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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80화 (80/170)
  • 80화

    “하아아압!”

    “후읍!”

    양쪽에서 두 명이 동시에 창을 내지른다. 상처가 거듭 누적되었던 석인 기사는 그 공격을 이기지 못하고 가루가 되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마틴은 샅샅이 주변을 살펴 남은 석인이 없는 걸 확인하고선 돌아왔다.

    “끝났습니다.”

    “그래. 잘했다.”

    어깨를 두드려 주고서 석인들이 떨어트린 물건 중 쓸 만한 것들만 가려서 챙겼다.

    당장은 필요 없어 보이는 것들도 추후 그림자 요정들과 거래를 하는데 쓸모가 있을 거다.

    “그럼 다시 이동하겠습니다.”

    “응.”

    다시 대열을 갖춘 후 이동했다.

    4단계는 빠르게 통과할 수도 없다.

    미로인 만큼 마틴이 길을 확실히 떠올린 후에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 전과 다르게 미로에 진입한 후에는 볼 수 있는 범위가 줄어들었다 한다.

    그렇기에 최대한 무리하지 않는 속도로 걸었다.

    실수로 함정이라도 있는 길로 들어가면 그게 더 시간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손해일 테니까.

    “흐아압!”

    투쾅-!

    “끄아아악-!”

    퍼걱.

    이동하면서도 간헐적으로 전투가 이어졌다.

    그 와중 우리 일행과 엘 리, 엘 라는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다음 단계인 보스룸을 위해 힘을 비축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사람 중에 힘을 회복한 이들이 꽤 많다는 것.

    ‘대단한 이들이 많겠지.’

    저들 하나하나의 배경에 대해 아는 것은 아니다.

    그저 저들이 다른 인간들과 다르게 죽지 않고 ‘봉인’되어 있던 이유를 알 뿐.

    아주 간단한 이유다.

    그들이 ‘권력자’였으니까.

    하루아침에 피부가 돌로 변하고, 난장판이 된 왕국이었어도 권력자는 권력자다.

    다른 돌이 되지 않은 인간들이 학살당할 때 그들은 그저 봉인되는 것에 그친다.

    ‘웃기지도 않지.’

    그놈의 권력.

    얼마나 아득바득 손에 쥔 걸 놓치기 싫었기에 그랬을까.

    나는 각양각색의 모습인 사람들을 보았다.

    만약 저들이 단순한 권력자일 뿐이라면 나도 굳이 구출하지 않았을 거다.

    어떤 기대를 하고 있었기에 구출한 것뿐.

    다행히 전투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기대한 대로인 것 같다.

    예전 게임에서도 종종 나오곤 했던 이야기다.

    ‘게임 내 랭커급 NPC들은 귀족인 경우가 많다.’

    여러 이유가 있을 거다.

    우선 기본적으로 생활 환경 자체가 다르다. 더 잘 먹고, 잘 쉬며, 훈련하기도 한결 편하겠지.

    가끔 병사나 사냥꾼 등 낮은 신분에서부터 성장하여 강자의 자리를 거머쥐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건 아주 소수였다.

    권력은 강자를 만들고, 강한 힘으로 권력은 더욱 굳건해진다.

    만약 내가 이곳의 사람이었다면 참으로 빌어먹을 악순환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아니, 오히려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겠지. 그럴 여유도 없었을 테니.

    ‘그렇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야.’

    나는 다른 이유를 떠올렸다. 환경.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귀족의 힘의 원천이 설명이 안 된다.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으니까.

    바로 ‘혈통’.

    그림자 요정의 그림자를 다루는 능력에 대해 엘 루에게 물었을 때 들은 대답과 상통하는 이야기다.

    ‘혈통, 혈족. 피를 따라서 흐르는 미증유의 힘.’

    그림자 요정은 자연스레 그림자를 다룬다.

    개인별로 격차는 있을지언정, 아예 능력을 깨우치지 못하는 이는 드물다.

    그것뿐이랴.

    제국에는 대대로 고위 마법사를 배출하는 가문이 있고, ‘검성’이라 불리는 검사를 계속해서 배출하며 지고한 권력을 쥐는 가문도 있다.

    즉, 이 세계에선 유전자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고작해야 10살 남짓한 아이가 고대의 주술을 다룬다.

    아직 소년의 티가 강하게 남은 마틴은 자기의 몸만큼이나 커다란 대검을 자유자재로 다룬다.

    저들 말고도 두각을 드러내는 이들이 꽤 많다.

    ‘뭐, 그래도.’

    나도 누구한테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니긴 하지.

    나도 시작하자마자 뢰신(雷身)을 얻었으니까.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걷는 데에 집중했다.

    “저기 뭔가가 있습니다.”

    한 번 더 전투를 거친 후, 마틴은 능숙하게 길 안내를 하다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조금 걸어가 보이니 바닥에 무언가가 흩어져 있었다.

    “가루?”

    나는 아예 쪼그려 앉아 손으로 바닥을 쓸어 보았다.

    사륵-

    돌가루다.

