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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38화 (38/170)
  • 38화

    온몸이 화끈거린다.

    내가 눈을 뜨고 마주한 건 붉은 색의 꿀렁거리는 벽이었다.

    치이익-

    “끄으윽.”

    무언가가 살가죽에 닿는 느낌과 함께 끔찍한 고통이 밀려왔다.

    곧 바로 기운을 끌어 올려 몸에 두르자 고통이 멎었다.

    나는 우선 몸을 일으키려 힘을 주었다.

    “어……?”

    비틀, 그대로 넘어질 뻔했다.

    시선을 아래로 향하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왼쪽 발이 정강이 아래로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 손목 아래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큰 충격에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멍하니 있는 날 다시 깨운 건 갑자기 떠오른 메시지였다.

    [VVIP 성장팩 특전 – 초재생이 적용되었습니다.]

    [신체를 손상시키는 외부 요인이 제거되었으므로 회복 속도가 빨라집니다.]

    초재생. 그 단어를 입안으로 되뇌자 곧 기억이 났다.

    얼마 전 족장과 대족장 승급 아이템이 주어졌을 때 받았던 아이템이다.

    사용 가능 회수는 단 2회. 그 이후엔 다시 소멸된다.

    손목과 발목에서 근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재생되는 게 눈으로 직접 보일 정도였다.

    “징그럽네…….”

    별로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라 시선을 돌리고서 주변을 둘러봤다.

    “놈의 뱃속인가?”

    마지막 기억은 바윗덩어리가 충돌해 오던 순간이었다.

    아마 그때 기절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대로 집어삼켜진 건가.’

    꿀렁거리는 분홍색의 벽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참 더럽다.

    초재생이 아니었으면 그대로 소화됐겠지.

    인상을 찌푸리며 그리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뭔가가 생각났다.

    “창!”

    창. 창이 없다. 분명히 손에 잡고 있었을 텐데.

    혹시 몰라 인벤토리도 확인해 봤지만 그 안엔 없었다.

    “설마.”

    난 무언가 액체가 흐르고 있는 바닥을 내려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씨바알!”

    욕지거리를 내뱉긴 했지만 어쩔 수 없이 허리를 숙였다.

    바깥이 어떨지 보지 못했지만, 좋은 상황이 아닐 건 뻔했다.

    어쩌면 이 순간에도 부족원들이 죽어 나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최대한 빨리 무기를 되찾아서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조금이라도 더 피해를 줄이기 위해.

    치이이익-!

    그래도 그가 움직일 때마다 액체를 따라 전기가 퍼지는 모습은 기분이 좋았다.

    꽤 따끔할 것이다.

    탁-

    그렇게 바닥을 뒤진 지 오래 걸리지 않아 손끝에 무언가 닿았다.

    촤악-

    그대로 그것을 잡아 들어 올리니 은은하게 황금빛이 흐르는 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후우.”

    이무기에게 확실하게 타격을 넣기 위해선 이 무기가 필요하다.

    만약 그러지 않았더라면 아무리 아깝더라도 우선 빠져나갔을 거다.

    “뇌조.”

    키루루루-

    -아빠! 괜찮아?

    녀석은 튀어나오자마자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얘도 밖에 나와 있었지.

    “어. 넌 괜찮아?”

    -응. 갑자기 연결이 끊겨서 놀랐어.

    녀석은 내 어깨 위에 앉아 내게 뺨을 비볐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 우선 여기서 나가자.”

    -응!

    “그거 부탁해.”

    키루루-

    뇌조가 날개를 펴 내 앞으로 왔다.

    후우우우웅-

    그리고 곧 그녀가 순수한 전기로 화해 내 몸 위로 겹쳐졌다.

    그에 의해 뇌룡의 숨결이 활성화된다.

    뇌조와 계약한 후 훈련을 하다가 알아낸 것이다.

    골렘을 상대할 때 뇌룡의 숨결이 활성화됐던 건 바로 내 뒷목에 남겨져 있던 정령의 문양 때문일 거라고.

    내가 자유를 찾아 주었던 전격의 정령.

    그가 나에게 남긴 선물이 나를 도왔던 것이다.

    그리고 뇌조와 계약하는 것에도 도움이 되었었고.

    [뇌령 강화]

    이제는 뇌조가 있기에 그녀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한 번 사용하고 나면 하루, 이틀 정도는 뇌조를 소환할 수 없기에 아껴 두었던 거지만.

    키릭-

    뇌령이 강화되며 기운이 충만하게 차오르는 그 느낌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흐아아아아아!”

    난 그대로 기운을 사방으로 퍼트렸다.

    콰지지지직-!

    몸에서 뻗어 나온 전격이 그대로 뱀의 속살을 타고 흐른다.

