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이 씨, 씨발!”
갑자기 한 놈이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맨 뒤에 서 있던 놈이었다.
그놈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어둠 속에서 팔이 쑥 튀어나왔다.
“아악!”
팔은 놈의 멱살을 잡더니 그대로 바닥에 꽂아 버렸다.
꽝!
그 일격에 놈은 기절한 듯 몸을 축 늘어트렸다.
저벅. 저벅.
그리고 누군가가 그대로 놈의 몸을 질질 끌면서 걸어왔다.
“신이시여.”
낮은 읊조림.
“미천한 종에게 힘을 주소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남자.
검은색의 의복을 입고 목에는 가운데가 뚫린 원 모양의 펜던트를 끼고 있다.
“악한 이를 벌하는 것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사내는 말을 마치고서 갑자기 사내를 앞으로 휙 집어 던졌다.
파악!
뒤에 서 있던 부하들은 엉겁결에 자신의 동료를 받아 들었다.
동시에 뒤에서 다시 한 번 소리가 들렸다.
딱.
무언가를 바닥에 내리치는 소리.
내 뒤에서 똑같은 복장의 남자가 나타났다.
손에는 검은색의 단봉을 들고 있다.
“안녕하십니까, 형제님.”
그는 나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나도 엉겁결에 그에게 똑같이 고개를 숙였다.
“잠시 옆으로 물러나 주시겠습니까?”
“이놈은 제가 처리해도 됩니까?”
안면이 피투성이가 된 잭을 들어 보이며 물었다.
“이, 이 쉬바러미! 이거 노으으으으그그!”
반항하려는 기색이기에 바로 전격으로 지져 줬다.
“예, 마음대로 하시지요.”
사내는 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잭을 들고서 그대로 옆으로 물러났다.
“너희는 뭐야!”
부하 한 명이 새롭게 나타난 사내들을 향해 소리쳤다.
“저는 카일이라고 합니다.”
내 옆에 있는 사내가 나를 지나쳐 앞으로 나왔다.
“잘 부탁드립니다.”
부하들은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는지 쉽사리 덤벼들지 못했다.
“야, 너네 대장 안 구해?”
깡패들을 격려하기 위해 손바닥으로 잭의 뺨을 내리쳤다.
짝!
“계속 때릴까?”
“으으, 조져!”
부하들이 결국 카일이라는 사내와 뒤에 서 있는 남자에게로 나뉘어 덤벼들었다.
“이들에게 신의 축복을.”
그리고 카일과 다른 사내는 동시에 단봉을 들어 올렸다.
카일의 단봉이 가장 앞에 있던 사내의 팔을 찍는다.
빠악!
팔이 그대로 뒤틀린다.
맞은 놈이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단봉이 다른 놈을 가격했다.
뻑!
순식간에 신형이 허물어진다.
뒤에 서 있던 사내의 기세도 흉흉하긴 마찬가지였다.
“아악!”
“악!”
연이어 비명이 울려 퍼진다.
단봉이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부하들이 들고 있는 무기가 떨어진다.
다시 한 번 휘둘러질 때는 꼭 한 명씩 바닥에 누웠다.
게다가 발 또한 쉬지 않고 움직이며 쓰러진 사내들의 손목이나 발목을 지르밟았다.
내가 잭을 혼자서 걷지도, 숟가락을 들지도 못하게 만드는 동안 그들은 스무 명의 부하들을 모두 때려눕혔다.
“팔과 다리는 모두 분질러 놓았습니까?”
“예, 카일 사제님. 빼놓지 않고 확인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둘은 가운데에서 만나 얘기를 나누더니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다.
잭을 대충 쓰러진 사내들 틈으로 던져두고서 나도 그들을 보았다.
“마물을 찾으신다고 했었나요?”
“그렇습니다.”
고개를 까닥였다. 카일은 날 물끄러미 보더니 팬던트를 한번 쥐고서 다시 입을 열었다.
“단장님이 찾으십니다.”
“가시죠.”
이제 이틀째.
그들을 찾았다.
씩 웃고서 그들을 따라갔다.
나름 골목길을 많이 돌아다녔다고 생각했는데.
사제들을 따라서 이동하는 경로는 상당히 복잡했다.
꺾고, 돌고, 옆으로 빠졌다가, 담을 넘고.
이래서 그렇게 열심히 돌아다니면서도 못 본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걸었을 때 어느 순간 검은색의 천막이 보였다.
“아! 오셨습니까!”
그리고 그 앞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형제님들은 안에 들어가 계시지요.”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하는 말에 날 데려온 사제 둘은 꾸벅 인사를 하고선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전 사제단을 이끄는 단장입니다.”
“아, 예.”
단장은 웃는 낯으로 날 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마물을 찾으신다고요?”
“그렇게 말했었죠.”
사내의 손에는 지팡이가 들려 있다.
검은색의 지팡이로, 위에는 가운데가 뚫린 원이 조각되어 있다.
잊힌 신의 사제들.
그들의 단장에게 주어지는 무기였다.
단장은 내 말의 뉘앙스를 바로 알아듣고 되물어 왔다.
“음, 다른 용건이 있으신 겁니까?”
