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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63화 (63/170)
  • 63화

    떨리는 손으로 뇌룡갑을 받아 들었다.

    흉갑 이후로 얻은 첫 파츠였다.

    애초에 처음 뇌룡갑의 흉갑 파츠를 얻었던 것 자체가 우연에 의한 거였다.

    행운 물약을 빨고 상자 깡을 해서 얻었던 거니까.

    지금은 나에게 가장 중요한 아이템이 됐지만.

    “벼락 신께서 주문했던 갑옷이었지. 다른 부위는 이미 다 만들어서 드렸었는데 그건 끝내 전해주지 못했었어.”

    “벼락 신이 주문했던 거라고?”

    “응. 직접 재료를 가지고 찾아 오셨었지.”

    굳은 표정으로 갑옷을 바라보았다.

    탈로스가 자신을 도와준 대가로 줄 물건이 있다고만 들었지 무슨 물건인진 몰랐었다.

    애초에 내가 처음 뇌룡갑을 얻었던 것도 과연 우연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꼭 우연이 아닐 수도 있겠군.’

    행운 물약은 말 그대로 운을 올려 주는 아이템이었다.

    그렇다면 무작위로 좋은 아이템이 나온 게 아니라, 가장 적합한 아이템이 나왔던 게 아닐까?

    “후우.”

    숨을 길게 내뱉고서 천천히 갑옷을 나에게로 가까이 대었다.

    예상한 대로 흉갑과 하체 파츠 사이에 공명이 일기 시작했다.

    촤르르륵!

    갑옷이 산산이 분해되더니 다시 내 하체를 감싸며 조립되었다.

    마치 처음부터 하나의 아이템이었던 것처럼 이음새 하나 없이 매끈하다.

    ‘신기한데.’

    그런데도 몸을 움직이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어때. 괜찮나?”

    “괜찮다마다. 아주 마음에 들어.”

    난 씩 웃으며 말했다.

    처음 뇌룡갑을 얻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제한이 걸려 있는 건 아쉽지만.

    그건 시간을 들여 알아보면 된다.

    “아마 다른 파츠들도 얻을 수 있을 걸세. 본래 뇌룡갑은 하나의 물건이었으니까.”

    “그래?”

    “응. 가까이 가면 알게 될걸.”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선 집에 사제분들이 머물 방부터 만들어야겠군. 이분들이 당분간은 나를 도와준다고 했거든.”

    “그래.”

    단장과 얘기를 더 나눴었나 보다. 사제 둘은 자연스레 탈로스를 따라 거대한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그제야 성 안으로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케륵! 족장님!”

    “반나절 만인데 엄청 오랜만에 보는 것 같네.”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이제 좀 여유가 생길 거야. 고생 많았어.”

    “아닙니다. 케르륵. 저 말고도 모두 열심히 일하고 있어서 힘들다 느낄 틈도 없었습니다.”

    서로 씩 웃고서 우린 신전 쪽으로 걸어갔다.

    “그래. 오늘은 좀 쉬자.”

    신전으로 걸어가며 케륵과 짧은 대화를 나눴고, 그는 신전 안의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바로 방으로 가지 않고 신전을 관리하는 고블린을 찾아갔다.

    “수고하셨습니다. 대족장님.”

    “어, 오랜만이야. 목욕탕 좀 준비해 줘.”

    “알겠습니다. 케르룰.”

    고블린은 목욕탕 쪽으로 향했다.

    나는 다른 사람을 부르기 위해 다른 쪽으로 다시 걸어갔다.

    긴 복도를 지나 멈추어 선 곳은 어떤 문 앞이었다.

    똑똑.

    “계십니까?”

    안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곧 누군가가 나왔다.

    “형제님.”

    바로 단장이었다.

    “쉬시는데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무슨 일이시지요?”

    “같이 목욕탕이나 가시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단장은 알겠다고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위치는 어디인지 아시지요? 먼저 가 있겠습니다.”

    “네. 저도 준비 마치고 가겠습니다.”

    다시 문이 닫히고 나는 바로 목욕탕으로 향했다.

