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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57화 (57/170)

57화

나는 담담한 표정으로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가장 먼저 건물의 밖에 나와 있는 인간들이 보였다.

‘그들의 가족들인가.’

기대감과 불안감이 반씩 섞인 표정이었다.

난 고개를 돌려 뒤에 서 있는 이들에게 말했다.

“들어오시지요.”

“예.”

검은 사제복을 입은 남자들.

가슴팍의 정중앙에는 하얀색의 원이 그려져 있다.

내 말에 대답한 건 이들을 이끄는 위치에 있는 남자였다.

“감사합니다.”

칵-

뒤이어 들어오는 이는 바로 트롤이었다.

멀끔한 생김새의 트롤 사제다. 그는 이를 딱 부딪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생각보다 더 깔끔한 모습이군요.”

쉬르르-

그다음으로 들어오는 이는 바로 용족. 상인 켈과 같은 종족이었다.

가장 먼저 들어왔던 이들이 단장. 그리고 뒤따라 들어온 용족과 트롤이 바로 부단장이다.

“케르르를.”

“크루르룩.”

이어서 오크, 인간, 트롤, 소인족 등 여러 종족으로 이루어진 사제들이 쭉 들어왔다.

고작 열 명인 집단인데 내 부족보다도 더 다종다양하다.

“대족장님! 오셨습니까! 크루룩.”

흙 언덕 앞을 지키고 있던 크룩은 예를 취하며 인사를 했다.

그도 호기심이 이는 듯 내 뒤에 서 있는 이들을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래, 고생했다.”

난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사제들은 내 뒤에 멈춰 서더니 흙 언덕을 굳은 표정으로 바라봤다.

“저분들이…….”

“그래. 이번 일을 위해 모셔 온 분들이다.”

대족장의 위치에서 누구에게 높임말을 쓴 적은 없었지만, 이들에겐 나조차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그때 단장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신기하군요. 저번에 이곳에 왔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오신 적이 있습니까?”

“예. 지나가다 들른 적이 있지요. 버려진 사원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왔었습니다.”

저번에 있던 그 사원을 말하는 건가.

더 묻고 싶었지만 우선 중요한 일은 따로 있기에 질문은 속으로 삼켰다.

“그들은 저 안에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난 고개를 끄덕이고서 오브를 꺼내어 기운을 불어넣었다.

작은 진동이 일더니 건물을 감싸고 있던 흙이 그대로 내려앉았다.

“사, 살려 주세요.”

갑자기 건물 안에서 소리가 들렸다.

건물에 난 창에 누군가가 찰싹 달라붙는다.

부릅뜬 눈으로 바깥을 보며 창문을 깨트릴 기세로 흔든다.

“꺼내, 꺼내 주십시오! 제발!”

단장은 묘한 표정으로 창을 바라보더니 곧 활짝 웃었다.

“나오시지요.”

그는 손수 문을 열어 주었다.

생긋 웃는 얼굴로 나오라고 종용하는 단장을 보며 그림자에 당한 이들이 오히려 눈치를 본다.

참 우스운 모양새다.

“나오고 싶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단장이 다시 재촉하듯 말했다.

그림자들은 망설이는 듯하더니 곧 주춤거리며 밖으로 걸어 나왔다.

“이들이 네가 택한 방법인 건가? 고작 사제들?”

마지막에 다른 그림자들의 부축을 받아 나온 트렌은 비아냥거리듯 그렇게 말했다.

상처가 더 곪았는지 계속 끙끙거리면서도 기죽지 않은 모습이었다.

“데려올 거면 헬리온 교의 대주교라도 데려왔어야지! 고작 이런 오합지졸로 무엇을 하겠다는 거냐?”

헬리온 교. 이 왕국에서 가장 세가 큰 종교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꽤나 위세를 떨치는 곳이고.

하지만 내가 그곳의 대주교를 데려올 방법은 없었다. 워낙 엉덩이가 무거운 분이라.

트렌의 비아냥 섞인 말투에도 단장은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로 입을 열었다.

“바로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예.”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부디 저들에게 자유를 베푸소서.”

그들의 방식으로 예를 취한 후 그림자들을 가리켰다.

“예,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나도 그들에게서 한 걸음 물러났다.

-시작하는 겁니까?

모습을 숨긴 채로 있었던 펜릴이 내게 물어왔다.

“응. 너도 은신 풀고 여기에 앉아. 우린 구경이나 하면 된다.”

오늘로 딱 삼 일 차.

게다가 난 저들의 위명을 익히 알고 있다.

