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47화 (47/170)

47화

난 허벅지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충돌이라.

이미 예상하고 있던 것이긴 했다.

이쪽 방면은 두 왕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멜리움 왕국과 볼캄 왕국.

우리가 지금 위치한 곳은 멜리움 왕국의 영역이다.

멜리움 왕국은 마경에서 흘러들어오는 몬스터들을 막고, 옆 왕국의 국경을 경계하고자 요새를 하나 세워 두었다.

그곳이 바로 마하룬 요새.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그들의 갑옷이나 의복에 독수리 문양이 새겨져 있었나?”

“아! 그렇습니다. 케르를.”

역시. 아마 마하룬 요새에서 정찰을 나온 병사들일 것이다.

우리들의 소문이 흘러 들어간 건지, 아니면 우연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어떻게 됐지?”

“열 명을 상대해서 대부분 죽였지만… 두 명을 놓쳤습니다.”

“아군의 피해는?”

“세 명이 사망하고, 두 명이 부상당했습니다.”

놓친 적들은 아마도 요새로 돌아가 보고를 했을 것이다.

난 굳은 표정으로 생각을 하다가 문득 앞의 고블린이 안절부절못하는 걸 보고 표정을 풀었다.

“아군의 시신은 잘 안치해 두어라. 내가 직접 장례를 치를 것이니. 그리고 부상자들은 내가 직접 치료하겠다. 너는 가서 휴식하고 있도록.”

“하, 하지만.”

“상은 나중에 따로 내리도록 하겠다. 고생했다.”

고블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웃어 주었다.

“훌륭히 싸워 주었다.”

툭툭 어깨를 두드려 주고서 난 먼저 등을 돌렸다.

우선 부상자들이 누워 있는 곳에 가서 그들에게 포션을 사용하고서 축복까지 사용했다.

다행히 큰 상처는 아니라서 치료는 쉬웠다.

나는 다시 요리를 하고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요리는 잘되고 있나?”

“케륵! 그렇습니다. 팔팔 끓여 놨습니다.”

케륵은 커다란 솥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안에 있는 국물이 벌써 뽀얗게 우러나 있었다.

슬쩍 국물을 떠서 먹어 보니 풍미가 아주 좋았다.

“좋아. 그럼 간도 맞추고 해 볼까.”

나도 소매를 걷어붙이고서 요리를 돕기 시작했다.

“자, 우선 보어룬 고기부터 가져와.”

“예!”

고블린과 오크, 트롤들이 보어룬 고기를 통째로 들고 왔다.

돼지의 사촌 같은 몬스터다.

생김새는 멧돼지에 더 가깝고, 꽤 흉악하게 생긴 놈이다.

그렇기에 먹기 며칠 전부터 특별한 방법으로 손질을 한 후에 향신료를 이용하여 숙성시켜 놓는다.

“자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솥에 나눠서 넣어!”

“예! 크루룩!”

힘이 센 오크와 트롤들이 적당한 크기로 고기를 자른다.

그러면 고블린들은 그것을 들고서 솥에 적당한 양만큼 나눠 넣는다.

본래 설렁탕을 만들 땐 양지머리를 넣고 한 시간 정도씩만 삶으면 되었지만, 이 보어룬 고기는 두 시간은 삶아야 한다.

“엄마! 저건 뭐야?”

그때 웬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슬쩍 고개를 돌리니 울타리 쪽에 인간 아이가 이곳을 구경하고 있는 게 보였다.

아이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인이 당황하더니 아이의 입을 막고서 데려가려 했다.

“구경해도 괜찮다. 오늘 저녁으로 먹을 음식이니.”

“예? 예, 예.”

여인은 당황했는지 그 자세 그대로 굳어 버렸다.

난 슬쩍 웃으며 열심히 요리 과정을 지휘했다.

일부러 취사장을 인간들의 마을에 가까운 위치에 만들어 두었기에 냄새가 그들의 마을까지 퍼져 나갔다.

