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44화 (44/170)

44화

“인간 마을이군.”

“케륵. 그렇습니까?”

내 말에 케륵은 여상한 말투로 답했다.

하긴, 그에게는 별로 특별한 일도 아니겠지. 인간이든, 트롤이든, 오크든 별 차이가 없을 테니.

반면에 나는 울렁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느라 애써야 했다.

인간이다.

살아 숨 쉬고 움직이는 인간들. 그들이 내 눈앞에 있다.

저 마을의 대응에 따라 어쩌면 그대로 밀어 버려야 할 수도 있다.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그것을 나는 아무렇지 않게 지켜보고 있을 수 있을까.

‘현재 나의 친구이자 동료는 바로 이들이다.’

오크와 고블린, 트롤. 이들이 나의 사람들이다.

반면에 저 앞에 있는 마을은 적이 될지, 우리 부족으로 합류할지 모르는 이들이고.

“정찰대가 돌아오기까지 대기한다.”

“알겠습니다. 크룩.”

난 정찰대가 최대한 늦게 돌아오기를 바라며 침을 삼켰다.

* * *

약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정찰대가 복귀했다.

정찰 대장이 앞에로 나서 나에게 보고했다.

“규모는 약 팔십에서 구십 사이. 입구에 경비를 서고 있는 자들이 둘 있습니다. 하지만 내부에 따로 병력이 있는 걸론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군.”

기껏해야 자경대가 있는 수준인가.

마경 외곽과 가까운 위치인 것치고 지나치게 방비가 약하다.

주변에 함정은 없을까 살펴봤지만 그저 마을 하나가 덩그러니 있을 뿐이다.

난 곰곰이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병사들은 중간까지 이동한 후 대기한다. 그리고 나와 펜릴이 나가 일차적으로 항복 권유를 할 것이고, 받아들이지 않을 시엔 진격 신호를 내리겠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케르륵.”

케륵은 별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이미 얘기가 끝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군대가 이동을 시작했다. 숲을 나와 걷기 시작하니 우리 군대의 존재감이 더욱 도드라졌다.

어느 정도 다가가자 마을에서도 우리를 본 것인지 소란스러운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뎅- 뎅- 뎅-

종소리가 울린다.

적을 발견한 신호를 울리는 건가.

신경 쓰지 않고 군대는 나아갔고, 어느 정도 거리가 되었을 때 나만 펜릴을 타고서 앞으로 전진했다.

“누, 누구십니까?”

그리고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가장 앞에 나서서 말을 한 건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었다.

목소리는 물론이고 몸을 달달 떠는 모습이 그리 보기 유쾌하진 않았다.

자신들이 사는 집보다도 더 커다란 몸집의 늑대를 타고 나타난 자.

한 손에는 창을 들고, 몸에는 검은 갑옷을 착용한 채 심상치 않은 기운을 드러내고 있는 자.

그게 저들의 눈에 보이는 나의 모습 아닐까?

불편한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입을 열었다.

“벼락 신의 유일한 계승자이자 벼락 부족의 대족장. 고통에 허우적대는 백성들을 구하러 온 자이다.”

말을 중간에 끊었다가, 다시 입을 연다.

“너희들은 믿는 신이 있는가?”

그들은 내 말에 혼란스러워했다.

난 슬쩍 눈을 돌려 그들의 몸을 살펴보았다.

이 대륙의 세계관을 익히 알고 있는 바, 그들의 몸에 어떤 신을 상징하는 물건이 있지 않을까 살펴보려 한 것이다.

“어, 없습니다.”

백발의 노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의 눈도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다.

이미 내가 발견한 상징물만 세 개. 어디 한 종교를 믿는 건 아닌 것 같고, 사람들은 제각기 여러 종교의 상징물을 지니고 있었다.

이 대륙은 기본적으로 다신교이기 때문에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 말이 진실이냐?”

난 위압감을 더 주기 위해 무거운 목소리로 답했다.

노인의 떨림은 점점 더 심해졌고, 그 노인이 기절하지 않을까 걱정될 때쯤 난 먼저 입을 열었다.

“그전까지 무슨 종교를 믿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콰르르릉-

순간적으로 몸 안에서 기운이 뻗어져 나오며 창대에 강한 전력이 맺혔다.

