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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39화 (39/170)

39화

지룡.

이무기가 그 말을 했을 때 난 비웃었다.

그런데 저 남자가 그 ‘지룡’이라고?

“우선 들어가자.”

남자들은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뒤늦게 나도 그 뒤를 따라가려 했다.

우웅-

그때 갑자기 눈앞이 흐려졌다. 그러더니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크윽.”

전신에 거센 압박이 밀려왔다. 그리고 눈을 깜빡였을 때, 내 앞에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제기랄.”

갈색 머리의 남자.

그가 복부에 커다란 구멍이 꿰뚫린 채로 쓰러져 있다.

그는 손을 뻗어 더듬거리더니 무언가를 손에 꼭 쥐었다.

하얀 색의 구슬.

나는 문득 그 구슬이 이무기가 물고 있던 것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의주도…….”

그는 씁쓸한 눈빛으로 그 구슬을 내려다보았다.

여의주. 바로 ‘용’의 핵심 아이템이다.

용이 용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아이템.

하지만 남자가 들고 있는 구슬은 금이 가 있는 데다가 일부분은 깨져 있었다.

“네놈의 목적은 도대체 뭐지?”

남자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허공에 대고 말했다.

“우습군.”

그리고 등 뒤에서 그 대답이 들려왔다.

난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갑자기 움직임이 턱 막혔다.

시야가 고정된 듯이 내 눈에는 갈색 머리의 남자만 보였다.

“여의주는 단순한 귀물이 아니라 용의 근원. 그것이 파괴된 이상 넌 더 이상 용이 아니다.”

사락. 등 뒤로 풀잎이 옷깃에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내게 더 가까이 다가온다.

난 속으로 조금만 더, 라고 생각했지만 야속하게도 그는 정확히 내 뒤에 멈춰 섰다.

“직접 내 손으로 죽이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아마도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냉정하게 들리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기억의 대부분은 날아가겠지. 제대로 된 이성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 테고. 파괴된 여의주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영혼을 탐하는 괴물이…….”

“그래서 어쩌라고?”

갈색 머리의 남자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답했다. 그리고 내 뒤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네놈의 목적은 우리의 협조 아니었어? 설사 괴물이 되든 뒈지든 너한테 협조할 생각은 전혀 없어.”

입가엔 비웃음을 매달고서.

“그러니까 꺼져.”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보인다.

그와 동시에 뒤에서 강렬한 기운이 느껴졌다.

나조차도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위협적인 기운이.

“아쉽군.”

뒤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자존심이 드높은 용이 하찮은 미물로 영락하는 걸 볼 시간이 없다는 게.”

갈색 머리 남자의 도발적인 어조에도 뒤에서 들리는 음성에는 별다른 감정 변화가 느껴지지 않았다.

곧 발소리가 들리고, 점점 멀어졌다.

“하.”

남자는 떠나는 자의 등을 노려보다가 고개를 푹 숙인다.

그는 금이 간 여의주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그것을 자신의 가슴에 가져다 대었다.

“그래도 한 번은 쓸 수 있겠네.”

남자가 들고 있는 여의주에서 하얀빛이 점차 강해졌다.

그는 무어라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여의주에서 뿜어져 나온 하얀 빛이 그의 몸을 감쌌다.

“봉인의 술(術).”

파스스-

여의주가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그리고 남자의 몸이 점차 작아지더니 이내 아주 작은 하얀색의 뱀이 되었다.

샤르르르-

그 뱀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곧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또한, 내 시야도 갑자기 어둡게 변했다.

* * *

“으음.”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몸에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진다 싶더니, 웬 천이 덮여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케륵과 크룩이 바닥에 널브러져 자고 있었다.

툭-

“응?”

그때 손끝에 무언가 닿는 느낌이 있어서 옆을 보니 천이 한 장 더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도 누군가 있었다.

슬쩍 천을 들어 확인했다가 깜짝 놀랐다. 이렌이 눈을 감고 잠들어 있었다.

아니, 무슨 하얀 천을 이렇게 덮어 놨데.

꼭 죽은 사람한테 천 덮어 놓은 것 같다.

‘…나도 이렇게 있었나?’

문득 나를 덮고 있던 천도 흰색이라는 걸 깨달았다.

무슨……. 왠지 모르게 찜찜한 기분에 천을 아예 한쪽으로 치워 두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그러고 보니 뇌조는?

‘뇌조야.’

-아빠!

내가 속으로 말을 걸기 무섭게 대답이 들려왔다.

‘괜찮아?’

-응! 근데 아직 회복하고 있어. 좀 더 자야 될 것 같아.

