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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42화 (42/170)

42화

푸른색의 반구.

그것에 가까워질수록 그 거대함이 똑똑하게 와닿았다. 그 끝이 어딘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결계.

우리는 속도를 높였고, 곧 결계의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크룩. 뭔가가 앞을 막고 있습니다.”

크룩이 결계에 손을 뻗어 무언가를 더듬거린다.

그의 눈엔 결계가 보이지 않을 테니 투명한 벽이 가로막고 있는 느낌이겠지.

나도 펜릴의 등에서 내려 결계에 손을 대었다.

손이 닿았을 때엔 그냥 딱딱한 벽을 만지는 것 같았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기운을 끌어올린 순간.

파앙-!

순간적으로 큰 반탄력이 느껴졌다.

“족장님! 케륵.”

“괜찮으십니까?”

다른 이들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어왔지만 내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이 지역은 현재 입장이 불가능합니다. 조건을 충족시켰을 시 개방됩니다.]

생소한 이야기였다.

전작에선 이런 식으로 입장이 불가능한 곳은 없었으니까.

한 번 더 기운을 불어넣어 보았지만 똑같았다.

입장 불가라.

펜릴을 비롯해 모두가 돌아가며 결계를 통과하려 해 봤지만, 넘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투웅!

“크르륵.”

크룩과 케룩 모두 기운을 불어넣고 결계를 만졌다가 그대로 튕겨 나왔다.

‘왜 입장 불가인 거지?’

다른 게임들처럼 단순히 위험한 지역이라, 고렙 존이라 막아 놨다는 건 납득이 안 간다.

이 게임이 인기가 없던 이유 중 하나는 너무 불친절했기 때문이다.

레벨로 나눠 놓은 사냥터조차 거의 없었고, 모든 장소는 그곳만의 생태계가 구성되어 있다.

이곳 마경 같은 경우는 그중에서도 유난히 험난한 곳.

고 레벨이 되었을 땐 단순히 강한 몬스터를 잡는 것만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피되는 지역 중 하나였다.

나도 강한 몬스터를 잡는 것보다 퀘스트를 깨는 것에 더 관심이 많은 편이었고.

‘고 레벨들이 들어갔다가 순삭되었다는 얘기가 나온 이후로는 더더욱 기피 지역이 됐었지.’

난 결계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다음 목표를 마경의 심부로 정해 두었기에 허탈한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도의 마음도 있었다.

아직 약한 게 아닐까. 준비가 더 필요한 게 아닐까. 그런 불안감을 느끼곤 했었으니.

꾸웅-!

복잡한 심정으로 결계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큰 진동이 울렸다.

나만 느낀 게 아닌지 모두들 흠칫 놀라며 결계 쪽을 바라보았다.

쿠웅!

점점 그 소리가 가까워진다.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

쿵! 쿵!

그리고 점점 빨라지고 있다. 어느 순간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꽈아앙!

갑자기 결계에 무언가가 거세게 부딪혔다.

정체 모를 괴수의 넓은 등판. 그리고 더욱 놀라온 것은 그것이 날아왔다는 것이다.

“원숭이…….”

그것이 결계를 따라서 주욱 미끄러져 내렸고, 앞면이 보이며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거대한 원숭이. 거대 괴수종의 일종인 것 같은데.

놈은 아예 혀를 삐죽 내민 채로 기절해 있었다.

혼자서 날아와 기절했을 리는 없고. 도대체 저런 놈을 저렇게 무지막지하게 던진 놈은 어떤…….

크르릉-

펜릴도 이를 드러내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우린 곧 흉수의 정체를 직접 볼 수 있었다.

흰색의 털에 검은색 줄무늬가 그어진 몸체.

원숭이보다 살짝 커다란 몸이었지만 그 위압감은 비교할 수도 없다.

놈은 우리를 보면서도 별달리 놀란 기색이 없었다.

천천히 원숭이에게 다가가 놈의 목덜미를 물고.

우리를 무심한 눈빛으로 내려다보고서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

-백호… 백호입니다.

“백호?”

놈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펜릴이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예, 유명한 놈입니다. 예전엔 한 번씩 마경 외곽까지 내려와 헤집어 놓고 했던 놈인데. 최근에는 안 보여서 죽은 줄 알았습니다.

“그래?”

아마도 그 이유는 저 결계 때문이 아닐까.

“강한 놈이야?”

