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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74화 (74/170)
  • 74화

    놈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그대로 창을 찔렀다.

    꾸우웅-!

    손끝에 전해지는 묵직한 느낌. 하지만 난 표정을 굳히며 옆으로 몸을 날렸다.

    쾅!

    바로 내가 있던 자리에 주먹이 내리꽂힌다. 녀석은 그 짧은 순간 동안 내 공격을 흘리고서 바로 반격을 한 것이다.

    “날파리 같은 놈.”

    “곰 같은 새끼.”

    절로 웃음이 나왔다. 녀석이 본격적으로 기운을 내뿜자 그 여파가 내게도 미쳐 왔다.

    너무 흥분돼서 당장이라도 몸을 반 토막 내 버리고 싶다.

    조금 전에 덤벼든 놈은 간에 기별도 안 갈 정도로 약한 놈이었지만……. 이놈은 제법 마음에 든다.

    적어도 애피타이저 정도로는 삼을 수 있을 정도로.

    난 과하게 흥분하지 않도록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혀로 입을 쓱 쓸었다.

    “이제 보니 날파리가 아니라 미친놈이군.”

    주먹을 들고 날 노려보던 놈이 질린 듯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바크란. 너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까 황송한걸.”

    천살귀 바크란.

    놈이 천 명이 넘는 인간을 죽이고 얻은 칭호다.

    “그런데 왜 이렇게 겁쟁이가 된 거지? 네놈한테 죽은 사람들이 보면 억울하겠는걸.”

    나는 녀석이 손에 낀 건틀릿을 힐끔 보았다.

    막대한 힘을 준다는 ‘오우거 건틀릿’.

    녀석은 그걸 끼고서 맨손으로 사람의 머리를 터트리길 즐겼다는 배경 설정이 있다.

    그야말로 미친 살인귀다.

    “닥쳐라. 애송이.”

    바크란이 으르렁거리듯 거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나는 말없이 창을 들었다. 그리고 그에게 손짓했다.

    들어와. 하고.

    “크아아아아!”

    쩌렁쩌렁한 함성과 함께 녀석은 자세를 낮춰서 내게 달려들었다.

    흥분해서 앞뒤 안 보고 달려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 겉모습에 속으면 안 된다.

    바크란의 무식하게 센 힘과 거대한 체격은 그 자체만으로도 강력한 무기니까.

    쉬이이익-!

    나는 녀석을 시험하듯 가볍게 창을 내질렀다.

    그러자 바크란은 기다렸다는 듯 몸을 한껏 웅크리며 창을 어깨 위로 스쳐 보냈다.

    그와 동시에 두 팔을 뻗었는데,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내 발밑을 노리고 있었다.

    꽈아아앙-!

    바크란의 두 주먹이 땅에 닿는 순간 강렬한 굉음과 함께 땅이 그대로 움푹 파였다.

    나는 발밑이 푹 꺼지는 느낌에 위로 훌쩍 몸을 띄웠다.

    후우우우웅-!

    녀석은 그걸 기다렸다는 듯 날렵하게 손을 들어 날 낚아채려 했다.

    허공에서 자유롭게 움직이지 않는 이상 피하기 힘든 공격이었다.

    “어딜.”

    반대로 어느 정도 운신이 가능한 나에겐 별로 위협이 되지 않았다.

    꽈르르릉-!

    난 녀석을 약 올리듯 허공에서 몸을 틀어 녀석의 팔을 밟고서 기운을 가득 실어 머리를 걷어차고 뒤로 뛰어내렸다.

    “크아악! 이 개새끼가!”

    “너는 입으로 싸우냐?”

    급히 몸을 돌리는 녀석의 오금을 걷어찼다.

    그 일격에 바크란은 살짝 비틀거렸고, 난 한 번 더 창을 찌르려 했다.

    후웅!

    하지만 그는 무너진 자세 그대로 몸을 회전시키며 양팔을 길게 뻗었다.

    카가가가각-!

    간신히 막아 냈음에도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나야 했다.

    “크흐.”

    바크라는 다시 짐승처럼 내게 달려들었다.

    카가가강-!

    그의 주먹이 날아오고, 나는 창대를 이용해 주먹을 다른 각도로 튕겨 낸다.

    크게 팔이 들린 녀석의 안으로 파고들면서 창대를 회전시킨다.

    창날이 물 흐르듯 녀석의 가슴팍을 향해 찔러 들어간다.

    꽈드득-

    그러나 바크란은 그 공격을 피하지 않고 도리어 다른 한 손으로 나를 꽉 끌어안으려 한다.

    뻐억!

    녀석의 무식한 힘을 생각하면 붙잡혀서 좋을 건 없다.

    난 욕심을 버리고 녀석의 정강이를 발로 후려치며 오른편으로 빠져나왔다.

