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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40화 (40/170)
  • 40화

    난 갑작스러운 메시지에 깜짝 놀랐다.

    ‘진화?’

    그 단어를 입안에서 한번 굴려 봤다.

    진화. 진화가 왜 이제야?

    우선은 빠르게 발을 놀려 집을 향해 달려갔다.

    본래 게임에서 플레이어들은 신화를 쌓아 나가며 성장하게 된다. 신화 포인트를 쌓다 보면 다음 단계로 진화할 수 있다.

    인간 NPC들도 진화를 한다.

    몬스터와 같이 달성한 업적들의 정산이 끝나면 합당한 보상을 받는 것이다.

    만약 NPC들이 성장을 하지 않는다면 순식간에 플레이어들에게 따라잡힐 테니까.

    인간 NPC들의 경우는 진화라는 표현보다는 ‘승급’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

    “후우.”

    난 집 앞에 도착한 후 숨을 고르면서 문을 열었다.

    하늘에서 쏟아졌던 황금 기둥은 어느새 자취를 감춘 상태.

    문을 열고 가장 먼저 맞이한 건 케륵이었다.

    “케륵?”

    진화를 이미 마친 것인지 몸집과 키가 꽤 커져 있었다.

    “몸은 괜찮나?”

    난 침을 꿀꺽 삼키며 그의 정보를 확인했다.

    [고블린 커맨더 ‘케륵’]

    [사령술사]

    난 순간적으로 환성을 터트릴 뻔했다.

    케륵이라는 이름 앞에 ‘고블린 커맨더’라는 칭호가 붙어 있었다.

    칭호라는 건 기본적으로 네임드 몬스터. 그중 특별한 개체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다.

    아주 희소식이었다.

    병력의 질과 양만큼이나 ‘강자’의 수는 중요했으니까.

    그리고 밑에 붙은 ‘직업명’ 또한 나쁘지 않다. 아니, 지금 사제로서 가지고 있는 권능을 생각하면 아주 좋다.

    아마도 앞으로 힘을 쓰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예, 예.”

    케륵은 아직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듯 몇 번 머리를 흔들더니 대답을 했다.

    난 그를 위아래로 살펴보다가 다시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지?”

    “케를…….”

    케를은 멍한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누, 눈을 감고 있었는데 족장님의 목소리가 들렸었습니다. 케를.”

    “뭐라고?”

    “강하게 만들어 주고 싶다. 누구에게도 당하지 않게 하고 싶다. 그런 목소리가…….”

    나는 당황스러움에 말을 잇지 못했다.

    분명히 방금 전 그런 생각을 하긴 했다. 속으로.

    그런데 어떻게 그걸 들었다는 건가?

    “그래서 저도 강해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케륵. 족장님에게 좀 더 도움이 되고 싶어서…….”

    혼란스럽다.

    전작 게임 시스템에서도 지휘관이나 주인과의 애정도, 충성도 등. 여러 심리적인 요소가 진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은 있긴 했다.

    예를 들어 몰살당하기 직전의 부대의 지휘관이 가장 앞장서서 필사적인 항전을 이어 갔고, 그를 따르던 병사들 전부가 진화. 즉, 승급을 하여 강화된 결과 살아남을 수 있었다든가, 그런 얘기가 왕왕 떠돌고는 했던 것이다.

    난 그냥 플레이어로서 재밌는 얘기네 하고 넘어가고 말았지만.

    당장 확신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난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무언가 바뀐 것 같나? 갑자기 힘이 넘친다거나. 뭐 어떤 변화라도.”

    “변화 말입니까? 아…….”

    케륵의 눈동자가 나에게서 벗어나 허공을 향했다.

    나도 그쪽을 보았지만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여, 여기 누군가가… 안 보이십니까?”

    케륵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나와 그 허공을 번갈아 보았다.

    “화려하게 치장한 고블린, 아, 아니. 자신의 말로는 벼락 부족의 제사장이라 하는 자가 서 있는데…….”

    그는 갑자기 팔을 뻗어 그곳을 휘저었다. 당연하지만 손은 그대로 허공을 갈랐다.

    “유령?”

    난 케륵의 정보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사령술사.

    저 행동은 이번에 진화한 직업과 관련이 있는 특성일까?

    아니, 어쩌면 이름 앞에 칭호가 붙음으로써 각성한 새로운 능력일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나에게 유령이니 뭐니 하는 것을 볼 방법 따윈 없다.

    허공에 뭐가 있다는 건지.

    [지룡의 용안(龍眼)이 발동됩니다.]

    그 순간 갑자기 왼쪽 눈이 화끈거렸다.

    “크윽.”

    예상치 못한 고통에 눈을 손으로 감싸 쥐었다.

    “케를. 괜찮으십니까?”

    케륵이 염려가 담긴 목소리로 물어온다. 나는 서서히 고통이 가시는 눈에서 손을 떼며 그에게 대답하려 했다.

    ‘고블린?’

    하지만 그에 앞서 한 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케륵과 나 사이, 아까 전 케륵이 가리켰던 그곳에 누군가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괜찮다. 그나저나 이자는?”

