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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70화 (70/170)

70화

우리는 그 이후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눈을 떴을 땐 모두 이미 준비를 마친 후였다.

“빨리 일어났네.”

“저희도 일어난 지 얼마 안 됐습니다. 이것 좀 드시지요.”

바하토프는 헤헤 웃으며 그릇을 내밀었다. 그 안에는 걸쭉한 스튜가 들어 있었다.

난 그것을 숟가락으로 떠먹으며 창을 힐끔 보았다.

“이렌은?”

“잠시 몸을 푼다고 앞에 나가 있습니다.”

“그래. 나만 준비하면 되겠네.”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고서 빠르게 그릇을 비웠다.

내어 놨던 짐을 다시 인벤토리에 넣고서 바하토프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일어나셨습니까.”

밖에서 창을 휘두르고 있던 이렌은 나를 보고서 바로 인사를 했다.

이렌은 체력을 조절해 가며 수련을 하고 있었는지, 땀은 그리 안 났지만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응. 곧 출발할 거니까 이제 좀 쉬고 있어.”

“알겠습니다.”

이렌은 바로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골랐다.

난 집을 다시 구슬의 형태로 회수했다. 앞에는 이제 햇볕에 그 모습을 선연히 드러낸 폐허만이 있었다.

“이제 가 볼까?”

“예!”

“네.”

약간 시간이 지난 뒤, 이렌이 어느 정도 숨을 고른 것 같아 입을 열었다.

나는 둘이 대답하는 걸 보고서 바로 폐허를 향해 걸어갔다.

폐허는 겉보기에는 딱히 입구랄 게 없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게 저것은 멀쩡했던 건물이 엉망진창으로 무너져 내린 흔적일 뿐이니까.

그러나 아무것도 없다면 던전이라는 이름이 붙지도 않았을 거다.

다행인 건 난 이미 이 던전의 입구를 알고 있다는 거다. 만약 몰랐다면 그것부터 난항을 겪었을 거다.

“이쪽으로.”

발을 헛디디지 않도록 조심하며 걸음을 옮겼다. 어찌나 길이 험한지 넘어졌다간 뒤통수가 깨지게 생겼다.

특히 바하토프는 몇 번이나 히익 소리를 내며 비틀거려서 중간에서 걷게 했다.

“바하토프.”

한참을 걷다 보니 곧 익숙한 광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심 게임과 다르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내가 기억하는 그 모습 그대로였다.

“예?”

“이곳에 손을 올려라.”

내가 가리킨 것은 어린아이의 몸통만 한 크기의 석판이었다. 그곳에는 고대어로 무어라 적혀 있었는데 나도 해석은 불가능했다.

본래라면 말이다. 그러나 과거 전작 게임에서 나는 왕의 무덤과 관련된 퀘스트를 끝까지 클리어했었다.

즉, 이 석판의 발동 조건은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다.

바하토프는 주저주저하면서도 석판에 손을 올렸고,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짧은 문장이었기에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석판에 마나를 발출하면서 내가 말한 대로 똑같이 읊어라.”

“알겠습니다!”

후웅-!

바하토프의 손바닥에서 푸른색의 기운이 넘실넘실 피어오른다.

나나 이렌이 다루는 기운과 바하토프가 다루는 기운은 성질이 다르다.

내 기운으로도 가능할 수도 있지만, 혹여나 안 되면 다시 도시까지 갔다 와야 했기에 바하토프를 데려왔다.

게임에서 문을 여는 역할을 했던 게 바로 마법사였으니까.

“왕은 죽어도 죽지 않고.”

“왕은 죽어도 죽지 않고.”

“왕국은 여전히 우리의 발밑에 있다.”

“왕국은 여전히 우리의 발밑에 있다.”

“우리는 왕의 백성으로서 왕국에 들어가기를 청한다.”

“우리는 왕의 백성으로서 왕국에 들어가기를 청한다.”

그 말을 마치자 바하토프의 손에 머물고 있던 마력이 석판으로 뻗어 나간다.

녀석이 움찔 놀라는 게 보였지만 나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어차피 저 과정에는 손을 떼고 싶어도 못 뗄 테니까.

우우우웅-!

석판에 적혀 있던 글자들이 모두 푸른색을 머금었다. 그다음엔 바하토프의 손에서 빠져나와 훅 공중으로 떠올랐다.

키이이잉-!

날카로운 소음이 귓가를 스쳤다.

석판은 연신 웅웅대는 소리를 내더니 갑자기 어느 지점에서 땅으로 훅 떨어져 내렸다.

쿠웅!

석판이 땅과 부딪치기 직전에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나조차 빛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았고, 눈을 떴을 땐 땅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가자.”

바하토프와 이렌, 특히 바하토프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구멍을 보고 있었다. 그래도 내가 앞서 걸어 나가니 모두 군말 없이 뒤따라왔다.

