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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53화 (53/170)

53화

저 사원은 무엇일까.

궁금증에 가까이 다가갔다.

어디가 입구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엉망인 상태였다.

“흐음.”

펜릴도 내 옆에 다가와 사원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제는 익숙해진 용안을 개방하여 자세히 살펴보았다.

-호진 님.

“응?”

-이쪽에 구멍 같은 게 있습니다.

펜릴의 말에 그쪽으로 가 보니 딱 사람 한 명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구멍이 보였다.

슬쩍 돌을 던져 보니 한참 후에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와 연결된 것이란 뜻.

‘들어가 볼까?’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 모르지만…….

‘애초에 업 퀘스트가 그리 단순할 리 없지.’

퀘스트 목적은 이곳에 거점을 세우는 것.

하지만 그렇게 클리어 조건이 단순할 리 없다.

하필 딱 이 위치에 이런 사원이 있는 것도 수상하고.

“나 들어갔다 온다.”

-예?

“몸 숨기고 기다리고 있어.”

난 구멍 안으로 휙 몸을 날렸다.

‘뇌조야.’

키루루루루-

뇌조가 나타나며 주변을 확 밝혔다.

동시에 떨어지는 속도도 느려졌다.

-여긴 어디야?

“그러게.”

난 침음성을 흘리며 바닥에 착지했다.

“왠지 익숙하네.”

입꼬리를 올리며 천천히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익숙한 곳?

“응. 비슷한 곳을 본 적 있거든.”

가까이 다가간 벽에 무언가가 새겨져 있는 게 보였다.

바로 벽화였다.

“퍽 감명 깊은걸.”

손을 뻗어 벽에 쌓인 먼지를 털어 내었다.

그러고 보면 전의 유적지는 오랫동안 방치됐을 텐데도 먼지가 쌓여 있지 않았다.

반면에 이곳은 지상에 무너진 사원만큼이나 엉망이었다.

벽화도 한 삼분지 일은 금이 가고, 파괴되어 있고.

우선 지금 앞에 있는 벽화는 그나마 멀쩡한 편이라 내용을 알아볼 수 있었다.

“뢰신.”

-용?

뇌조가 가까이 다가와 벽화를 환하게 비췄다.

분명 일전에 신기가 놓여 있던 방에는 골렘 같은 것과 싸우는 신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이곳엔.

“둘이 적이 아니었나?”

내가 들고 있는 신기와 비슷한 모양새의 창을 든 남자가 그려져 있다.

그것도 골렘의 위에 탄 채로.

난 흥미를 느끼며 다른 벽화들을 두루 살펴봤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곳에서 숭배하는 한 인물에 대한 벽화였다.

저 신기를 들고 있는 남자. 즉, 내 추측으로는 ‘뇌신’이 그려져 있는 벽화는 더 이상 없었다.

어쩌면 저 파괴된 벽화 중에 있었을지도.

난 벽화들을 모두 둘러보고서 마지막으로 방의 중앙으로 걸어갔다.

그곳엔 처음 이 장소에 내려왔을 때부터 신경 쓰였던 게 있었다.

-이 사람도 인간이야?

뇌조가 호기심 어린 말투로 물어왔다.

그녀가 가리킨 것은 바로 동상이었다.

“아마 아닐 거야.”

난 갈색 머리 남자의 얼굴이 묘사되어 있는 동상을 올려다봤다.

‘괜히 파편이 이곳을 가리킨 게 아니군.’

남자는 ‘지룡’이라 불렸었다.

그 기억 속에서 그 남자는 ‘흰 뱀’으로 영락하게 됐었다.

본래는 위대한 용이었던 자가.

“이곳은 지룡을 모시던 신전이었나 보군.”

무의식적으로 용의 영역을 마경 내부에만 한하고 있었나 보다.

생각해 보면 용이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본래 용이라는 족속들은 제멋대로에, 자기 위주고, 다른 것의 구속을 받기 싫어하는 이들이니.

마경이 아무리 넓다 하나 그 한정된 장소 안에 다 같이 모여 살지는 않았을 것 같다.

‘듣기로는 최소 용이 3마리 이상은 됐었으니까.’

뇌룡, 지룡. 그리고 그 흰 머리의 남자도 용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닌데?

“응?”

-여기엔 ‘대지의 신’의 신전이라고 써져 있어.

난 뇌조의 말에 황급히 그곳으로 다가갔다.

뇌조가 가리킨 것은 바로 동상 아래에 위치한 문자였다.

“이걸 읽을 수 있어?”

-응! 옛날에 본 적 있어. 구슬에 갇히기 전에.