    저번엔 그냥 나신으로 들어갔지만 이번엔 미리 준비해 둔 하얀 천을 걸쳤다.

    스륵.

    부드러운 천이 몸을 기분 좋게 감싼다.

    “다 준비되었습니다.”

    “고마워.”

    탕을 준비하던 고블린 셋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서 밖으로 나갔다.

    간단하게 물로 샤워를 한 후에 탕으로 들어갔다.

    “후우.”

    몸이 풀리며 기분 좋은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단장이 들어왔다.

    단장도 나와 같이 하얀 천을 두르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서 내 맞은편에 앉았다.

    탕에 몸을 담근 단장은 나른한 웃음을 띠며 얘기했다.

    “가끔 수도에 들를 때나 누렸던 호사를 이렇게 자주 즐길 수 있으니 기쁘군요.”

    나도 마주 웃으며 얘기했다.

    “가끔씩은 이런 여유도 필요하지요.”

    한마디씩 주고받은 이후에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도 굳이 말을 걸려고 하지 않고 탕을 즐겼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먼저 침묵을 깬 건 단장이었다.

    “탈로스 형제께서 기억이 온전치 않은 건 아쉬운 일입니다.”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그 의미를 바로 이해했다.

    “오랫동안 마에 침식되어 있던 탓이겠지요.”

    “예. 더 자세한 얘기를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내일 떠나실 예정입니까?”

    그의 뜬금없는 말만큼이나 나도 갑작스러운 질문을 던졌다.

    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부 전선에서 활동하시는 분들 중 도움이 될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는 분이 계십니다.”

    “아티팩트요?”

    “예. 마를 정화하는 힘을 가지고 있지요. 완전히 없애진 못해도 억누르는 데는 도움이 될 겁니다.”

    “탈로스에게 큰 도움이 되겠군요..”

    서로 웃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긴 했지만 묘한 긴장감이 어려 있었다.

    그의 정확한 속내를 아직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장이 기대하던 것과 달리 탈로스는 ‘백룡’에 대한 기억을 별로 떠올리지 못했다.

    사실 나도 탈로스가 백룡의 이름을 꺼냈을 때 깜짝 놀랐었다.

    바로 생각나는 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을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기억 속에서 보았던 흰 머리의 사내.

    다른 이의 생김새와 이름을 생각하면 그에게 딱 어울리는 이름은 바로 백룡이 아닐까.

    단장은 이어서 말했다.

    “저희 교단엔 신의 여러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간, 트롤, 오크, 용종 등등. 그게 저희 교단이 종족을 가리지 않는 이유지요. 그래서 저희 교단에선 신의 모습을 특정 짓지 않고 있지요.”

    우리 벼락 교도 다양한 종족으로 구성되어 있긴 하지만 사실 흔한 경우는 아니다.

    각 종족마다 믿는 신이 조금씩 다르고, 신도는 다양해도 종교의 주축은 한 종족으로 이루어진 게 보통이다.

    내가 그를 빤히 보자 그는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하지만 사실 제일 많이 기록된 건 용의 모습입니다. 백색의 몸을 가진 용이요.”

    “백룡이군요.”

    “예. 게다가 기나긴 역사 속에서 탈로스 님처럼 제정신을 되찾은 사례는 처음입니다. 그림자와 같은 마물에게 당한 것과는 다르지요. 그는 마물 그 자체였으니까요.”

    “예. 저도 처음 보는군요.”

    “그렇죠. 그리고 대족장님에게도 상당히 관심이 갑니다.”

    “저한테요?”

    그는 탕의 벽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벼락 교. 저희 기록에도 남아 있는 이름입니다. 마경 내부에 있는 부족들의 종교를 조사한 기록이죠.”

    “그렇습니까?”

    흥미로운 말이다.

    나조차도 벼락 신이나 대지 신에 대한 정보는 직접 만나고 나서야 알았으니까.

    “예. 자세한 정보는 없지만요. 그런데 그곳의 대족장님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그렇군요.”

    어차피 그를 데려올 때부터 생각하고 있던 것이기에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외부인 중에 우리가 바깥으로 진출했다는 걸 아는 건 이 남자밖에 없을 거다.