몇몇 인간들이 고깃국의 냄새에 가까이 다가왔다가 깜짝 놀라는 게 보였다.

“좋아. 그 약초도 끝 부분을 잘 다듬도록 해.”

수삼을 대신할 만한 약초를 다듬고, 대파와 비슷한 풀도 잘라 둔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금세 사라졌지만 멍하니 이곳을 구경하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우리 부족원들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서 열심히 음식을 하는 데에 열중했다.

“좋아. 이제 마무리만 하고서 중앙으로 가져다 놔.”

“알겠습니다! 크룩!”

요리 과정이 끝나 갈 때쯤 케륵이와 크룩이에게 마무리를 맡겨 두고서 나는 미리 중앙으로 향했다.

-주인님! 가져왔습니다!

“이야. 도대체 어디서 잡아 온 거야?”

펜릴도 사냥을 마쳤는지 입에 거대한 짐승의 시체를 물고 있었다.

“이거 도축하고서 피는 따로 처리한 후에 통에 담아 둬. 머리뼈도 보관해 두고.”

“알겠습니다! 케를.”

도축 조를 불러서 펜릴과 함께 보내었다.

잠시 후.

커다란 솥에 담긴 설렁탕과 다른 음식들. 그리고 손질을 마친 커다란 짐승의 고깃덩이가 중앙으로 옮겨져 왔다.

“저, 저희는 어디에 있으면 되겠습니까?”

“이쪽에 앉아 있어.”

그리고 촌장도 인간들을 모두 모아서 데리고 왔다.

난 그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한쪽에 그들끼리 앉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준으론 ‘괴물’으로밖에 안 보이는 부족원들이 두려웠는지 연신 눈치를 보고 있었다.

“좋아. 그럼 바비큐를 해 볼까.”

난 인벤토리에서 여분으로 가지고 있는 거대한 창을 꺼내 손질을 끝낸 고기를 꿰었다.

“불 피워라, 케륵아!”

“예!”

미리 준비해 둔 장작더미에 케륵이 주술을 부려 불을 피웠다.

그곳 위에 고깃덩이를 올려놓고 고정시켜 두고서 펜릴에게 알아서 돌려 가며 구우라고 했다.

펜릴은 입으로 낑낑거리며 고기를 돌려 익히기 시작했다.

“좋아. 그럼 시작해 볼까.”

난 씩 웃으며 신전의 계단 위로 올라갔다.

부족원들. 즉, 트롤과 오크, 고블린들은 자유분방하게 앉아서 나를 보고 있었다.

반면에 인간들은 한쪽에 모여서 연신 사방을 둘러보며 눈치를 보고 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굉장히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나는 안다.

우리 부족원들이 어떤 이들인지.

그들은 때로는 난폭하고 흉엄하며, 잔학하다.

어린아이들조차 도끼와 몽둥이를 들고 괴수들을 사냥하는 것을 배운다.

성인들은 현재 전투 조에 배치되어 있지 않은 이들조차도 무기만 쥐어 주면 전사가 된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식인조차도 거리낌이 없었다. 내가 족장이 되면서 금했었지만.

하지만 나는 안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인간도 난폭하고, 흉엄하고, 잔인하다.

어린아이들도 일을 하며, 칼을 들고 싸울 수도 있다.

살기 위해선 그들도 칼을 든 전사가 될 수 있다.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인간들이 우리를 보며 겁에 질려 있다고 선한 이들이라고 볼 수 있을까?

약한 이들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렇지 않지.’

굳이 현대의 기억까지 갈 필요도 없이 전작의 게임 배경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전쟁이 나면 살인과 방화, 강도를 일삼는 이들이 난립하고, 먹을 게 없으면 자신의 아이까지 잡아먹는 이들이 수두룩했다.

심지어 자신의 아이를 직접 죽이지 못하겠다고 다른 사람과 아이를 바꾸는 경우까지 있었다.

애당초.

저들을 몬스터라고 규정한 게 누구였나.