    변칙적인 움직임은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무엇보다 바크란은 몸이 돌로 돼 있기 때문인지 공격을 몸으로 받아 내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아무리 강하더라도 자신이 상처 입는 건 피하거나 막기 마련인데, 그런 게 없으니 예상을 뛰어넘는 변칙적인 공격이 자주 나온다.

    “괴물 같은 새끼.”

    난 비아냥거리며 창을 크게 휘둘러 거리를 벌렸다.

    괴물.

    단순히 비유적인 표현을 넘어서 나는 녀석을 ‘괴수’라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생각해 보면 나보다 몇 배나 커다란 덩치의 괴수를 잡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나보다 느리지만 막강한 일격을 가지고 있고, 거죽과 근육은 어찌나 튼튼한지 창칼이 잘 먹히지 않아서 자잘한 공격은 무시하면서 달려드는 대형 괴수들.

    마경에선 그런 상대들이 수두룩하지 않았나?

    내 실수는 바크란을 보통의 인간처럼 생각하고 대했다는 것이다.

    “크아아아악!”

    꽈아앙-!

    바크란이 다시 한 번 땅을 양 주먹으로 내리쳤다.

    강렬한 충격파와 함께 대지가 들썩였지만 겨우 저 정도로 ‘천살귀 바크란’이라고 할 수 없다.

    맨손으로 마수의 머리통을 뽑아 버렸다는 괴력의 소유자가 겨우 저 정도일 리가 있나.

    우웅- 우우우우웅-!

    그리고 그런 내 기대는 날 배신하지 않았다.

    날 죽일 듯한 눈으로 노려보는 녀석의 양 주먹이 별안간 환하게 빛나기 시작한 것이다.

    오우거 건틀릿.

    정식 명칭은 오우거 소울 건틀릿. 오우거의 령을 붙잡아 건틀릿에 가둬 놓은 아티팩트.

    평상시의 바크란은 분류하자면 간신히 2성에 걸칠 정도의 실력이다.

    직접 상대해 보니 일전에 상대했던 에드몽보다도 살짝 부족할 정도의 무위.

    하지만 저 오우거 건틀릿을 활성화한 녀석의 무위는 순식간에 3성에 가까울 정도까지 뛰어오른다.

    게임 스토리에 의하면 녀석은 ‘석인화’가 진행된 이후 기운을 사용해서만 건틀릿을 활성화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기에 기운을 다 소모하면 건틀릿이 다시 비활성화될 수밖에 없고.

    몸이 돌이 되면서 방어력은 올라갔지만, 공격력은 다운그레이드된 것이다.

    곧 석인이 되기 전 나름 여유로운 전투법을 고수하던 녀석은…….

    투우웅-!

    속전속결의 전법을 구사하게 됐다.

    건틀릿이 활성화되자마자 녀석은 나에게 쏘아지듯 날아왔다. 단순히 발을 튕긴 것만으로.

    콰아아아아아아앙-!

    주먹을 쓴 것도 아니다, 내가 옆으로 피하는 걸 보고 녀석이 바로 땅에 착지한 것뿐인데, 어마어마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단순히 힘이 강해진 게 아니라 종 자체가 바뀐 것 같다.

    후우우우웅-!

    길게 내뻗어 오는 녀석의 주먹. 피하고자 허리를 굽히자 그대로 팔꿈치를 비틀어 나를 따라온다.

    ‘뇌룡 질주!’

    나는 피하지 않고 창을 든 채로 녀석에게 더욱 빠르게 달려들었다.

    한 줄기의 번개처럼 창이 녀석에게 내려 꽂히고.

    “크아압!”

    녀석은 그걸 버텨 내며 나에게 주먹을 내질러 온다.

    진짜 무식한 새끼네, 이거.

    ‘쇼크웨이브!’

    나는 놈이 다시 한 번 몸을 날리기 직전에 기습적으로 땅을 내리찍었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녀석의 몸이 순간적으로 멈칫한다.

    창을 팔이 꺾일 정도로 뒤로 잡아당겼다가 그대로 앞으로 내던졌다.

    쉬이이이이익-!

    쾅!

    창이 그대로 녀석의 왼쪽 어깨를 꿰뚫고 날아간다.

    난 다시 뇌룡 질주를 써서 창을 따라가 붙잡고서 전력으로 기운을 불어넣었다.

    콰앙, 쾅, 쾅!

    뒤에서는 바크란이 땅을 말 그대로 부숴 가며 달려오고 있었다.

    난 허리를 꺾으며 피하지 않고 창을 마주 찔렀다.

    꽈아아아아아앙-!

    파지지지직!

    강렬한 충돌음.

    창에서 뻗어 나온 전격은 바크란의 전신을 감싸고.

    나는 녀석의 힘에 밀려 뒤로 그대로 튕겨 날아갔다.

    단순한 ‘힘’만을 따지면 녀석이 명확하게 내 위에 있다.

    “끄으으윽.”

    하지만 녀석도 감전된 듯 부들부들 떨면서 온몸에서 연기를 피어올리고 있었다.

