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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67화 (67/170)

67화

제크는 내 손을 놓으며 입을 열었다.

“플레이어? 그게 뭡니까?”

“아무래도 이런데서 할 만한 얘기는 아니지? 둘이서 조용히 얘기 좀 할까?”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 보였지만 곧 결정을 내렸다.

“따라 오시죠. 야, 넌 돌아가 있어라.”

“알겠습니다!”

부하는 어디론가 급히 달려갔고, 나는 앞서 걷는 제크를 따라갔다.

이내 도착한 곳은 작은 건물이었다. 들어가니 가운데에 홀이 있고, 가장자리에는 주르륵 방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안쪽에 위치한 방에 들어가 우리는 테이블을 마주 보고 앉았다.

“그래서 보자고 한 이유가 뭐지?”

난 의자에 푹 몸을 기대며 테이블에 발을 올렸다.

녀석은 내 자세가 고깝기라도 한지 인상을 찌푸리더니 내게 거친 말투로 말했다.

지금까지 억지로나마 이어 가던 존댓말도 버리고서.

“너 도대체 뭐 하는 새끼냐?”

“그것도 모르면서 보자고 했어? 멍청한 새끼.”

쾅!

제크가 책상을 내리쳤다.

제법 단단해 보이는 석재로 만든 테이블에 금이 간 게 보였다.

“언제까지 그런 건방진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아? 한가락 하는 놈인가 본데, 이 도시는 내 구역이야. 고작 쫄따구 두 명 데려와 놓고 너무 당당한 거 아냐?”

위협적인 음색이었다. 그다지 와닿진 않았지만.

“그래서 뭐?”

발을 내리며 테이블의 끝을 손으로 잡았다.

“내가 뭐 하는 놈이냐고 했지?”

벼락의 힘을 이런 자리에서 보여 주기엔 아깝다.

적당한 건 따로 있지.

몸에 가득 힘을 주며 익숙한 감각을 끌어올렸다. 시야가 붉게 물들며 몸에서는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시야가 붉게 물들고, 광전사 특성이 발동되었다.

이성을 놓지 않을 정도로 아주 약하게. 하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

놈이 흠칫 놀라는 게 보였지만 신경 쓰지 않고 손에 힘을 주었다.

파스스슥.

잡고 있던 테이블의 끝이 그대로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적어도 이 자리에서 널 쳐 죽이는 건 어렵지 않은 놈이지. 부하? 세력? 애초에 그런 걸로 비빌 생각이었으면 이런 독대 자리가 아니라 부하 놈들 다 모아 놓은 곳으로 갔어야지. 안 그래?”

“미친 새끼. 한판 붙어 보자는 거야? 광전사 특성까지 발동하고.”

아예 게임을 안 해 본 놈은 아닌가. 씩 웃으면서 손을 탁 털었다.

돌가루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난 입을 열었다.

“별 의미 없는 기 싸움은 그만하자는 거지. 아니면 정말 한판 붙어 보든가.”

그것도 나쁘지는 않은데, 하는 말이 입 끝까지 튀어나왔지만 가까스로 삼켰다.

억지로 입을 죽 잡아당겨 씩 웃으면서 녀석을 보았다.

‘참기 힘들군.’

방 안에 가득 찬 열기. 나를 마주 노려보고 있는 상대.

광전사를 발동했기 때문일까. 상대방과 붙어 보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 거린다.

하지만 참았다.

어디까지나 상대방에게 내 수준을 보여 주는 게 목적이었으니까.

질 리는 없을 테지만 이놈이 망가지면 오히려 내가 곤란하다.

‘쓸모가 있는 놈이니까.’

제크는 결국 한숨을 쉬며 양손을 탁자 위로 올렸다.

“먼저 시비 걸어 놓고 입은 X같이 놀리는구만. 그래, 그 얘기라는 걸 해 보자고.”

나도 그 말에 광전사를 해제했다.

울렁거리는 느낌과 함께 붉은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다. 약한 현기증과 치미는 구토를 참으며 녀석을 보았다.

“좋지. 네 조직 이름이 자칼이라고 했나? 요새 꽤 잘나간다며?”

“그래. 적어도 누가 우습게 볼 정도는 아니지.”

“우습게 보진 않겠지. 적어도 지금은. 하지만 약점이 훤히 보이는 조직을 다른 놈들이 과연 계속 두고 보기만 할까?”

“그게 무슨 소리야?”

제크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자칼 조직의 두목 제크. 본래 이 도시의 출신은 아님. 정확한 출신은 불분명함. 몇 달 전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 뒷골목에서 두각을 드러냄. 준수한 수완과 전투 실력을 바탕으로 자칼 조직 설립. 이후 상점을 비롯한 여러 사업에 참여하여 세력을 확장하고 있음.”