    나는 주변을 꼼꼼히 살폈다. 가루의 양은 꽤 많았다.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데도 바닥에 눈에 띌 정도로 깔려 있다.

    “마틴. 혹시 지나왔던 길로 되돌아온 거 아냐?”

    “아닙니다. 아예 겹치는 길도 아니에요. 완전히 처음 들어온 구역입니다.”

    마틴은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난 그의 말에 침음성을 흘렸다.

    석인들이 죽어 있는 흔적이다.

    ‘자기들끼리 싸움을?’

    잠깐 그런 생각을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머리까지 돌로 이루어진 놈들이라 해도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소멸할 정도는 아니다.

    미로의 초입에서 마주쳤던 석인 기사들처럼 이젠 슬슬 평범한 인간처럼 사고하는 수준.

    ‘그렇다면 습격을 받은 걸 텐데.’

    선객의 흔적은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만약 앞서 들어왔던 사람이 있었다면 흔적이 하나라도 남아 있을 터.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려 봤지만 결국 명확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엘 라를 불러 바닥의 흔적을 같이 관찰했다.

    “수는 최소 열 명 이상. 열다섯 이하입니다.”

    “가루만 보고 그걸 알 수 있습니까?”

    “예. 개체별로 차이가 있다 해도, 평균치라는 게 있으니까요.”

    그녀는 가루를 손으로 살살 쓸며 그렇게 대답을 했다.

    “전투 흔적도 거의 없고.”

    정말 내분이라도 일어난 건가?

    나는 손가락으로 허벅지를 톡톡 두드리다가 우선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경계를 더 강화한다. 대열을 살짝 바꾸고, 이렌과 바하토프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데 주력해.”

    “알겠습니다!”

    혹시 몰라 이렌도 대열의 맨 뒤로 보냈다. 엘 라와 함께 뒤에서 오는 습격을 막아 줄 거다.

    주변을 경계하며 걷느라 자연스레 속도는 줄어들었다.

    “여기도…….”

    “저기…….”

    “이곳에도 있습니다.”

    그렇게 쭉 가는 길마다 가루를 발견했다.

    나중에는 어찌나 가루가 자주 나타나는지, 마치 우리가 그 가루를 따라서 이동하는 느낌이었다.

    ‘무슨 헨젤과 그레텔도 아니고.’

    적어도 길을 잃을 염려는 없겠다. 이 가루만 쭉 따라서 되돌아가면 될 테니까.

    난 속으로 되지도 않는 생각을 하면서 긴장감을 가라앉혔다.

    꼬박 하루를 그렇게 계속해서 이동했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신경 쓰며 걷는 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약 하루 동안을 이동하고, 잠을 자고, 다시 일어난 후 걸을 때까지도 적의 그림자 하나 보지 못했다.

    남은 흔적이라곤 오롯이 석인이 죽고 난 후 남기는 가루뿐

    이렇게 쉽게 모습을 안 드러내는 걸 보니 괜히 더 찜찜하다.

    차라리 죽인다! 하면서 대놓고 달려드는 놈들이 상대하기 편하지.

    “여기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무언가 다른 흔적을 발견한 건 한참 후였다.

    나는 빠르게 그곳으로 다가갔다.

    “이건…….”

    인간?

    아니, 좀 다르다.

    “발톱 자국이 깊게 새겨져 있군.”

    발자국의 모양은 인간과 비슷한데, 발톱 자국 또한 깊게 새겨져 있다.

    짐승과 인간의 중간 어딘가. 그런 느낌이다.

    ‘그런 게 있던가?’

    곰곰이 생각해 봐도 미로 내에선 석인들을 제외하곤 다른 몬스터는 없었다.

    짐승들은 2단계에서 3단계 초입 부분까지만 있고, 애초에 발톱 자국이 있다 해도 발 모양이 놈들과 전혀 다르다.

    새로운 종류의 몬스터가 있는 건가?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주변의 벽을 올려다봤다.

    벽은 거의 천장까지 닿을 정도로 높게 솟아 있다. 마음 같아선 뛰어 올라가 주변을 확인하고 싶지만…….

    고작 높은 벽만 있었다면 이미 올라가 봤을 거다. 아니면 엘 리나 엘 라의 그림자 능력을 사용해도 되고.

    벽 위에는 진한 회색빛의 연기가 둥둥 떠다닌다.

    저건 단순한 연기가 아니다.

    예전에 확인해 본 바로는 인식 저하 마법. 저주 계열 주술 3종류. 블라인드 마법. 시야 방해 등등…….

    온갖 디버프 스킬은 떡칠이 된 연기다.

    나조차도 부담스럽고, 바하토프도 해주에 난색을 보였다. 고대 마법은 현대와 체계가 달라 분석하는 것만 해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흐음.”

    나는 팔짱을 끼며 앞의 통로를 노려봤다.

    그러나 별다른 방법이 있을까.

    나는 인벤토리에서 창을 꺼내 들었다.

    이렌에게도 무기를 건네주며 말했다.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주저 없이 전력을 발휘해.”

    “알겠습니다.”