-…예. 기본적으로 깊은 곳에 서식하는 놈입니다. 저놈 혼자서 안쪽의 부족 하나를 궤멸시켰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렇군.”

이무기도 강했다. 그야 내가 갑자기 봤던 그 기억에 의하면 약할 수가 없는 놈이었으니.

하지만 그만큼이나 저 백호도 강해 보였다.

이무기는 말하자면 생태계 교란종 같은 놈이었다.

반면에 저 안은 원래부터 강한 놈들이 득시글거리는 놈들이니.

“우선 이 결계를 한번 둘러보고 돌아갈까.”

모두의 굳은 표정을 풀기 위해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우선 왼쪽으로…….”

하지만 그 말도 끝까지 이을 수 없었다.

한 번 더 이변이 일어났으니까.

우우웅-

인벤토리의 문양이 새겨져 있는 손등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처음 겪어 보는 일이었고. 내가 어떻게 하기도 전에 인벤토리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화아악-

여의주의 파편.

그것이 공중에 빛을 뿜어내며 공중에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그것에 손을 뻗었다.

그것은 마치 자석처럼 낸 손에 빨려 들어왔고, 곧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메인 시나리오가 시작됩니다.]

[대족장의 업 퀘스트가 발동했습니다.]

[대족장의 업 (1) - 여의주의 파편]

[지룡(地龍)의 여의주 파편이 갑자기 빛을 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소유자에게 길을 안내해 줄 것입니다. 그 길을 따라가십시오. 그리고 그곳에 거점을 세우시오.]

대족장의 업.

그것에 눈이 못 박히듯 고정되었다.

얼마 전에 20레벨을 달성했을 때 생각했었다. 드디어 초보자 딱지는 떼었다고.

그건 내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반면에 지금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는 공식적으로 내가 저렙 구간을 벗어났다는 인증이었다.

‘업 퀘스트가 발동됐다는 건 무언가 조건을 충족시켰다는 건데.’

일명 업 퀘스트라고 불리는 이 퀘스트는 대족장 이후부터 생긴다.

대족장, 왕, 황제로 이어지는 구간은 단순히 조건을 충족시킨다고 승급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금과 같은 경우는 대족장의 업 퀘스트를 끝까지 깨었을 때야 비로소 왕이 될 자격을 얻는다.

“족장님?”

옆에 서 있던 케륵이 의한 듯 나를 불렀다.

난 메시지에서 눈을 떼서 그를 바라보았다가 다시 다른 이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우리는.”

탁. 손을 펼치니 여의주의 파편이 쭉 하늘로 뻗어 올라갔다.

길게 뻗어 나간 파편은 하늘에 궤적을 남겼고, 그것은 딱 보기에도 마경의 바깥을 가리키고 있었다.

“당장 부족으로 돌아간다.”

“케륵?”

난 몸을 훌쩍 뛰어 바로 펜릴의 등에 올라탔다.

“케륵, 크룩 둘 다 위로 올라와.”

펜릴이 눈치 빠르게 몸을 굽혀 주었고, 둘은 빠르게 그 위로 올라탔다.

“달려!”

-알겠습니다!

순식간에 펜릴의 몸이 쏘아져 나갔다.

* * *

부족은 평화로웠다.

반면에 우리는 열띤 토의를 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 나가는 건 무리입니다. 케륵.”

-아직 바깥으로 나가는 건 시기상조이네.

케륵이 말하고 그룬이 옆에서 덧붙인다.

중요한 회의이므로 그룬도 쿨이 돌 때마다 계속 소환하면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어차피 다 허약한 놈들 아닙니까! 우리 부족의 힘이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습니다! 크룩.”

크룩은 호전적인 말투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저는 족장님의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이렌은 나의 의견에 따른다 말했다.

나도 우선 바깥으로 영역을 확장하자고 말하긴 했다.

그렇기에 3대 1, 아니 그룬을 포함하면 3대 2다.

애초에 ‘거점’을 설립하라는 퀘스트이니 무조건 나가야 하긴 하지만.

“네 의견을 더 자세히 말해 봐.”

난 케륵을 가리키며 말했다.

케륵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전쟁을 이어 왔습니다. 물론 내실을 다지려는 노력을 계속 이어 오긴 했지만, 아직 부족한 게 많은 상태입니다. 훈련도 필요하고, 좀 더 부족의 관리를 체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길게 말을 이어가다가 한 번 쉬고서 다시 말했다.

