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일… 말입니까?”
“그래.”
난 처음으로 당황한 기색을 띠는 그의 얼굴을 보았다.
“제2부족은 한 달 동안 해체 및 1부족과 통합하는 과정을 거칠 것이다.”
“그, 그렇군요.”
트렌은 갑작스러운 통보에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하지만 난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앞으로 한 달 후. 그때까지 이곳의 병사들을 네 방식대로 훈련시켜 봐.”
한 달 후면 마경 바깥으로 세력을 확장시켜 나갈 시기다.
“성과를 봐서 마음에 들면 좋은 자리를 주지.”
“알겠습니다.”
트렌의 눈에 무언가 결심이 어리는 게 보였다.
“그럼 수고하게.”
난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서 밖으로 나와 쉬고 있던 펜릴의 등 위에 올라탔다.
“돌아가자.”
-예.
펜릴의 등에 올라탄 상태로 생각했다.
앞으로 확장을 하는 과정에서 더 다양한 종족이 부족의 지배하에 들어올 것이다.
지금은 고작해야 오크, 고블린, 트롤이 전부다.
그것도 오크나 고블린과 달리 트롤의 경우는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다.
트롤 병사들을 지난 전투에서 처참하게 분쇄한 탓에 그 수가 적기도 했고, 바람 부족 외에는 다른 트롤 부족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은 이들은 대부분 항복을 한 포로들이거나 비전투원들.
그 세력이 심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런 와중에 트롤이 두각을 드러내는 건 아주 좋은 일이다.
다른 트롤들이나 앞으로 합류하게 될 다른 종족들에게 좋은 선례가 되어 줄 수 있을 테니까.
‘우선 무력은 뛰어나고.’
병사들을 통솔하거나 훈련하는 능력 또한 괜찮은지는 한번 지켜봐야겠지.
‘트롤들의 경우는 본래 신체가 튼튼하고 머리가 똑똑한 편이니.’
만약 바람 부족의 전투원들이 대부분 죽어 나가지 않았다면 그들이 실세로 군림했을지도 모른다.
기본적으로 그 스펙이 좋은 종족이니.
뭐, 번식이 힘든 종족의 특성상 앞으로 그러지는 못할 테지만. 소수의 인재들은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겠지.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 부족으로 돌아갔다.
* * *
한 달이라는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전쟁과 바로 이어진 이무기 토벌.
그것 때문에 미처 수습하지 못했던 일들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제2부족원 전체를 1부족으로 옮기는 과정도 꽤나 험난했다.
사냥을 하는 이들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새로운 건물의 건설과 이주 작업에 투입되었다.
아직 완전히 끝난 건 아니었지만 마무리는 다른 이에게 맡기기로 했다.
바로 사제들.
난 이번에 사제들 사이에도 계급을 나눠 1에서 4등급까지 분류하였다.
본래는 대사제와 사제가 전부였기 때문에 위계질서를 잡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대사제는 단 두 명.
케륵과 크룩이다.
앞으로는 ‘부족’이라는 개념을 해체할 생각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들을 족장이 아니라 대사제로 두었었다.
나중에 성장할 땐 ‘왕국’을 세울 예정이었으니까.
그리고 1등급 사제는 두 명.
바로 이렌과 케륵의 부하 중 한 명인 코룸이다.
코룸의 경우는 본래 사제 계급 중 가장 두각을 드러내고 있던 고블린이다.
무력도 뛰어난 편이었거니와 지력도 특출난 편이다. 현재는 케륵과 그룬에게 집중적으로 교육을 받고 있다.
앞으로 그는 제1부족을 관리할 예정이다. 이주 작업도 모두 그가 도맡아 할 것이고.
연락을 할 수 있는 수정구까지 하나 주었다.
그는 앞으로 판단 하에 제4등급의 사제까지 임명할 권한을 주었다.
그리고 3등급 사제의 경우도 추천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내게 보고를 하고서 허락을 받는 식이다.
그리고 2등급 사제는 네 명.
한 명은 우리와 함께 마경 바깥으로 나갈 이로, 크룩이 가르친 오크다.