숲으로, 사막으로, 오지로 쫓아내고 미개하며 잔인한 이들이라고 매도했던 게 누구였던가.

결국.

모두들 누군가 정해 둔 틀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했던 것뿐이었다.

적어도 나는.

나는 그들의 곁에서 직접 보았기에 알 수 있었다.

“우리가 누구인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삽시간에 모두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그리고 곧 큰 함성으로 대답이 돌아왔다.

“벼락 부족입니다!”

“우리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벼락 신이십니다!”

난 모든 이들을 눈에 하나하나 담았다.

“우리의 아버지이자 어머니, 형제이자 친구, 벼락 신의 이름 아래 우리는 모두 하나다!”

“맞습니다! 케르르르”

“크루루루룩!”

모두들 크게 소리친다.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았다.

하지만 난 길게 말을 잇지 않았다.

축제날 교장 선생님의 훈화처럼 지루하게 말을 늘어놓고 싶진 않았으니까.

“오늘을 즐겨라! 이곳에 있는 모든 이가 친구이므로 그저 술잔을 부딪쳐라!”

“예!”

내 말이 신호인 것처럼 줄지어 늘어서 있던 술통이 개봉되었다.

나도 내려가서 직접 술을 한 바가지 떴다.

모두 다 설렁탕을 바삐 나눠 주고, 음식들을 퍼 주었다.

인간들도, 트롤도, 오크도, 고블린도 모두 그릇 하나씩을 들고 있었다.

난 술잔을 들고서 인간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한잔하겠나?

“예, 예!”

조심스레 설렁탕을 떠 먹고 있던 촌장이 내 말에 화들짝 놀란다.

난 미리 가져온 술잔 하나를 그에게 건넸다.

“대사제 둘! 이리로 와 봐!”

“알겠습니다. 크룩!”

“예! 케륵!”

케륵이는 술잔 하나를 들고 달려왔다. 이제 금주는 아예 포기한 건가.

벌써 한 모금을 한 건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다.

반면에 크룩이는 아예 술동이 하나를 통째로 들고 왔다.

뭐냐는 표정으로 바라보니 잔을 넣어 듬뿍 뜨더니 환하게 웃는다.

“계속 푸러 왔다 갔다 하니 귀찮더라고요. 크룩.”

난 픽 웃고서 입을 열었다.

“자, 한 잔씩 하지!”

우리는 잔을 부딪친 후 쭉 들이켰다.

시큼했던 술맛도 이제는 제법 적응이 돼서 그런지 술술 넘어갔다.

크. 독하다.

반면에 촌장은 술맛에 놀란 건지 요상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하하. 입맛에 안 맞나?”

“아, 아닙니다!”

촌장은 내 말에 깜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나도 그렇게 맛있진 않거든.”

난 히쭉 웃으며 술동이에 잔을 집어넣어 다시 한가득 퍼 올렸다.

“자네도 한 잔 더 마실 텐가?”

“아! 그게, 저.”

촌장은 우물쭈물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저희가 준비한 술이 있는데 한번 드셔 보겠습니까?”

“오. 좋지.”

난 반색하며 말했다.

이곳에 오고 나선 나도 상당히 애주가가 되어 있었다.

땀을 많이 흘리다 보니 틈틈이 술을 마셨고, 그러다 보니 자주 당기더라고.

곧 덩치가 큰 장정이 나무 통 몇 개를 들고 왔다.

크룩이가 직접 나서서 밀봉되어 있는 통의 뚜껑을 열었다.

안에서 순간적으로 향긋한 냄새가 올라왔다.

“이건 무슨 술이지?”

“아, 제가 원래 살던 곳이 과실주로 제법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입맛에 맞으실지는 잘 모르겠지만.”

난 바로 잔에 담긴 술을 동이에 다시 부어 버리고 촌장이 가져온 술을 담았다.

“이걸로 한잔하지.”

“예!”

가타부타 잔을 들이켰다.

