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소명의 문…….”
누군가가 작게 중얼거렸다.
나는 문 앞으로 걸어갔다. 문은 마치 우리를 위압하듯 높다랗게 솟아 있었다.
소명.
보통 두 가지 뜻으로 쓰이는 단어다.
까닭이나 이유를 밝혀 설명하는 것. 혹은 임금이 신하를 부르는 명령.
이 문에 붙은 이름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불분명하다.
왜냐하면, 두 가지 다 해당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바하토프.”
“예.”
“이곳에 손을 올려라.”
“알겠습니다.”
바하토프는 빠릿빠릿하게 달려왔다.
그의 눈에는 푸른 멍이 들어 있다. 일부러 고칠 수 있는데 고치지 말고 놔두라고 했다.
반성하라는 의미로.
“따라 말해라.”
바하토프가 손을 올리는 것을 보고 나는 기억을 되새겼다.
“왕이시여.”
“왕이시여.”
짐짓 근엄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지만, 곧 나는 씩 웃었다.
“엿이나 처먹어라.”
“엿이… 예?”
바하토프가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본다.
“무스으으아아아아아-!”
그러더니 갑자기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한다. 마치 무언가에 감전되기라도 한 것처럼.
마음 같아서는 더 놔두고 싶었지만 저러다가 진짜 쓰러질 수도 있다.
나는 바로 다가가 주먹에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바하토프가 손을 올린 부분 바로 옆을.
꽈아아앙-!
거세게 내리쳤다.
바하토프는 그제야 숨을 거세게 몰아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 문에는 마법 트랩이 걸려 있다. 본래는 침입자를 경계해서 만든 거지만, 그렇게까지 위력이 강한 건 아니다.
애초에 그냥 잔챙이들 정도나 걸러 내는 역할이니까.
그래서 방금처럼 강력한 충격이 가해지면.
드드드드드드드-!
이렇게 알아서 문이 열린다.
나는 원망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는 바하토프를 무시하며 점점 떨리고 있는 문을 보았다.
이렇게 거대한 문을 세워 두고 고작 시시한 마법 트랩 따위나 걸어 둘 리 없으니.
바하토프는 그냥 한번 괴롭히고 싶어서 저렇게 시켰던 거다.
“이제 뒤로 가 있어라.”
“…예.”
나는 바하토프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걸 확인한 후 웃음기를 거뒀다.
이제 제대로 된 환영 인사가 나타날 거다.
던전에는 이곳을 포함해 다섯 구역을 나누고 있는 네 개의 문이 있다.
그중 첫 번째가 소명의 문.
다른 문들에는 제각기 공략 방법이 있지만, 첫 번째인 이 문은 별달리 방법이 없다.
그저 무력으로 뚫고 가는 것뿐.
서서히 열리는 문 너머로 노란빛의 안광 수십 개가 번뜩인다.
왕국에 저주가 내릴 때 변이한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오히려 더욱 큰 고통을 얻은 것은 짐승들이다.
크르르르르-
문 저편에서 들리는 짐승의 울음소리.
왕국에 저주가 내릴 때 변이한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몸 곳곳에 얼룩덜룩하게 회색빛의 반점이 있는 짐승들. 그들은 성난 눈빛으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짐승들은 인간들과 다르게 완전히 석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산채로 몸 일부분이 돌이 되는 고통, 그러면서도 강한 마력의 영향으로 죽지 못한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으니……. 남은 건 인간에 대한 강렬한 증오심뿐.
지금은 잠시 탐색을 하듯 멈춰서 있으나 금방이라도 달려들 기세다.
‘참 악취미군.’
왕은 침입자를 배제하기 위해 저들을 살려 둔 채로 이렇게 배치해 놓은 것이다.
“모두 전력으로 뚫고 들어간다. 그리고 마틴.”
“예, 예?”
나는 인벤토리를 열어 창 스물한 자루를 꺼냈다.
“위험할 수도 있다. 맨몸보다는 무기 한 자루라도 들고 있는 게 낫겠지.”
“알겠습니다.”
마틴은 굳은 표정으로 사람들을 불러 무기를 나눠 줬다.
그들은 기괴한 외형의 짐승들을 보고 겁을 먹은 눈빛이었다.
엉거주춤하게 창을 든 모습을 확인하고 나는 이렌을 불렀다.
“이렌. 정령을 사용하여 저들을 보호해라.”
“알겠습니다.”
다른 이들에겐 안 들릴 목소리로 말했다.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조금이라도 더 용감하게 나오겠지. 어차피 도망갈 구석은 없으니까.