거대한 전투 망치를 쓰는 자로 그 힘과 용기가 꽤 대단한 자였다.
그리고 두 명은 제1부족에 배치했다. 마지막으로 나머지 한 명은 앞으로 상인과의 식량 거래를 도맡아 할 것이다.
3등급 사제들의 경우는 숫자가 열.
부족에 남아 있을 병력의 관리와 여러 가지 실무. 그리고 윗 등급의 사제들의 보조 업무를 할 것이다.
4등급 사제들은 거의 수습 사제라고 보면 된다. 대부분이 병사로서 우리와 함께 마경으로 나갈 거다.
‘머리 아프구만.’
한숨을 내쉬며 영지 창을 띄웠다.
‘영지 창’
[벼락 부족]
[대 부족]
[총원: 4,059명]
[영지 발전도: 중하(中下)]
[충성도: 87%]
시스템이 업그레이드되면서 영지 창도 좀 더 세분화되었지만, 일부러 간략화한 버전으로 보았다.
맨 처음 고블린 부족이 삼백을 조금 넘는 숫자였던 걸 생각하면 규모가 많이 커지긴 했다.
마경 외곽에 흩어져 있는 부족들을 모조리 흡수했으니.
‘정예병의 수는 삼백.’
저번 지룡 토벌으로 인해 줄어들었던 숫자는 다시 충원해 두었다.
게다가 경비를 서는 병사와 정찰대원까지 포함하면 약 오백삼십.
병력이 전체 인원의 13%나 되니 어마어마한 숫자다.
짤막한 지식으로도 일반적인 병력 비율은 한 자리 대라는 걸 알고 있으니.
‘게다가 몬스터의 경우는 대부분이 전투를 할 줄 알지.’
심지어 이곳은 마경이다.
일반적인 몬스터들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거다.
한 명, 한 명이 강군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번 전쟁에 앞서 병력의 수를 더 충원할 예정이었다.
“신화 포인트를 더 쌓아야 돼.”
난 책상을 톡톡 쳤다.
이렇게 많은 병사를 유지하기 위해선 신화 포인트를 이용해 계속해서 식량을 수급해야 한다.
전쟁을 이어 나가기 위해선 신화 포인트가 필요하고.
신화 포인트를 쌓기 위해선 전쟁을 해야 한다.
난 생각한 것들을 적어 두었던 종이를 품속에 집어넣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고 나가자 케륵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자.”
“예. 케륵.”
난 인벤토리에서 뇌룡창을 꺼내 들었다.
자연스레 끌어오른 기운이 갑옷과 몸을 감싸며 온몸을 황금색으로 물들였다.
파지직-
그 상태로 신전의 복도를 걸어 나와 바깥에 섰다. 그 앞에는 부족원 전원이 서 있었다.
제2부족원까지 모두 이주해 왔기에 그 수는 어마어마했다.
몇천이나 되는 이들의 시선을 받는다는 건 생각보다 압박감이 컸다.
난 위축되지 않으려 노력했다.
병사들은 모두 자신의 갑옷과 무기를 착용한 상태였다.
울프 라이더들은 늑대의 위에 올라탄 상태였고, 투석기를 비롯한 공성 병기들 또한 모두 꺼내져 있다.
그리고 가장 앞에는 거대 괴수의 머리뼈 세 개와 피를 가득 채운 나무통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직접적으로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모든 부족원들도 양옆으로 늘어서서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여전히 이런 자리는 어색했지만 이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서 준비해 둔 연설을 할 시간이었다.
난 입을 열었다.
“흩어져 있던 때를 기억하는가.”
케륵과 그룬의 도움을 받고, 단편적으로나마 기억하는 지구의 명연설들을 쥐어짜 내어 준비한 연설의 첫 마디를 꺼냈다.
“모두 흩어져 서로 싸우고 반목하던 때를 기억하는가.”
오롯이 내 목소리만이 널리 퍼져나가 다른 이들의 귀에 박힌다.
