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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71화 (71/170)
  • 71화

    놀라운 건 그 모습이 기껏해야 열서너 살밖에 안 돼 보이는 소년이었다는 거다.

    피부도 그냥 평범한 인간의 피부로 바깥에서라면 몰라도 이 던전과는 굉장히 이질적인 존재였다.

    돌로 된 병사들이 우글거리는 던전에 인간 소년이라.

    아마 몰랐다면 경계를 했을 테지만 난 씩 웃었다.

    “반갑다.”

    손을 내밀자 소년도 조심스레 마주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난 손을 잡자마자 휙 뒤집어 녀석의 손등을 확인했다.

    역시 예상대로 소년의 손등에는 복잡하게 이루어진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앗!”

    소년은 기겁하며 손을 뺐다. 붙잡고 있을 수도 있었지만, 순순히 놓아주었다.

    “겁먹지 마라. 뺏어 갈 생각은 없으니.”

    그렇게 말했지만, 녀석은 겁먹은 새끼 짐승처럼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소년은 나를 보다가 뒤늦게 내 뒤에 서 있는 바하토프와 이렌을 봤다.

    “수, 숲의 일족?”

    특히 그는 이렌을 보고서는 깜짝 놀라서 중얼거렸다. 이렌은 그 말에 머리를 긁적이더니 말했다.

    “숲의 일족을 아나?”

    “으, 은둔의 숲에 기거하시는 분들 아니십니까?”

    나는 둘이 대화 나누는 걸 보며 팔짱을 꼈다.

    은둔의 숲이라. 그러고 보니 과거에는 마경이 그런 이름으로 불리던 때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트롤이 숲의 일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고.

    이 세계 기준으로 몇백 년도 전의 얘기이긴 하지만.

    “너 잠에서 깬 지 얼마 안 됐지?”

    “네, 네?”

    아마 저 소년은 마경이라는 지명을 아예 모를 거다.

    “지금은 대륙력 501년이다. 참고로 너희 왕국이 멸망한 해가 대륙력이 시작된 연도고.”

    “그게 무슨…….”

    소년과 이렌, 바하토프 모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말 그대로다.

    저 소년은 무려 500년도 전의 사람이고, 모종의 일로 잠들어 있다가 막 깨어난 시점이다.

    “우리 얘기 좀 하자.”

    나는 바닥에 털썩 앉으며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결국, 소년은 궁금증을 이기지 못했는지 한참 후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어요.”

    * * *

    대화는 거의 소년이 물어보고, 내가 답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아는 건 아는 대로 말해 주었고, 모르는 건 솔직하게 모른다고 대답했다.

    퀘스트를 정식으로 절차를 밟아서 왔으면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은 이상은 이 소년의 도움이 필요하다.

    만약 이 방에 소년이 없었다면 던전 밖으로 나가서 다시 계획을 짰을 거다.

    “그러면… 저는 정말로 오백 년이나 잠들어 있던 거군요.”

    “그래. 무려 오백 년이지.”

    바하토프와 이렌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지만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이 던전은 왕의 무덤으로 알려졌지만, 당시 퀘스트를 수행했던 사람들은 이곳의 본래 이름을 알고 있다.

    시간이 멈춘 지하 왕국.

    밖을 돌아다니고 있는 돌로 된 병사. 즉, 가디언들은 자신들이 원해서 돌이 된 게 아니었다. 어찌 보면 그들도 희생자일 뿐이다.

    약 오백 년 전.

    본래 이 왕국을 다스리는 왕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 왕국을 세우고자 했다.

    왕국이라는 건 왕만 있다고 존재하는 게 아니다.

    백성과 병사들, 귀족들. 사회의 구성원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게 왕국. 그래서 왕은 자기뿐만 아니라 왕국의 모든 인간을 죽지 못하는 몸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렇게 왕국의 모든 마법사는 왕의 명령하에 ‘금단의 주술’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 주술은 일부는 성공하고, 일부는 실패했다.

    실패의 결과물들은 밖에 돌아다니는 돌로 된 병사들이다. 그들은 이지를 거의 상실해서 주입받은 명령만을 따른다.

    던전의 더 깊숙한 곳으로 가면 병사뿐만 아니라 돌이 된 평범한 인간들도 볼 수 있다.

    그들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데, 병사들과는 달리 평범하게 사고를 할 수 있다.

    일을 하고, 집에서 거주하며 아이, 어른, 노인 할 것 없이 평범하게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먹고, 마시고, 자고, 싸고. 일체의 생리적 활동이 필요 없는 돌로 된 신체를 가지고 있는 인간들.

    그들로 이루어진 왕국.

    “우선 말해 주자면 돌이 되지 않은 인간들은 모두 죽었다.”

    “예? 하, 하지만…….”

    소년의 표정을 보고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바로 알아챘다.

    “물론 소수의 ‘성공작’들이 있었지. 너와 같이 돌이 되지 않았는데도 영생을 얻은 자들.”

    본래 게임 세계관의 일부로 접했을 때는 그저 미친 왕과 왕국이 있었구나 싶었다.

