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쿵- 쿵-
얼마 지나지 않아 내 귀에도 소리가 들렸다.
땅을 울리는 소리.
그러고 보면 나도 참 거대한 적을 많이 상대했었다.
아무래도 부족의 장을 맡으며 전쟁이나 거대 괴수들 위주로 사냥을 했기 때문이다.
이제 마경 외곽에서 나왔기에 거대 괴수종보다는 마물들을 상대할 일이 점점 많아지겠지만.
쿠웅!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모두 몸을 바짝 낮추어서 놈이 오길 기다렸다.
반대편 숲에서 초록색의 몸이 불쑥 튀어나왔다.
말 그대로 청동 거인의 모습이다.
탈로스는 집으로 가까이 다가가다가 갑자기 멈춰서더니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킁킁-
놈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다시 집으로 걸어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결계를 알아채진 못하는군요.”
난 단장에게 말했다.
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탈로스라는 마물은 지능이 높은 편입니다. 인간과 비슷하거나 살짝 낮을 거라고 알려져 있죠. 하지만 마법에 대한 조예는 전혀 없는 걸로 압니다.”
“저런 덩치에 마법까지 알면 그야말로 재앙이겠군요.”
“그렇죠.”
이곳에 자리를 잡자마자 했던 게 결계를 설치하는 것이었다.
탈로스가 먼저 우리의 존재를 알아채고 달려든다면 곤란할 테니까.
“그럼 계획대로 하죠.”
“예.”
그는 집을 본 후에 대략적인 계획을 짜서 내게 말해 주었었다.
사제 한 명이 조심히 집으로 다가간다.
곧 구멍을 찾아내더니 그 안으로 자신의 몸만 한 물건을 박아 넣었다.
강력한 수면 효과를 발휘하는 물건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다 싶었을 때 펜릴을 시켜 다시 집 안을 살펴보라고 했다.
탐색을 하고 온 펜릴은 탈로스가 누워서 자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럼…….”
“이동합시다.”
단장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나도 고개를 끄덕이고서 펜릴의 등에 올라탔다.
늑대들은 전투가 끝날 때까지 대기하기로 했다.
최대한 기척을 죽이며 다가갔다.
집의 모서리에 도착한 후 사제들은 기둥을 붙잡더니 빠르게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난 아예 몸을 훌쩍 날려 지붕에 먼저 안착했다.
곧 사제들이 속속들이 지붕에 도착한 후 우리는 중앙쯤으로 이동했다.
단장이 손가락으로 지붕 바닥을 가리키더니 지팡이로 찌르는 듯한 몸짓을 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사제들이 둥글게 모여 단봉과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신성력으로 지붕에 둥근 구멍을 낸 후에 옆으로 치워 버렸다.
탈로스는 아무것도 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단장과 사제들은 품에서 마스크를 꺼내어 착용했고, 나에게도 하나 나누어 주었다.
아직 집 내부에 퍼져 있는, 수면 향을 막아 주는 아티팩트였다.
‘돌려달라고 안 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사제들을 따라 구멍을 내려다보았다.
단장이 먼저 자신을 가리켰다가 구멍을 가리키고서, 훌쩍 뛰어내렸다.
사제들이 속속들이 구멍으로 뛰어내린다.
나도 마지막으로 아래로 몸을 날려 바닥에 착지했다.
탈로스의 거대한 몸체가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밖에서 봤을 땐 집이 크다고 생각했는데, 탈로스의 덩치가 얼마나 커다란지 오히려 비좁아 보일 정도였다.
놈이 숨을 쉴 때마다 거센 바람 소리가 났다.
그나마 잠꼬대가 안 심해서 다행이다. 놈이 몸만 뒤집어도 우리에겐 재앙이다.
탈로스는 검과 창이 박히지 않는 강인한 가죽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놈은 전투 상태에 들면 가죽이 갑자기 검은색으로 변한다.
유저들이 관찰했던 바에 의하면 탈로스는 평소엔 난폭하지도 않고, 지능도 높아 보인다고 했었다.
반면에 놈이 전투 상태에 들면 가죽이 검은 상태로 바뀌며 안 그래도 강인하던 가죽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화된다고 한다.
대신에 지능은 현저하게 떨어져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 한다.
‘깨어나기 전에 상처를 입혀 둬야 해.’
우리의 목표는 놈이 전투 상태로 돌입하기 전에 최대한 부상을 입히는 것.
단장이 반, 부단장 둘이 나머지 반의 단원들을 데리고서 양쪽 발목 앞에 섰다.
나는 부단장 쪽에 서 있었다.
부단장은 목에 걸린 원형의 상징물을 꽉 움켜쥐었다.