안 그래도 그녀의 목소리에 졸음기가 가득해 보였다.

난 슬쩍 미소 지으며 잘 자라고 말해 주었다.

“후우.”

찬찬히 누워 있는 이들을 살펴보았다.

우선 다행히 케륵과 이렌은 겉보기엔 크게 다친 건 없어 보였다.

그래도 둘 다 기운을 무리하게 사용하느라 몸 상태가 좋진 않을 거다.

특히 이렌에겐 중요한 임무를 맡겼었으니.

난 마지막으로 크룩을 자세히 살펴보려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마치 죽은 듯이 잠들어 있었다.

‘팔이…….’

잘못 본 게 아니었다.

그의 팔뚝이 어깻죽지 밑으로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아마도 내가 지룡의 뱃속에 있었을 때 전투를 하다가 입은 부상이겠지.

난 인벤토리에서 두 가지 아이템을 꺼내 들었다.

[요정의 숨결]

[VVIP팩 구성품. 대상을 강제로 수면시키며, 잠에서 깨기 전까지 천천히 회복 효과가 적용된다. 고통을 경감시키는 효과가 있다.]

회복과 동시에 대상을 강제로 수면 상태로 만드는 아이템.

회복 효과도 있지만 그것보단 다른 효능들이 더욱 중요하다.

[도마뱀의 영약]

[실손한 신체 부위를 재생시킵니다. 단, 극심한 고통이 따릅니다.]

크룩의 팔을 재생시키기 위한 아이템이다.

두 개를 같이 사용하면 고통도 덜할 거고, 자고 일어났을 때 몸이 모두 회복되어 있을 거다.

후웅-

두 아이템을 크룩에게 사용하고서, 나머지 이들에게도 회복에 좋은 아이템을 사용했다.

VVIP팩은 역시 버릴 아이템이 하나도 없다.

처음엔 이름에 비해 좀 초라하지 않나 생각도 했었지만.

난 모두에게 아이템을 써 주는 걸 마치고 나서 다시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드디어 밀린 메시지 창을 열었다.

[영락한 지룡을 처리하였습니다.]

맞구나, 지룡.

입 안이 씁쓸하다.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난 어째서 그런 일들을 봤던 걸까?

시스템 메시지에 답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지만, 메시지에 그런 내용은 전혀 없었다.

답답함에 한숨을 내쉬며 다음 메시지를 확인했다.

[레벨 업을 하였습니다.]

우선 레벨 업 메시지 네 개.

이 게임은 전작에서도 다른 게임에 비해 레벨 업이 굉장히 더딘 편이었다.

그렇기에 한 번에 네 개나 올랐다는 건 지룡이 그만큼 강한 적이었다는 뜻이었다.

“이제 이십인가.”

이십 레벨. 이제 막 초보자 딱지를 뗀 수준이다.

아직 갈 길은 멀기만 하다.

[여의주의 파편을 획득했습니다.]

다음은… 응?

난 잘못 읽었나 싶어 다시 한 번 메시지를 확인했다.

전작과 달리 여기선 몬스터를 잡는다고 아이템이 튀어나오거나 하지 않았다.

그냥 죽으면 그 몬스터가 들고 있던 아이템을 획득할 뿐.

그렇기에 적을 죽이고 아이템을 얻은 건 처음이었다.

난 바로 확인하고 싶었지만 우선 나머지 메시지들을 먼저 확인하기로 했다.

[신화 포인트 100,000P을 획득했습니다.]

[신화가 갱신됩니다.]

[마경의 외곽 지역 전체를 점령했습니다.]

[업적 ‘한 지역의 지배자’를 획득했습니다.]

이거 상태창도 바로 열어 봐야겠는데.

확인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메시지 창을 닫고서 인벤토리부터 열었다.

어디 보자.

[여의주의 파편]

인벤토리에서 작은 파편을 꺼내 들었다. 하얀색으로 빛나고 있는 파편을.

[지룡의 여의주였던 파편.]

…아이템 설명이 뭐 이래. 이리저리 확인했지만 특이한 점은 없었다.

약간 실망감을 느끼며 꼼꼼히 확인해 봤지만 딱히 특이한 건 없었다.

그래도 무언가 쓰임이 있지 않을까 싶어 인벤토리에 넣어 두고서 상태 창을 열었다.

‘상태 창.’

[상태 창]

이름: 이호진

레벨: 20

세력: 대부족 ‘벼락’

스킬: 뇌룡 질주, 쇼크웨이브(전격 속성), 신기 뇌룡…….

