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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41화 (41/170)
  • 41화

    케륵은 내 말에 굳은 표정으로 알겠다고 했다.

    계획에 대해 자세히 얘기하진 않았다. 어차피 저 둘이 깨어나면 다시 얘기해 줘야 하니.

    케륵에게 다음 날 출발할 예정이니 미리 병사들을 준비시켜 두라고 하고서 나는 다른 빈 집으로 옮겨 갔다.

    피로가 아직 덜 풀렸었는지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그대로 잠들었다.

    * * *

    잠이 깬 건 다음 날 아침이었다. 생각보다 더 오래 잔 것 같다.

    난 바로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고블린에게 병사들을 집합시키라고 말해 두었다.

    기지개를 편 후 의복과 갑옷을 제대로 갖춰 입고 밖에 나가니 그사이에 온 병력이 집합해 있었다.

    난 천천히 케륵과 크룩이가 서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모두 준비를 마쳤나?”

    “케륵. 그렇습니다.”

    고개를 끄덕이고서 질서 정연하게 서 있는 부족원들을 둘러봤다.

    잠에서 깬 지 얼마 안 됐지만 정신은 이미 맑은 상태였다.

    특히 이들을 보고 있자니 괜히 기분이 묘해졌다.

    맨 처음 이곳에 맨몸으로 떨어졌던 것.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고블린 부족에 합류했던 것.

    오크와의 전쟁을 승리해 그들을 흡수했고.

    세를 키워서 결국 그전까지 최대 세력이었던 바람 부족을 꺾었다.

    게다가 이번엔 이무기, 아니 지룡을 잡는 것까지 성공했다.

    그 모든 일들을 겪고 난 후의 병사들은, 나만큼이나 많이 변해 있었다.

    모두가 몸을 꼿꼿이 세운 채로 내 명을 기다리고 있는 그들에게선 무시할 수 없는 기세가 풍겨 왔다.

    아직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참으로 든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피로가 많이 쌓여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아닙니다!”

    내 말에 우렁찬 대답이 들려온다. 난 피식 웃고서 그들에게 말했다.

    “승리를 축하하는 건 부족으로 돌아간 후로 하지.”

    오랜만에 축제나 열어야겠다.

    “집으로 가자!”

    “예!”

    펜릴의 등에 올라타 가장 앞으로 나아갔다.

    그 뒤를 늑대에 올라선 케륵과 크룩, 그리고 이렌이 뒤따른다.

    그렇게 우리는 부족을 향해 걸었다.

    * * *

    부족으로 돌아가는 길에 별다른 일은 없었다.

    이미 마경의 외곽 지역은 전부 다 우리의 지배하에 놓여 있으니까.

    부족에 남아 있던 이들에게 격렬한 환영을 받으며 들어온 후 병사들에게 휴식을 명했다.

    며칠 동안 부족들을 돌아보며 휴식하는 시간을 보냈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슬슬 한가해졌다.

    그래서 오늘은 중앙 신전 뒤에 마련해 놓은 연무장에 왔다.

    크룩과 함께.

    “족장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크룩은 갑자기 바닥에 넙죽 엎드리며 감사 인사를 올렸다.

    일반 부족원들이 드나들지 않는 장소이긴 하지만 난 그를 바로 일으켜 세웠다.

    “괜찮아. 어차피 나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졌던 거라며.”

    “그래도…….”

    크룩의 시선이 슬쩍 자신의 팔을 향했다.

    그는 깨어나 보니 자신의 팔이 재생되어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었다.

    오는 길에도 몇 번이나 감사하다고 하는 통에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처음엔 아주 감동해서 울먹이기까지 했으니.

    부족에 도착한 다음에는 일부러 피해 다녔다.

    “이제 됐다. 우선 네 능력부터 한번 보자.”

    “알겠습니다.”

    크룩이도 케륵이와 마찬가지로 외형에 크게 변화는 없다.

    둘 다 공통적으로 덩치만 커졌으니. 다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은.

    ‘용안.’

    왼쪽 눈이 따끔거리고 보이는 시야에 변화가 생겼다.

    오는 길에 몇 번씩 사용해 가며 알아낸 특징들.

    용안은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을 수는 없다.

    지속 시간은 대략 한 시간 정도.

    그리고 크룩이의 건틀렛이나 케륵이가 불러낸 영혼처럼 평소엔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게 해 준다.

    “크르르우우욱!”

    그전엔 크룩이가 거대화를 할 때는 주문을 외웠지만 이번 진화를 거치며 발동 방법이 바뀌었다.

    크룩의 몸 내부에서 퍼져 나온 기운이 그의 몸을 내달린다.

    그리고 순식간에 크룩의 몸이 커진다.

    단순한 기운의 운용만으로 거대화를 발동시킬 수 있는 것이다.

    “어마어마하군.”

    순식간에 신전 건물보다 커진 크룩의 몸집.

    그를 보며 나는 다시 한 번 용안의 대단함을 느꼈다.

