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맨 처음 그림자에게 당했던 트렌.
나는 쓰러져 있는 남자의 멱살을 잡아 다시 멀리 집어 던졌다.
“으아악!”
쾅!
남자가 비명을 질렀지만 무시했다.
그림자에 당한 이들은 몸의 내구성이 말도 안 되게 강해진다.
애초에 저 남자가 전격에 지져지고도 멀쩡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정상인이라면 이미 기절했을 만한 힘이었으니까.
“트렌.”
난 그를 보았다.
트렌이 한 손으로 대검을 잡고, 낮게 늘어트린 상태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림자에 당한 이들은 내구성이 강해진다. 그리고 그것뿐만이 아니다.
신체 능력도 그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화된다.
“예, 예!”
내가 창을 겨누자 트렌은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난 널 해치기 싫다.”
파지지직.
창극에 전격을 두르며 그를 다그쳤다.
“만약 그 대검을 나에게 겨눈다면 네 사지를 잘라서 죽지 못하게 말뚝에 매달아 놓을 거다.”
“그게 무슨.”
“잘 생각해. 숙주가 죽으면 네놈들도 죽는 건 이미 알고 있으니.”
겁에 질려 있는 것 같던 트렌이 갑자기 표정을 바꾸었다.
마치 비웃는 듯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린다.
“차라리 지금 죽이지 그래? 어차피 변하는 건 없을…….”
카앙!
놈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몸을 날렸다.
간신히 내 공격을 막은 트렌, 아니 그의 몸을 조종하고 있을 그림자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후욱!
창대를 반 바퀴 회전시키며 대검을 밀어내었다.
스으으윽!
그리고 그대로 놈의 가슴팍을 길게 베었다.
“끄으으으읍!”
창을 두르고 있던 전격에 감전된 놈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신음 소리를 내었다.
여지없이 놈의 몸 위로 검은색의 형체가 겹쳐 보였다.
놈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손목과 발목을 베었다.
“끄으으으으.”
고통에 몸부림치는 놈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하나둘 정신을 차리고 서 있던 이들을 보았다.
그림자에 쓰인 이들.
“또 덤빌 놈 있냐?”
그들은 서로서로 눈치를 보다가 뒤로 물러났다.
본래는 모두 죽여야 하지 않나 생각했지만 트렌을 보고서 마음이 바뀌었다.
‘나도 모르게 이들을 분리해서 보고 있었어.’
인간들.
그들도 바로 나의 사람들이다.
마음 한구석에서 인간들을 본래 부족원이었던 이들과 구분해서 보고 있던 것 같다.
다른 방법이 있다면 시도라도 해 봐야 했는데.
가슴이 갑갑했다.
“이놈을 부축해라.”
“예?”
꽈르르르릉!
전격을 내뿜자 놈들이 화들짝 놀란다.
“두 번 말 안 한다. 부축해.”
“알겠습니다!”
난 그들을 모두 한 건물에 처박았다.
“식량과 식수를 가져와라.”
“알겠습니다!”
그 건물 안에 식량과 식수를 같이 넣었다.
“허튼 생각 하지 마라.”
쾅!
문을 거세게 닫았다.
여전히 신전 앞에 모인 이들은 겁에 질린 상태로 서 있었다.
난 그들을 보다가 인벤토리에서 물건 하나를 꺼냈다.
바로 대지의 오브다.
밤이 지났기 때문에 빛이 돌아와 있었다.
난 그것을 꽉 쥐고서 기운을 불어넣었다.
드드드드드!
건물 주변의 땅이 흔들리더니 위로 치솟았다.
건물을 땅이 완전히 파묻을 기세로 감싸 버린다. 충분하다고 생각할 때까지 땅을 움직인 후에야 오브 사용을 멈추었다.
오브를 이용해 인위적으로 만든 흙벽이라 건물을 짓누르진 않았다.
그저 그림자가 이곳을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할 뿐.
그다음 완전히 언덕이 되어 버린 흙을 밟고 올라갔다.
퍽! 퍽!
창으로 건물까지 이어지는 구멍을 몇 군데 내었다.