구덩이에 가까이 가니 계단이 보였다. 조심스레 그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입구여서 딱히 특이한 건 없었다. 조금 어둡긴 했는데 바하토프를 시켜서 허공에 빛의 구체를 띄우게 해서 해결했다.

“이제 평지다. 슬슬 가디언이 나타날 시점이니 조심하도록.”

“예.”

저 아래에 계단의 끝이 보였다. 이렌과 나는 무기에 손을 올리고 바하토프는 조용히 스펠을 읊기 시작했다.

나는 이번엔 뇌룡창 말고 저번에 시험을 볼 때 사용했던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창은 이곳의 통로가 협소해 휘두르는데 제약이 있기도 하거니와 적과의 상성에 안 좋기 때문이다.

이렌에게도 인벤토리에 남아 있던 검 한 자루를 주었다.

쿵- 쿵.

계단이 끝나자마자 저 앞에서 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대는 왕의 백성인가.”

가디언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모습을 드러낸 가디언을 보며 손목을 매만졌다. 손끝에 매끄러운 감촉이 느껴진다.

진한 갈색의 팔찌.

바로 힘을 억제하는 아티팩트였다. 이번엔 레벨 업뿐만 아니라 전투 수련도 겸하기 위한 길이었으므로 새로이 구입한 아이템이었다.

실제로 사용해 보는 것은 처음인데, 과연 얼마나 효력이 강할까?

난 씩 웃으며 다시 시선을 가디언에게로 돌렸다.

녀석은 우리 앞에 멈춰 서더니 건조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질문을 해 왔다.

가디언은 인간의 모습에 갑옷을 걸치고 있는데 갑옷은 물론 얼굴을 비롯한 모든 피부가 회색빛을 띠고 있다. 그 질감은 살보다는 돌에 가깝다.

“저, 저게 그…….”

바하토프가 뒤에서 당황한 듯 한마디 했다.

“다시 한 번 묻는다. 그대들은 왕의 백성인가?”

저것이 바로 왕의 무덤을 지키는 가디언이다. 온몸이 돌로 되어 있는 병사.

본래는 살아 움직이는 인간이었을 병사는 온몸이 돌로 변한 채 몇백 년을 넘게 이 무덤을 지키고 있는 거다.

“그래. 우리는 왕의 백성이다.”

나는 한 발짝 앞으로 나가며 대답했다.

“그럼 백성의 증표를 보여라.”

가디언은 무덤덤한 목소리로 다시 나에게 말했다.

백성의 증표는 본래 왕의 무덤과 관련된 퀘스트를 깨며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다.

그것만 있으면 이런 자잘한 병사쯤은 아무 일 없이 넘어갈 수 있다.

물론 퀘스트 없이 이곳에 온 우리에게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만.

“여기 있다.”

나는 왼손을 가디언의 눈앞에 쑥 내밀었다.

가디언의 눈동자가 내 손등을 향하는 걸 보고서는 바로 오른손에 든 몽둥이를 놈에게 휘둘렀다.

꾸웅!

놈의 얼굴이 왼쪽으로 휙 돌아간다.

생각보다 더욱 강한 반발력이 느껴진다. 팔찌의 설명이 결코 과장된 건 아니었나 보다.

이 공격 한 번으로 놈의 머리를 깨부수지 못한 걸 보면.

“증표를 확인하지 못했…….”

가디언은 이 순간에도 나를 바로 공격하는 것보다 징표를 확인하려 했다. 그렇기에 나는 다시 한 번 몽둥이를 휘둘렀다.

콱!

하지만 이번에는 몽둥이가 놈의 손에 가로막혔다.

이 가디언들은 던전 전체로 보면 기껏해야 잡졸. 본래라면 하품이 나올 정도로 시시했겠지.

뭐, 그래도 이런 느낌도 나쁘진 않다. 막강한 힘과 기운에만 의존하는 싸움 방식이 아니라 치열한 전투 경험을 쌓을 기회였으니.

“공격해!”

나를 향해 내질러 오는 가디언의 손을 피하며 크게 소리쳤다. 뒤늦게 이렌과 바하토프도 내 쪽으로 다가오며 공격을 했다.

카앙!

발로 놈의 정강이를 내리찍었는데 오히려 내 발이 저릿저릿하다. 그래도 공격이 아예 먹히지 않는 건 아니라 놈의 몸이 앞으로 비틀거렸다.

이렌이 바짝 다가와 있었기에 나는 그대로 뒤로 넘어가며 가디언의 등을 내리쳤고, 이렌은 타이밍 맞게 검을 휘둘렀다.

이렌도 우선은 정령의 사용을 금했기에 순수한 힘으로만 가디언을 상대했다.

가디언이 정신없이 얻어맞는다. 바하토프는 그 순간을 노리고 기습적으로 가디언의 머리를 붙잡았다.