    그의 온몸을 내달리고 있는 기운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기운의 흐름이 명확히 보이고 있다.

    기운 혹은 마나. 모두 스킬을 비롯한 특수한 능력들의 기반이 되는 것들이다.

    용안은 바로 기운의 흐름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그전엔 어렴풋이 느끼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단순히 보고 있는 것만으로 확인할 수가 있으니.

    느끼는 것과 보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기운의 흐름을 파악하면 곧 상대방이 어떤 공격을 할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게 되는 거니까.

    괜히 용의 눈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은 게 아닌 것 같다.

    “족장님.”

    크룩이 저 위에서 나를 보며 말했다.

    단순히 부른 것뿐인데 그 소리가 꽤나 컸다. 아마도 다른 부족원들도 모두 크룩이를 보고 있겠지.

    “한번 그 능력도 같이 사용해 봐!”

    녀석에게 들리도록 크게 소리쳤다.

    크룩은 이번 진화를 거치며 거대화했을 때의 크기가 더 커졌다.

    하긴 본래 거대화하기 전의 몸도 커졌으니까.

    “알겠습니다.”

    크룩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기운이 순식간에 팔로 뻗어 나가며 반투명한 건틀렛에 스며들었다.

    곧 오른손에 착용되어 있는 건틀렛이 점점 밝은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고, 이내 천천히 은빛을 띠었다.

    ‘용안 해제.’

    눈이 감겼다가 떠지며, 크룩이의 몸을 흐르던 기운이 다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은빛의 건틀렛.

    “거대화 상태에서도 쓸 수 있군.”

    크룩이 깨어나자마자 이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진화를 한 후 거대화를 쓰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반면에 저 건틀렛은 이미 몇 번 사용해 보았다.

    “다시 몸집을 줄여!”

    우선 확인할 건 끝냈기에 다시 크룩에게 소리쳤다.

    지금 상태에서도 위력을 확인해 보고 싶지만 아마 그랬다간 부족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크루룩.”

    몸집이 커질 때만큼이나 줄어드는 것도 순식간이다.

    크룩은 온몸에서 열기를 뿜어내며 숨을 몰아쉬었다.

    “손을 뻗어 봐라.”

    “예. 크룩.”

    그의 오른팔에 장착된 건틀렛은 손끝부터 시작해서 팔꿈치까지 이어져 있었다.

    키릭-

    그것은 그가 팔을 움직여도 유연하게 구부러졌다.

    이 게임의 배경과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유려한 생김새다.

    전체적인 색은 은빛. 섬세하게 조각된 문양. 꽤나 두꺼운 것 같은데도 손가락 마디 하나하나 유연하게 연결되어 있다.

    아마도 이것은 진화 아이템일 터.

    “한번 오른쪽 바닥에 대고 사용해 봐.”

    “알겠습니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올리고서 기운을 끌어 올렸다.

    키이이잉-

    찰칵. 찰칵-

    그러자 건틀렛에 푸른빛이 돌더니 그 크기가 더욱 커졌다.

    콰지지직-

    게다가 전격까지 감돈다. 크룩은 힘을 주더니 높이 뛰어 올랐다.

    “크라아아아악!”

    그는 높이 들어 올린 오른팔을 빈 바닥에 내리쳤다.

    콰앙!

    팔과 땅이 닿는 순간 내 발에도 진동이 느껴졌다.

    바닥에 퍼진 전격은 그의 주변으로 원을 그리며 퍼져 나가다가 멈췄고.

    그의 주먹이 닿은 지점엔 커다란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게다가 주변의 땅도 쩍쩍 갈라졌으니.

    “맞으면 꽤 아프겠네.”

    “크룩. 가, 감사합니다.”

    크룩은 머쓱하게 웃음 지으며 팔을 거뒀다.

    기본적인 능력은 강화와 전격.

    주술을 사용할 때보다 훨씬 빠르면서, 그 위력도 더 강했다.

    “벗는 건 안 된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크루룩. 아무리 힘 줘도 안 빠집니다.”

    크룩은 건틀렛을 한 손으로 잡고 낑낑거리며 힘을 주었지만 건틀렛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진화 아이템의 특성 중 하나다. 완전한 귀속 아이템.

    진화나 승급 아이템은 본래 몬스터와 NPC들이 가지는 특전 중 하나다.

    보통 이 세계의 NPC들이 승급을 거칠 때는 여러 가지 방면으로 강화가 된다.

    아예 상위 단계의 종족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능력이 생길 수도 있으며, 크룩과 같이 아티팩트 형태의 귀물을 얻을 수도 있다.

    보통은 ‘신물’이니 ‘신기’니 하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하는 모양이지만.

    그 이름에 어울릴 만큼 강력한 경우가 보통이다.

    ‘검신이나 창귀가 그 경우였지.’

    나는 인간 진영 NPC 중 유난히 강력한 두 인물을 떠올렸다.