    몸에는 번개무늬로 금이 쫙쫙 갈라져 있었다.

    “짜릿하지?”

    나는 자세를 회복하며 몸을 풀었다.

    만약 내가 처음 떨어졌을 때 바크란 같은 괴물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일격에 핏물이 됐겠지.’

    지금은 느릿하게 보이는 녀석의 몸놀림도 그때 당시의 나라면 눈으로 쫓기조차 힘들었을 거다.

    시간이 흘렀고.

    그만큼 나도 많이 바뀌었다.

    난 슬슬 잔력을 해소하면서 다시 자세를 잡는 바크란을 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뇌령 각성.”

    그렇다면 반대로, 내가 더 힘을 개방하면 녀석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키잉-!

    가슴께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지고, 이미 나를 충만하게 채우고 있던 기운은 한 번 더 변화를 맞이한다.

    좀 더 격렬하고, 좀 더 난폭하고, 좀 더 충동적으로.

    그그그그그그-!

    내 몸을 주변으로 퍼져 나간 기운이 대지를 진동시킨다.

    “이노오오옴-!”

    쿵! 쿵! 콰앙!

    바크란도 위협을 느끼고 전력으로 향해 나를 향해 달려왔다.

    두근. 두근. 두근

    하지만 이미 늦었다.

    “진(眞)”

    가슴팍의 뇌령에서 뻗어 나온 기운에 내 몸이 전격 그 자체가 된다.

    쿵, 쿠궁- 쿵!

    공간이 일그러지고, 주변의 땅은 먼지가 되어 하늘로 말려 올라가고, 창끝이 조금씩 회전한다.

    그 모든 일이 아주 천천히 이루어지고, 나를 향해 기세 좋게 달려오던 바크란의 표정은 점점 절박하게 변해 간다.

    사고의 속도가 가속될수록 모든 것이 느리게 보인다.

    “뇌룡 질주.”

    선이 그어진다.

    아주 하얗게 빛나는 선이, 내가 지나간 자리를 따라서 쭉 이어진다.

    우웅웅-!

    모든 것을 살라 먹은 그 선은 주변의 소리까지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가 뒤늦게 토해 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끄으으으윽!”

    나를 향해 달려들던 바크란의 왼쪽 어깨가 그대로 사라져 있었다.

    본래 얼굴을 노렸었는데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 놈이 갑작스레 몸을 틀어서 피한 것이다.

    “덤벼… 라!”

    난 씩 웃었다.

    만약 단 일격에 죽었다면 실망했었을 텐데.

    “놀아 보자!”

    다시 한 번 몸을 회전시켜 녀석에게 창을 찔러 들었다.

    콰가가가가각-!

    내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땅이 갈라지고, 우레 소리가 뒤늦게 따라온다.

    일반적인 전투의 한계는 벗어난 지 오래다.

    바크란은 땅을 내리쳐 바닥을 솟아오르게 해 공격을 막고, 남은 한쪽 팔 대신 다리를 내주면서도 계속해서 나에게 주먹을 날렸고.

    끝까지 투지를 잃지 않았다.

    “크아아악!”

    그러나 나는 녀석의 양다리를 부쉈다.

    휘두르는 주먹을 잘라 냈고.

    어깨를 잡아 뜯고.

    허벅지를 가루로 만들며.

    녀석의 투지를 모조리 꺾어 버렸다. 더는 덤벼들지 못할 때까지.

    “끄으으으…….”

    나는 뜨겁게 타오르는 전격을 가라앉히며 바크란을 내려다보았다.

    바크란은 사지를 잃은 채로 바닥에 누워 있었다.

    “죽여라. 괴물 새끼…….”

    그는 마지막까지도 나를 거칠게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콰직!

    그리고 나는 녀석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바크란의 머리가 순식간에 터져 나갔다.

    “후우.”

    이내 뇌령이 해제되고, 이어서 광전사의 기운마저 가라앉았다.

    순식간에 늪으로 끌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한없이 치솟던 고양감과 흥분이 사라진 몸뚱어리는 약간 지친 듯 느껴지기도 했다.

    바크란은 천천히 가루가 되어 허공으로 흩날린다.

    석인들의 죽음의 형태는 제각각이지만, 그 이후는 항상 똑같다.

    존재했던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흩어지는 이들.

    나는 잠시 돌가루가 흩날리는 걸 보다가 허리를 숙였다.

    가루가 돼 버린 녀석의 몸과 달리 건틀릿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회색빛으로 변해 있긴 하지만.

    찰칵-

    바크란의 덩치만큼이나 커다랬던 건틀릿은 손에 끼우자 알아서 줄어들었다.

    종래에는 건틀릿보다는 마치 장갑 같은 형태로 변했다. 사용자에 따라서 모양이 바뀐다더니.

    여하튼 첫 번째 목표였던 오우거 건틀릿이 내 손에 들어왔다.

    ‘쉬고 싶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나는 고개를 흔들며 마음을 다잡았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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