    “아! 족장님도 보이시는 겁니까?”

    보이다마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놀란 거다.

    방금 떠올랐던 ‘용안’이라는 메시지도 신경 쓰였지만, 우선 저자에 대해 먼저 알아보기로 했다.

    “말을 할 수 있나?”

    -…그렇다.

    머릿속으로 그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려왔다.

    난 바로 대답하려다가 주변 일행들을 살펴보았다.

    이렌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듯했다. 진화 대상이 아니었으니 딱히 깨어날 이유도 없고.

    크룩은 겉모습만으로도 이미 진화를 마친 것 같다. 아마도 아이템을 미리 써 두지 않았다면 깨어나 있었겠지.

    그의 팔이 천천히 자라나는 모습을 한 번 더 눈에 담아 두고서 입을 열었다.

    “잠깐 나가서 얘기하지. 케륵, 너도.”

    “알겠습니다. 케륵.”

    정체 모를 고블린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난 바로 밖으로 나가서 빈 집 하나를 골라 안으로 들어갔다.

    뒤따라 들어온 케륵과, 그 뒤에 둥둥 떠 있는 고블린을 보았다.

    “제사장이라고 했었나?”

    -그렇다.

    케륵도 저 유령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례하군. 족장님에게 예를 표해라.”

    -족장이라. 벼락 신을 믿는 이들로 보이는데 참으로 수준이 낮군.

    그의 빈정거리는 말투에 케륵이 뭐라 더 말하려 했지만 난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폴그룬 도시의 출신인가?”

    난 그 도시의 표지판에 적혀 있던 이름을 말했다.

    그 이름이 도시의 이름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저 고블린의 얼굴을 보니 제대로 찍은 것 같다.

    유령은 놀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실 유령이라곤 했지만 겉모습은 살아 있는 이와 그리 다를 바 없었다.

    일반적인 고블린보다 기골이 무지막지하게 장대할 뿐. 웬만한 오크보다 커다란 몸집이다.

    아마도 몸 전체가 회색빛을 띄고 있지 않았다면 그냥 살아 있는 놈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그래. 난 그곳의 11대 제사장. 벼락 신님을 가장 가까이서 모시는 자리에 있었지. 비록 지금은…….

    “왜 죽은 거지?”

    놈은 내가 말을 끊은 것에 짜증이 난 듯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신에게 가까이 갈 시간이 되었기에 육신을 벗은 것뿐이다.

    “늙어서 죽었나 보군?”

    지금 폴그룬이라는 도시는 폐허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저 유령은 자신을 11대 제사장이라 표현했다.

    그렇다는 건 최소한 이자는 멸망하기 전에 죽었다는 뜻. 만약 도시의 멸망을 직접 목격했다면 저리 당당하게 자신을 소개할 리 없을 테니.

    유령은 아예 기분이 나빠진 듯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난 그에 별말 없이 인벤토리에서 창을 하나 꺼냈다.

    “이걸 알고 있나?”

    뇌룡창. 그것을 보자마자 놈은 대경실색하며 날 보았다.

    -네가 그걸 어떻게 가지고 있지? 아니, 그 창이 여기에 있다는 건 설마…….

    파지직-

    기운을 끌어올렸다. 창과 갑옷을 따라 전격이 퍼져 나간다.

    몸속의 뇌령 또한 기운에 반응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이 공간이 내 통제 하에 놓였다.

    “난 벼락 신님의 유일한 계승자. 얼마 전 멸망한 폴그룬에서 이 창을 회수해 왔다.”

    * * *

    유령. 아니, 폴그룬의 제사장이었던 ‘프리멈 폴그룬’ 놈은 자신의 도시가 멸망했다는 걸 듣고서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난 간략하게 내가 아는 바에 대해 말해 주고, 그다음에 궁금한 것에 대해 물었다.

    “그러니까 누군가 네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었고, 정신 차리고 보니 케륵의 옆에 있었다고?”

    -그렇다.

    “그전의 기억은 죽었을 때가 끝인가?”

    -우선은. 난 제자들의 곁에 둘러싸여 있었고, 어느 순간 환한 빛을 보았다. 드디어 신의 곁으로 가는 것이라 생각해 기쁨에 차 있었지.

    “흐음.”

    그는 분명 꽤 오래전에 죽었을 것이다.

    그리고 케륵이 각성한 무언가 새로운 스킬이나 특성에 의해 소환된 것 같은데.

    그렇다면 그동안 그는 어디에 있었던 걸까?

    육신에서 빠져나왔을 그 영혼은.

    ‘뭔지 모르겠군.’

    타인, 그것도 NPC의 스킬에 대해 자세히 알 수는 없으니 확인할 방도는 없었다.

    난 탁자를 손으로 톡톡 두드리다가 다시 대화를 이어 나갔다.

    난 그의 이름을 줄여서 ‘그룬’이라 부르기로 했다.

    아쉽게도 그룬의 기억은 온전하지 않았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마치 기억이 일부분 지워진 것 같다 한다.

    그나마 온전한 기억들은.