“사실은 마물을 하나 처리해 주셨으면 합니다.”
내 말에 단장이 팔짱을 꼈다.
“어떤 마물입니까?”
“그림자입니다. 현재 당한 지 이틀째입니다.”
이어서 그림자를 막아 냈던 일을 말해 주었다.
단장은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침음성을 흘리기도 했다.
“그렇군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말과 표정만 봐서는 정말로 안타까운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저희의 사정상 쉽사리 거점을 옮기기가 힘든 상태입니다.”
하지만 이어진 말은 거부의 의사가 내포되어 있었다.
잊힌 신의 사제들은 분명히 마물을 처리하는 것이다.
마물을 발견한다면 당연히 잡는 게 맞지만.
‘이들도 먹고, 자고, 싸야 하는 이들이지.’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렇기에 난 담담하게 준비해 두었던 물건을 꺼냈다.
“사제님들이 정화를 위해 헌신하시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갑자기 단장에게서 강렬한 기세가 퍼져 나왔다.
난 이 사제들을 어떻게 데려올 수 있을까 고민했었다.
이들은 마물을 없애는 대가로 보수를 받기도 한다. 그래서 돈도 준비하긴 했다.
하지만 만약 부정적인 의사를 내비칠 경우엔 다른 방법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다.
특히 이들이 먼저 추적하고 있는 마물이 있다면 내 부탁에 응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면 지체될 수도 있고.
조금만 늦어진다면 내 부하들은 모두 그림자에게 먹혀 버리고 말 것이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단장이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나도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으며 이를 악물었다.
꺼내 들고 있던 주머니를 열고서 내용물이 잘 보이도록 그에게 내밀었다.
“청동 거인 탈로스에 대한 단서를 알고 싶지 않습니까?”
주머니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청록색의 아주 얇은 금속이었다.
* * *
빈민가 쪽에 터를 잡고 있던 블레이드 조직이 완전히 와해되었다는 소문.
블레이드 조직의 두목 잭이 혼자서 거동도 제대로 못 하는 병신이 되었다는 소문.
얼마 지나지 않아 블레이드 조직의 조직원들이 하나둘 시체로 발견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잭이 대로변과 가까운 골목에서 시체로 발견되었고.
그 소문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블레이드 조직을 와해시킨 놈이 한 명이었다는데?”
“나도 들어봤어. 저번에 빈민가를 헤집어 놨던 놈 말하는 거지?”
“어. 그놈이 잭 팔다리를 아예 병신을 만들어 놨었대.”
“그래서 원한 샀던 놈들한테 다 당한 거구만.”
신나게 떠들고 있는 사내들.
그때 그들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야, 뭔 얘기를 그렇게 재밌게 하냐?”
이제 스물, 스물하나나 되었을까.
서른 가까이 되어 보이는 사내들에 비해 한참 어려 보이는 청년이었다.
하지만 사내들은 황급히 몸을 일으켜 공손한 자세를 취했다.
“두목! 오셨습니까!”
“두목은 무슨. 사장님이라고 부르라고 했지.”
“예! 사장님!”
“그래. 말 잘 듣네.”
소년은 사내의 어깨를 툭툭 치고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놈이 누군데?”
“아! 두, 아니 사장님, 아직 못 들으셨습니까?”
“뭐. 누구 말하는 건데.”
사내는 소년에게 열심히 설명했다.
얘기를 다 들은 후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까리한 놈이네.”
“예?”
“아니, 뭐 재밌는 놈이라고.”
소년은 몸을 일으켰다.
플레이어 장현수.
그는 범죄 도시를 장악하기 위해 양지와 음지 양면으로 조직을 확대하고 있었다.
‘어찌 됐든 바빠지겠군.’
쟈칼의 빈자리를 많은 조직들이 탐내고 있을 터.
빈민가라고 불리는 구역이지만 의외로 알짜배기 사업들이 많은 곳이었다.
“야! 가자! 땅따먹기 하러.”
그는 생긋 웃음을 지어 보이며 발을 옮겼다.
* * *
난 지난 삼 일간의 기억을 정리하며 다시 시선을 돌렸다.
부단장들이 남자의 몸을 꾹 누르고 있다.
단장은 평온한 얼굴로 그의 입을 가리키며 말했다.
“입을 막아 주세요.”
“예.”
트롤 부단장이 천을 꺼내 들더니 그것을 남자의 입으로 넣었다.
“혀가 다칠 수도 있으니 꼼꼼히 확인해 주시길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단장의 말에 부단장은 남자의 혀 위아래로 천을 꼼꼼히 감싸서 넣었다.
“끄으으읍끕!”
입이 막힌 남자는 당황한 듯 무어라 소리쳤지만 천에 막혀 그저 의미 없는 외침이 되었다.
“우리는 신의 이름 아래 모두 한낱 종일 뿐입니다.”
단장은 기도문을 읊으며 장갑을 꼈다.
검은색으로 된 가죽 장갑.
“종족과 연령, 성별에 상관없이 우리는 하나이며, 모두 신의 자비 하에 생을 누리고 있습니다.”