노인과 여자, 아이를 포함한 무리이지만 나는 저들의 잠재력을 믿는다.
“후우.”
잘게 한숨을 흘렸다.
이 던전은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곳이지만 기본적으로 설계된 스토리가 심히 마음에 안 든다.
크르르아아아-!
어찌 됐든 지금 중요한 건 현재 짐승들의 적의는 우리에게 향해 있다는 것.
놈들은 슬슬 탐색을 마친 듯 거칠게 괴성을 내질렀다.
“온다!”
나는 큰 목소리로 주의를 환기하며 무기를 치켜들었다.
여기만 뚫으면 제대로 된 휴식처가 나온다.
“하아아압!”
우리는 달려드는 괴수들과 맞부딪쳤다.
* * *
“후우. 후.”
나는 쭉 떠오르고 있는 메시지들을 확인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무려 한 번에 두 계단이나 레벨이 상승했다. 게다가.
[둔기술의 숙련도가 대폭 올랐습니다]
[둔기술이 Lv.3에 도달했습니다]
Lv.2에 정체되어 있던 둔기술도 한 단계 상승했다.
현재 상태창은.
[상태 창]
이름: 이호진
레벨: 39
직업: 대부족 ‘벼락’의 대족장 / 벼락 신의 계승자
세력: 대부족 ‘벼락’
특성: 뢰신(雷身)
스킬: 기본 창술(Lv.9), 둔기술(Lv3) 전격 방출(Lv.8), 전투 보조, 탐색, 지도 작성.
고유 스킬: 뇌령(Lv.3), 뇌룡 질주(Lv.3), 쇼크웨이브(Lv.2), 신기 뇌룡(雷龍), 지룡의 용안(龍眼)
신화: 벼락 신의 계승자(유일)
[신화]
현재 등급: 대족장
벼락 신의 계승자(유일)
-그의 창에는 벼락 신의 힘이 깃들어 있다 전해진다.
그의 분노 앞에서 멀쩡할 수 있는 이는 없고, 그의 뜻은 곧 신의 뜻이다.
모든 벼락 신의 신도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마주치는 이에게 위압감을 준다.
마경 외곽 지역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도시 ‘폴그룬’ 일대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동급 이하의 상대에게 공포와 경외심을 느끼게 합니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 대적할 때 어드밴티지를 획득합니다.
벼락의 힘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합니다.
-현재 신화 포인트: 920,000/2,740,000
이 던전에 들어온 이후로 꽤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만약 바하토프나 이렌도 나처럼 상태창을 볼 수 있었다면 꽤 많이 성장한 게 보였겠지.
“흐아악. 흐윽.”
그래도 가장 많이 바뀐 거로 따지면 저 뒤쪽에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일 거다.
처음엔 창을 찌르는 것조차 두려워하던 이들이 만 하루가 지났을 땐 제법 분전을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저들은 모르지만 이렌이 정령으로 크게 위험한 일은 없게 신경 써 줬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만약 보통의 상황이었으면 실력이 늘기도 전에 죽었을 테니까.
“자. 십 분 휴식했으니까 다시 이동합니다.”
이렌과 바하토프는 내 말에 벌떡 일어났지만, 다른 이들은 거의 시체처럼 흐느적대면서 일어났다.
날 보는 시선이 거의 내가 군대 때 조교를 노려보던 것과 비슷한 정도다.
물론 난 신경 쓰지 않지만.
“늦게 일어나면 놓고 갑니다.”
그래도 한마디를 더 덧붙이자 모두 신속하게 대열을 갖추었다.
그들의 등에는 모두 가방 같은 것이 매져 있었다.
괴수들의 부산물을 채취해서 챙겨 둔 것이다.
꽤 쓸 만한 것도 있고, 나에겐 쓸모없어도 거래로 쓸 만한 것들도 몇 가지 있다.
“또 괴수가 나타날지 모르니 방심하지 마세요.”
“예!”
한 손에는 창을 들고, 몸에는 우리 벼락 부족의 문양이 새겨진 갑옷을 입고 있다. 우리 부족의 표준 갑옷이다.
갑옷이 마찰하며 울려 퍼지는 찰캉- 소리를 배경음 삼아 우리는 죽 걸어갔다.
저들에게 경계를 늦추지 말라 하긴 했지만, 괴수는 더 이상 없을 거다.
슬슬 첫 휴식처가 가까워진단 징조가 보였으니까.
“와아.”
누군가가 감탄성을 터트렸다.
곧바로 눈치를 본 듯 더는 말이 이어지지 않긴 했지만 나 또한 동의하는 말이었다.
