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66화 (66/170)
  • 66화

    “하하. 안 봐주면 위험할 텐데?”

    “입만 나불대는 건 그만하고 좀 시작하죠.”

    내 말에 대머리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도 덕분에 놈도 시작할 마음이 들었는지 자세를 취했다.

    “그럼 먼저 공격해 보게.”

    놈은 손가락을 까딱였다.

    굳이 사양할 생각은 없었다. 순간적으로 발을 강하게 구르며 놈에게 달려들었다.

    빠악!

    몽둥이가 봉에 막혔다.

    그래도 제법 가락은 있다는 건가.

    하지만 대머리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씩 웃으면서 그대로 봉을 밀어냈다.

    대머리는 밀리면서도 봉을 한 바퀴 회전시키며 내 머리를 노려왔다.

    허리를 숙이며 그대로 앞으로 달렸다.

    후웅-!

    머리 위로 봉이 스쳐 지나간다.

    놈은 요령껏 봉을 당기면서 다시 나를 향해 내려찍으려는 자세를 취했지만 내가 더 빨랐다.

    아직 힘이 덜 실린 봉에 몽둥이를 휘둘렀다.

    따악!

    봉이 옆으로 아예 젖혀졌다.

    자연스레 대머리의 전면은 훤히 뚫렸다.

    양손으로 잡고 있던 몽둥이를 한 손으로 고쳐 쥐며, 빈손이 된 왼손을 앞으로 뻗었다.

    짜악!

    대머리의 머리에 손바닥이 찰진 소리를 내며 붙었다가 떨어진다.

    그러고 보니 맨손으로 누군가를 때려 본 건 굉장히 오랜만인 거 같다.

    “크윽.”

    적당히 힘을 조절했기에 녀석은 고통보다는 황당함을 더 강하게 느낀 듯했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며 날 노려보는 대머리에게 손짓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손을 들어서 두 손가락을 까딱였다.

    “이번엔 그쪽이 공격해 보세요.”

    대머리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머리카락만 없는 줄 알았더니 참을성도 없나 보다.

    놈은 둔중한 몸으로 제법 경쾌하게 움직여 내게 달려들었다.

    봉을 반 바퀴 회전시키며 내 목울대 어림을 노린다.

    후웅!

    살짝 머리를 뒤로 젖혀 가볍게 피했다.

    이어서 놈은 반 바퀴를 더 회전시키며 앞으로 나와 있는 하체를 내려찍는다.

    나도 그에 맞춰 살짝 옆으로 몸을 빼면서 몽둥이를 휘둘렀다.

    빡!

    봉이 다시 한 번 확 튕겨 나간다.

    이놈은 학습 능력이 없는 건가.

    리치를 살려서 견제 위주로 공격을 전개해 나갔다면 나도 쉽사리 파고들지 못했을 텐데.

    섣불리 공격을 하면서 틈을 많이 노출하고 있다.

    다급한 몸놀림으로 끌어당긴 놈의 봉을 가볍게 쳐내고 나서 몽둥이를 가로로 휘둘렀다.

    뻐억!

    “끄으윽!”

    옆구리에 몽둥이를 얻어맞은 대머리가 신음 소리를 내며 몸을 숙인다.

    짜악!

    여지없이 손바닥으로 놈의 머리를 내리쳤다.

    “괜찮으십니까?”

    그다음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대머리는 얼굴이 시뻘게져서 날 노려보았다.

    “괜… 찮소.”

    이를 악물며 대답하는 놈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럼 이어서 하죠.”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 달려들었다.

    빡!

    놈의 휘두르는 봉은 제대로 힘이 실리기도 전에 몽둥이에 가로막혔고.

    짜악!

    그리고 다시 한 번 머리 공격.

    “끄으읍!”

    몽둥이는 어디까지나 방어를 하는 것에 그쳤다.

    마무리는 항상 손바닥으로 머리 내려치기.

    녀석은 화가 치밀어서 점점 저돌적으로 달려들었고, 그럴수록 공격하기가 편해졌다.

    놈이 그만이라고 외친 건 머리 정중앙이 손바닥 모양으로 부어오른 후였다.

    “이, 이만하면 되었소. 실력은 충분히 보았으니 그만하도록 하지.”

    대머리는 그 와중에도 무게를 잡으며 얘기했지만, 눈가는 고통 때문인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예, 감사합니다.”

    난 그렇게만 말하고서 뒤로 물러났다.

    이렌과 트렌은 속이 시원해졌는지 웃으면서 나를 맞았다.

    “큰 상처를 입히진 마라.”

    “알겠습니다.”

    다음 차례는 이렌이었고, 난 그녀에게 당부하듯이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갔다.