    -전투 기술들과 주술들. 그리고 힘을 다루는 법들은 어째서인지 생생하군.

    죽은 자. 혹은 과거의 인물을 소환하는 능력.

    그들에게 전투에 대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건가? 배우는 식으로?

    어찌 됐든 굉장히 좋은 능력이었다.

    비록 많은 정보를 얻지 못하는 건 아쉬웠지만, 새로운 정보들도 몇 가지 알게 되었고.

    도시 ‘폴그룬’의 제사장들은 대대로 폴그룬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들은 직접 전장에 나서서 장군의 역할을 했고, 사제의 역할을 했으며, 도시를 다스렸다.

    케륵이 그의 지식을 흡수한다면 더욱 성장할 수 있다는 뜻.

    -난 이만 쉬겠다. 어쩐지 힘들군.

    그 와중에 그룬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곧 그는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그를 다시 불러낼 방법을 알고 있나?”

    “케를. 그렇습니다. 머릿속에서 갑자기 그를 부르는 주문이 떠올랐습니다.”

    플레이어가 스킬을 얻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유지 시간은 대략 이십 분 정도인 것 같다.

    케륵에게 물어보니 그룬과 케륵 양쪽 다 힘을 소모하는 방식 같다.

    ‘직접 전장에서 사용하고 유지하기엔 힘들겠군.’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좀 더 자세히 조사해 보기로 하고서 다시 본래의 집으로 돌아갔다.

    이렌과 크룩은 여전히 잠들어 있다.

    내 눈이 이렌과 크룩을 스쳐 지나가는 걸 보고 케륵이 말했다.

    “그녀의 힘 덕분에 많은 부족원들의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절벽에서 그대로 떨어질 뻔한 수십의 부족원들을 구했다고 한다.

    힘을 회복하느라 아직도 못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나중에 이렌에게 줄 포상을 생각하면서 크룩에게 고개를 돌렸다.

    “흐음.”

    나도 모르게 침음성을 흘렸다.

    재생되던 크룩의 팔. 그것이 거의 형체를 갖춰 가고 있었다.

    그도 케륵처럼 그 골격이 꽤나 거대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나가기 전엔 그 외에 다른 특징은 보이지 않았었는데.

    ‘저건 뭐지?’

    난 가까이 다가가 그의 팔을 살폈다.

    그의 팔 위로 겹쳐 있는 반투명한 건틀렛을 살피기 위해.

    “네 눈에도 보이나?”

    난 케륵에게 물었다. 케륵은 내 시선이 향한 곳을 보더니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크룩의 팔 말입니까?”

    “건틀렛. 건틀렛은 안 보여?”

    “안 보입니다. 케륵.”

    난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잊고 있던 것을 떠올렸다.

    한 손에 들고 있던 창을 들어 창날을 눈앞에 가져다 대었다.

    날카롭고 매끈한 창날에 내 눈이 비쳤다.

    갈색 빛의 눈동자.

    본래 짙은 검은색이었을 내 눈의 색과 다르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이 마치 파충류의 것처럼 변해 있었다.

    ‘용안.’

    분명 그런 이름이었다.

    이것도 지룡을 처치했기 때문에 받은 것인가?

    획득 메시지 같은 건 없었는데.

    탐색 스킬을 이용해도 다른 정보가 안 떠올랐다.

    ‘용안 해제.’

    깜빡.

    왼쪽 눈이 스스로 감겼다가 떠진다. 그곳엔 본래 내 눈이 있었다.

    상태 창을 이용해 스킬 목록을 다시 확인해 봤지만 그곳에도 용안이라는 이름은 없었다.

    깨어나기 전의 일도, 이 용안이라는 것도 무엇 하나 확실한 게 없다.

    ‘없어졌군.’

    그리고 이어서 다시 본 크룩의 팔엔 건틀렛 같은 건 없었다.

    ‘용안.’

    [지룡의 용안이 발동됩니다.]

    ‘껐다 켰다 할 수 있는 건가.’

    한 번 더 눈이 따끔거리고 다시 그의 팔 위로 건틀렛이 생겨났다.

    저것 자체가 크룩의 진화 과정에 포함되어 있는 걸까?

    난 크룩의 정보창을 띄웠다.

    [자이언트 피스트 ‘크륵’]

    [몽크]

    크룩도 ‘칭호’와 직업이 모두 생겨 있었다.

    몽크. 과거 여러 게임에서도 있었던 직업이다.

    신성력과 주먹을 이용해 싸우는 전투 사제.

    그의 거대화 특성과 아주 잘 어울릴 직업이었다.

    그리고 자이언트 피스트라는 칭호는.

    ‘저 건틀렛과 관련이 있는 건가.’

    아무래도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가 일어났을 때 설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난 우선 주변 빈자리에 앉고서 케륵을 보았다.

    “이렌과 크룩이 깨어나면 우선 본래 부족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너무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으니.

    “그다음엔.”

    “예. 케륵.”

    내 말에 케륵이 바로 대답한다. 난 허벅지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다가 말을 이었다.

    “마경의 심부로 가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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