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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55화 (55/170)

55화

“그림자요?”

이렌은 의아한 목소리로 물어 왔다.

“그래. 만만치 않은 놈이 빨리 움직여.”

“알겠습니다.”

그녀는 먼저 밖으로 나가 병력들을 소집하기 시작했다.

난 그대로 성벽 위로 올라갔다.

-호진 님.

“너도 느꼈어?”

-예.

펜릴도 슬쩍 모습을 드러내며 내게 말을 걸었다.

“넌 대기하고 있어. 우선 결계를 친다.”

-알겠습니다.

난 인벤토리를 뒤적거려 물건 하나를 꺼내 들었다.

[중급 방어 결계]

미리 사 두었던 아이템 중 하나다.

지금까진 항상 공격하는 입장이었기에 크게 필요 없는 물건이기도 했고.

반면에 지금은…….

‘용안 개방.’

용의 눈이 떠지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휘오오오오오-

불길한 바람 소리.

저 멀리 거뭇거뭇한 무언가가 날아오는 게 보였다.

어둠 속에 잠겨 있어 주의 깊게 보지 않았다면 아마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뭐, 보통의 눈으로는 밝은 곳에 있다 해도 못 보는 것들이지만.

그림자.

놈들은 영계와 물질계의 중간에 겹쳐 있는 존재들이다.

살아 있는 육신에 대한 집착이 어마어마하며, 자신의 상실감을 생자의 육으로 채우려 한다.

그림자에게 잡아먹힌 사람들은.

그림자의 노예가 된다.

도플갱어와 상당히 비슷한 점이 많지만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도플갱어는 다른 생명체들처럼 물질계에 속한 생물체다.

기본적으로 사람이나 지성체들을 잡아먹고, 그 껍질을 뒤집어쓰고, 그들의 흉내를 낸다.

도플갱어에게 잡아먹힌 사람을 살려 낼 방법은 없다.

반면에 그림자의 경우는 생명체의 영혼을 포식한다.

그림자에 당한 생물은 사흘에서 닷새 정도가 흐르고 나면 완전히 잡아먹힌다.

하지만 고위 성직자가 힘을 발휘한다면 생명체에 기생한 그림자를 없앨 수도 있다.

“결계 아이템 사용.”

파아아아악!

손에 들린 아이템에서 뻗어 나간 빛이 삽시간에 주변을 둘러싼다.

은은한 푸른색을 띠는 결계다.

마하룬 요새에 설치된 것보다 유지력은 떨어지지만 방어력은 쓸 만한 아이템이다.

휘오오오오오오-!

점점 소리가 가까워진다.

내 눈에도 놈들의 모습이 자세히 보이기 시작했다.

검은색 천이 너풀거리는 것 같은 몸체에 양 눈은 뻥 뚫려 있고, 입이 얼굴의 반을 차지하고 있다.

예전에 게임 그래픽으로 볼 때와는 비교가 안 되게 불길한 느낌이다.

“족장님! 준비 끝났습니다!”

성 아래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살짝 고개를 들리니 병사들과 사람들이 신전 앞의 공터에 모여 있는 게 보였다.

난 손을 들어 그들에게 대기하라 지시를 내리고서 다시 앞을 보았다.

이제 놈들은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접근했다.

쿵-!

가장 앞에 있던 놈이 결계에 부딪친다. 그리고.

-캬아아아아아악!

마치 철판을 긁는 것처럼 소름 끼치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나는 즉각적으로 명령을 내렸다.

“이렌! 케륵! 트렌! 각 사제들을 중앙에 배치해라!”

“예!”

“궁병 부대는 모두 활을 들고 대기하도록!”

“알겠습니다!”

이 결계로 저들을 계속 막고 있을 수는 없다.

단순히 결계로 막을 수 있는 것들이라면 게임에서 그렇게 악명을 떨쳤을 리도 없을 터.

-키야아아아아!

쿵! 쿵!

이어서 그림자들이 계속해서 달라붙는다.

결계는 거칠게 진동하고 당장이라도 깨질 것처럼 위험한 소리가 난다.

그림자.

누가 이름을 붙였는지는 모른다.

몬스터, 거대 괴수, 이 종족, 악마 어느 부류에도 속하지 않는 ‘마물.’

정해진 서식지도 없이 대륙을 떠도는 놈들이다.

그렇기에 놈들이 갑자기 이곳을 습격해 오리란 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은신 결계를 쓰면 피할 수 있었을 테지만.’

그랬을 경우 놈들이 마하룬 요새 방향으로 이동했을지도 모른다.

-키야아아아악!

그그그그!

지금도 결계를 뚫으려 몸부림을 치고 있는 그림자를 봤을 때, 마하룬 요새는 채 몇 시간을 못 버텼을 것이다.

난 그림자들이 결계에 달라붙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손바닥은 어느새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성급하게 움직이면 안 된다.