놈의 조직에 대한 정보를 줄줄이 읊었다.

“애초에 범죄 도시라고 불리는 벨루곤이니 출신이 불분명한 건 큰 흠이 안 되지.”

“출신이 불분명한 놈들이 한둘이 아니지. 애초에 떳떳한 놈들이 뭐가 좋아서 이런 곳으로 기어 들어오겠어?”

“맞아. 그렇긴 하지. 근데 머리가 있으면 적어도 몇 가지는 숨겼어야지.”

“뭐라고?”

탁자를 톡톡 두드렸다. 의아한 얼굴로 날 보는 제크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이 도시에 나타난 시기와 이곳에서 이족이라 불리는 외모. 솔직히 같은 플레이어라면 당연히 알아보지 않겠어?”

“흥. 그래서 어쩌라고?”

“어쩌긴. 너무 노골적이잖아.”

노골적이어도 너무 노골적이다.

솔직히 플레이어냐고 물어봤을 때 녀석의 반응을 보고서는 살짝 감탄을 할 정도였다.

놀라지도 않았으면서 놀란 척은.

“일부러 플레이어인 걸 티내고 다닌 거잖아. 안 그래?”

제크는 내 말을 듣고도 전혀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멍청한 선택이었다.

차라리 의아한 표정을 지었어야지.

“뭘 숨기고 싶었던 거야? 자기가 플레이어인 걸 티내면서까지 숨기고 싶은 게 있다면 보통 비밀은 아닐 텐데?”

“비밀은 무슨. 애초에 너처럼 음습하게 뒤를 캐고 다니는 놈이 있을 거란 걸 생각 못 했을 뿐이야. 오히려 알려 줘서 고맙군. 애들을 풀어서 입막음을 좀 시켜 둬야겠어.”

말이 길어진다.

하는 행동을 봐선 눈치도 빠르고 행동도 과감하다.

직접 보진 못했지만 전투력이 그리 딸릴 것 같지도 않고.

그래. 딱 ‘돌격대장’ 같은 포지션이다.

벨루곤 도시의 쟈칼 조직.

놈들에 대해 알게 된 건 저번에 이 도시에 왔을 때 뒷골목을 헤집고 다녔을 때였다.

의문을 품고서 녀석에 대한 정보를 더 파헤치고 다녔다.

특히 ‘바하토프’가 많이 도움이 됐다. 놈이 쟈칼 조직과 거래를 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쟈칼 조직에 대한 발설 금지를 토대로 맺은 거래였다던데 놈은 아무렇지 않게 술술 털어놓았다.

아주 유용한 정보였다.

“손대는 사업마다 성공해서 지금은 손꼽히는 조직 중 하나지. 이 분수대 근처에 상점만 여러 채 가지고 있고.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플레이어라면 바로 알아챘겠지. 굳이 내가 아니라도.”

“손꼽히긴 무슨. 그래 봤자 구멍가게 수준이다.”

“시장이랑 거래를 트고 있는 조직이 고작 구멍가게일 리가 없지 않아?”

녀석의 안색이 대번에 굳었다.

놈은 무겁게 내려앉은 눈으로 나에게 물었다.

“뭘 알고 있는 거냐.”

“이 짧은 시간 안에 조직을 이렇게 키우려면 보통 수완으로는 안 되거든? 심지어 플레이어라도 힘들지. 왜냐면 넌 딱 봐도 전투직이니까.”

아까 전 광전사 특성을 발동했을 때 녀석의 반응을 살폈다.

분명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크게 겁을 집어먹은 모습은 아니었다.

심지어 ‘광전사’ 특성이 뭔지를 알고 있었는데도.

“그래서!”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거냐.”

쾅! 제크는 다시 한 번 책상을 내리쳤다. 거참, 정말 다혈질이네.

“조직을 더 키우고 싶지? 그래서 벨루곤에서 시작한 거잖아.”

난 녀석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입가에는 웃음을 띠우고서.

“벨루곤은 귀족이 다스리지 않으니까. 조직 규모를 키워서 아예 잡아먹는다. 그렇게 허황된 꿈도 아니야. 무력과 금력. 두 가지만 갖춘다면.”

제크는 여전히 날 무서운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다.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거래를 하지. 내가 자본과 병사를 대겠어. 의심 가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나눠서 너희 조직에 합류시켜 주겠어.”

“당연히 공짜는 아니겠군.”

하하, 하고 소리 내어 웃었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어야지. 그나저나 솔깃하나 봐? 되묻는 걸 보니.”

“…그 대가가 뭐냐.”

