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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52화 (52/170)

52화

마경과 인접한 인간 마을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

요새가 애초에 군사적 목적으로 설립된 거라 그런지 굉장히 협소했기 때문이다.

코룸에게 연락한 지 이틀 후.

오백의 훈련병과 일천의 부족원이 이동해 왔다.

237명의 훈련병은 한 달 정도의 별도의 훈련을 거쳐서 본 부대로 합류하기로 했다.

나머지 훈련병들은 인간 마을과 요새에 분산 배치하여 경계를 맡게 했고.

인간 마을과 요새는 많이 멀지는 않지만 나름 거리가 있었기에 3등급 사제를 배치해 뒀다.

그가 앞으로 마을의 기도와 종교 활동을 주관할 것이다.

[신화 포인트가 상승합니다.]

[신화 포인트가 상승합니다.]

[신화 포인트가 상승합니다.]

마침 기도 시간이라 포인트가 계속 상승했다.

슬쩍 창문을 내다보니 인간과 부족원들이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는 게 보인다.

이곳에서 기도를 주관하는 건 케륵.

“벼락 신님은 강하시고 현명하시며, 자애로운 분이시다! 케르륵!”

사실 들을 때마다 내가 마치 사이비 교주가 된 것 같다.

“대족장님은 그분의 유일한 대리자로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내려오셨다!”

특히 나를 찬양하는 대목에선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

그래서 요샌 특별한 일이 아니면 기도 시간에 밖에 잘 안 나간다.

그룬도 ‘신비한 이미지’가 생길 것이라고 좋다고 했다.

나름 합리적인 이유로 쉬는 것이다.

“마경 쪽도 바쁘겠는걸.”

문득 기도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경 내에 있는 부족이 생각났다.

무려 천오백이나 되는 인원이 한 번에 빠졌으니 꽤 힘들 것이다.

축복을 내려 주기 위해선 조만간 다녀와야 할 텐데.

훈련병으로 분류된 오백 말고도, 천 명의 부족원들의 역할도 크다.

앞으로 훈련을 통해서 싹이 보이는 자들은 병사로 육성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생산직 쪽으로 교육을 받을 것이고.

기본적으로 천 명의 부족원들은 저번 통합 전쟁에서 흡수한 타 부족원들이 많기 때문에 아직 역할 분류가 잘 안 되어 있다.

[‘인간’ 종족에서 처음으로 신실한 신도가 생겨났습니다.]

[신화 포인트가 상승합니다.]

“응?”

갑자기 메시지가 생겼다.

인간 종족이라.

예상보다 빠른 속도다.

최소 한 달, 길면 몇 달은 걸릴 줄 알았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트롤 부족에서 첫 신도가 생긴 것보다도 더 빠른 속도였다.

자세히 확인하기 위해 메시지를 클릭했다.

저번에 시스템이 업그레이드되면서 생긴 기능이다.

[이름: 핵터]

[나이: 33]

[종족: 인간]

[신앙도: 70%]

[위치: 마하룬 요새]

[현재 벼락 신앙에 상당히 감화된 상태입니다. 주변인에게 종교를 전파합니다.]

신앙도 칠십 프로. 바로 신실한 신도의 기준선이었다.

마침 현재 위치도 마하룬 요새에 이기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인원에게 헥터를 불러오라 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평범한 인상의 사내가 들어왔다.

“아, 아, 안녕하십니까. 저, 저는 헥터라고 합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를 하더니 납작 엎드린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일으켜 주고 싶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가만히 앉아 무게감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일어나라.”

“예, 예!”

헥터라는 사내는 몸을 일으키고 나서도 긴장되는 듯 떨고 있었다.

“여기 의자를 가져와라.”

“알겠습니다! 케루룰!”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고블린이 의자를 가져왔고, 난 헥터에게 앉으라 말했다.

끼익-

의자에 앉는 그를 보며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평범해 보이는 남자다.

이자는 무슨 생각으로 종교에 그렇게 심취한 걸까?

“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예?”

“믿는 이유가 뭔지 말해 봐.”

헥터는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시, 신을 믿는 이유는 그저 그곳에 존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저, 저희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자유를 주셨습니다.”

“자유?”