“파멸의 손길!”

바하토프의 손이 순간 보라색으로 빛나더니 가디언의 머리에 거미줄 같은 금이 퍼져 나갔다.

“으랴!”

그대로 놈의 머리를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콰아아아앙!

머리가 산산조각으로 깨어져 나갔다. 손을 들어 튀어 오르는 돌조각을 막아 내고서 허물어지는 가디언의 몸을 보았다.

“후우.”

“끄, 끝난 겁니까?”

“그래.”

놈을 죽이는 방법은 신체의 오십 프로 이상을 깨부수거나, 머리를 부수는 거다.

한 마리를 상대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몸이 엄청 단단해서 쉽게 죽이기 힘들 뿐.

그래도 상태창을 열어 경험치가 오른 걸 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고작 가디언 하나를 죽였을 뿐인데 웬만한 중대형 마수 하나를 죽인 것만 한 경험치가 들어왔다.

역시 필드 몬스터와 던전 몬스터는 들어오는 경험치량이 다르다.

“이제부터는 내가 말하기 전까진 모두 입을 열지 마라.”

“알겠습니다.”

“넵!”

병사의 몸을 대충 통로 한쪽으로 밀어 두고서 안으로 쭉 걸어 들어갔다.

나는 걷는 동안에도 계속 벽을 살펴봤다.

겉보기에는 그저 매끈한 벽처럼 보이지만 이 던전을 클리어하기 위한 실마리는 벽 어딘가에 숨어 있다.

쿵- 쿵- 쿵- 쿵-

통로를 걷고 있는데 저 멀리서 가디언의 발소리가 들렸다. 가까워질수록 그 소리가 선명해졌는데 아까 전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이렌과 바하토프의 얼굴이 굳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아마 내가 말하지 말라고 안 했으면 벌써 나에게 질문을 했을 거다.

발소리로 대충 가늠해 보면 적어도 열셋에서 열다섯 사이. 다가오고 있는 가디언의 숫자다.

마음이 급해졌지만 마음을 차분하게 가지려 노력하며 계속해서 손을 놀렸다.

열 명 정도의 가디언까지는 괜찮다. 하지만 문제는 놈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울려 퍼질 소음이다.

아마 근처에 있는 가디언이란 가디언은 다 몰려들 거다.

지금 오고 있는 저놈들도 아까의 소음을 듣고 출동한 거일 수도 있다.

‘이 근처에 있을 텐데.’

잡으려면 어떻겠든 잡겠지만 굳이 사서 고생을 할 생각은 없었다.

내가 지금 찾고 있는 게 퀘스트 클리어와 광렙의 실마리니까.

쿵, 쿵. 쿵, 쿵.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빛의 구체를 해제한 상태라 시야가 극히 좁았지만, 소리로 미루어 보아 이 분에서 삼 분 정도면 놈들과 맞닥트릴 거다.

탁, 탁.

나는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벽을 손으로 짚으면서 이동했다.

높이는 약 1.5미터 지점. 불룩하게 튀어나온 부분을 찾아야 한다.

조금만, 조금만 더…….

쿵-

“그대들은 누구인가.”

가디언이 우리를 발견했다. 나는 대답을 하지 않고 계속해서 벽을 더듬었다.

“그대들은 왕의 백성인가?”

“아니면… 왕의 안식을 방해하는 침입자인가?”

저들끼리 돌아가면서 말을 한다.

“대답하지 않으면 침입자로 간주하겠다!”

쿵!

맨 앞에 서 있던 놈이 장검을 바닥에 찍으며 소리쳤다.

그러고 보면 저놈들은 다른 던전의 가디언에 비교해선 참 신사적이다.

적어도 공격하기 전에 몇 번이나 물어보고 공격하지 않나?

뭐, 어차피 대답해 봤자 공격할 테지만.

쿠웅-! 쿵!

놈들이 일제히 우리를 향해 달려온다. 그리고 나는 손바닥을 어느 지점을 향해서 꾸욱 눌렀다.

드르르르르륵-!

거칠게 기관이 작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렌! 바하토프! 나한테 붙어!”

“아, 알겠습니다!”

이렌과 바하토프가 가까이 오자마자 둘을 붙잡고서 벽에 바짝 붙었다.

드르르륵-!

병사들이 성난 표정으로 지척까지 다다랐다.

나는 그들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올려주었다.

“뭘 봐, 돌대가리들아.”

가장 앞에 섰던 놈이 무기를 들어 올린다. 하지만 놈이 채 휘두르기도 전에 시야가 훅 바뀌었다.

쿠웅-!

둔중한 진동이 울리며 잠깐 검게 물들었던 시야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늦기 전에 무덤의 비밀 통로를 통해 다른 구역으로 이동한 것이다.

“누, 누구십니까?”

그리고 그런 우리의 앞에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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