    대머리는 여전히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그럼 시험을 시작하…….”

    “푸흡!”

    갑자기 이렌이 웃음을 터트렸다.

    대머리의 얼굴이 대번에 일그러졌다.

    이렌이 계속 피식거리며 웃는 통에 이미 시험을 시작할 때부터 대머리의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짧은 결투의 결과는 역시나 이렌의 승.

    얼마 지나지 않아 트렌까지 연이어 결투에 임했고 곧 끝이 났다.

    “모두들… 합격이오. 패는 내일 드릴 테니 다시… 찾아오시오.”

    대머리의 머리에는 손바닥 자국이 선명했고, 눈가엔 추가로 푸른 멍이 생겨 있었다.

    아까 전 이렌이 주먹으로 때려서 생긴 거다.

    트렌과 이렌, 그리고 나도 웃음을 찾느라 힘들었다.

    “예, 수고하십시오.”

    난 끝까지 웃지 않으려 애쓰며 인사를 했다.

    대머리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어딘가로 사라졌다.

    우리는 모험가 연합 건물을 빠져나왔다.

    바하토프는 바로 내 옆에 달라붙어 연신 감탄의 말을 내뱉었다.

    “역시! 주인님은 엄청 강하십니다! 은패 정도는 나오지 않을까요?”

    “은패는 무슨. 기껏해야 철이나 나오겠지.”

    아부성 멘트이긴 했지만, 내 실력을 생각하면 은패에 부족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철패까지면 몰라도, 은패 부터는 실적이 충분히 쌓여야 가능하다.

    사실 철패도 초심자에겐 잘 발급 안 해 주는 게 보통이다.

    대머리가 철 등급이라 들었고, 놈을 말 그대로 가지고 놀았으니 철 등급 정도는 나오지 않을까 생각할 뿐.

    뭐, 그 정도만 돼도 어디 가서 무시 받을 일은 없을 거다.

    “근데… 이제 다음엔 어디로 가실 겁니까?”

    “분수대로 갈 거다.”

    “분수대로 말입니까?”

    “응. 볼 사람이 있거든.”

    난 페일이라고 했던 꼬맹이를 떠올렸다.

    이제 그 초대장이 함정이었는지, 아니면 예의 차린 환영이었는지 확인해 볼 시간이다.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마중 나오겠지.

    * * *

    “그래, 놈이 도시로 들어왔다고?”

    “예, 꿈꾸는 달 여관에 방을 잡는 걸 확인했습니다.”

    “가까운 곳에 있군. 그리고?”

    “놈이 심부름을 시킬 생각이었는지 이름과 거주지를 물었답니다. 그래서 페일이 분수대에 오면 접선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역시 똘똘한 놈이야. 은화 한 닢을 보수로 줘.”

    “알겠습니다.”

    “그리고 분수대에는 인원 배치해 뒀겠지?”

    “예. 언제든지 보이면 바로 보고하라고 했습니다.”

    보고를 하던 남자가 방을 빠져나가고 홀로 남은 사내는 의자에 몸을 기댔다.

    벨루곤에 자리를 잡은 플레이어.

    장현준은 가라앉은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갑자기 벨루곤의 뒷골목에 나타났던 남자.

    처음에는 단순히 강한 NPC일 거라 생각했었지만, 부하들이 보고한 내용들을 취합해 본 후 생각이 바뀌었다.

    플레이어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고, 만약 플레이어가 아니더라도 적어도 확인은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다음엔…….’

    그다음엔 어떻게 할까?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한 질문이었다.

    그는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그의 사고는 자연스레 과거를 향했다.

    맨 처음엔 모든 게 고통스러웠다.

    그의 스타팅 지점은 아무것도 없던 황야.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튜토리얼의 상대는 강도떼였다.

    전작 ‘리얼’을 플레이해 본 적 없던 현준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미친 난이도였다.

    ‘넝마 옷에 단검을 들고 강도랑 싸우다니.’

    결국 강도에게 사로잡히고, 노예로 이 도시에 팔려 오고.

    아무것도 없던 노예의 신세에서 뒷골목 조직의 보스가 되는 과정은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가 얻은 ‘신화’와 스킬들이 아니었다면 이 자리에 오르는 것은 불가능했으리라.

    “후우.”

    그는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우선 보고가 오기 전까지 잠깐 쉴 요량으로 눈까지 감았다.

    “두목!”

    그리고 그 직후에 문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현준은 깜짝 놀라 다시 자세를 잡았다. 목을 가다듬고 낮게 깔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슨 일이냐.”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래.”

    문이 열리고 그의 부하가 들어왔다.

    “내가 두목이라고 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그걸 까먹은 걸 보니 아주 급한 일인가 보지?”