    지금 이 순간에는 내 시야에 닿는 모든 곳에 전격이 뻗어 나갔다.

    지금은 아마 따끔한 수준이 아니라 아예 몸부림을 치고 있을 것이다.

    난 창을 그러쥐었다.

    그리고 그대로 앞의 분홍색 벽을 향해 창을 내질렀다.

    콰앙-!

    한 번의 찌르기에 벽이 움푹 파였다. 그런데 놈의 속살이 다시 차오르는 게 보였다.

    놈도 재생 스킬이 있는 건가?

    난 사납게 웃었다.

    그렇다면 재생하는 것보다 빠르게 공격하면 되겠지.

    푸화악-!

    쉬지 않고 창을 찔렀다. 차오르는 것보다 빠르게 벽이 허물어진다.

    후욱-

    어느 순간 바람이 느껴졌다. 놈의 속살이 거의 뚫렸다는 거겠지.

    난 기운을 끌어올렸다.

    이제 바깥공기 좀 맡아 봐야지.

    “뇌룡 질주.”

    파지지직-

    창을 앞으로 내밀고 그대로 쏘아져 나갔다.

    후욱- 바람이 밀려온다.

    난 바깥으로 나왔음을 깨달으며 몸을 돌렸다.

    아래를 보니 부족원들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난 내가 제법 높이 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뇌조의 힘이 아니었으면 나오자마자 추락했겠는데.

    황당함을 느끼며 고개를 드니 더욱 괴상한 게 있었다.

    ‘얜 또 왜 이래.’

    이무기 놈은 온몸에 하얀 광채를 뿜어내며 입에는 웬 여의주 같은 걸 물고 있다.

    뭐, 변신이라도 한 거야?

    누가 봐도 저건 동양용이다. 전작에서도 저런 건 없었는데.

    난 황당함을 숨기려 애쓰며 입을 열었다. 입가엔 최대한 재수 없는 미소를 머금고.

    “안 어울리게 무슨 용 흉내야?”

    뱀 새끼가.

    내 비아냥거리는 말투가 먹힌 건지 놈은 순식간에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나는 지룡이다. 건방진 필멸자여.

    “그놈의 필멸자, 필멸자. 지는 무슨 신이라도 되는 줄 아나 보네. 너 지금 몸통에 피 묻어 있거든?”

    내가 뚫고 나온 구멍은 그새 또 막혀 있었지만 몸엔 이미 피가 흐른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냥 닥치고 덤비기나 해.”

    콰릉-!

    더 이상 끓어오르는 기운을 통제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성을 유지하느라 억제해 왔던 분노도 더 이상 참기 힘들었다.

    절벽이 붕괴될 때 그 위에 서 있던 부족원들.

    그리고 방금 전 바닥을 보았을 때 똑똑히 보았다.

    케륵이와 크룩이의 모습을.

    애써 유지해 왔던 이성을 놓아 버릴 뻔했다. 하지만 이제는 때가 되었다. 기운이 충분히 모였으니. 이제 쏟아 내기만 하면 된다.

    시야가 붉게 변한다.

    나조차도 감당하기 힘든 막대한 힘을 창에 담았다.

    창대가 부르르 떨리고, 창끝은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난다.

    꽈르르르릉-!

    그리고 다음 순간 내 손에서 벼락이 피어올라 용에게 쏘아졌다.

    콰가각-!

    하지만 벼락은 용에게 닿기 전에 막혔다.

    갑자기 용의 앞으로 웬 흙벽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전처럼 땅에서 끌어온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허공에서 흙이 튀어나오더니 그대로 펼쳐져 공격을 막아 낸 것이다.

    후웅-!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 흙벽에서 송곳 모양의 기둥들이 쏘아졌다.

    난 정신없이 그것들을 피했다.

    놈의 근처로 끊임없이 흙이 소환됐고, 기둥들도 미친 듯이 날아왔다.

    난 무표정하게 그것들을 피했다.

    이 순간에도 내 시야는 점점 붉게 물들어 가고 있다.

    마치 피를 머금은 듯 온 세상이 빨갛게 변한 순간 난 더 이상 공격을 피하는 걸 멈췄다.

    꽈앙-!

    송곳 하나가 그대로 나와 충돌한다. 그리고 그것은 내 몸에 닿자마자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난 녀석을 보았다.

    시간이 됐다. 이 지긋지긋한 싸움을 끝낼 시간이.

    [신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며 창을 들어 올렸다.

    우르르르릉-

    너무나도 막대한 기운.

    창 주변으로 한 형상이 떠오른다.

    최강, 최흉의 몬스터.

    저런 용을 흉내 내는 뱀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힘을 지닌 존재.

    전격으로 이루어진 몸체로 나타난 그것은 점차 선명해지며 주변에 공기가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한다.