    아, 그 여자도 포함이군.

    여튼 요새를 함락할 때 빠져나가는 이가 없게 특별히 신경 썼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우리들의 존재는 널리 알려질 거다.

    계속 이곳에 박혀 있을 생각은 없었으니까.

    “동부에 갔다 오는 건 아마 이 주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대화도 끝냈다.

    곧 나는 먼저 나가겠다고 말하고서 밖으로 나왔다.

    침실로 돌아가 잠을 청했고.

    다음 날 단장은 단원 둘을 남겨두고서 떠났다.

    * * *

    그가 떠나고 난 후 난 다시 침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오랜만에 노트를 펼쳐 들었다.

    게임에 대한 정보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기록해 두던 노트였다.

    첫 페이지를 펼치고서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내용들을 곱씹으며 필요한 것들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계획들을 되짚었다.

    ‘이제 슬슬 움직여야 해.’

    지금까지는 부족의 성장을 위해 달려왔다.

    마경 외곽 지역을 통합하고, 바깥으로 진출하는 데까지 성공했다.

    현재 위치한 성, 인간 마을, 제1벼락 부족.

    총 세 곳에 나뉘어 있는 세력은 천천히 통합 과정을 거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 역할의 중요성은 높지 않다.

    무엇보다 본래 내 목표.

    ‘게임 클리어.’

    그것을 위해선 슬슬 더 넓게 보고 넓게 움직여야 한다.

    그때 여자처럼 대륙 곳곳엔 플레이어들이 있을 거다.

    그들 중에는 어쩌면 단서를 획득한 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난 긴 고민을 이어 나가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머리가 복잡하다.

    마음 같아선 그냥 이대로 쉬고 싶었지만 오늘은 회의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냥 노트를 다시 읽어 보며 생각을 정리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회의 준비가 끝났다고 날 데리러 왔고, 난 회의장으로 향했다.

    이렌. 트렌. 케륵. 크룩. 그리고 케륵이 소환해 둔 그룬까지.

    모인 모두의 면면을 확인하며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럼 회의를 시작하지.”

    대부분의 안건은 부족의 운영에 관한 것이었다.

    현재 인간 마을의 경우는 신전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리고 마하룬 요새의 경우에는 병력 양성 및 물건 제조를 맡고 있고.

    마경 내부의 경우도 비슷했다.

    계속해서 영지 확장을 이어 가고 있기에 조금 방만하게 운영되는 감이 있었다.

    우선은 당분간은 영지 확장을 할 생각이 없기에, 천천히 시간을 들여 각 도시의 역할을 분명히 하기로 했다.

    이후로도 회의가 계속 진행되고, 곧 마지막 안건으로 들어갔다.

    “그럼 성 이름은 폴그룬으로 할까?”

    -흠, 흠. 난 찬성이네.

    “저도 좋습니다. 크룩.”

    “케르륵. 저도 괜찮습니다.”

    “저도요.”

    마지막 안건은 바로 이곳의 이름을 짓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제1벼락 부족, 제2벼락 부족으로 불렀지만, 슬슬 지칭할 단어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나중엔 왕국을 건립할 거니까.”

    그룬의 풀네임은 프리멈 폴그룬.

    맨 처음 폴그룬이라는 이름을 추천한 것도 그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폴그룬이라는 뜻은 고대어로 ‘벼락’을 뜻한다 했다.

    과거 도시의 이름도 폴그룬이었고, 대사제들은 그 이름을 계속해서 계승했었다 한다.

    “좋아. 그럼 폴그룬으로 하는 걸로 하지. 저녁 기도 시간에 케륵 네가 말해 두어라.”

    “케르륵. 알겠습니다.”

    마지막 안건을 끝으로 회의가 끝났다.

    모두들 내 마지막 말을 기다리며 나를 보았다.

    떠난다는 걸 지금 말해야겠지?

    난 몇 번 입을 떠듬거리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우리.”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건 다른 얘기였다.

    “소풍이나 한번 갔다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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