전작 ‘리얼’을 플레이했던 유저라면 다들 한 번쯤은 들어 봤을 만한 이들이었으니까.

“팝콘이 없는 게 아쉽군.”

-그게 뭡니까?

“그런 게 있다. 나중에 만들어 봐야지.”

난 펜릴의 푹신한 몸에 기댄 채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다들 이쪽으로 와.”

“크룩. 예.”

가만히 서 있던 크룩과 케륵, 이렌도 내 쪽으로 물러났다.

“형제님들.”

단장이 두 부단장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부단장들은 가장 앞에 있던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럼 치료를 시작하겠습니다.”

“뭐, 뭐 하는 거냐!”

사제에게 붙들린 중년 남성은 불안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부디 안식을 되찾기를.”

차륵.

단장이 품에서 은으로 된 사슬을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남자의 목에 둘렀다. 사슬이 서로 맞닿고, 스르릉 갈리는 소리가 났다.

“이 세상에 천성이 악한 존재는 없습니다, 형제님.”

단장이 선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가 남자에게 말하는 것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동시에 떠올렸다.

삼 일 동안 있었던 일을.

* * *

펜릴과 함께 호기롭게 밖으로 나온 지 한참 후.

우리는 멈춰 서 있었다.

난 지도를 꺼내서 유심히 보았다.

“어디 있을까?”

잊힌 신의 사제들은 거점이 따로 없다.

마물과 자신의 신에 대한 단서를 찾으려 대륙 곳곳을 떠돌아다니는 이들이었으니까.

내 기억으로는 그들 사제들의 총원은 약 사백에서 오백.

열 명 내외로 사제단을 이루어 돌아다닌다.

단장 한 명과 부단장 둘, 그리고 평 단원 여섯에서 아홉 사이.

그게 내가 알고 있는 사제들의 구성이다.

‘아마 이 왕국에 있는 사제단은 둘 혹은 많아야 셋 정도겠지.’

그리 큰 왕국도 아니고, 아무래도 제국에 비해선 영토도 작으니까.

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우선 여기부터.”

내가 고민을 끝냈을 때 추린 후보지는 세 군데였다.

마물과 관련된 곳으로 보이는 장소들이었다.

난 펜릴에게 방향을 알려 주었다.

쉴 틈 없이 이동하면 삼 일 안에 충분히 다 돌아볼 수 있다.

세 곳을 다 돌아보고도 그들을 찾지 못한다면.

“후우.”

작게 한숨을 내쉬고서 펜릴의 등을 찰싹 소리 나게 때렸다.

“가자, 이놈아.”

-예.

펜릴은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최대한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을 통해서 이동했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 날 정오에 한 늪지대 근처에 서 있었다.

“여기도?”

인상을 찌푸리며 바닥에 남겨진 잔해를 살펴보았다.

-냄새가 고약하네요.

“어. 죽을 때 악취를 내뿜는 놈이라서.”

늪은 완전히 거무죽죽하게 변해 있었다.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일명 ‘맹독개구리’로 불리던 놈이었다.

마경에는 ‘거대 괴수’ 종들이 많은 대신 마물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반면에 바깥에는 마물들이 상당히 많다.

그중 이 늪에 서식하던 놈은 중급 마물이다.

하급, 중급, 상급. 그리고 특이 종.

얼마나 위협적인가에 따라 상중하로 분류한 것이다.

반면에 특이 종의 경우는 상황과 상대에 따라 위협도가 현저히 달라지므로 따로 분류를 한 것이다.

이번에 쳐들어 온 그림자도 특이 종에 속한다.

“예상한 것보다 빠른걸.”

-호진 님이 말한 그 사제들이 처리한 걸까요?

“아마도.”

이미 시간이 꽤 지났는지 신성력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첫 번째로 갔던 곳도 마물의 잔해만 남아 있었다.

“가자. 마지막 장소로.”

-알겠습니다.

벌써 근처의 마물을 처리해 버렸다면 그곳에 없을 확률도 있다.

마음이 더 급해졌다.

-그런데 마물과 거대 괴수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펜릴이 한참 달리다가 갑자기 물어왔다.

내가 이곳으로 오면서 마물의 외형에 대해 설명해 줬기 때문에 궁금증을 가진 듯했다.

“간단하지.”

어쩐지 멀게 느껴지는 게임의 지식을 끄집어내며 입을 열었다.

“거대 괴수는 기본적으로 마나 혹은 신성력을 흡수해서 발생하지. 너 같은 경우는 마나를 흡수해서 자연적으로 진화했겠지. 반면에 지성체한테 숭배를 받으며 신앙을 형성해 진화하는 놈도 있어.”