내가 움직이는 건 모든 그림자들이 결계에 붙었을 때다.

쿠구구구구구구-!

결계는 이제 아예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린다.

만약 다 달라붙기도 전에 결계가 깨진다면 계획이 틀어진다.

난 긴장된 눈빛으로 놈들을 지켜보았다.

-키야아아아아악!

결계의 빛이 위태로울 정도로 희미해졌을 때.

마지막 놈이 결계에 붙었다.

꽈르르르르르릉!

난 바로 기운을 끌어올렸다.

뇌령이 힘차게 돌며 몸 주위로 전격이 튄다.

손을 들어 올려서 결계에 손바닥을 대었다.

콰지지지지지직!

결계를 타고 전격이 쫙 퍼져 나간다.

스킬도 뭣도 아닌 순수한 기운의 방출.

-카아아아아아악!

-끼에에에에에에에에엑!

하지만 그것은 놈들에게 치명적인 위협이다.

그림자의 몸이 희미해졌다가 뚜렷해지길 반복한다.

본래 영계와 물질계에 반씩 걸쳐 있는 그림자들이 강제로 물질계로 끌려 들어오는 현상이다.

본래 놈들은 영계와 물질계를 자유로이 오가며 일반적인 창이나 칼로는 상처를 입힐 수 없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순수한 기운에 의해 강한 충격을 받으면 영계나 물질계 한 곳으로 튕겨 나온다.

내 눈엔 아예 희미해진 놈들도 보였다.

아마 저놈들은 영계로 튕겨 나가 버린 놈들일 거다.

저들은 완전히 회복이 될 때까진 위협이 안 된다.

우선 먼저 처리해야 할 것들은 물질계에 고정된 놈들.

“뇌조!”

뇌조가 튀어나오고.

난 신전 앞에 부족원들이 모인 곳의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쿵!

사람들의 안색이 창백해져 있다.

이제는 보통 이들의 눈에도 저 불길한 마물들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케륵이는 눈치껏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고, 이렌은 정령을 부르고서 허공을 노려보고 있다.

쿵! 쿵!

결계가 점점 희미해진다.

이제 멀지 않았다. 더 이상 결계가 버티지 못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콰앙!

결계가 산산조각 나 흩어진다.

“바람의 가호!”

“벼라아아아아악!”

이렌이 부족원들의 주변으로 초록색의 막을 씌운다.

그리고 케륵은 오랜만에 익숙한 주술을 사용했다.

꽈르르르릉!

-키아아아아아악!

거대한 벼락이 내려치며 한 번에 그림자 몇 마리가 사라진다.

그리고 나는.

“뇌조야, 우리 연습했던 기술 기억나지?”

-응! 걱정하지 마!

기운을 계속해서 끌어모았다.

키릭. 키릭-

뇌령에 과부하가 올 정도로 기운을 끌어올린다.

‘신기 뇌룡’은 너무 소모량이 크다. 그림자를 한 번에 없애지 못할 경우 위험할 수도 있으니 지금 상황엔 부적합하다.

그렇기에 최근 연습하던 기술을 꺼냈다.

-할게!

뇌조가 날개를 펼치며 나에게 달라붙었다.

콰지지지지직-

짜릿한 전격이 내 몸을 감싸며 기운이 몇 배나 강화된다.

“끄으으아아악!”

콰앙!

몸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간다.

창을 들어 가장 앞에 있는 그림자에게 휘둘렀다.

-키아아악!

놈이 그대로 흩어지고, 이어서 창대를 회전시키며 주변을 휩쓸었다.

한 번에 몇이나 되는 그림자가 사라지고, 나는 그대로 계속해서 허공을 휘저었다.

펜릴도 이리저리 날뛰면서 그림자들을 물어 죽이고 있다.

“벼라아악! 벼락!”

하늘에서는 케륵이 불러온 벼락이 끊임없이 내려치고 있다.

내 몸은 그 자체로 하나의 벼락이 되어 허공을 자유롭게 휘젓는다.

걱정했던 게 무색하리만큼 그림자들이 하나하나 소멸해 간다.

‘뇌룡 질주’의 진화형.

단순히 빨리 움직이는 것을 넘어 허공을 말 그대로 자유롭게 유영하는 것.

더 이상 뇌조의 힘을 끌어오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계속해서 창을 휘두르고, 발을 차고, 주먹을 내지르며 그림자를 소멸시킨다.

-샤아아아악!

그림자들이 나에게 경계심을 가지기 시작했는지 나를 피해서 바닥으로 쏟아져 내려가기 시작한다.

난 지체 없이 기운을 끌어올리며 바깥으로 방출시켰다.

“백만 볼트!”

콰르르르르르릉!

허공이 하얗게 물들며 뻗어 나간 전격이 그림자 몇십을 한 번에 흩어 버린다.

정식 스킬이 아니라 내가 지은 기술 이름이다.