나도 이곳의 문자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대충 모양은 구분할 줄 안다. 게임을 하면서 내내 봤었으니까.

게다가 난 플레이어로서 언어와 문자의 구속을 받지 않는다.

반면에 이 문자는 해석이 안 된다.

아마 고대의 언어가 아닐까 싶은데…….

“이 아래에 써져 있는 것도 무슨 뜻인지 알아?”

-응!

키루루.

뇌조는 문자 앞에 더 가까이 다가가더니 곧 내게 말해 주었다.

-대지 신께서는 항상 우리를 굽어보신다.

특별한 내용은 아니었다.

하지만 난 ‘대지 신’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약간 혼란스러웠다.

마경에는 대지 신을 숭배하던 부족이 있었다.

지금은 와해되어 우리에게 흡수됐지만.

주술사는 분명히 신의 힘으로 보이는 권능을 사용했었다. 일반적인 주술이라면 힘들었을 강한 힘을.

그런데 지룡이 그 대지신이라고?

탁-.

그때 양어깨에 손길이 느껴졌다.

“어!”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갑자기 몸이 뒤로 쑥 넘어갔다.

버둥거리며 저항하려 했지만 순식간에 시야가 어두워졌고, 몸은 무거워졌다.

천천히 의식이 가라앉는다.

-아빠!

* * *

“더 이상은 안 돼.”

“그럼 어떻게 하려고? 이대로 있자는 거야?”

“뇌룡의 영역에 그림자가 있어! 빨리 처리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가 직접 해결할 수 있다고 했잖아!”

누군가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다투듯이 격양된 목소리를 들으며 서서히 내 의식도 돌아왔다.

눈을 떴을 때.

내가 웬 탁자에 앉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너도 뭐라고 말 좀 해 봐!”

성난 목소리.

난 갈색 머리의 남자. 즉, 지룡과 눈이 마주친 다음에야 그가 날 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얼빠진 소리를 낼 뻔했다.

만약 내 입이 움직였었다면.

하지만 내 의지와 달리 입은 열리지 않았다.

지룡이 다시 입을 열려 할 때 내 입이 먼저 열렸다.

“뇌룡은.”

한순간에 장내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놀랍도록 차갑고 냉정한 목소리다.

“몇 년 전부터 이상했지.”

시선이 스륵 움직여 자리에 앉아 있는 이들의 면면을 확인했다.

지룡. 그리고 저번에 봤던 흰색 머리의 남자.

초록색의 머리를 한 여자.

머리색이 다들 세기말 적으로 파격적이네.

속으로 괜히 우스운 생각을 해 봤지만 심장의 떨림은 멎지 않았다.

“하찮은 미물들에 너무 집착하고 있어. 자신이 무슨 자애로운 신이라도 되는 양 행동하더군.”

남자의 목소리가 이어질수록 어디선가 들어봤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게 용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행동인가?”

“우린 지금 그림자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어.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이지?”

남자. 즉, 지금 내가 깃든 것으로 추측되는 이의 말에 대답한 것은 초록 머리의 여자였다.

내 입꼬리가 한쪽으로 올라간다.

“그림자가 숨어들었다면 모두 죽이면 될 거 아닌가? 아무리 그자라도 숙주 없이 그림자를 남겨 두진 못할 텐데.”

“미쳤어? 그림자를 찾자고 그들을 모두 죽이자는 거야?”

“적어도 죽이는 척이라도 해야지. 그래야 그림자가 겁이라도 먹을 거 아냐? 애초에 지룡이 한 말도 그거잖아? 쳐들어가자고. 그렇지?”

“그래.”

지룡은 떨떠름한 표정이긴 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초록 머리의 여자는 얼굴을 일그러트리더니 책상을 쾅 내리쳤다.

“개소리하지 마. 너야 애초에 영역이 없으니 그렇게 쉽게 말하는 거겠지. 지룡, 너도 잘못 생각한 거야.”

“그럼 어떻게 하자고!”

지룡도 날카로운 목소리로 그녀를 마주 노려보았다.

“이미 대륙 대부분이 넘어갔어! 우리가 가만히 있는 게 그 새끼가 바라는 거라고!”

“하.”

여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툭 말을 내뱉었다.

“겁쟁이 새끼들.”

쾅!

여자는 신경질을 부리듯 문을 걷어차고서 그대로 나갔다.

잠시 장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침묵을 깬 건 지룡이었다.

“저러니까 광룡 소리를 듣지. 쯧.”

그는 신경질적인 어조로 말하긴 했지만 왠지 침울해 보였다.

“뭐, 됐어. 앞으로 어떻게 할지나 생각해 보자고.”

내 입이 다시 열렸다.