“특히 예전 부족의 중심이었던 제2벼락 부족을 관리하는 것 또한 힘들 것입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나 또한 쉽게 결정을 못 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

하지만 지금 당장 ‘업 퀘스트’를 생각하면 마음 편히 미룰 수도 없는 상황이다.

퀘스트는 항상 유기적으로 변화했고, 만약 시간이 지나는 동안 무언가 일이라도 생긴다면…….

내가 입을 다물고 있는 동안 다른 이들 사이에서 격한 대화가 오갔다.

난 그들의 의견을 들으며 곰곰이 생각했고, 마지막에 와서 결론을 내리듯 말했다.

“한 달.”

모두들 말을 멈추고 나를 보았다.

“앞으로 한 달. 그동안 모든 준비 작업을 마친다. 그리고 제2부족은 1부족과 합칠 것이다.”

부족한 시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것에 신경 쓰다 메인 퀘스트의 흐름에서 벗어나는 게 더 좋지 않다.

“한 달 후, 우리는 마경의 바깥으로 향한다.”

* * *

제2벼락 부족.

본래 고블린 부족과 오크 부족이 있던 곳의 중간에 세워진 곳이었다.

그곳에서 고블린과 오크가 서서히 한 부족이 되었고, 훈련을 했으며, 전쟁을 준비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전쟁을 마쳤을 때 우린 바람 부족을 쓰러트렸고, 부족의 중심지는 제1벼락 부족으로 이동되었다.

“만나 뵈어 영광입니다!”

난 가장 앞에서 나에게 넙죽 인사하는 트롤을 바라보았다.

오크도, 고블린도 아닌 트롤.

그렇기에 더욱 흥미로운 자였다.

분명 트롤도 우리 부족의 일원으로써 받아들인다고 하긴 했었다.

하지만 기존에 케륵과 크룩의 밑에서 힘을 기르던 오크들과 고블린이 있었을 터.

놈은 그들을 밀어내고 제1의 강자에 올랐다는 얘기이니.

‘강자존.’

그것이 내가 이곳을 ‘제2벼락 부족’으로 명명한 후에 정한 규칙이다.

세력을 확장시키기 위해선 지속적으로 인재가 필요하다.

제1부족엔 나와, 크룩, 그리고 케륵이 있었지만, 제2부족엔 확고한 권력을 가진 이가 없다.

그래서 누구든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열어 두었다.

실질적으로 부족의 관리는 사제 계급이 도맡아 한다.

그렇기에 내가 열어 준 자리는 말하자면 ‘장군’의 자리.

기존의 체계에 의하면 대전사라는 이름이었던 자리다.

본래는 제법 무력이 쓸 만한 오크를 그 자리에 두었었다. 그리고 언제든지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일대일 대결을 통해 뺏을 수 있게 해 두었고.

대신 서로 목숨을 빼앗지는 못하게 했다.

몇 달 정도 시범적으로 운영하고서 옥석이 가려진 후에는 없애려고 했던 제도이긴 했지만.

“너는 이름이 무엇이지?”

“트라쿠혼입니다.”

“트라쿠혼. 줄여서 그냥 트렌이라고 부르지.”

“예!”

이 트롤은 자신 이름을 마음대로 바꿔 말하는데도 별다른 거부감이 없는 듯했다.

뭐, 우선 표정 관리는 잘하는 건가.

난 그 트롤을 따라 부족을 죽 둘러보았다.

부족은 원활히 운영되고 있었다. 딱히 특이한 점도 없었고.

애초에 주기적으로 오가는 이들에게 보고서를 받곤 했었기에 금방 확인을 끝내고서 다시 마지막엔 트렌과 단둘이 마주했다.

“주로 쓰는 무기가 뭐지?”

“아… 금방 가져오겠습니다.”

그는 슬쩍 내 눈치를 보더니 어딘가로 나갔다가 무기를 들고 왔다.

그것은 그의 높다란 키와 비슷한 길이에 널찍한 검이었다.

난 한눈에 트롤의 폭발적인 힘과 유연함, 민첩이 어우러져 얼마나 굉장한 위력을 낼지가 보였다.

“혹시 자네가 자리를 비우면 부족이 제대로 운영이 안 되나?”

“예? 아닙니다. 대부분의 관리는 사제님들이 주로 하는데요.”

난 그를 물끄러미 보다가 다시 말했다.

“너, 나랑 일 하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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