일반적으로 유저들은 신앙을 형성한 놈들을 신수라 불렀다.

반면에 혼자서 진화한 놈들은 영물이라 했었고.

“하지만 마물들은 달라. 이곳 기록에 따르면 갑자기 어느 순간 생겨났다더군. 그리고 공통점이 있어.”

-공통점이요?

“칠흑같이 검은 피부. 빨간색 눈동자. 그게 대표적인 특징이지.”

-그게 다입니까?

펜릴은 의아한 듯 물어봤다. 난 픽 웃었다.

“사실 마물이 아닌데도 마물로 몰린 놈들도 있긴 할 거야. 그리고 어차피 위협적인 건 똑같으니까.”

-저처럼 충직하고 신의 깊은 놈도 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창대로 펜릴의 대가리를 딱 소리 나게 때렸다.

“보자마자 죽이려 들었던 놈이 무슨.”

-아, 그게 언제 적 얘깁니까! 전 이제 기억도 안 나는구만.

“원래 당한 사람이 더 오래 기억하는 법이야. 기절해 있을 때 욕이나 하고. 배은망덕한 놈. 확 된장 발라 버릴까.”

-된장이 뭡니까?

녀석의 물음에 나는 그냥 좋은 거라고만 해줬다.

나중에 또 반항하면 된장을 잔뜩 발라 놓은 다음에 뜻을 설명해 줘야겠다.

서로 농담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달리다 보니 금세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깁니까?

“그래.”

펜릴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고개를 쭉 올려 높다란 성벽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도시 벨루곤.”

게임에서 몇 번 와 봤던 곳이다.

제국에서 주로 활동하긴 했지만 멜리움 왕국도 가끔씩 오가긴 했다.

그것 덕분에 마하룬 요새를 비롯해 이곳 근처의 지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너는 이 근처에 숨어 있어. 늦어도 내일까진 나올 거다.”

-알겠습니다.

펜릴을 두고서 천천히 성벽을 따라 입구를 향해 걸었다.

벨루곤. 유저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도시다.

멜리움 왕국과 볼캄 왕국의 국경에 위치한 도시. 귀족이 다스리는 몇 안 되는 자유도시 중 하나다.

그리고 무엇보다 ‘범죄’로 유명했다.

‘범죄자와 악 성향 플레이어들로 득시글거렸었지.’

악마 숭배자, 계약자, 범죄자로 수배된 유저, PK범 등등.

그야말로 범죄의 도시다.

천천히 걷다 보니 곧 입구가 보였다.

성문을 지키고 있는 두 명의 경비병.

범죄의 도시라는 위명에 안 어울리게 경비병들은 그럴듯한 갑옷을 걸치고서 꼿꼿한 자세로 서 있었다.

“누구냐!”

경비병 한 명이 날 알아보고 소리 질렀다.

이미 창은 인벤토리에 넣어둔 상태였기에 양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도시에 볼일이 있어 왔습니다.”

“볼일?”

경비병 둘은 나를 향해 창을 겨눈 채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곧 한 명이 면갑을 올렸다.

“신분증은?”

투구 사이로 드러난 놈의 눈이 날 샅샅이 살폈다.

난 웃음이 나오려는 걸 애써 참으며 입을 열었다.

“잠시 손을 내려도 되겠습니까?”

경비병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손을 내리고 품을 뒤지는 척하면서 인벤토리를 열었다.

“여기 있습니다.”

짤랑-

인벤토리에서 꺼낸 주머니를 흔들었다가 그에게 보이도록 입구를 살짝 열었다.

“흠, 흠. 어디 보자.”

경비병은 주머니를 받아 들고서 손가락을 넣어 안에 든 동전을 헤아려 보았다.

그러더니 곧 면갑을 다시 내리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신분이 확실하군. 안에서 소란은 피우지 말도록.”

“예. 저도 목숨은 하나인 걸요. 감사합니다.”

옆에서 나를 겨누고 있던 다른 경비병도 창을 내렸다.

꾸벅 고개를 숙이고서 열린 문 사이로 걸어갔다.

성벽 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도 경비병의 손짓에 석궁을 내린다.

“아, 하나만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뭔데.”

내게 돈주머니를 받아 챙긴 경비병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미 돈은 받아 챙겼다 이건가.

인벤토리에서 은화 하나를 더 꺼내 그에게 건넸다.

“뭐든 물어보게.”

경비병은 곧 바로 친절한 말투로 바뀌었다.

난 그들이 있을 만한 곳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혹시 가장 범죄가 많이 일어나는 구역은 어디입니까? 강도나 살인 같은 강력 범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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