사제들도 따라서 같은 행동을 취했고, 입만 뻐끔거리며 무언가 중얼거리더니 곧 그들에게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부단장이 가장 앞으로 나와서 단봉을 높이 들었다.
손으로 단봉의 양쪽을 쥐더니 그것을 각 반대쪽으로 돌린다.
찰칵.
단봉이 분리되더니 그 안에서 칼날이 나온다.
찰칵. 찰칵. 찰칵.
나머지 사제들도 똑같이 단봉 안에서 칼날을 꺼내 들었다.
화아악.
칼날이 신성력으로 하얗게 빛나고, 모두 동시에 높이 들어 올렸다.
반대쪽에서도 비슷한 동작이 이루어졌고, 단장과 부단장이 서로 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 칼날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파아아악!
거죽이 베어지며 피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거인의 몸이 크게 요동치는 통에 사제들은 뒤로 훌쩍 물러났다.
하지만 난 기운을 거세게 끌어올려 속살이 드러난 곳에 손을 가져다댔다.
파지지지지직!
전격이 놈의 몸 안을 파고든다.
이어서 탈로스가 몸을 번쩍 일으키더니 입을 벌려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끄으으으으으아!
나도 순간적으로 귀를 틀어막을 정도로 큰 소리였다.
일반인이 가까이 있었다면 고막이 터졌을지도 모른다.
탈로스는 핏발 선 눈으로 바닥을 노려보았다.
곧 놈은 우리를 발견했다.
동시에 놈의 발끝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났다.
꽈드드드득!
초록색이던 피부가 빠르게 검은색으로 물든다.
발에 나 있던 상처도 순식간에 덮여 버리고, 피도 멈추었다.
놈은 마치 파리를 잡듯 우리를 향해 손바닥을 내리쳤다.
꽈앙!
뒤로 훌쩍 몸을 날렸지만 땅이 진동하는 게 똑똑히 보였다.
게다가 훅 불어온 바람 때문에 내 몸도 뒤로 밀려났다.
단장이 들고 있던 지팡이는 어느새 창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는 큰 목소리로 외쳤다.
“모두 상처가 났던 곳을 공략해라!”
탈로스는 발과 손을 이용해 계속 공격해 왔다.
사제들은 빠른 몸놀림으로 피하며 아킬레스건 쪽을 공격했다.
-꾸우어어어엉!
탈로스의 손바닥이 내가 있던 자리를 찍는다.
꽝!
난 바로 옆으로 몸을 피했지만 놈의 손바닥이 휙 들리더니 다시 날 노리고 날아들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날려 놈의 엄지손가락 쪽을 박차고 훌쩍 뛰어올랐다.
탁!
인벤토리에서 뇌룡창을 꺼내 들고 기운을 불어 넣었다.
맹렬하게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한 점에 모아 그대로 찔러 넣었다.
카앙!
하지만 창날은 탈로스의 가죽을 뚫지 못하고 그대로 튕겨 나왔다.
단단한 금속과 부딪힌 것 같았다.
철이나 바위도 깨부수는 공격이 그대로 튕겨 나왔으니 어마어마하게 단단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갑자기 탈로스의 몸이 비틀거렸다.
-꾸우엉!
다시 탈로스에게 거리를 벌리며 바닥을 내려다보니 단장이 오른쪽 발에 창을 박아 넣은 게 보였다.
아까 전 상처를 냈던 곳이었다.
‘단장의 생각이 맞았군.’
그는 검은색으로 변하기 전에 공격을 한 부위는 방어력이 낮을 것이라고 했었다.
예전에 탈로스를 잡았던 유저는 그냥 주구장창 발목을 공격해 잘라 냈었다고 했었는데.
그 과정에서 사백의 병사가 죽었다고 한다.
그걸 생각하면 아주 고무적인 일이었다.
한 명의 희생도 없이 놈의 가죽을 뚫었으니.
“놈이 집 밖으로 못 벗어나게 해! 거리를 너무 벌리지 마!”
모두들 위험할 정도로 탈로스의 몸에 가까이 붙어 있었다.
현재 탈로스는 비좁은 공간 탓에 공격 경로가 한정되어 있었다.
만약 놈이 집 밖으로 나간다면 더 힘든 싸움이 될 터.
“여길 봐라!”
난 놈의 머리 근처까지 날아 오른 후에 창을 뒤로 당겼다.
콰르르르르릉!
창에 벼락이 깃들고 그대로 놈의 눈을 향해 돌진했다.
까아아앙!
‘제기랄.’
놈의 눈을 찌르기 직전 눈꺼풀에 창이 가로막혔다.
눈꺼풀 정도면 뚫려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쉴 틈도 없이 놈이 나를 향해 팔을 휘둘렀다.