내 눈이 다시 움직이더니 초록 머리의 여자가 앉아 있던 자리를 보았다.

마침. 그곳엔 거울이 하나 있었다.

“그림자를 몰아내야 할 거 아니야?”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의 남자.

그리고 의식이 끊겼다.

* * *

-…빠!

-아빠!

목소리가 들리고 다시 눈을 떴다.

난 크게 숨을 들이쉬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빠 괜찮아?

한참을 숨을 헐떡인 후에야 난 뇌조에게 손을 뻗어 그녀를 쓰다듬었다.

“괘, 괜찮아.”

길지 않은 순간이었지만 ‘그 남자’와 겹쳐졌던 시간이 마치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불안함. 공포감. 위압감. 절망. 그 모든 감정들이 끊임없이 속에서 치솟아 올랐었다.

남자의 존재감에 짓눌려 나는 그저 겁에 질려 있던 영혼이 되어 있었다.

그 정도로 불길하고 거대한 존재감이었다.

‘그 목소리.’

익숙했다. 아주 짧은 순간 들었던 목소리지만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지룡에게 말을 걸던 목소리였어.’

분명하다.

결코 쉽게 잊기 힘든 음색과 분위기였으니까.

의아한 것은 전에 봤던 기억에서와 달리 지룡과 남자는 그다지 나쁜 사이로 보이지 않았다는 것.

게다가 의아한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림자라니.

내가 알고 있는 게 맞는 건가?

“우선, 우선 나가자.”

-아빠 저기!

난 바로 나가려 했지만 뇌조가 또 어딘가를 가리켰다.

바로 동상이 있는 위치였다. 슬쩍 고개를 드니 동상의 손이 빛나고 있었다.

내가 뭐라 지시하기도 전에 뇌조가 그곳으로 날아가더니 무언가를 집어 올렸다.

-이쁜 구슬!

뇌조는 나에게 구슬을 건네주었다.

멍하니 그것을 보는데 메시지가 떠올랐다.

[대지의 오브를 획득했습니다.]

“오브……?”

드드드드드-

그것을 자세히 확인하기도 전에 갑자기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뇌조! 우선 나가자!”

난 황급히 구멍 쪽으로 다가갔다.

훌쩍 몸을 띄워 구멍을 빠져나오자 펜릴이 모습을 드러냈다.

-벌써 나오셨습니까?

“여기서 벗어나!”

-예?

난 바로 펜릴의 몸에 올라탔다.

“빨리!”

드드드드드드-!

이어서 이곳까지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펜릴도 그것을 느꼈는지 더 물어보지 않고 몸을 날렸다.

충분히 거리를 벌렸다고 생각했을 때쯤 그의 발이 멈췄고, 우리는 사원이 있던 곳을 보았다.

콰르르르르릉!

사원이 통째로 땅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마치 땅이 움직여 사원을 집어삼키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 후.

마치 처음부터 평평한 땅이었던 것처럼 변해 버린 장소를 보며 나와 펜릴은 할 말을 잃었다.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우선 부족으로 돌아가자.”

아까 전 그들의 기억을 본 후로 지독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돌아가기 전 한 번 사원이 있던 장소를 살펴보긴 했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우리는 다시 부족으로 돌아갔다.

* * *

해가 완전히 뜨기 전 부족에 돌아올 수 있었다.

아직 부족원들도 일어나지 않은 듯 조용하기에 나도 곧 바로 방으로 돌아갔다.

“후우.”

실제로 그 사원에서 한 것이라곤 기억을 본 것뿐이지만 많은 일을 경험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자들은 누구지?’

난 전작의 기억을 떠올려 봤다.

하지만 딱히 생각나는 건 없었다.

전작에서 메인 스토리는 어디까지나 누가 ‘황제’가 되느냐 하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인간과 함께했었고, 누군가는 몬스터를 이끌었다. 혹은 신이나 악마의 힘을 이용해 싸우던 플레이어들도 있었고.

하지만 그때 이런 수수께끼 같은 퀘스트를 받았던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지금 이 대륙에 있는 용은 단둘뿐.’

그것도 한 마리는 직접 본 사람도 없이 소문으로만 돌던 얘기일 뿐이었다.

유일하게 플레이어들이 직접 봤던 용은 단 하나.

볼테른 제국의 수호룡 세프로스.

나도 직접 봤던 용이었고, 볼 수 있는 방법도 알고 있다.

“후우.”

그 용은 내가 보았던 기억들에 대해 무언가 아는 게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다가 우선 단념했다.

볼테른 제국은 이 왕국의 너머에 있다. 아직 그곳에 가기란 요원하다.

난 우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바로 대지의 오브였다.

‘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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