벽면을 따라 점점이 박혀 있는 노란색, 초록색, 보라색 등등. 가지각색의 구슬들.
그전까지는 간신히 주변이 보일 정도의 어두운 빛만이 있었기에 더욱더 대비되었다.
통로 전체에 기기묘묘한 색들이 떠다니고, 우리는 마치 별세계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이렌과 바하토프도 이 변화가 못내 신기한 듯 안 그런 척하면서도 힐끔힐끔 주변을 둘러본다.
난 픽 웃으며 앞을 보았다.
아무리 레벨 업이 중요해도 아예 안 쉬고 움직일 순 없지 않나.
특히 이 던전의 규모를 생각하면 휴식처는 필수다.
다만, 마냥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나는 잠시 느슨해졌던 신경을 예민하게 당기며 조심스레 앞으로 나아갔다.
스스스슥-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야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벽면을 따라서 휙 지나가는 그림자.
이렌과 바하토프도 그것을 보았는지 반사적으로 무기를 치켜들었다.
“무기를 내려라.”
하지만 난 손을 들어서 그들을 제지했다.
굳이 상대를 자극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자극해서도 안 되고.
스스스-
둘이 슬쩍 무기를 내리고, 뒤에 서 따라오는 사람들이 불안한 표정을 하고 있는데 다시 한 번 그림자들이 스쳐 지나간다.
이번엔 한 개가 아니라 언뜻 봐도 수십 개는 되어 보였다.
그림자가 지나갈 때마다 구슬들이 광채를 잃고 흐려지며 더욱 불길한 느낌을 자아냈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앞으로 나아가며 입을 열었다.
“거래를 하러 왔습니다.”
주변을 계속해서 휘젓고 다니던 그림자들이 내 말에 천천히 속도를 늦추더니, 마치 나를 관찰하듯 주변에 멈춰 섰다.
바하토프는 연신 불안한 듯 눈동자를 굴렸지만, 내가 한 말이 있어서 그런지 얌전히 서 있었다.
그사이 그림자가 천천히 벽에서 떨어져 가운데로 뭉쳤다.
-무엇을?
목소리가 들린 건 그 순간이었다.
연기처럼 허공에 둥실거리며 떠 있는 것을 보다가 손짓으로 뒤에 선 사람 중 한 명을 불렀다.
그리고 그가 뒤에 맨 가방을 풀어서 바닥에 내용물을 쏟았다.
“짐승의 부산물들입니다. 저희한텐 별로 쓸모가 없는 것들이지요.”
마법사들의 시약이나 연구 재료로 쓸 수 있으니 아예 쓸모가 없지는 않지만.
지금의 상대와 거래하는 데 쓰는 게 더 요긴할 터.
그림자, 혹은 회색빛의 연기로 보이는 그것은 마치 고민이라도 하듯 일렁거리고 있었다.
-따라와라.
그는 곧 그 말과 함께 앞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동한다.”
그리고 우리도 그를 쫓아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의 형체는 지금도 끊임없이 회색빛으로 꿈틀거리고 있어서 정확하게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래도 처음 등장했을 때처럼 위협적인 느낌은 없었다.
단지 굳이 본모습을 드러낼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는 거겠지.
그를 따라서 한참을 걷다 보니 점점 주변에 풀과 나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치 숲속으로 들어가는 기분.
아니,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숲 그 자체였다.
아까 전 색색의 구슬들이 박혀 있는 공간보다 몇 배는 더 신기했다.
지하에 이 정도 규모의 숲이라니.
이미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었는데도 직접 마주하니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하긴, 그들의 연원을 생각하면 이런 숲이 있는 게 당연한 거지만.
파악-!
그렇게 숲을 헤치고 들어가는데 갑자기 어디에선가 화살이 날아와 내 발 밑에 박혔다.
우우우우웅-!
이렌이 정령술을 펼쳐 순식간에 우리를 감싸는 방어막을 만들었다.
파바바바박-!
뒤이어 날아오던 화살들은 모두 바람의 장막에 막혀 이상한 곳으로 튕겨 나갔다.
이렌에게 무언가 말을 하려 했지만, 그전에 저 앞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의 친구. 이제 보니 당신은 인간이 아니군요.”
훌쩍 나무 위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누군가.
그는 정확히 이렌을 보며 호의적인 미소를 띠었다.
우리를 안내하던 그림자는 고개를 들어 그를 물끄러미 보더니 곧 자신의 몸에서 그림자를 물렸다.