    나와는 먼 얘기였으니까. 하지만 직접 이렇게 앞에서 마주하고 있자니 속이 메스꺼워졌다.

    “그들이 어떻게 됐을 것 같나?”

    소년이 충격을 받은 듯 입을 떡 벌렸다.

    “자신들이 실패작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고 싶었겠지. 특히 이 왕국의 권력자들은 말이야.”

    만약 고위 권력층이 석인. 즉, 돌인간이 되지 않고 멀쩡한 인간의 모습을 유지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그들은 석인들을 하류층.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들을 상류층으로 구분 지었을 거다.

    특권이라는 건 자연스레 구분 지어지는 게 아니라 힘이 있는 자들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니까.

    “그럴 수가…….”

    “모두 다 죽었다는 건 아니다. 분명히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을 거다.”

    그는 다시 고개를 치뜨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멀쩡히 돌아다니고 있진 않을 거다. 아마 너처럼 잠들어 있겠지.”

    나는 소년을 찬찬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유쾌한 얘기는 아니지. 그래서 난 네게 제안할 게 있다.”

    소년은 흐리멍덩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기운이 쭉 빠진 모습이다. 깨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으니 놀랍겠지. 하지만 상황을 봐주며 지체할 틈은 없었다.

    동정심에 휘둘리기엔 나도 너무 멀리 온 몸이었으니까.

    “나는 왕의 처소로 가서 왕을 죽이고, 이 왕국을 무너트릴 거다. 탐욕스러운 한 인간이 세운 이 왕국을.”

    보통의 소년에게라면 너무 버거운 제안이었겠지.

    “그곳까지 길을 뚫는 걸 도와다오.”

    하지만 나는 이미 이 소년이 할 대답을 짐작하고 있다.

    “그게 모두를 위한 길이다.”

    소년은 멍한 눈으로 바닥을 내려다보다가 곧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어요.”

    바하토프는 미심쩍은 눈으로 소년을 보고 있었지만, 소년은 고개를 들며 다시 또박또박 대답을 반복했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래.”

    환하게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억지로 끌고 나갈 수도 있었지만 그건 하책에 불과하다. 위급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고, 광렙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으니까.

    무엇보다 이 소년이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공을 들일 필요도 없었겠지.

    우리는 곧 방을 나갔다.

    * * *

    “전방 십오 미터 앞에서 석인 여섯이 걸어오고 있어요. 오 분 안에 해치우면 다른 석인들의 탐지 범위에 들지 않을 거예요.”

    소년은 살풋 인상을 찡그리며 정보를 줄줄 늘어놓았다.

    자기가 말하면서도 무언가 혼란스러운 표정이다.

    저게 바로 소년의 첫 번째 능력이다. 유저들 사이에선 ‘인간 미니맵’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능력.

    이 던전 내에서는 유저들이 소유하고 있는 지도 아이템은 먹통이 된다.

    나도 혹시나 해서 지도를 꺼내 봤지만 종이는 아무것도 표시되지 않은 백지의 상태였다.

    소년은 이 던전 내부의 대략적인 구조와 적의 위치, 게다가 적의 탐지 범위까지 알 수 있다.

    “모두 전투 준비. 아까 했던 것처럼 나와 이렌이 헤집어 놓고, 바하토프는 지금부터 주문을 외우고 있어.”

    “예.”

    “넵.”

    만약 이 소년이 없었다면 상대하기보단 피해 가길 택했을 거다.

    레벨 업을 하려다가 되려 위험한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으니.

    쿵- 쿵-

    하지만 소년의 탐지 능력이 더해진다면?

    “그대들은 누구인가.”

    앵무새처럼 정해진 대사만 내뱉는 석인들은 광렙의 희생양이 될 뿐이다.

    “조져!”

    나는 길게 끌 것 없이 큰 소리로 외치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병사들은 달려드는 나를 보고 단단히 뭉치기 시작했다.

    “매끄러운 바닥. 대지의 속박.”

    그리고 바로 그들에게 바하토프가 주문이 작렬했다.

    병사들은 진형을 바꾸다가 주문에 적시에 대응을 하지 못했고.

    그 대가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며 비틀거리다가 바닥과 벽에서 솟은 돌기둥에 속박됐다.

    나는 여전히 깔려 있을 매끄러운 바닥 주문을 피해서 옆의 벽을 타고 쭉 달렸다.

    콰앙!

    잔뜩 힘을 실은 몽둥이가 맨 앞에 있던 병사의 머리를 깨부쉈다,

    뒷 열에 있던 병사들은 슬슬 속박을 풀며 움직이려 하고 있다.

    꽝!

    조금이라도 더 피해를 입히기 위해 몽둥이를 낮게 휘둘렀다. 두 놈 정도의 다리가 그대로 부서진다.

    “하압!”

    바로 뒤에 따라온 이렌도 검날이 상하는 걸 신경 쓰지 않고 열심히 검을 휘둘렀다.

    “침입자!”

    두 놈을 가루로 만들었을 즈음 놈들의 속박이 완전히 풀렸다.

