합시다.”

    그 후 우리는 칼의 말을 신호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선두에는 그래도 주변의 길을 어느 정도 아는 화린이 섰고, 바로 옆에서 칼이 서서 주변을 둘러봤다.

    나와 벤은 그 뒤에 서서 각자 좌측과 우측부터 후방까지를 경계했다.

    “…고마워요.”

    쭉 전진하는데 문득 화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피식 웃었고, 벤이 한마디 했다.

    “감사 인사는 됐고. 성의 표시는 돈으로 해 주쇼.”

    벤의 장난인지 진심인지 헷갈리는 말에 화린도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하트리스의 수도. 벵칼까지 이제 남은 거리는 반나절.

    이제 마물들의 소굴을 돌파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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