    창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미친 듯이 온 몸이 떨렸지만 참았다.

    놈이 무슨 수작을 부려도 분쇄할 힘을 담기 위해서.

    조금 더.

    조금 더.

    몇 번이나 그 말을 중얼거리다가 난 한 단어를 뇌까렸다.

    [뇌룡]

    꽈르르르르르르릉!

    미친 듯이 눈이 부셨지만 난 눈을 감지 않았다.

    지긋지긋한 적의 최후를 보기 위해.

    고고한 자태로 뻗어 나간 뇌룡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송곳을 모두 가루로 만들었다.

    이무기의 앞을 막고 있던 벽은 뇌룡이 가까이 가자마자 무너져 내렸다.

    그 너머에 있던 이무기의 당황한 얼굴이 보인다.

    삐이이이이이-!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세상이 하얗게 물들었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바닥을 향해 추락하고 있었다.

    반쯤 감긴 눈 사이로 물밀 듯이 메시지가 올라오는 게 보였다.

    그것을 보고 나서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놈은 죽었다.

    눈이 다시 감겼다.

    천천히 의식이 흐려진다.

    나, 좀 무리한 건가.

    점점 멀어져 가는 의식 속에서 어렴풋이 어떤 기운이 날 감싸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곧 누군가가 날 받아 드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추락사는 안 했구나.

    그 생각이 마지막이었다.

    * * *

    여긴 어디지.

    난 주변을 둘러봤다. 정신을 차려보니 웬 울창한 숲의 한복판이었다.

    설마 또 이동한 건가.

    난 인상을 찌푸렸다. 게다가 기운마저 전혀 안 느껴진다.

    아, 이럼 나가린데.

    설마 또 신이 한 짓인가?

    난 한숨을 내쉬고서 우선 앞으로 조금 걸어가 봤다.

    그래도 몸은 안 아파서 다행이다.

    “오두막?”

    숲을 헤치며 좀 나아가다 보니 무언가가 눈에 보였다.

    바로 통나무로 지어진 오두막이었다. 누가 살고 있는진 몰라도 난 반가움에 마음에 빠르게 걸어갔다.

    “아.”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열렸다.

    그곳에서 나온 건 바로 흰색 머리의 남자였다.

    “아, 안녕하세…….”

    “왔어?”

    내가 어색하게 인사하려는데 갑자기 그 사내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예?”

    당황스러워서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아무리 봐도 처음 보는 사람인데 무슨…….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입을 열려 할 때였다.

    “어, 넌 아직도 여기 사냐? 구질구질하게.”

    뒤에서도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몸을 돌리니 갈색 머리를 한 남자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아, 이 남자를 향해서 말한 거였나?

    아니, 근데 아무리 그래도 왜 날 사이에 두고 얘기를 하는 거야. 쪽팔리게.

    난 머쓱해하며 우선 몸을 피하려 했는데 남자의 몸이 그대로 나를 쑥 지나쳤다.

    말 그대로.

    나를 없는 것처럼 통과해 버렸다.

    “뭐? 무슨.”

    난 반사적으로 남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손은 남자의 몸에 닿지 않았다..

    잠시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가 난 다시 똑바로 서서 두 남자를 멍하니 봤다.

    “왜? 여기도 살 만해.”

    비아냥대는 갈색 머리의 남자에게 여전히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흰색 머리의 남자.

    난 그에게 걸어가 손을 뻗어 봤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내 손은 그대로 남자의 몸을 통과했다.

    난 아예 오두막으로 걸어갔다. 집 벽을 향해 손을 뻗는다.

    탁-

    손끝에 거칠거칠한 통나무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래! 이거지!

    몇 번이나 만져 봤지만 분명히 정상적으로 손에 닿았다.

    쑤욱-

    그리고 여전히 남자들의 몸은 그대로 통과해 버린다.

    난 이해가 안 되는 상황에 어찌할지 몰라 그대로 서 있었다.

    두 남자는 여전히 문 앞에 서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난 딱히 뭘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혀 우선 그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다른 애들은?”

    갈색 머리의 남자가 또 신경질적으로 말한다.

    “오늘은 안 올 것 같은데?”

    “뭐? 자기네들이 먼저 모이자고 해놓고서 무슨.”

    “화내지 마, 지룡. 너랑 내 영역은 몰라도 걔네들 쪽은 한창 소란스럽잖아.”

    흰색 머리의 남자가 마치 살살 달래듯이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그리고 난 그가 말한 내용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갈색 머리의 남자가 인상을 팍 쓰더니 말했다.

    “지룡이라고 부르지 마.”

    “왜? 다른 애들이 지렁이라고 놀려서 그래?”

    “까고 있네. 하지 말라면 하지 마.”

    난 못 박힌 듯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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