스스스스슥-
그의 몸을 가리고 있던 그림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곧 본 모습을 드러낸 그의 외형은 나무 위에 서 있는 자와 거의 비슷했다.
“엘프?”
그리고 바하토프가 놀란 듯이 소리 내어 그들의 이름을 말했다.
뾰족한 귀에 아름다운 외형. 다만 보통의 상식과 다른 점은 피부색이 짙은 회색을 띠고 있다는 점.
“그 이름으로 우리를 부르지 마라.”
하지만 나무 위의 엘프는 차가운 목소리로 우리에게 경고했다.
“배신자들과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건 기분이 더러우니까.”
그는 쯧, 하고 소리를 내며 한마디를 남겨놓고 사라졌다.
“엘 리가 마을로 안내해 줄 거다. 안에서 보지.”
갑작스러운 등장만큼이나 훌쩍 떠나 버렸다.
엘 리라 불린 이는 우리에게 처음으로 입을 열어 말했다.
“…계속 따라오시지요.”
“예.”
그렇게 다시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발을 옮겼다.
앞서서 걷고 있는 엘 리는 여자였다. 즉, 여자 엘프라는 소리.
저들은 자신들이 엘프라고 불리는 걸 싫어하긴 하지만, 어찌 됐든 같은 종에 속하기에 대부분 특징을 공유한다.
즉, 아름다운 외형은 여전하단 소리다.
…솔직히 말해서 엄청 예쁘다.
순간적으로 말을 잃을 정도로.
특히 그 나무 위에서 활을 쏴 댔던 엘프 또한 엄청나게 미형으로 생겨서 처음엔 여자인 줄 알았다.
목소리가 남자 톤이라 그런 줄 안 거지.
어찌 됐든 쭉 걷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말한 마을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아예 목책이니, 성벽이니 하는 곳이 없었기에 마을의 광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신비롭군.’
커다란 광장의 중앙.
그곳엔 천장을 뚫을 듯이 솟아 있는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 주변에는 큰 나무보단 못 하지만 몇백 년은 돼 보이는 나무들이 모여 있었는데.
큰 나무를 중심으로 나무들이 얼기설기 얽혀 원반 모양의 평평한 땅을 이루고 있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우리가 그 나무들의 근처로 다가가자 엘 리는 한쪽을 가리키며 따라오라고 했다.
조심스럽게 우리가 다가가 서자, 갑자기 땅에 진동이 울리더니 그대로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땅이라 생각했던 건 나무가 얽혀서 만들어진 평평한 바닥이었다.
무슨 엘리베이터도 아니고…….
덜컹-
“우와.”
그 위로 올라오자 순수한 감탄이 나왔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색적인 광경이었다.
도대체 나무에다가 무슨 짓을 하면 나무가 얽혀서 집을 만들고, 건물을 만드는 걸까?
예전 게임에서 갔던 엘프들의 도시와도 상당히 다른 느낌이었다.
엘프들의 도시는 풀이나 나무가 많긴 해도 일반적인 인간들의 도시와 더 비슷했거든.
우리가 놀라거나 말거나 엘 리는 어딘가로 우리를 안내했다.
“다른 분들은 이곳에서 잠시 쉬시고 계시면 됩니다. 다만, 당신은 저를 따라와 주십시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엘리는 다른 인원들을 넓은 건물 한 곳으로 안내하고선, 나를 가리키며 어딘가로 같이 가자고 했다.
그런데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이렌이 나서서 굳은 표정으로 먼저 대답을 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엘 리를 봤고,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두 분만 같이 가시지요. 세 분까지는 안 됩니다.”
바하토프는 조심스레 손을 들다가 움찔하고 다시 손을 내렸다.
“여기서 마틴, 그리고 사람들과 쉬고 있어.”
“알겠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두고 엘 리와 함께 마을 중앙에 제일 커다랗게 솟아 있는 나무 집으로 향했다.
아까 전과 똑같이 엘리베이터 같은 걸 타고 집 앞에 도착하자,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십시오.”
약간 중후한 느낌의 목소리다.
사실 나도 이 마을에 온 순간부터는 약간 긴장이 됐다.
게임 내에선 이곳에 왔을 때 부산물을 거래하는 조건으로 겨우 마을 초입에서 머무르는 것 정도만 허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을의 중앙 쪽에 휴식할 공간을 배정받고, 딱 봐도 높아 보이는 이의 집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빨리 쉴 만큼 쉬고 꺼지라는 느낌에 더 가까웠었지.
엘 리가 문을 열었고, 우리는 우리를 부른 자와 마주했다.
“어서 오십시오. 벼락 신의 사도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