“마치 짐승과 같이 식량을 탐하기 위해 서로에게 창과 칼, 발톱을 겨누던 떼를 기억하는가!”
우!
미리 준비했던 이들이 창을 들어 올리며 소리를 지른다.
“우리는 현재 벼락 신의 이름 아래 뭉쳤다. 모두가 다음 날 식량을 걱정할 필요도 없게 됐고, 적의 습격을 걱정하느라 밤을 지새울 필요도 없게 됐다.”
우-! 우!
“그 모든 게 벼락 신의 하해와 같은 은혜 덕분이다. 신은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힘을 주셨으며, 모두가 뭉칠 수 있게 해 주었다.”
우-!
난 점점 열기가 오르는 부족원들을 보며 창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것이 바로 신의 뜻이다.”
창에 푸른 전격을 둘렀다.
“이것은 내가 명하는 것이 아니다. 벼락 신께서 명하는 것이다!”
쿵!
창을 바닥에 내리찍었다.
동시에 바닥에 퍼져 나간 전격은 내 옆에 서 있는 이들의 몸을 타고 올랐다.
그들의 몸을 해하는 대신 그들에게 위엄을 심어 주기 위해 전격은 피어올랐다.
“이 전쟁은 적을 처단하는 게 아니라 신의 뜻을 알지 못하는 이들을 구원하기 위함이다!”
쿵!
-우!
이제 미리 지시를 내려 두지 않았던 병사들도 무기를 내리 찍으며 기성을 내질렀다.
“우리들은 이제부터 자랑스러운 신의 전사들이다. 우리의 목적은 신의 뜻을 널리 퍼트리는 것. 신께서 부여하신 권한으로, 벼락 신의 유일한 계승자인 내가 약속한다. 어제까지 적이었던 이들은 곧 우리와 같은 뜻을 품은 형제가 될 것이고, 우리가 흘린 피는 곧 벼락 신의 뜻을 널리 퍼트리기 위한 거룩한 성혈이 될 것이다!”
창을 높이 들어서 기운을 하늘 높이 쏘아 올렸다.
땅에서 쏘아진 벼락은 하늘에 닿아 잠깐이나마 세상을 하얗게 물들였다.
-우!
병사들이 창을 들어 올리며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드높였다.
나는 그들을 보며 마지막 말을 준비했다.
크게 소리치지 않아도 멀리 들리도록 기운을 가득 담아 뇌까렸다.
“그것이 신의 뜻이다.”
-우! 우!
내 말이 끝나자마자 거대한 함성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작한 함성은 부족을 넘어 숲 전체를 강하게 울리는 것처럼 보였다.
-케르르으으으윽!
-크르라아아아!
-이호진! 이호진!
-대족장님 만세!
-벼락 신님 만세! 만세!
병사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투쟁심을 보였으며, 부족원들은 모두 광기에 빠진 듯 보였다.
지금의 사기라면 어떤 괴수라도 도륙해 낼 것 같았고, 능히 혼자서 열이 넘는 적군을 상대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어마어마한 기세에 나조차 몸이 떨려왔다.
광신이다.
신의 이름이란 이토록 강렬하고 파괴적으로 작용한다.
그것에 난 전율했고.
동시에 우려했다.
하지만 난 그것을 표현하진 않았다. 아니, 못했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원했던 것이니까.
메인 퀘스트.
여의주 파편의 궤적을 쫓기 위한 영토 확장.
우린 인간 왕국의 경계를 뚫고 들어가 거점을 세워야 한다.
바로 그것이 나의 퀘스트였으므로.
그리고 나는 그것을 신의 뜻으로 포장한 것이다.
이 광기를, 신을 향한 강렬한 열망을 내가 계속해서 통제 하에 둘 수 있을까.
나를 그것이 나를 찌르는 창이 되지 않게 되길 강렬히 염원하며 등을 돌렸다.
“해가 지기 전까지 내일 출진할 준비를 끝내 놓아라.”
“알겠습니다. 케륵.”
난 텅 빈 신전을 걸으며 투구를 벗었다.
이제 내일이면 마경을 벗어난다.