곳곳에서 놀란 목소리와 신음 소리가 들렸다.

“벼락 신을 따르는 자에겐 축복을 내릴 것이고.”

일부러 중간에 말을 끊었다. 창을 높이 들어 올렸다가 바닥을 향해 휘둘렀다.

꽈르르르르릉-

창끝에서 시작된 전격이 바닥을 타고 퍼지다가 딱 인간들의 앞에 멈췄다.

털썩-

몇몇 인간들은 깜짝 놀라 뒤로 넘어졌다.

그들의 시선이 나와 내 뒤에 도열해 있는 군대에 닿았다.

“그렇지 않은 자는 이곳에 잠들 것이다.”

휘둘렀던 창을 휙 들어 올려 앞으로 겨누며 노인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노인은 침을 꿀꺽 삼켰다.

난 그들의 눈에 어린 공포를 보며 생각했다.

그래도 오늘 피를 볼 일은 없으리라고.

* * *

이 마을은 이름이 따로 없었다.

마을이 구성된 지도 겨우 오 년. 듣기로는 도망자나 화전민들이 모여 살게 된 마을이라고 한다.

마경 인근 지역에 살면서도 병력이 변변치 않았던 게 이해가 갔다.

“인접해 있는 마을이 다섯 군데 정도라.”

“예, 예. 세 군데 정도는 비슷한 규모이고… 두 군데는 저희 마을보다는 큽니다.”

난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생각했다.

생각한 것보다 마을들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

기억을 더듬어 봐도 마경 근처에 있는 곳은 단 한 군데뿐.

생각해 보면 굳이 이런 척박하고, 언제 몬스터의 습격을 받을지 모르는 곳에 살 이유가 없긴 하다.

이 마을처럼 정상적인 마을에 살지 못하는 자들이나 높은 세금을 피해서 도망 온 이들이 모여 사는 곳뿐인 건가.

“이곳에 거점을 세울 것이다. 네가 이 마을의 촌장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노인은 여전히 겁에 질려 있었다.

솔직히 이렇게 나이 많은 사람을 상대로 하대하고, 윽박지르는 게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마경에 있을 땐 전혀 느껴보지 못한 기분이기도 했다.

도플갱어 이후로 처음 본 인간인데도 반가움보단 불편함을 더 크게 느껴야 한다니.

입안에 쓴맛이 감돌았다.

“집 다섯 채 정도를 비워 두거라.”

난 마지막 막을 내뱉고서 문을 열고 나갔다.

“알겠습니다.”

등 뒤로 들리는 작은 목소리를 들으며 밖으로 나왔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렌과 케륵이 고개를 숙였다.

크룩은 병력을 관리하고 있는 듯 보이지 않았다.

“막사는?”

“아직 짓고 있습니다. 케륵.”

난 케륵과 이렌을 대동하고서 마을 중앙을 천천히 걸어갔다.

마을 사람들의 두려운 시선이 몸에 꽂혀 온다.

마치 괴물을 보는 것 같은 시선.

이렌과 케륵은 개의치 않은 듯 걸어가지만 나는 그사이에서 어쩐지 서글픔을 느꼈다.

“중앙에 자리는 비워 뒀나?”

병사들이 분주하게 막사를 짓고 있는 걸 보며 난 케륵에게 물었다.

“예. 이곳으로 오시죠. 케륵.”

그를 따라서 간 자리엔 넓은 공터가 있었다.

주변에는 조약하게나마 내가 설계한 막사들이 쳐져 있었다.

제대로 된 숙소를 짓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나무 기둥과 천을 이용한 막사를 고안해 낸 것이다.

“모두 주목!”

케륵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분주하게 막사를 세우고 있던 병력들이 나를 보았다.

나는 짧게 숨을 내쉬고서 신화 포인트 상점을 열었다.

이미 한 번 구매했던 것이기에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신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이정표를 내리셨다.”

[포인트를 소모했습니다.]

저번보다 더 거대한 규모의 물건을 사서 그런지 대량의 포인트가 빠져나갔다.

‘아이템 사용.’