    각자 검과 창을 무기로 쓰는 자들이고, 둘 다 승급 아이템을 얻은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최소 전설급 아이템과 동일한 힘을 뿜어내는 무기를 쓰고 있으니.

    “그걸 다루는 연습을 더하고 있도록 해.”

    “알겠습니다. 크루룩.”

    난 크룩이를 뒤로하고 연무장을 빠져나왔다.

    현재는 바쁜 일들은 대부분 마친 상태.

    크룩과 케륵이도 자신의 단련에 매진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들이 교육시킨 사제들이 부족을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식량이 구매되었습니다.]

    [식수가 구매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내 힘이 필요한 것은 보통 이런 부분이다.

    식량을 구매하거나 아이템을 구매하고, 신화 포인트를 사용해 병사들에게 축복이나 능력 등을 내리는 일.

    아직은 식량 수급이 부족한 편이긴 했지만 어차피 지금과 같은 형태에서 자급자족은 힘들었다.

    신화 포인트를 이용해 우선 창고에다가 식량들을 쌓아 놓았고, 상인들에게도 식량을 구매 요청해 두었다.

    아마 내가 플레이어가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빨리 성장하는 건 힘들었을 거다.

    정복을 해서 수를 불리는 만큼 막대한 식량이 요구되었을 테니까.

    ‘제작 부분이 미진한 건 아쉽지만.’

    기본적으로 제작 부분에 그리 뛰어난 종족들이 아니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드워프, 아니 최소 인간 쪽 장인들이라도 영입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고블린들 중에도 있긴 하지만.’

    고블린들 중 장인이 많기로 유명한 부족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워낙 희귀한 데다가 숨어 살기 때문에 드워프만큼이나 만나기 힘든 이들이다.

    우선 당장 내 장비가 부족한 편은 아니니 아쉬움을 접어둘 수밖에.

    난 천천히 부족을 거닐며 부족원들이 훈련이나 일에 매진하는 것을 구경하다가 저녁에는 축제를 열어 주었다.

    “케르르르르”

    “마셔! 크라아아!”

    이번엔 이무기 토벌 축하제다.

    다들 신나게 축제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다가 내 방으로 돌아갔다.

    내일을 위해 컨디션을 관리하기 위해서.

    크룩이와 케륵이, 그리고 펜릴도 술은 적당히 마시고 자라고 해 뒀다.

    방에 들어온 나는 두툼한 천을 끌어안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 * *

    “안 흔들리게 걸어라.”

    -네!

    난 펜릴의 등에 올라탄 상태였다.

    목적지는 바로 마경의 심부.

    그곳을 향해서 일직선으로 숲을 지나고 있다.

    “너도 올라올래?”

    “아닙니다. 크룩.”

    펜릴의 등은 넓었기에 크룩이도 올라오라고 했지만, 녀석은 고개를 젓고 묵묵히 앞서서 걸었다.

    케륵이는 이미 자리를 잡고서 편하게 앉아 가고 있지만.

    키루루-

    -아빠! 이건 뭐야?

    “버섯이야.”

    -무슨 버섯인데?

    그리고 일부러 소환한 채로 놔둔 뇌조는 신나게 주변을 날아다니며 내게 질문을 해 왔다.

    저번에도 느낀 거지만 뇌조는 참 호기심이 많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갇혀서 그런 건지, 모르는 것도 많았고. 난 말없이 케륵이를 돌아보았다.

    “케륵. 그건 검은 광대버섯이란 겁니다. 그냥 먹었을 땐 혼수상태가 될 수도 있는 독버섯이지만 가루를 내어…….”

    케륵이는 술술 설명했다. 역시 아는 게 많아서 그런지 편리하다.

    뇌조가 질문을 해 올 때마다 케륵에게 떠넘기며 편안하게 이동했다.

    “슬슬 도착한 것 같은데.”

    심부에 가까워지자 나도 슬슬 긴장되었다.

    케륵이와 크룩, 그리고 펜릴 모두 점점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저건 뭐야? 저게 토끼야?

    뇌조만 빼고. 이제는 아예 케륵이에게 질문을 쏟아붓고 있다.

    그 모습에 픽 웃으며 난 저 앞을 바라보았다.

    ‘한번 그걸 써 볼까.’

    거리상으로 보면 슬슬 육안으로도 심부라 이름 지어진 지역이 보일 터.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용안 개방.’

    츠즈즈- 이제는 익숙해지는 따끔거림을 참으며 다시 저 앞을 보았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뇌조야.”

    -응?

    “저 앞에 보이니?”

    뇌조는 몸을 슬쩍 위로 띄우더니 내가 가리킨 곳을 보았다.

    -저 파란색?

    “…응.”

    녀석에게도 보이는구나. 난 용안을 사용하기 전엔 안 보였었는데.

    난 침을 꿀꺽 삼키며 저 앞에 거대하게 펼쳐진 푸른색의 결계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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