적어도 이러면 숨이 막혀서 죽을 일은 없겠지.
“다들 들어라.”
난 그제야 몸을 돌려 모여 있는 이들에게 말했다.
“이유를 불문하고 이곳에 접근하는 것을 금지한다. 무슨 소리가 들려도 절대 반응하지 말도록.”
모두의 대답을 들은 후 나는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각자 숙소로 해산해. 사제들이 나서서 안내해라.”
“예!”
충분히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거의 다 막았다고 생각했고.
하지만 결국 희생자가 나왔다.
그림자가 무서운 이유는 목숨이 아니라 ‘육신’을 빼앗는 괴물이기 때문이다.
마물이라고 불리는 것 중엔 저들보다 강한 이들도 무수히 많지만…….
“제, 제 아버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죽는 건 아니겠지요?”
“딸이, 딸이 저 안에 있는데…….”
거의 정신 나간 표정을 한 인간들이 나에게 다가왔다.
사제들이 난색을 표하면서 그들을 붙잡고 있다.
아마 돌려보내려는 걸 억지로 우겨서 나에게 온 거겠지.
그들의 필사적인 표정 때문에 과하게 막지도 못했을 거다.
“우선 기다리고 있어라.”
“하지만!”
“그만. 이들을 숙소로 돌려보내.”
“알겠습니다!”
사제들이 그들을 붙잡고 돌아갔다.
그림자는 사람의 육을 빼앗는다.
게다가 그들은 빼앗은 육체를 이용해 주변 사람들을 전염시킨다.
예전에 떠돌던 소문 중 한 성직자의 이야기가 있다.
성직자가 파견을 나가는 중 오랜만에 자신의 고향 마을에 들렀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그 성직자를 반갑게 맞이했지만, 그 성직자는 그들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신이시여.’
그 성직자는 오십이 넘는 마을 사람들이 ‘단 하나’의 그림자에게 먹힌 것을 본 것이다.
그 마을은 결국 불태워졌다.
만약 그림자의 침입을 미리 알지 못한 상태에서 마주쳤다면 이곳에 있던 이들이 모두 그림자에 당했을지도.
“족장님! 케륵.”
신전으로 걸어가고 있는 나에게로 케륵이 다가왔다.
“저들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우선 대사제를 이곳으로 오라고 해.”
“지금 바로 말입니까?”
“그래.”
케륵이는 내 말에 바로 품에서 구슬을 꺼내어 크룩이에게 연락을 넣었다.
“크룩이와 번갈아 가며 저 건물을 지키고 있어. 절대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알겠습니다. 케르륵.”
“난 삼 일 후에 돌아오겠다.”
“예?”
신전 앞에는 펜릴이 앉아 있었다. 난 그의 등에 올라탄 후에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해. 가자. 펜릴.”
“알았습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곧장 성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림자는 천천히 사람을 먹어치우며, 약 사흘이 넘으면 돌이킬 수 없다.
그들은 숙주를 완전히 집어삼킨 후에 이제 번식 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다른 이에게 그림자를 박아 넣는 형태로.
그런 그림자를 소멸시키면서 사람은 살릴 수 있는 자들은 바로 성직자들이다.
그것도 고위 성직자.
물론 성직자라도 사흘이 넘은 상태면 치유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고위 성직자를 데려올 수는 없다.
찾기도 힘들뿐더러 내가 데려오고 싶다고 마음대로 데려올 수 있는 이들이 아니니.
하지만 고위 성직자가 아니면서, 그림자를 없앨 수 있는 이들이 있다.
‘삼 일 내에 그들을 찾아야 해.’
만약 시간 내에 찾지 못한다면.
내 손으로 모두를 죽여야겠지.
* * *
끼이이익-
문이 열린다.
그 사이로 걸어 들어오는 건 한 명의 오크.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경비를 서고 있던 오크 병사가 바로 예를 취했다.
“그래. 너네들도 고생한다. 크룩.”
벼락 부족의 대사제. 크룩은 약간 감탄한 듯한 표정으로 내부를 훑어보았다.
“왔군. 케르륵.”