신화: 벼락 신의 계승자 (유일)

[신화]

현재 등급: 대족장

벼락 신의 계승자(유일)

-그는 마치 벼락 신의 분노를 형상화한 듯했다. 그의 팔이 휘둘러졌을 때 그의 앞에 똑바로 서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벼락 신의 사도. 벼락 신의 유일무이한 징벌자.

그리고 벼락 신의 유지를 이은 계승자.

그가 행하는 모든 행동은. 곧 신의 뜻과 다름없다.

모든 벼락 신의 신도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마주치는 이에게 위압감을 준다.

마경 외곽 지역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동급 이하의 상대에게 공포와 경외심을 느끼게 합니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 대적할 때 어드밴티지를 획득합니다.

벼락의 힘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합니다.

[업적]

한 지역의 지배자(희귀)

-마경 외곽 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합니다.

마경 외곽 지역의 주민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카리스마가 상승합니다.

명예가 상승합니다.

‘으음.’

길게 적혀 있는 상태 창을 쭉 훑어보고서 느꼈다.

정말 많이 성장하긴 했구나.

드넓은 대륙에서 겨우 한 지역. 그것도 외곽뿐이긴 하지만 ‘지배자’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난 문득 떠오른 궁금증에 곰곰이 생각해 봤다.

이곳에서 본 사람이라곤 단 한 명.

바로 도플갱어에게 이미 잡아먹혔던 유저였다.

그의 기억 속에서 본 바로는 분명히 다른 플레이어들이 존재한다고 했었다.

하지만 정작 다른 사람들은 전혀 본 적이 없으니.

언젠간 만날 수 있을까?

어쩐지 다시 우울한 기분이 들 것 같아 고개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바깥에 한번 나가 볼까.

문을 열고서 밖에 나와 보니 지룡을 토벌하러 가기 전 대기하고 있던 그 부족의 터였다.

대부분이 바닥에 널브러져 잠을 청하고 있었다.

“족장님!”

“쉿!”

그런데 경계를 서고 있던 일부 병사들이 나를 보며 깜짝 놀라 예를 취했다.

난 그들에게 손사래를 치며 조용히 시켰다.

“괜히 소란스럽게 하지 마.”

“그, 그래도.”

“괜찮아.”

그의 어깨를 툭툭 쳐 주고서 난 천천히 걸어가 주변에 가장 높은 언덕에 올랐다.

한눈에 전경이 들어왔다.

삼백으로 출발했던 병사들이 상당히 줄어들어 있었다.

최대한 피해를 줄이도록 조취를 취해 뒀는데도 불구하고.

이렌.

그녀에겐 이번엔 병사들의 보호를 최우선으로 맡겼었다.

특히 절벽 위에서 작전을 수행할 병력 같은 경우, 대지를 다루는 이무기에 의해 피해를 입을 여지가 있었기에 이렌도 그쪽에 배치해 뒀었다.

물론 그렇게 무식하게 절벽을 통째로 무너트리는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아마 절벽 위에 있던 모든 병력들이 떨어져 내렸으면 피해가 상당했을 텐데.

부족원들의 수가 그래도 엄청 줄어들지 않은 걸 보면 그녀가 능력을 잘 발휘했던 것 같다.

아니, 그러고 보니 내가 기절했을 때 받아 준 것도 그녀였나?

‘그만큼 섬세하게 기운을 다루는 사람이 없긴 한데.’

난 턱을 쓰다듬다가 다시 손을 내렸다.

이번 작전도 어찌 보면 빈틈이 많았다.

이런 많은 수의 병력을 이끌어 본 적도 없었고, 전략을 짜는 능력도 허술하기 그지없다.

케륵도 똑똑한 편이긴 하지만 전략 전술은 하루 이틀 만에 나오는 게 아니다.

무력의 증가보다 이런 전략 전술에 능한 자를 얻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몬스터들 중에 그런 종족이 있었나?

난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내가 ‘몬스터’에 한해서만 생각했다는 걸 깨닫고 피식 웃었다.

어느새 내 사고의 중심도 그들 위주로 돌아가고 있나 보다.

몬스터든, 인간이든, 누구든.

다음번에는 얼마나 더 큰 피해를 입을지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여러 심란한 생각에 금세 가라앉는 기분을 느끼며 가만히 부족원들을 내려다보았다.

“더 강해지고 싶다.”

나도, 우리 부족원들도 모두 강하게 만들어 주고 싶다.

그 누구에게도 당하지 않게.

그런 생각을 하며 부족원들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무언가가 떠올랐다.

[부족원 중 일부가 진화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진화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동시에.

케륵이와 크룩, 이렌이 있는 집에 황금색의 빛기둥이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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