입안이 화끈거리더니 뒤이어서 향긋한 과일향이 올라왔다.

지금까지 먹던 술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풍미였다. 살짝 나는 시큼한 맛조차도 풍미를 더욱 돋우어 주었다.

그야말로 눈이 번쩍 뜨일 만한 맛이었다.

“술. 많이 가지고 있나?”

“예! 상인들에게 자주 파는 것이라 많이 만들어 두고 있습니다. 식량을 직접 재배하는 것보다 이쪽이 더 좋아서요.”

“좋아.”

난 술잔에 남은 술을 쭉 들이켜고서 촌장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자네를 양조 총 책임자로 임명하지.”

“예, 예?”

“아주 높은 자리일세. 내일 자세한 사안을 얘기해 보지.”

난 얼떨떨해 보이는 촌장을 두고서 술 몇 통을 다른 부족원들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촌장에겐 식량을 더 배급해 준다고 말해 두고서.

부족원들은 뛰어난 맛의 술에 신났는지 더욱 흥겹게 놀기 시작했다.

“뇌조야. 너도 밖에 나와서 좀 놀아.”

-응!

그리고 잊지 않고 뇌조도 밖으로 꺼내 두었다.

-키루루.

어깨에 앉은 뇌조에게 과일 조각을 하나씩 먹여 주면서 걸어 다녔다.

그때 누군가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저…….”

눈이 초롱초롱한 아이였다.

부모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기, 기사님 맞죠?”

“응?”

아이는 내 갑옷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번에 본 적 있어요. 기사님들이 번쩍이는 갑옷을 입고 창이나 칼을 들고 있는 걸요.”

난 아이의 말에 픽 웃으며 몸을 낮추었다.

“맞아. 난 기사야.”

“저, 저도 기사가 되고 싶어요!”

“왜?”

아이의 눈이 슬쩍 뒤를 향했다.

그곳엔 이 아이보다도 더 어려 보이는 여아가 설렁탕을 떠먹는 데에 열중하고 있었다.

“제가 동생을 지켜야 해요. 강해져서 기사가 돼 가지고 제 동생을 지켜 줄 거예요.”

난 아이의 말에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너도 노력을 하면 기사가 될 수 있단다.”

“정말요?”

“그럼. 나도 원래는 기사가 아니었는걸.”

아이는 그 후로도 이런저런 질문을 해 왔다.

난 웃으며 여러 대답을 해 준 후에야 아이에게서 풀려났다. 아이는 다시 쪼르르 자신의 동생에게 돌아갔다.

동생의 입 주변에 묻은 국물을 닦아 주는 아이를 보다가 난 다시 걸음을 옮겼다.

처음엔 아예 겁에 질려 있던 인간들도 음식과 술을 나누며 조금씩, 아주 조금씩 몬스터들과 어울리는 게 보였다.

여전히 어울리기보단 겁에 질려 있는 사람이 훨씬 많긴 하지만…….

축제는 이제 막 시작이었다.

인간들은 나, 그리고 나아가 부족원들을 심하게 경계했다.

그들 입장에선 생김새부터도 거부감이 있을 테고, 자리를 잡는 과정도 꽤 강압적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을 거다.

이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한다.

그저 이들에게 계속해서 보여 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이들도 너희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똑같이 먹고 마시며, 웃고 떠드는 그런 보통의 존재들이라는 걸.

여전히 인간들은 경계의 눈빛을 멈추진 않았지만 처음보단 표정이 풀어져 있었다.

난 한 노인이 술에 잔뜩 취해 구슬픈 가락으로 노래를 부르는 걸 들으며 슬며시 웃음 지었다.

아마도 축제는 한밤중까지 이어질 것 같다.

난 몇 번 더 잔을 부딪치고 다닌 다음 몰래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어느 정도 걸어 나온 다음 지도를 펼쳐 들었다.

난 길을 확인하고서 지도를 다시 집어넣은 후에 몸을 날렸다.

마하룬 요새를 향해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