“어. 잠도 안 자고 달려왔다. 크룩.”
크룩은 케륵에게 다가가 어깨를 탁 짚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족장님은 어디 있고?”
“그게…….”
케륵은 새벽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크룩은 얘기를 듣는 동안 시시각각 표정이 변했다.
설명이 완전히 끝났을 때 크룩은 착잡한 표정으로 흙 언덕을 보았다.
“그게 저곳이야. 크륵?”
“응. 케르륵.
둘은 천천히 흙 언덕으로 다가갔다.
잠시 앞을 지키고 있던 이렌이 둘에게 예를 취했다.
“크룩 대사제님,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이긴. 크르룩. 얼마 되지도 않았구만.”
“그럼 저 안에…….”
크룩이 슬쩍 흙 언덕에 시선을 돌리며 말을 하려 할 때였다.
“대사제님? 거기 대사제님입니까?”
바로 트렌의 목소리였다.
“대사제님! 저 좀 꺼내 주십시오! 족장님이 뭔가 오해를 하신 것 같습니다!”
크룩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트렌의 목소리군. 크룩.”
“예! 접니다!”
반가운 듯한 목소리였다.
크룩은 천천히 언덕을 올라서 뚫린 구멍을 내려다보았다.
케륵이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가려 했지만 크룩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마디만 하지.”
“알았네. 케륵.”
구멍 사이로 내부에 있는 이들의 안광이 언뜻언뜻 보였다.
크룩은 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트렌은 내 형제다. 그리고.”
낮게 깔린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그리고 거기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이 내 형제다. 우린 모두 같은 분을 모시고 있으니까.”
그 음성에는 은은히 분노가 깔려 있었다.
“그렇기에 만약 일이 잘못된다면. 차라리 죽여 달라고 빌게 될 거다.”
구멍을 통해 애원하던 목소리들이 순간 멎었다.
크룩은 다시 언덕 아래로 내려와 문 앞에 섰다.
“너네들은 가서 좀 쉬어.”
“케륵. 그래도 되겠나?”
“어. 크루룩. 난 약골이 아니니까.”
케륵은 그 말에 케르르 웃음소리를 흘리다가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서 신전으로 돌아갔다.
크룩과 케륵은 번갈아 가며 흙 언덕 앞을 지켰다.
놈들은 계속해서 뭐라뭐라 말을 걸어왔지만 둘은 철저히 그 말을 무시했다.
가끔씩은 내부에 갇혀 있는 이의 가족들이 다가오곤 했다.
“어, 얼굴이라도 한 번 보면 안 되겠습니까? 무거운 거 한 번 못 들어 본 어린아이입니다. 제발 얼굴이라도 한 번…….”
“안 된다.”
“제발, 제발요!”
“대족장님의 명이다. 돌아가라.”
크룩은 근처의 사제들에게 눈짓했다. 사제들은 다가와 다가온 이를 멀리 끌고 갔다.
“제발! 멀리서 얼굴이라도 한 번만!”
비통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흘끔흘끔 쳐다본다.
누군가는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일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차라리 전투를 하는 게 마음이 편하구만. 크루룩.”
크룩은 투덜거리며 허공을 응시했다.
안에서는 다시금 애원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어린아이의 목소리. 여자의 목소리. 노인의 목소리. 그리고 트렌의 목소리까지.
“크르룩.”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딱 삼 일이 되는 날 저녁.
“문을 열어라!”
“대족장님이 돌아오셨다!”
성벽 위에서 경계를 서는 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듯 크게 소리쳤다.
커다란 문이 열리고 숙소에 있던 사람들까지 모두 창문을 열고 그곳을 보았다.
심지어 건물에 갇힌 이들의 가족은 아예 밖으로 나와 절박한 표정을 지었다.
마침 흙 언덕 앞에 앉아 있던 크룩도 벌떡 몸을 일으켰다.
문이 열리고 그 틈으로 대족장의 얼굴이 가장 먼저 드러났다.
그리고 완전히 문이 열렸을 때.
대족장의 뒤로 검은색의 의복을 입은 이들이 주르륵 서 있는 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