“예, 예! 저는 본래 근처 마을의 농노였습니다. 그런데 벼락 신님의 군대가 나타난 이후로 농노니 평민이니 하는 구분이 없어졌습니다. 사제님께서는 신 아래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고 하셨습니다!”

남자는 처음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지만 나중에 가서는 점점 열정적인 말투가 되어 갔다.

평등. 나에겐 익숙한 단어이다.

하지만 이곳에선 인간에게도, 그리고 몬스터라 불리던 이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단어이기도 하다.

실제로 우리 벼락 부족을 보면 평등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멀다.

기본적으로 대족장인 내가 있다.

그 아래로 대사제와 1등급에서 4등급까지의 사제들이 있다.

그리고 병사들이 기본적으로 생산직들보다는 대우받는 형편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제 딸아이가 아팠었는데 사제님께서 치료를 해 주셨습니다! 그것도 공짜로요! 그분이 아니었다면 제 딸아이는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었을 겁니다!”

흐음. 이게 진짜 이유인가.

몇몇 사제들 중에선 ‘회복’ 주술을 쓸 줄 아는 이들이 있었다.

아직 신앙에 의한 권능을 얻진 못했지만, 그 능력을 이용해서 자잘한 상처들을 치유하게 하곤 했다.

식량과 치료.

우리가 가장 크게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럴 게 아니라 아예 치료 단체를 하나 만들어야겠다.

지인이나 가족, 친우가 사제에게 치료를 받으면 자연스레 종교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저는 자원해서 이곳 요새로 왔습니다. 벼락 신의 뜻을 좀 더욱 가까운 곳에서 듣고 따르기 위해서요.”

남자는 흥분한 말투로 말을 끝맺음하고서 다시 내 눈치를 보았다.

나는 그를 물끄러미 보다가 생각한 말을 꺼냈다.

“신의 뜻을 더 널리 전파하고 싶나?”

“예, 예! 그렇습니다. 자비로우신 신의 뜻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난 허벅지를 톡톡 두드렸다.

그래. 상징적인 인물이 있으면 분명히 도움이 되겠지.

“널 4등급 사제에 임명하겠다.”

“예?”

“다른 이들에게 말해 놓을 테니 며칠 후에 의복과 지팡이를 수령하라.”

남자는 당황한 듯 머뭇거렸지만 곧 다시 몸을 납작 엎드리며 몇 번이고 감사하다고 소리쳤다.

헥터가 물러난 후 나는 밖에 고블린을 불러 몇 가지 지시를 내렸다.

저 인간의 사이즈에 맞춰 의복을 만들고, 그럴 듯하게 생긴 지팡이를 하나 만들라는 것.

‘인간은 특히 보여지는 것에 영향을 많이 받으니.’

똑같은 사람이라도 양복을 걸치고 있을 때와 추리닝을 입고 있을 때의 이미지는 확연히 다르다.

안 그래도 전투보다는 관리 임무에 많이 투입된 사제들은 의복을 따로 만들어 주었다.

새하얀 바탕에 푸른색의 쐐기 문양이 들어간 사제복.

바로 그룬이 입고 있던 의복이었다.

그가 설명한 바에 의하면.

새하얀 천은 그들의 권위를 상징한다.

높은 계급의 사람은 흙이나 더러운 것을 접하지 않아도 되기에 흰 천을 입을 수 있다는 것.

일반적인 농부가 하얀색으로 지어진 천을 입으면 금세 더러워질 거다.

그리고 푸른색의 쐐기 문양은 벼락을 상징화한 것이라고 했다.

‘자네도 이들의 지도자라면 의복을 입는 게 낫지 않겠나?’

그룬은 나에게도 그렇게 말하며 연설이나 부족원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의복을 입을 것을 종용했었다.

물론 거부했다.

불편하기도 하고, 갑옷을 걸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여튼 헥터를 잘만 이용하면 인간들의 흡수를 가속화할 수 있을 것이다.

본래 농노였던 남자.

특별하거나 특이한 점이 없던 남자.

그자가 갑자기 새하얀 사제복을 입고 나타난다.

그를 보는 인간들의 마음은 어떨까?

‘출세욕도 아주 훌륭한 동기지.’

난 생각난 김에 아예 그에게 큰 집 하나를 주라 지시했다.