    이 던전을 진행하며 파티 모든 인원의 레벨이 10단계씩은 올랐다.

    새로운 놈이 튀어나오면 또 때려잡아 주면 그만이지.

    “가자.”

    미로는 상당히 길었다.

    석인과 마주치지 않다 보니 진행 속도가 더 빨라지긴 했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걸으니 더 지루하다. 피곤하기도 하고.

    끄워우어어엉-

    “응?”

    무언가 이상한 소리를 들은 건 잠깐 휴식을 위해 멈춰 있을 때였다.

    “슬슬 모습을 드러내려는 건가.”

    난 창을 쥐며 일어났다.

    “혹시 어떤 놈인지 알겠습니까?”

    나는 옆에 앉아 있던 엘 리에게 물었다.

    엘 리는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저도 처음 접해 보는 울음소리입니다.”

    “음.”

    결국, 직접 부딪쳐 봐야 한다는 소리군.

    쿵- 쿵. 쿵.

    저 멀리서 발소리가 들린다.

    놈이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다.

    “모두 준비.”

    쿵- 쿵-!

    점점 더 가까워진다.

    곧 있으면 모습을 드러내겠…….

    난 속으로 생각하다 말고 고개를 획 돌렸다.

    분명 소리가 들렸다.

    옆에서.

    “이런 씨……!”

    전력으로 기운을 끌어올린다.

    뇌령을 한계까지 혹사하며 창으로 기운을 밀어 넣는다.

    쿠웅-!

    “비켜!”

    나는 사람들의 중앙으로 날 듯이 파고들며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벽에서 통나무같이 두꺼운 팔이 튀어나왔다.

    쿠웅!

    콰츠츠츠츠츠-!

    손에 강렬한 반탄력이 느껴진다.

    나는 휙 위로 꺾이는 창을 회수하며 눈을 부릅떴다.

    후우우우웅-!

    팔 다음은 다리였다. 거대한 다리가 낮게 바닥을 쓸어온다.

    파앙-!

    다리를 아래로 내려치며 위로 떠오르자 놈의 양팔이 나를 붙잡으려는 듯 뻗어 왔다.

    “꺼져-!”

    콰르르르르릉-!

    몸을 중심으로 전격이 팽창하듯 뿜어져 나간다.

    내 주위에 있던 놈의 팔과 다리에 전격이 그대로 빨려 들어간다.

    나는 그대로 벽을 향해 창을 찔렀다.

    카앙-!

    하지만 벽은 그대로 창을 튕겨 냈다.

    이런 씨발.

    굉장히 단단한 벽이다. 그런데 상대방은 그런 벽을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자유롭게 드나든다.

    나는 입술을 짓씹으며 아직 움찔거리고 있는 팔을 향해 창을 휘둘렀다.

    푸욱-!

    창이 팔에 그대로 꽂혀 들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렸는지 놈은 그대로 창을 반대 손으로 붙잡으며 잡아당겼다.

    탁-

    나는 그대로 딸려 가며 벽에 양발을 디뎠다.

    “끄으으으읍-!”

    힘이 장난이 아니다.

    창에 온 힘을 주고 버티고 있는데도 점점 발에 부하가 걸린다.

    나는 기운을 나눠서 건틀릿으로 쏟아부었다.

    키이잉-!

    회색빛을 띠고 있던 건틀릿이 점점 색을 되찾아 간다.

    양팔을 시작으로 미증유의 힘이 전신을 휩쓴다.

    꾸욱-

    더는 놈의 힘이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으아아아아!”

    난 그대로 더 힘을 주며 아예 놈의 팔을 내 쪽으로 획 잡아당겨 버렸다.

    끄워어어어엉-!

    놈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비명을 내질렀다.

    처음으로 놈의 몸통이 보였다. 전신이 회색빛을 띠고 있고, 덩치가 굉장히 커다랗긴 하지만 인간의 몸이었다.

    다만 손과 발에 짐승의 것처럼 날카로운 손톱과 발톱이 달려 있을 뿐.

    꾸웡-!

    그리고 그다음엔 놈의 머리가 벽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드디어 놈의 정체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난 놈의 대가리를 보곤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미노타우로스?”

    얼굴이 뻘겋게 달아오른 소의 대가리.

    그 밑에 달린 인간의 몸.

    여기가 미로인 거까지 포함해 자연스레 그 이름이 떠올랐다.

    끄웡-!

    놈은 계속 강제로 딸려 나오는 게 화가 났는지 콧김을 확 뿜었다.

    “크워어어어”

    그러더니 아예 저항하던 힘을 확 풀며 나를 덮쳐왔다. 나도 갑자기 힘이 확 빠지니 균형이 흐트러졌다.

    후우우웅-!

    날카로운 손톱이 달린 손이 나에게 짓쳐 들어온다.

    “모두 물러서!”

    꽈아앙-!

    창을 빼 들며 그대로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발밑으로 놈의 머리가 보인다.

    “니가 미노타우로스면!”

    난 그대로 창을 아래로 휘두르며 소리쳤다.

    “난 테세우스다, 이 새끼야!”

    꽈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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