다른 이들과 달리 높은 지점에 머물며 계속 공격해 대는 나부터 처리할 생각인지 양손을 나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팔이 아래에서 위로 치솟아 오른다.
그걸 피하기 위해 허공으로 한 번 더 몸을 띄웠고, 그때를 노려 놈이 가로로 팔을 휘둘러 왔다.
뻐억!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기운을 모아 앞을 막았지만 해소되지 않은 충격이 날 그대로 날려 버린 것이다.
튕겨 나가 벽에 부딪힌 후에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끄으으읍.”
존나 아프다.
고개를 드니 난 탁자 같은 것에 떨어진 상태였다.
바로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내서 들이켰다.
사제들은 계속해서 피해 다니며 발을 집중 공격하고 있었다.
뻑!
그때 탈로스가 기습적으로 발을 내리찍었다.
그 자리에 있던 사제가 가까스로 그 공격을 피했다.
“모두 집중해! 방심하면 죽는다!”
단장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야말로 한 끝 차이였다. 만약 조금만 늦었다면 저 사제는 그대로 시체가 되었을 거다.
나도 포션의 힘으로 빠르게 몸을 회복했다.
다시 몸을 날리려는데 무언가가 툭 하고 발에 걸렸다.
‘뭐가……?’
금속으로 만든 듯한 물건이 하나 있었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던 문양이었다.
“이게 왜 여기에?”
손을 뻗어 그것을 들었다.
“끄아아아아악!”
자세히 살펴보려 했지만 앞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에 난 그것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사제 한 명이 거인의 발에 치인 듯 벽 쪽에 쓰러져 있었다.
난 그쪽으로 몸을 날렸다.
바로 그곳에 착지한 후 그의 입에 포션을 흘려 넣어 주었다.
짝!
기절해 있는 그를 깨우기 위해 뺨을 강하게 때렸다.
“기절해 있으면 죽습니다. 차라리 밖으로 피하세요.”
“저, 저는 괜찮습니다.”
사제는 내 싸대기에 정신을 차려서 다시 몸을 일으켰다.
-꾸워어어어어엉!
그때 다시 한 번 거인이 고함을 내질렀다.
쿵! 쿵!
이제까지 사제들을 공격하는 데 주력하던 놈이 그들을 무시하고서 문으로 달려갔다.
퍼엉!
거인의 몸이 그대로 문짝에 부딪히면서 바깥으로 튀어 나갔다.
우리도 지체할 틈 없이 밖으로 따라 나갔고, 거인은 집과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후에 우리를 보았다.
“그으으, 건, 건방진 것들!”
탈로스가 어눌한 말투로 소리쳤다.
난 그 내용보다 탈로스가 말을 했다는 것 자체에 놀랐다.
“어떻게?”
그것은 단장도 마찬가지였는지 입 밖으로 의문을 꺼냈다.
단장도 나만큼은 아니지만 탈로스에 대해 꽤 많은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둘이 알고 있는 것의 공통점은 피부가 검은색으로 바뀌었을 땐 놈의 지능이 현저히 낮아진다는 거였다.
한마디로 말을 할 리가 없다는 거다.
탈로스가 자신의 근처에 있는 바위를 집어 든다.
‘현재 그는 어떤 일로 인해 약간의 이지를 되찾았습니다.’
문득 퀘스트 메시지가 생각났다.
이지를… 되찾았다고 했었지.
후우웅!
거인이 집어 던진 바위가 하늘을 난다.
우리의 머리 위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꽈아아앙!
바위와 땅이 부딪히며 거친 모래바람이 피어올랐다.
“모두 죽여, 죽여 주마!”
이어서 탈로스는 손을 뻗더니 옆에 있는 나무를 잡았다.
콰드득!
놈은 그대로 나무를 뽑아 버리더니 봉처럼 들어서 그것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꽈앙!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질량의 공격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놈이 거동을 제대로 못 한다는 거였다.
사제들이 줄기차게 공격하던 발쪽이 어느새 초록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마물을 상대로 강한 힘을 발휘하는 그들의 신성력 덕분인 것 같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순간이다.
지금까지는 준비 과정에 불과했다.
발을 공략한 것은 놈을 수월하게 묶어 놓기 위한 것뿐이다.
치명상을 입힐 방법은 따로 있다.
난 인벤토리에서 구슬을 꺼냈다.
대지의 오브. 그 신물에 기운을 불어넣으며 크게 소리쳤다.
“크룩! 공격해!”
드드드드드드!
땅이 치솟아 놈의 발을 타고 쭉 감싼다.
쿵! 쿵!
그와 동시에 거인이 된 크룩이 숲에서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