게다가 더 많은 식량도.

사람들은 그를 볼 때마다 생각할 것이다.

자신들도 저런 자리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나중엔 그에게 추천권을 줘도 좋겠군.’

그가 생각한 만큼 일을 잘 수행한다면 말이다.

마음속의 걱정거리가 조금은 덜어진 느낌이다.

그룬과 이야기를 해서 더 다양한 선전 방법을 물어봐야겠다. 그래도 한때 지도자의 자리에 있던 고블린이라 그런지 아는 지식이 많다.

“후우.”

떠오른 것들을 머릿속에 정리하며 몸을 일으켰다.

기도 시간은 어느새 끝나 있었다.

부족원들은 각자의 자리를 찾아 흩어졌다.

슬슬 해가 지고 있으니 출발할 시간이다.

건물의 뒤편으로 나간 후 그를 불렀다.

“나와.”

-예!

허공에서 커다란 덩치의 늑대가 튀어나왔다.

난 몸을 훌쩍 띄워 펜릴의 몸에 올라탔다.

“저번에 보여 준 방향 기억하지?”

-기억합니다!

“출발해.”

-예!

펜릴을 타고서 바로 성문을 빠져나왔다.

녀석이 전투에서 입은 부상은 펫 치료 아이템을 통해서 이미 완치된 상태였다.

그래도 혹시 몰라 며칠 동안 휴식에 집중하라 해 뒀다.

펜릴도 며칠 만에 바깥으로 나온 것이다.

놈은 오랜만에 달리니까 신나는지 연신 속도를 높여 가며 내달렸다.

이곳에선 하루가 며칠 같다.

그래서 그런지 펜릴과 단둘이 달리는 것도 엄청 오랜만인 것처럼 느껴졌다.

왠지 모를 해방감에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주변을 구경하다가 문득 누군가가 떠올랐다.

‘그 여자는 어떻게 됐을까.’

눈에 독기를 품고 있던 여자.

결국 내가 원하는 대로 하긴 했지만 어쩐지 대화하는 내내 말려드는 기분이었다.

‘고위 악마와 계약했다는 것만으로도 보통 플레이어는 아닐 텐데.’

악마와 계약하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그 악마의 ‘진명’을 알아야 한다.

게다가 그 악마를 상징하는 기호. 그리고 그와 계약하는 방법까지.

그 모든 것을 갖추지 않는다면 계약에 실패하거나, 그것을 넘어서 잡아먹힐 수도 있다.

‘악마와 계약한 플레이어들은 수가 적었지.’

하지만 한 명, 한 명이 매우 강력했었다.

우스갯소리로 악마 계약자들은 모두 다 랭커일 거란 말도 있었으니.

심지어 그들은 성국을 파괴하기도 했다.

아마도 헬리온이라는 태양신을 섬기는 종교였을 것이다.

그 때문에 해당 종교와 관련된 유저들은 며칠에 걸쳐 게시판에 앓는 소리를 했었다.

욕도 엄청나게 했었고.

계약을 통해 안전장치를 만들어 두긴 했지만.

어쩐지 불안하다.

하지만…….

‘플레이어는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런 질문이 나를 가로막았었다.

이곳은 게임과 아주 닮아 있었다.

게임을 통해서 들어왔고, 시스템도 있다.

그렇지만 정말 이곳이 게임일까?

단순히 로그아웃이 안 되는 걸까?

프로그래밍으로 이런 세상을 만들 수 있는가 하고 물어보면 회의감이 든다.

아무리 잘 만든 게임이더라도 NPC는 NPC였다.

만약 실제 사람과 같은 인공지능을 만들 정도의 기술력이 있었다면 단순히 가상현실 기술만으로 끝나진 않았을 거다.

그들은 명백히 인간과 같지 않았다.

결코 미리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했었다.

어쩌면 이곳은.

또 하나의 세상이 아닐까.

얼마 전부터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다시 나는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죽은 플레이어의 영혼은 어디로 가는 걸까.’

우리는.

과연 죽었을 때 어떻게 되는 걸까?

“저 앞에서 멈춰.”

-알겠습니다!

펜릴이 천천히 속도를 줄여 곧 아예 멈춰 섰다.

그 앞에는 무너져 있는 사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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