제크도, 나도 서로의 질문엔 대답하지 않는다.

살금살금 올라오는 열기를 꾹 참아 내며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내려쳤다.

“거래 내용은 여기까지. 허수아비에게 미주알고주알 떠들어 봤자 입만 아프거든.”

“지랄하고 있네. 허수아비? 나 쟈칼의 대가리야. 내가 누구 명령이나 들을 놈으로 보여?”

나도 모르게 조소를 지었다.

상대방의 되도 않는 허세가 너무 우스워서.

“쟈칼은 무슨, 개 대가리 새끼가. 내가 지금 너랑 농담 따먹기 하는 걸로 보여?”

인벤토리에서 묵직한 주머니를 하나 꺼내서 입구를 연 후에 테이블에 올렸다.

녀석에게도 그 안에 담긴 무수한 금화가 보일 거다.

“네놈이 벌이는 소꿉놀이로 이 돈을 버는데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제크는 누런빛을 뿜어내는 주머니를 빤히 보았다.

난 추가로 인벤토리에서 주머니 두 개를 더 꺼내 들었다.

물론, 모두 금화가 담긴 주머니였다.

“대답해 봐. 언제부터 깡패 새끼들 두목이 돈 앞에서 자존심을 지키고 있었지?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녀석의 눈빛이 점점 달아올랐다.

테이블 위에 있던 놈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린다.

“이런 씨발 새…….”

“그만하자. 난 비즈니스하러 온 거야. 너 같은 깡패랑 정답게 욕이나 섞으러 온 게 아니라.”

놈의 입이 닫혔다.

여전히 죽일 듯한 눈빛으로 노려보는 놈을 아무렇지 않게 마주 봤다.

처음 보지만 아주 잘 안다.

저놈은 절대 나를 못 때린다.

그건 기정사실이다. 그 정도로 멍청한 놈이었으면 애초에 보지도 않았을 테니까.

“재수 없는 새끼.”

녀석은 이를 까득 갈더니, 갑자기 뒤로 손을 뻗어 벽을 두드렸다.

쿵쿵-!

뒤에 빈 공간이 있을 때 나는 소리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니 갑자기 벽이 덜컥 움직이더니 뒤로 밀려났다.

그 사이로 드러난 곳엔 이곳과 똑같은 구조의 방이 있었다.

저벅. 저벅.

그리고 발소리가 들렸다.

내가 본 시야에는 비치지 않는 쪽에 누군가 있었나 보다. 그리고 곧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익숙한 목소리다.

나도 이건 예상하지 못했었는데.

“이야, 그새 출세했나 봐?”

소년은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으며 제크의 옆에 앉았다.

“그런 것 같네요.”

페일. 여관을 안내해 줬던 꼬맹이.

쟈칼 조직과 꼬리가 이어져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런 자리에서 볼 줄이야.

“네가 쟈칼의 대가리냐?”

“굳이 따지자면 그렇죠. 저는 여기.”

페일은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머리 쓰는 걸 담당하고 있으니까요. 뭐, 하지만 주인은 여기 제크 형님이죠. 그러니까… 책사 같은 거라고 해야 하나?”

제크는 여전히 얼굴 가득 불만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페일은 그저 헤실헤실 웃고 있다.

“플레이어가 두 명이라. 이러면 쟈칼이 단기간에 몸집을 불린 것도 이상하지 않지. 일부러 네 존재를 숨기려고 심부름꾼 행세를 하고 있었나 보군. 제크와 자주 접촉하면서도 의심을 사지 않을 테니.”

“그것도 있고. 심부름을 하면서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재밌는 게 많이 보이거든요.”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서로 간에 탐색전은 이미 제크와 지겹도록 했다.

이제 슬슬 본론으로 넘어갈 때다.

“이만한 주머니를 몇 개는 더 쥐어 줄 수 있어. 그리고 네놈들의 비리비리한 부하보다 훨씬 강한 놈들도 많이 보내 주지.”

제크가 발끈하는 게 보였지만 페일이 먼저 손을 뻗어 주머니에 든 금화를 집었다.

“진짜 금화네요. 그래서 원하시는 건 뭡니까?”

녀석도 굳이 빙빙 돌릴 필요 없이 바로 요점을 물어왔다.

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먼저 벨루곤을 집어삼켜라.”

외부에서 침략하는 것보단 내부에서 집어삼키는 게 빠를 테니.

“그리고 이 도시를 완전히 차지하고 나면…….”

그렇게 벨루곤을 집어삼키면 우리는 ‘이름’을 얻는다. 또한 ‘명분’을 얻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본래의 목적. 그것을 입에 올렸다.

“변경백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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