-캬아악!

나뿐만 아니라 부족원들이 쏜 화살이나 케륵의 주술로도 그림자의 수가 급격히 줄어든다.

가까이 다가간 놈들도 이렌이 쳐 놓은 초록색 막을 쉽사리 뚫지 못하고 있다.

세상을 까맣게 물들이고 있는 그림자들을 계속해서 베고, 찌른다.

“으아아아아아아악!”

그때.

비명이 들렸다.

난 그림자를 찌르다가 멈칫하며 땅을 내려다봤다.

“끄으으으으!”

트렌. 그가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뇌룡 질주!’

기술을 써서 빠르게 이동하는 와중에도 그림자들이 기운에 닿아 흩어진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 그림자들이 아니다.

콱. 트렌의 뒷목을 잡은 다음 그대로 저 멀리 던져 버렸다.

꽈앙!

트렌의 몸이 건물에 부딪히며 벽을 뚫고 들어간다.

너무 세게 던졌나.

“끄아아아악!”

“아아악!”

이런 씨발!

곳곳에서 비명이 들려온다.

저 위를 보았지만 아직 이렌이 쳐 놓은 막을 뚫고 들어온 그림자는 없다.

대부분이 죽어, 남은 숫자는 고작해야 열 마리 남짓.

그러면 도대체 이놈들은 어디서 들어온 거지?

“비명 지르는 놈들 다 밖으로 집어던져!”

“알겠습니다! 케르륵!”

나처럼은 아니지만 모두 힘을 합쳐 비명을 지르는 이들을 무리 바깥으로 밀어냈다.

“제, 제 아버지예요! 아버지라구요!”

곳곳에서 소란이 일어났지만 사제들은 굳은 표정으로 비명을 지르는 이들을 끄집어냈다.

가슴이 갑갑해졌지만 지금은 봐주고 말고 할 틈이 없다.

“다들 접근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난 다시 몸을 날려 남은 그림자들을 처리했다.

곧 마지막 그림자를 창으로 찔러 죽였다.

“하아, 하아.”

숨을 헐떡이면서 바닥에 착지했다.

무서우리만치 공기가 무겁다.

“끄으으으.”

눈에 보이는 그림자들은 모두 죽였다.

문제는 저 앞에 여전히 괴로워하고 있는 이들.

저들이 갑자기 저러는 이유는 명확했다.

그림자에 먹힌 것이다.

‘어째서?’

일부러 영체가 된 놈들까지 빼놓지 않고 쳐 죽였다.

이렌이 방어막까지 펼쳐 두고 있었고, 넘어가는 놈은 전혀 보지 못했다.

“아?”

바닥을 구르며 괴로워하고 있던 이들 중 남자 한 명이 갑자기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는 여전히 고통이 남은 것처럼 표정이 일그러진 상태였다.

남자가 비틀거리며 무리 지어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제, 제가 왜?”

“다가오지 마라.”

가장 앞에 서 있던 사제가 창을 내밀어 그 남자를 막아섰다.

“왜, 왜 그러십니까?”

나는 직접 앞으로 나가 그를 보았다.

“넌 그림자에 씌었다.”

“그, 그 검은 괴물 말입니까? 분명히 갑자기 고통스럽긴 했었지만 지금은 괜찮습니다!”

남자는 자신의 팔을 쫙 벌려 보이며 말했다.

“보십시오! 멀쩡하지 않습니까!”

난 입술을 깨물었다.

콰지직.

손에 기운을 모아서 남자에게 뻗었다.

“왜, 왜 그러십… 끄아아아악!”

지지지지직!

전격이 그의 몸을 파고들며 남자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른다.

모두들 혼란스러운 시선으로 나를 보는 게 느껴진다.

지금 저들의 눈에는 그냥 내가 이 남자를 공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난 이를 악물었다.

“그림자에 완전히 먹혔군.”

남자의 몸 뒤로 언뜻언뜻 검은 형체가 보인다.

타악-

내가 힘을 주어 밀자 남자는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제, 제 이름은 벤입니다! 요, 요새 근처의 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저는 잘못이 없습니다!”

남자가 횡설수설하며 말을 늘어놓는다.

“닥쳐라.”

내가 창을 내밀어 남자의 목을 겨누자 바로 입을 다문다.

그림자는 숙주를 완전히 잠식하고서 숙주 행세를 한다.

오히려 그림자에 저항하고 있는 중이라면 도움을 요청했을 것이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하지.’

해결 방법을 이미 알고 있는데도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그림자가 사람을 먹는 순간, 그들은 역병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렇다는 건 곧.

이들을 모두 죽여야 한다는 거다.

다른 해결 방법이 있지만 지금으로선 불가능한 방법이었다.

안식을 주는 것.

그것뿐이다. 나는 창을 꽉 쥐었다. 이가 부서져라 악물며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때.

“족장님!”

트렌이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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