남자가 몸부림을 치자 양쪽에 서 있는 부단장이 어깨를 꾹 내리누른다.
“하지만.”
그리고 남자의 앞에서 기도문을 읊던 단장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비로운 신의 피조물을 오염시키는 마물들은 그 본성이 악랄하고 흉악하며, 인간의 정신을 파괴시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신의 뜻을 행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후우우웅-
단장의 가죽 장갑 위로 새하얗게 신성력이 둘러진다.
“특이종에 속한 마물. 그림자의 정화 의식을 시행합니다.”
그의 주먹이 높게 들어 올려졌다가 남자의 턱을 후려갈겼다.
뻐억!
남자의 고개가 옆으로 획 젖혀진다.
어우, 아프겠는데.
사제는 다시 주먹을 들어 한 번 더 남자의 얼굴을 내리찍었다.
“저, 저게 뭡니까? 케르륵.”
케륵이가 나를 향해 물었다.
사제는 점점 더 속도를 올려 남자의 얼굴을 내리찍고 있었다.
피가 튀고 남자의 얼굴이 부어올랐다가 신성력에 의해 다시 치유된다.
이가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가 하얀 빛에 닿자 다시 입안으로 빨려 들어가 자리 잡는다.
사제 중에서도 아주 높은 등급의 고위 사제나 가능한 이적이었다.
상처를 치유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되감기를 하는 것 같은 모습.
“마물 정화를 전문으로 하는 사제들이다.”
“크룩, 저게 정화를 하는 겁니까?”
“응. 저게 저분들의 정화 방법이야.”
단장은 여전히 남자를 고루고루 때리고 있었다.
빡! 빠악!
단장의 주먹이 갈수록 빨라진다.
다른 종교의 고위 사제들은 단순히 신성력을 뿜어내는 것만으로도 정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 사제들에게 그런 걸 바랄 수는 없다.
어차피 고통을 느끼는 건 그림자이기 때문에 폭력적인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보기엔 굉장히 살벌하지만.
“후우, 부단장들도 이제 도와주시지요.”
“알겠습니다.”
단장이 발로 남자의 가슴을 걷어찬다.
퍽!
남자는 은사슬에 묶인 채로 그대로 바닥에 털썩 엎어졌다.
“부디 어린 양이 신의 품으로 돌아오길 바라며.”
“마물의 날카로운 이빨을 모조리 뽑겠나이다.”
두 부단장이 이어 가며 말을 하고서 단장이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기도합시다.”
그리고 세 명의 발이 높이 들린다.
퍽! 퍽! 퍼벅!
그대로 그들의 발이 남자를 짓밟기 시작했다.
굽이 강철로 되어 있는 신발에 밟히는 건 어떤 기분일까.
-저, 저래도 되는 겁니까?
“응. 원래 미친개에겐 매가 약이잖아.”
난 펜릴의 털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펜릴이 내 손길에 움찔 몸을 떤다.
“그렇지?”
활짝 웃으며 펜릴을 보자 그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저번 욕설 사건 이후로 반항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항상 각인시켜 줘야 한다.
그때도 더 때려 줬어야 했는데.
-그, 그렇습니다.
난 녀석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치료를 하는 사제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들의 신성력에는 항마의 힘이 깃들어 있지.”
“항마의 힘 말입니까?”
“그래.”
내 눈에는 남자의 몸 위로 검은색의 기운이 고통스러운 듯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발길질이 이어질수록 검은 기운이 점점 옅어진다.
“끄으으읍읍!”
겉으로만 보기엔 그냥 집단 구타의 현장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제들이 발휘하고 있는 항마의 힘 덕분에 용안으로 보이는 시야는 전혀 달라 보였다.
신성력이라고 다 같은 신성력이 아니다.
우리 벼락 신앙 같은 경우는 신성력이 주로 ‘전격’의 속성을 띤다.
각 종교별로 ‘치유’의 힘을 띠기도 하고 ‘화염’이나 ‘절삭’ 등 신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속성의 신성력이 있다.
그중에서도 저들의 힘은 ‘항마’의 속성에 특화되어 있다.
다른 종교의 대주교나 발휘할 만한 항마의 권능을 일반 평사제들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저들의 교리와도 밀접하다.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마물의 척결. 그로 인한 신의 부활. 그것이 잊힌 신을 모시는 사제들의 교리지.”
잊힌 신을 모시는 사제.
그들이 모시는 신은 잊혀졌다.
신명도, 교리도, 무엇 하나 알려지지 않은 채로 명맥을 이어 오고 있다.
그들의 가장 큰 목적은 신에 대한 단서를 탐구하고 마물을 퇴치하는 것.
그렇기에 난 이 근처에 서식하는 유명한 마물 두 마리를 먼저 찾아갔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두 마물은 죽어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들이 도시에 남아 있었다는 건.
‘아직 한 마리가 남았다는 거지.’
그게 바로 탈로스라는 마물이다.
마침 나도 그 마물에게는 관심이 있었다.
저 사제들도 이미 탈로스를 찾고 있었던 것 같고, 내가 단서를 준다고 하니 바로 나를 따라온 것이다.
그렇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
아직 탈로스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