    “그, 그게…….”

    부하는 현준의 지적에 잠시 당황했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두, 아니 사장님이 말씀하셨던 남자가 분수대에 나왔습니다.”

    “그래?”

    별로 중요한 얘기가 아니면 조인트를 깔 생각이었던 현준은 반색을 하며 말했다.

    “그래서 데려오고 있나?”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급하게 왔습니다.”

    부하는 망설이는 듯 머뭇거리다가 곧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그… 사장님이 직접 오랍니다.”

    “뭐?”

    “지, 직접 안 오면 얘기할 생각이 없다고… 죄송합니다!”

    현준은 고개를 숙인 부하를 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그렇게 말했단 말이지.”

    현준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의자에 걸쳐 둔 외투를 입었다.

    “건방진 새끼.”

    말투는 거칠었지만 입가엔 비뚜름히 미소가 걸려 있었다.

    “엉덩이가 무거운가 본데 그럼 직접 가야지.”

    그는 부하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리고 문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그럴 가치가 있는 놈이었으면 좋겠네.”

    부하는 잘게 몸을 떨었다.

    * * *

    “정말 저희 먼저 들어가 있습니까?”

    “그래. 나도 볼일 보고 갈 테니 이놈 데리고 가서 쉬고 있어.”

    “알겠습니다.”

    이렌은 고개를 숙이고 트렌과 바하토프를 데리고 여관으로 돌아갔다.

    난 옆에 무릎 꿇고 앉아 있는 놈에게 물었다.

    아까 전 자신들의 두목이 보고자 한다며 말을 건 부하였다.

    두 명이었는데 한 명은 적당히 손 봐서 돌려보내고 이놈만 남겨 뒀다.

    “그래서 너네 대장이라는 놈은 언제 오냐?”

    “그, 그… 아마 곧 오실 겁니다.”

    녀석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툭툭 두드렸다.

    “나도 그러길 바랄게.”

    놈은 내 눈치를 보며 몸을 떨었다.

    생각해 보면 나도 성격이 많이 바뀐 것 같다.

    어디서 무시 받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적당히 남 눈치도 보고 평범하게 살았는데.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점점 과감해지고, 행동에 있어서 눈치를 잘 안 보게 됐다.

    지금은 필요에 의해 일부러 더 불량스럽게 행동하는 거긴 하지만.

    이런 놈들 상대할 때는 예의를 차릴수록 오히려 만만하게 보이니까.

    “야, 목마르다.”

    난 바로 앞에 있는 가판을 가리켰다.

    “저기서 마실 것 좀 사 와 봐.”

    “예!”

    이 분수대에는 간편한 음식이나 음료를 파는 가판이 많이 있다.

    여행을 위한 도구 같은 것도 있긴 하지만 그런 건 품질은 보증할 수 없다.

    아무래도 제대로 된 장사치들은 각자 자기의 가게를 가지고 있으니.

    녀석은 일어나서 빠르게 앞의 가판을 향해 달려갔다.

    난 녀석의 등을 보다가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잠시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으니 곧 녀석이 음료를 들고 돌아왔다.

    “여, 여깄습니다!”

    이곳의 전통 음료. 정확한 이름은 모른다. 그것을 받아 드는데 갑자기 놈의 어깨에 불쑥 팔이 둘러졌다.

    “이야. 누가 보면 이분 부하인 줄 알겠어?”

    껄렁한 말투.

    이놈의 두목인가. 놈은 부하를 노려보다가 다시 나를 보았다.

    “아, 반갑습니다. 저는 제크라고 합니다.”

    그는 부하의 어깨에 두른 팔을 풀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빤히 바라보다가 나도 손을 내밀어 마주 잡았다.

    “이 깡패들 두목 되십니까?”

    내 말에 놈의 얼굴이 대번에 일그러졌다.

    “깡패들이라니요. 저희는 상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깡패도 상단은 운영할 수 있죠. 그렇다고 깡패가 아니게 되는 건 아니지.”

    난 일부러 깡패라는 말을 강조하며 말했다.

    제크는 웃는 낯으로 날 보고 있긴 했지만 그다지 기분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깡패라고 부르지 마시죠.”

    놈이 협박하듯 으르렁거렸다. 덩달아 맞잡고 있는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이것 봐라.’

    되도 않는 도발.

    사뭇 위협적인 기세를 내뿜지만 그저 우스울 뿐이다.

    웃음을 거두며 마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뭐, 깡패라는 말이 싫으면…….”

    놈의 눈가의 떨림. 분노로 아슬아슬하게 떨리는 입꼬리.

    그것을 살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놈의 얼굴에 머리를 쭉 내밀며 속삭였다.

    “플레이어라고 불러 드릴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