    남은 건 총 넷. 그중 또 두 명은 다리나 팔을 부숴 놨기에 전투력이 떨어진 상태였다.

    “바하토프! 이제 너도 공격해!”

    “알겠습니다!”

    바하토프는 자신의 몸에 ‘스트렝스’와 ‘헤이스트’를 걸고서 석인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렇다고 직접 검이나 무기를 휘두르는 건 아니었다.

    “폭발!”

    바하토프가 양다리와 팔 한쪽을 잃은 석인의 머리를 손으로 붙잡고 크게 소리친다.

    꾸웅!

    그러자 그의 손바닥에서 굉음이 들리더니 그대로 석인의 머리가 산산조각 났다.

    이어 바하토프는 이렌을 도와 다른 하나의 석인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도망갈 생각은 아니지?”

    나는 틈틈이 뒤를 돌아보는 걸 그만두고서 아예 앞에 놈들에게 집중했다.

    내 앞에 있는 건 아예 멀쩡한 두 놈.

    놈들은 동료들이 하나하나 파괴되는 걸 보고선 눈에 띄게 소극적으로 변해 있었다.

    감정의 대부분이 상실되었을 텐데 죽음의 공포는 아직 남아 있는 건가?

    “침입자. 죽인다.”

    다행히 놈들이 도망가는 일은 없었다. 둘은 양쪽에서 거리를 좁히더니 나를 향해 달려 들었다.

    먼저 나를 기준으로 왼쪽에 있던 놈이 낮게 검을 휘둘러 온다. 그리고 시간 차를 두고서 다른 놈이 사선으로 검을 베어 왔다.

    “흐읍!”

    나는 사선으로 베어 오는 놈을 향해 몽둥이를 앞세워서 달려들었다.

    카가가가각!

    몽둥이와 검이 부딪치며 듣기 싫은 소음을 만들어 낸다.

    몽둥이를 살짝 비틀어서 그대로 검을 옆으로 흘려 낸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여전히 왼쪽에 있던 놈의 검은 나를 향해 날아 들고 있었으므로.

    그래서 옆의 벽을 향해 크게 뛰어올랐다.

    타악!

    벽을 다시 박차고서 몸을 한 바퀴 회전시킨다.

    내 다리 밑에 석인 병사의 머리가 보인다.

    콱.

    난 양발로 놈의 어깨를 밟고 섰다. 병사가 바로 그걸 깨닫고 몸을 비틀었지만 난 균형을 유지하며 그대로 몽둥이를 내리찍었다.

    꽈앙!

    놈의 머리에 좌르륵- 실금이 간다. 뒤늦게 녀석이 나에게 검을 찔러 왔지만 나는 그대로 뒤로 뛰어내리며 다시 한 번 몽둥이를 휘둘렀다.

    파삭!

    돌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머리를 잃은 병사의 몸이 그대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사방으로 비틀린 채 떠올랐다.

    나는 그대로 놈의 몸을 발로 차서 벽으로 밀어붙였다.

    슬쩍 보니 어느 사이에 이렌과 바하토프는 날 공격하던 다른 놈에게 달라붙어 있었다.

    내가 둘을 상대하는 사이 먼저 상대하던 놈을 끝장낸 모양이다.

    꽈앙!

    꽝!

    콰앙! 쾅!

    몽둥이를 계속해서 휘둘러 제대로 반항하지 못하는 병사의 몸을 두드렸다.

    발악적으로 검을 휘두르던 놈의 몸은 어느 순간 부르르 떨더니 멈추었고.

    조금 더 지나선 아예 가루가 되어 무너져 내렸다.

    “후우우.”

    몽둥이를 쭉 늘어트리며 숨을 내쉬자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전투의 끝을 알리는 메시지였다.

    “석인들의 위치는?”

    나는 벽에 등을 기대며 소년에게 물었다. 소년은 우리의 전투를 보고 놀랐는지 멍한 표정으로 있었는데, 내 질문에 화들짝 놀라며 눈을 감았다.

    “으음…….”

    잠깐 기다리니 곧 소년이 대답을 내놓았다.

    “이 앞에는 세 갈래 길이 있어요. 중앙에는 병사들이 없고, 좌측에는 네 명 정도가 있어요. 그리고 우측 통로에는…….”

    소년은 무언가 헷갈리는 듯 인상을 찡그리며 갸웃거리더니 곧 다시 입을 열었다.

    “열둘. 아니, 열세 명이 있어요!”

    더 보이는 건 없는지 소년은 눈을 떠서 날 보았다.

    “주인님, 당연히 저희는 중앙으로 가는 거겠죠?”

    내가 뭐라 입을 열기 전에 바하토프가 먼저 내게 물어 왔다.

    딱 봐도 불안함이 가득해 보이는 표정이다.

    난 픽 웃으면서 녀석의 어깨를 두드렸다.

    “우리가 갈 곳은 이미 정해져 있지.”

    바하토프는 내가 웃으며 말하자 조금 안심한 듯 어색하게 웃었다.

    “우린 우측 통로로 간다.”

    곧 다시 일그러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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