콰르르릉-

하늘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어리고, 삽시간에 거대한 빛의 기둥이 땅에 꽂혀 왔다.

쿠구궁-

모두들 눈을 한 번 깜빡했을 때, 새하얀 신전이 세워져 있었다.

신전 건립.

이곳을 본격적인 거점으로 삼을 생각은 아니지만, 우선 신전은 많을수록 좋았기에 포인트를 사용했다.

나중에 거점을 옮겨도 신전에 사제들을 배치한 후 포인트 수급 및 포교 활동용으로 사용할 수도 있으니까.

난 그곳에 걸어 올라가 높은 곳에서 등을 돌려 전경을 바라보았다.

바쁘게 움직이는 부족원들과 달리 마을 내부에 모인 인간들은 그저 겁에 질려서 멈춰 있다.

이 ‘괴물’들이 자신들에게 무엇을 할까.

도대체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인가. 제각기 머릿속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겠지.

그리고 나도 그런 괴물 중 하나이다.

아니, 괴물의 우두머리이다.

아직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나를 두렵게 보는 시선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앞으로 익숙해져야 할 시선이기도 했다.

“인간들도 앞으로 우리의 세력 하에 둘 것이다. 벼락 신의 이름 아래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이니까.”

“그렇습니다. 케륵.”

내 옆에서 같이 걸어 올라온 케륵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내 말대로 종족은 중요하지 않다.

애초에 종족을 구분하여 이룰 세력이었다면 오크도 트롤도 하나가 되기 힘들었을 테니.

인간들이 겁을 집어먹은 것 또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떤 종족이든 우리가 군대를 이끌고 왔을 때 똑같이 겁을 집어먹은 눈빛이었으니까.

유일하게 문제가 되는 건 내 마음가짐뿐.

인간만을 특별하게 여기는 내 마음만이 문제가 될 뿐이다.

“후우.”

난 등을 돌려 신전의 내부로 들어갔다.

마경의 근처에 위치한 요새 하나를 알고 있다.

이런 작은 마을들과 달리 제대로 된 병력이 갖추어진 요새.

여의주 파편의 흔적을 좇아 거점을 세우기 위해선 그곳을 뚫고 지나가야 한다.

아마도 그곳엔 귀족들도 있을 것이고, 마법사나 제법 강력한 기사가 있을 수도 있다.

아무런 피해 없이 뚫기는 힘들 터.

별로 상대하고 싶은 곳은 아니었지만.

‘파편은 그 너머에 있어.’

결국, 꼭 그곳을 넘어가야 한다는 소리였다.

아마 그곳은 이곳처럼 싸우지도 않고 점령하긴 힘들 터.

곧 인간 군대와의 충돌을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것도 제일 앞에 서서.

난 허벅지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가장 안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 * *

“이곳 생활은 잘 적응이 되나?”

“예. 백작님의 은혜 덕분에 편안히 생활하고 있습니다.”

한 여자가 조심히 머리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강직한 인상의 남자는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곧 입을 열었다.

그 눈길에 담긴 음습한 기운에 그녀는 몸을 떨었다.

“알겠네. 이만 가 보게.”

“예. 감사합니다.”

다행히 남자는 별말 없이 그녀를 보냈다.

그녀는 남자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등을 돌려 문을 나왔다.

“후우.”

방에서 나오고 나서야 그녀는 참아 온 숨을 내뱉었다.

백작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압박감은 시간이 지나도 쉬이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녀는 발을 떼서 자신의 방을 향해 걸어갔다.

그녀를 알아보는 시종들이 고개를 숙여서 인사했고, 그녀도 웃는 낯으로 인사를 건넸다.

사람들은 모두 친절했다.

그녀가 백작의 특별한 관심을 받고 있으므로.

방을 열고 들어가 화려하게 장식된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나마 이 방 안에서는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그녀는 눈을 들어 맞은편의 거울을 바라보았다.

이목구비는 분명히 자신의 것이었으나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이제 계획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앞으로 일주일.

일주일이면 된다.

앞으로도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선 꼭 이루어야 할 계획.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허공을 쓰다듬다가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허공에는 반투명한 창 같은 게 떠 있었다.

[게임을 클리어할 때까지 로그아웃은 불가능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