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65화 (65/170)

65화

“생각보다 가깝네요.”

이렌이 저 멀리 보이는 성벽을 보며 말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응. 우리가 달려와서 그런 것도 있지만.”

게다가 바람의 정령의 도움까지 받았다.

덕분에 펜릴을 타고 왔을 때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었다.

나 혼자라면 얼마든지 빨리 달릴 수 있지만, 트렌의 경우는 그런 능력이 전혀 없으니.

아마 정령의 힘이 아니었다면 트렌의 속도에 맞추느라 오래 걸렸을 거다.

트렌은 천천히 걷는 우리의 뒤에서 걷고 있었다.

“헉, 허억. 죄송합니다.”

곧 숨넘어갈 것처럼 헐떡이면서.

“쯧.”

이렌은 그런 트렌을 못마땅한 듯 흘겨본다.

“도착해서 우선 좀 쉬자고.”

속도를 더 늦춰 그의 등을 팡팡 쳤다.

이번 여정은 꽤 길 거다. 저번처럼 잠깐 며칠 동안 나갔다 올 생각은 없으니까.

그런 만큼 오늘은 여관을 잡아서 제대로 쉬고 갈 생각이다.

저번에 왔을 땐 워낙 급해서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돌아다녔었으니.

이번엔 도시의 음식도 제대로 먹어 보고, 푹신한 침대에서 누워서 자고 싶다.

곧 우리는 성문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앞에는 이전처럼 경비병 둘이 서 있었다.

“누구……!”

경비병이 나를 보고 창을 겨누려다가 멈칫한다.

나도 의아해하는 찰나에 경비병은 면갑을 들어 올렸다.

“이번엔 일행도 같이 왔군?”

그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기억이 났다.

저번에 내가 뇌물을 먹였던 그 경비병이다.

이러면 얘기가 편하겠군. 나도 슬쩍 웃으며 품속에서 주머니를 꺼냈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도시에 볼일이 있어서요.”

내가 슥 주머니를 내밀자 경비병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주머니를 낚아챘다.

이번엔 저번보다 더 많이 담아 뒀다.

경비병은 내용물을 확인하곤 환히 웃으며 말했다.

“편히 쉬다 가시게. 벨루곤은 모든 여행객에게 열려 있으니.”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를 하고, 뒤에 서 있던 트렌과 이렌도 꾸벅 고개를 숙였다.

우리는 바로 성문 안으로 들어갔다.

두 번째 오는 것인데도 내부로 들어서니 기분이 묘했다.

활기차게 떠드는 사람들.

도로를 바삐 걸어 다니는 각양각종의 종족들.

그들을 구경하며 쭉 앞으로 걸어갔다.

트렌과 이렌은 내 뒤쪽에 바짝 붙어서 따라오고 있었다. 그들도 도시의 모습이 신기한지 눈을 바삐 굴린다.

도로를 따라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모험가님!”

열 살쯤이나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다.

내가 멈칫하자 아이는 빠르게 말을 쏟아 냈다.

“저희 문라이트 여관엔 따뜻한 목욕물과 맛있는 음식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시원한 맥주도 있고요! 싸게 해 드릴 테니 쉬시다 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래?”

난 잠시 고민하다가 인벤토리에서 은화 하나를 꺼내 들었다.

아이의 눈이 은화를 보고 반짝거렸다.

녀석의 앞에 손을 불쑥 내밀자 아이의 손이 반사적으로 뻗어졌다.

탁-

“네 말대로 정말 시설이 좋으면 은화 하나를 주지. 하지만 마음에 안 들면 돈은 없어. 그 여관이 정말 좋나?”

내 말에 아이는 머뭇머뭇 거리더니 곧 다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이, 돈이 많으신 여행객분인 줄은 몰랐네요! 문라이트 여관도 좋은 데지만 더 고급스러운 곳이 어울리실 것 같네요! 이리 오십쇼!”