그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 * *
수백의 병사들이 앞으로 나아간다. 벌써 세 번째 출전이다.
병사들의 수는 갈수록 늘어났고, 그 기세는 더 흉험해졌다.
펜릴도 위엄에 찬 모습을 보이기 위해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묵묵히 걷기만 했다.
양옆으로는 괴수들의 머리뼈를 실은 수레가 따라오고 있다.
케륵과 크룩, 그리고 이렌은 늑대들 중 가장 덩치가 큰 이들의 위에 타 있다.
이번엔 트롤 또한 이십 명이나 병사로 들어왔다.
중간에 위치한 트롤 부대의 가장 앞에선 건 바로 트렌.
‘인상적이었지.’
그에겐 제2부족의 병사들의 훈련을 맡겼었다.
그 훈련의 결과를 보기 위해 삼 일 전 3등급 사제가 이끄는 정예병 오십과 모의전을 하게 했었다.
결과는 트렌이 이끄는 병력의 압도적인 승리.
병력의 질 자체는 정예병이 더욱 높은 편이었지만…….
개활지에서 모의전이 시작되자마자 트렌은 다섯의 병사와 앞으로 뛰쳐나갔다.
정예병을 지휘하던 건 오크 사제.
그도 무력이 뛰어난 편이었고, 병력들을 지휘하는 데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였었지만.
트렌의 갑작스러운 돌격에 그 오크는 당황하며 별다른 방비를 하지 않은 채로 맞부딪혔다.
트렌의 대검과 오크의 양날 도끼가 부딪힌 건 단 오 합.
대검의 넓적한 면에 머리를 얻어맞은 오크는 기절한 채로 옆으로 쓰러졌다.
그 와중에 트렌을 따라 뛰쳐나온 병력들은 사제의 주변을 감싸고 있던 병력들이 둘의 싸움에 끼어들지 못하게 밀어냈고.
그 뒤로 나머지 병력들도 뛰어들어 지휘관을 잃은 병사들을 몰아쳤다.
미리 트렌이 지시를 내려놓은 듯 그들의 움직임은 거침이 없었다.
반면에 정예병 쪽은 한 번 기세에 밀린 이후로 쭉 쓸려 나갔다.
‘그만.’
난 그래서 손을 들의 그들의 전투를 끝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강렬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트렌을 향해 씩 웃어 주며 이번 원정대에 합류하라 말했다.
‘기대되는군.’
트롤 이십과 그가 직접 훈련시킨 병력 오십.
그들은 별동대로서 전략을 수행할 것이다.
케륵이 그룬을 소환할 수 있게 한 이후로 그의 전략도 발전이 있었다.
앞으로 우리보다 많은 수의 병력을 상대할 일이 많을 테니 지금까지와 같은 단순한 전략으론 힘들었을 텐데.
아주 중요한 자원을 얻었다.
여의주 파편이 그린 궤적의 위치를 생각하면 상당히 많은 거리를 나아가야 한다.
“대족장님!”
곰곰이 앞으로의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저 앞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찰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두 정찰대 중 제1정찰대원 중 한 명이었다.
“케르륵. 곧 숲을 빠져나갑니다. 그리고 바로 앞에 마을이 하나 있습니다.”
“그들에게 들키지 않는 선에서 그 마을을 자세히 관찰하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정찰대원은 보고를 마친 후 다시 정찰대와 합류하기 위해 빠르게 달려갔다.
우린 계속해서 앞으로 이동했고, 곧 앞서 정찰대가 말한 대로 숲의 끝에 다다랐다.
“정지.”
“정지! 케르륵!”
“멈춰! 크룩!”
내 명령에 케륵과 크룩이 바로 병력을 통제해 자리에서 멈춰 서게 했다.
바로 앞에 마을이 하나 있었다. 용안과 기운을 이용해 눈을 강화하자 그 안이 보였다.
울타리가 둘러져 있는 내부에 허름해 보이는 집들이 늘어서 있다.
그리고 그 안을 돌아다니는 이들 또한.
인간들의 마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