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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36화 (36/170)
  • 36화

    목적지에 도착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펜릴은 조용히 움직여 전방이 훤히 보이는 곳에 멈춰 섰다.

    -저들은…….

    그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나도 앞에 펼쳐진 모습을 보면서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족히 백은 넘어 보이는 병사들.

    고블린과 오크들이 무기를 들고 한곳에 모여 있다.

    -이지를 상실한 것 같군요.

    “그렇군.”

    그들의 눈빛은 흐리멍덩했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서 있는 모습은 마치 기계를 보는 것 같아 꺼림칙했다.

    ‘정신 지배를 당한 건가? 주술? 아니면 마법?’

    거슬리는 것을 미리 없애려면 저들의 목숨을 빼앗으면 된다.

    난 침을 꿀꺽 삼켰다.

    무기를 뽑아 들고서 그들에게로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때 머릿속에 강렬한 위기감이 몰려왔다.

    “흐읍.”

    순간적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급하게 기운을 끌어올려 전격을 실지 않은 채로 널리 퍼트렸다.

    예민한 감각 사이에 무언가 이질적인 것이 느껴졌다.

    ‘연결되어 있다.’

    무엇에 연결되어 있는지는 불 보듯 뻔했다.

    이무기.

    놈과 이들이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만약 내가 섣불리 공격했다면 이무기 놈이 바로 이곳에 나타났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을 이대로 둬야 한다는 건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서?

    난 우선은 펜릴과 함께 본대로 복귀했다.

    * * *

    본래는 하루 내에 이무기를 공격하려 했었다.

    하지만 새로운 병력을 발견하고선 계획이 틀어졌다.

    우선 그곳에 파견하였던 몇몇 주술사들이 돌아왔다.

    “그… 저희의 힘으로는 해주할 수 없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고 있는 힘인지도 파악하기 힘듭니다. 케르륵.”

    케륵의 말. 크룩은 볼 것도 없다.

    기본적으로 주술의 실력 자체가 케륵이 훨씬 뛰어났으니.

    난 인상을 찌푸린 채로 탁자를 톡톡 두드렸다.

    그곳의 지형 상 이무기 같은 거대 괴수를 상대하기란 극히 까다로웠다.

    그렇다고 소수의 병력만 파견했다가 놈들이 깨어나기라도 하면 역으로 당할 수도 있다.

    차라리 폭탄이나 그런 것으로…….

    ‘아니야.’

    지금 세워 둔 작전은 어디까지나 기습 작전.

    불안한 요소 하나를 제거하기 위해서 먼저 공격한다고 선전포고를 할 수는 없다.

    차라리 그 요소를 포함해서 계획을 보강하는 게 낫다.

    “우선 하루 더 훈련을 하는 게 좋겠군.”

    우린 머리를 맞대고 오랜 시간 동안 작전을 수립했다.

    한참 후.

    “이런 식으로 작전은 실행하면 되겠군.”

    “케륵. 그렇습니다.”

    “이 작전에선 크룩. 특히 네 역할이 중요하다. 알고 있겠지?”

    “예, 믿어 주십시오. 크룩.”

    난 케륵과 크룩을 번갈아 보았다.

    “그럼 병사들에게 정해진 대로 브리핑해 둬.”

    “케륵.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크룩.”

    그들은 다시 수하들을 시켜 병사들에게 내용을 전파했다.

    꼬박 삼 일이 지나고, 우리는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들 이동한다!”

    난 다시 한 번 지도를 확인하고서 정찰조를 먼저 보냈다.

    정찰조는 두 팀으로 나뉘어 각각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몇백 명의 발소리가 땅을 울린다.

    어찌 보면 우리 병사들은 전쟁만큼이나 거대 괴수를 사냥하는 것에 익숙하다.

    지금까지 열이 넘는 괴수들을 사냥해 왔으니.

    난 지도를 펼쳤다. 주변으로 초록색 점이 무수히 찍혀 있다. 그리고 근처에 검은색 점이 보였다.

    저 아래에는 비교적 넓은 공터가 있었다.

    지도를 보며 확인한 결과 곧 이무기가 이곳을 지나갈 것이다.

    스르르르-

    잠시 후. 저 멀리서부터 무언가가 질질 끌리는 소리가 났다.

    곧 이어 흰색의 동체가 눈에 들어왔다.

    쉬이이이-

    이무기. 처음으로 나중을 기약하며 물러났던 사냥감이다.

    그리고 부족의 발전을 꾀하기 위해선 녀석을 처리하는 건 필수불가결한 일이었다.

    저놈 때문에 얼마나 머리를 싸맸던가.

    아직도 놈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가득하다.

    쉬이익-

    뱀은 아무런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는지 공터까지 쭉 기어 왔다.

    현재 지형은 우선 앞에 넓은 공터가 있었다. 이무기가 몸을 마음껏 날뛰기엔 힘들지만 우리 부대가 공격하기엔 적당한 크기의 넓이.

    지금 우리가 위치한 곳은 공터 앞의 숲이다.

    이곳에서 매복하고 있다가 놈을 기습하는 계획이다.

    하지만 병력 전체가 이 숲에 있는 것은 아니다.

    숲과 공터, 그리고 그 맞은편에 높다란 절벽이 있다.

    우리 병력은 공터를 사이에 두고 반씩 숲과 절벽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난 절벽 위를 보았다.

    아직 보이진 않았지만 충분히 자리를 잡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난 더는 기다리지 않고 숲을 빠져나와 놈의 몸통으로 달려들었다.

    후우우욱-

    순식간에 놈의 몸이 가까워진다. 난 기운을 써 더욱 빠르게 움직여 놈의 몸통에 커다란 창을 찔렀다.

    푸욱-!

    키야아아아아아아-!