아이는 바로 등을 돌리더니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재밌는 아이다.

그 아이를 따라 걸었다.

아이의 말마따나 걸어갈수록 고급스러워 보이는 거리가 나타났다.

곧 아이가 멈춘 곳에는 ‘꿈꾸는 달’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는 건물이 있었다.

“이곳입니다! 벨루곤 최고의 여관! 꿈꾸는 달입니다. 들어오시죠.”

아이는 문을 열어 주며 우리에게 안쪽을 손짓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제법 괜찮아 보이는 내부가 들어났다.

1층은 식당 겸 술집인지 테이블이 널려 있었다.

한낮이라 그런지 술을 마시고 있는 이는 없었지만, 상인이나 모험가로 보이는 이들이 밥을 먹고 있는 게 보였다.

싸구려 여관과 다르게 거칠어 보이는 용병은 별로 없다.

곧이어 카운터에 서 있던 여관 주인이 우릴 보고서 바로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카운터로 걸어가는데 몇몇 시선이 나와 트렌, 이렌에게로 꽂히는 게 느껴졌다.

“이틀간 묵을 거네. 방 세 개와 목욕물, 그리고 식사도 준비해 주게.”

“예! 알겠습니다.”

아직 방을 보진 않았지만 꽤 마음에 든다. 그렇기에 계산을 하고서 아이를 찾았다.

“이리 와.”

아이는 내 말에 쪼르르 달려왔다.

“자, 이건 보수다.”

“감사합니다!”

아이는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고서 다시 가려 했다.

난 그런 아이를 잠시 불러 세웠다.

“이름이 뭐냐?”

아이는 목을 한번 긁적이고서 답했다.

“페일. 페일이에요.”

“나중에 심부름시킬 일이 있으면 어디서 찾으면 되지?”

“낮에는 보통 분수대 근처에 있습니다!”

“그래. 가 봐라.”

아이는 밝은 표정으로 답했다. 페일이 가는 걸 확인한 후 우리는 각자 방으로 올라갔다.

난 인벤토리가 있기에 짐이 없지만 둘은 각자 배낭 하나를 메고 있었다.

짐을 풀고, 목욕을 마친 후 일 층에서 보기로 했다.

잠시 후 직원이 뜨거운 물이 담긴 나무통을 가져다주었다.

물에 몸을 담그며 구슬 하나를 꺼내 들었다.

통신구다.

“야.”

기운을 불어 넣으며 말했지만 묵묵부답이다.

인상을 찡그리며 다시 말했다.

“삼 초 안에 대답 안 하면 죽는다. 일. 이.”

-예! 예! 저 여깄습니다!

“사…….”

삼을 세기 직전에 대답이 들려왔다.

“벨루곤 밖으로는 안 나갔겠지? 저번에 말해 둔 건 다 준비했어?”

-예! 벨루곤입니다! 준비도 다 끝내 놨습니다.

그에게 당장 여관으로 오라고 전하고서 연락을 끊었다.

녀석은 바로 저번에 잡았던 마법사였다.

본래는 부족으로 데려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놈이 벨루곤에 꽤 오래 머물렀었고, 머리 회전이 빠른 놈이라 이곳에 남겨 두고서 심부름을 시켜 뒀었다.

“후우.”

물에서 빠져나와 몸을 말리고 옷을 입은 후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트렌과 이렌은 나보다도 빠르게 일 층에 내려와 있었다.

곧 종업원이 다가와 우리에게 물었다.

“식사를 준비해 드릴까요?”

“그래. 맥주도 시원한 걸로 세 개 가져다주게.”

“알겠습니다!”

탁자 위에 순식간에 음식과 술이 차려졌다.

바로 맥주부터 들이켰다.

“크으.”

짜릿한 탄산이 목을 자극한다.

현대에서 먹던 것보단 못한 맛이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음식이 정말 맛있군요.”

이렌도 맥주와 음식을 먹고선 웃음 지었다.

그러더니 슬쩍 내 눈치를 보더니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호진 님의 음식이 훨씬 맛있습니다.”

“맞습니다!”

트렌도 맞장구를 친다.

오는 길에 내 호칭은 ‘호진’으로 통일해 두었다.

대족장이라는 호칭을 밖에서 쓰긴 부담스러우니까.

픽 웃으며 맥주잔을 들이켰다.

“눈치 보지 말고 먹어.”

“네!”

한참 음식을 먹고 있는데 문이 열렸다.

슬쩍 눈을 돌리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주인님!”

“…닥쳐.”

큰 목소리로 날 부르는 놈에게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녀석은 찔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내가 가리킨 의자에 앉았다.

“이, 이분들은 주인님의 동료분들입니까?”

“그래. 그건 그렇고 말해 둔 건?”

“준비해 뒀습니다!”

놈은 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더니 나에게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이게 그 신분 보증서인가?”

“그렇습니다.”

천천히 종이를 살폈다.

<마법사 바하토프. 진리의 탑 소속.>

녀석의 이름과 소속이 써져 있고, 그 아래로는 장황하게 누군가의 신분을 보증한다는 말이 적혀 있다.

그 ‘누군가’가 써져 있어야 할 곳은 공란이었다.

바하토프에게 펜을 받아서 공란에 나와 이렌, 트렌 세 명의 이름을 적었다.

“주인님이 말씀하신 대로 제국의 신분 패는 수도나 가야 구할 수 있답니다.”

“그래. 이런 곳에서 쉽게 구할 수 있을 리 없지.”

녀석에게 제국 신분 패를 찾아 보라고 말하긴 했었지만 아마 힘들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바하토프에게도 그 점을 미리 말해 뒀었고, 중심적으로 준비해 두라 한 건 바로 이 종이였다.

맥주잔을 타앙- 소리 내게 탁자에 내려 두고서 놈을 노려보았다.

“그래도 모험가 조합의 패를 발급받는 데 문제는 없겠지?”

“예! 제가 신분 보증을 할 수 있으니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합니다. 주인님의 동료분들도요.”

“그래.”

고개를 끄덕였다.

첫 번째로 벨루곤에 온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신분 패 때문이다.

이곳은 뇌물만으로도 충분히 통과할 수 있지만 다른 곳은 다르다.

명확한 신분 패가 없으면 뇌물을 건넸다가 그대로 감옥에 갇힐 수도 있는 거다.

감옥에 가둬 놓고 죄인으로 몰면 굳이 뇌물을 받을 필요 없이 돈을 뜯어낼 수 있을 테니까.

제국의 신분 패보다는 덜하지만 모험가 조합의 패 정도면 충분히 유용하다.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선 대부분 통용되는 것이니까.

“그럼 밥 먹고 바로 출발하도록 하지.”

빠르게 식사를 끝내고서 여관 밖으로 나왔다.

“여기서 금방입니다!”

녀석은 내 눈치를 보며 앞장서 걸어갔다.

도착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하늘이 붉게 물들어 간다.

그나마 해가 안 져서 다행이다. 아니면 패 발급을 다음 날로 미뤄야 했을 테니.

“여깁니다!”

멈춰선 곳은 ‘모험가 조합’ 간판이 달려 있는 이 층 건물.

뒤쪽에는 너른 공터까지 딸려 있는 걸 보니 제법 큰 규모다.

안으로 들어서자 네다섯 명의 사내들이 곳곳에 앉아 있는 게 보인다.

우리가 머물던 여관과 달리 손님들의 면면이 하나같이 험악하다.

뜨겁게 바라보는 눈빛을 무시하고서 바로 카운터로 다가갔다.

오늘따라 참 관심을 많이 받는군.

“어서 오십쇼.”

약간 귀찮아 보이는 듯 나른한 목소리가 우릴 반겼다.

내가 입을 열 것도 없이 흑마법사가 먼저 말했다.

“여기 세 분이 패를 발급받고자 합니다.”

“그럽니까?”

대머리에 얼굴에는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깊은 흉터가 있다.

온몸이 바위처럼 단단해 보이는 사내다.

그는 우릴 유심히 보더니 손바닥을 내밀었다.

“신분증이랑 돈.”

“아! 신분증 대신 신분 보증서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쇼?”

남자는 흑마법사가 내민 종이를 낚아채 갔다.

“마법사 바하토프. 진리의 탑 소속이라. 진리의 탑이면 제국의 거기요?”

바하토프는 자신의 손등을 내밀며 말했다.

“예, 예. 여기 표식도 있습니다.”

손등에는 세모 모양에 가운데 지팡이가 그려진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바하토프가 기운을 불어 넣었는지 곧 표식이 빨간색과 초록색으로 번갈아 가며 빛났다.

“흐음. 맞구려. 알겠소.”

그제야 대머리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음 우릴 바라보았다.

“그래도 돈은 내쇼.”

“알겠습니다.”

대머리가 말한 액수를 바로 꺼내 주었다.

그는 주섬주섬 신분 보증서와 돈을 챙겼다. 그리고 뒤돌아서더니 누군가를 불렀다.

“마옐! 여기 좀 보고 있어!”

“예!”

뒤편에서 문이 열리더니 대머리 남자가 서 있던 곳 옆에 섰다.

대머리는 마옐이라는 사내가 튀어나온 문으로 걸어갔다.

우리가 멀뚱거리며 그걸 보고 있자니 대머리가 뒤돌아서 우릴 보며 말했다.

“멀뚱히 서서 뭐하고 있소? 따라오쇼.”

그 말에 내가 되물으려는 순간 바하토프가 내 귀에 속삭였다.

“시, 신분증을 발급받으려면 먼저 테스트를 해야 합니다. 실력에 따라서 발급되는 게 달라서요.”

“아, 그렇지.”

딱히 모험가 연합에 가입해 본 적이 없어서 까먹고 있던 사실이다.

이 게임은 흔히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용병단의 역할을 이 모험가 조합이 대신한다.

용병패는 실력과 실적에 따라 목, 동, 철, 은, 금, 백금. 여섯 단계로 나뉜다.

우린 대머리를 따라서 문 밖으로 나섰고, 그곳엔 넓은 공터가 있었다.

대머리는 어느새 긴 봉을 들고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놈은 띠꺼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뒤에 두 분은 그렇다 치고, 댁은 그 팔로 칼은 들 수 있겠소?”

난 녀석의 말에 내 팔을 내려다보았다.

내 기준에서 보면 충분히 탄탄한 팔이다.

하지만 저 우락부락한 대머리나 트렌과 이렌이 비하면 가냘파 보이긴 한다.

뒤에 서 있던 트렌과 이렌은 대머리의 말에 인상을 일그러트린다.

난 그들에게 살짝 고개를 젓고서 다시 고개를 돌려 대머리에게 답했다.

“뭐, 그렇다고 시험을 안 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웃돈 내면 동패 정도는 발급해 줄 수 있소. 시험 치다가 다치는 사람도 꽤 있거든.”

“아, 다칠 수도 있습니까?”

“그렇지.”

그렇구나. 다칠 수도 있구나.

“그러면 시험 중에 댁이 다쳐도 별 상관 없는 거요?”

“하하하. 그럴 일은 없지만 그렇소. 모험가라면 자기 몸은 자기가 챙기는 거니.”

“좋네요.”

난 활짝 웃으며 인벤토리에서 무기를 꺼내 들었다.

오랜만에 잡았는데도 아주 친숙한 무기다.

바로 흑단나무 몽둥이.

과거에 잃은 이후에 질 좋은 나무를 찾아서 제작했고, 그 이후로 첫 개시 하는 거다.

“시험 시작하시죠. 봐주지 말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