    이무기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바로 고개를 쳐들어 나를 공격하려던 놈의 몸이 갑자기 움찔하며 멈췄다.

    “짜릿하지?”

    난 놈이 뇌전의 기운에 잠시 마비된 틈을 타 창을 더욱 깊숙이 찔러 넣었다.

    이 창은 뇌룡창이 아니라 특수 제작한 쐐기 모양의 창이었다.

    그 자루에는 질기디질긴 줄이 연결되어 있었다.

    푹-!

    연달아 움직이며 등에 매고 있던 창들을 모조리 놈의 몸에 박아 넣었다.

    줄에 연결된 말뚝이 놈의 움직임에 따라 거세게 흔들렸다.

    아마 오래 버티지는 못할 거다.

    고작 몇 개로 놈의 몸을 억죄긴 힘들 테니까.

    [권능 사용]

    [권능 사용]

    [권능 사용]

    그렇기에 연달아 미리 구매해 둔 권능을 사용했다.

    저번 물품 구입 이후로 신화 포인트가 쌓이는 족족 권능을 구입했다.

    꽈르르르르릉

    샤아아아-!

    연달아 놈의 몸에 벼락이 꽂힌다.

    그 벼락은 철창을 따라서 이무기의 몸을 파고든다.

    전격에 감전된 놈은 더 오랫동안 몸을 제대로 못 움직일 거다.

    “발사-!”

    그렇기에 모두에게 들릴 정도로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후웅-!

    후우웅-!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발리스타를 발사했다.

    대부분이 놈의 비늘을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갔지만, 몇 개는 약한 부분을 파고들었는지 충분히 제 역할을 했다.

    푸욱!

    그리고 나는 빠르게 움직이며 튕겨져 나간 거대 화살들을 다시 잡아 놈의 몸에 꽂아 넣었다.

    그것들에도 모두 줄과 말뚝이 연결되어 있다.

    이무기가 마비에서 완전히 풀리기 전에 최대한 박아 넣어야 한다.

    아무리 덩치가 커다란 이무기라도 쉽게 벗어나긴 힘들 것이다.

    캬아아아-!

    퍼억-!

    갑자기 놈이 맹렬하게 휘두른 꼬리에 맞아 뒤로 날아갔다.

    꽝!

    다행히 기운을 감싸 방비하고 있었기에 피해는 적었다.

    난 내가 부딪힌 절벽을 다시 발로 차 놈에게로 쏘아져 나갔다.

    -감히!

    그 와중에도 땅에 머리까지 박아 넣은 말뚝들이 놈의 몸부림에 몇 개씩 뽑혀져 나온다.

    “다음!”

    난 몸을 허공으로 훌쩍 띄우며 소리쳤다.

    그러자 저 멀리서 무언가가 또 날아온다.

    퍼억-!

    촤아악!

    이무기는 또다시 말뚝이 날아오는 줄 알고 움찔했다가, 자신의 부딪혀 터지는 물주머니를 보고 당황했다.

    캐터펄트. 그 투석기를 이용하여 쏘아 낸 것이다.

    물론 이무기가 물에 약하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콰르르릉-!

    단지 다음 공격을 위한 준비일 뿐.

    난 뇌전을 끌어모아 그대로 이무기에게 쏘아 내었다.

    콰지지지직-!

    전격이 뱀의 동체를 따라 퍼져 나간다.

    말뚝이 박힌 상처에도 전격이 파고들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꽤 짜릿하겠지.

    -인가안-!

    우리 흰둥이. 드디어 나를 봐주는구나.

    온몸을 집어삼킨 전격에 녀석은 몸을 덜덜 떨며 힘겹게 나를 노려보았다.

    바로 공격이 날아들까 긴장하고 있는데 놈의 눈빛이 갑자기 붉게 변했다.

    캬아아아아아아-!

    커다랗게 울리는 놈의 울음소리.

    그리고 저 멀리에 갑자기 새가 날아가는 게 보였다.

    그걸 보며 느꼈다.

    이놈. 생각보다 참을성이 없구나.

    빠악!

    난 창대를 이용해 놈의 대가리를 후려치고서 쭉 거리를 벌렸다.

    이무기는 제법 데미지를 입은 모양새이긴 하지만 아직 건재해 보였다.

    -후회하게 될 거다. 그 알량한 힘만 믿고 덤벼든 것을!

    녀석은 기세 좋게 소리치더니 온 몸을 흔들며 말뚝을 빼내려 애쓰고 있었다.

    드드드드드드드-!

    그리고 갑자기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아직 놈의 증원군이 온 건 아닐 터.

    그렇다면……!

    “모두 나무 위로!”

    내 말에 발리스타와 캐터필터를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재빠르게 나무를 오르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앙-!

    지면이 갑자기 땅을 뚫고 솟아올랐다.

    놈이 능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대지 부족의 주술사처럼 땅을 움직이는 힘.

    두두두두-!

    게다가 다시 한 번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다른 울림이다.

    이무기가 마치 인간처럼 표정을 지었다.

    딱 인간으로 치면 비웃는 듯한 표정이다.

    크워어어어어어-!

    쩌렁쩌렁한 함성 소리가 들린다. 위치상으로는 나무에 올라간 병사들의 바로 뒤편이다.

    콰아아아앙-!

    땅이 치솟으며 그것의 정체가 드러났다.

    높이 솟아오른 대지엔 바로 이무기의 병력들이 빼곡히 서 있었다.

    콰과과곽!

    마치 흙의 파도 같았다.

    이무기의 병사들의 지면이 계속해서 전진한다.

    놈이 아예 병사들이 서 있는 대지를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참. 지랄도 병이네.

    그냥 여기로 오라고 하면 되지 굳이 저렇게 해야 해?

    뿌득-

    어이없긴 했지만 우리에게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평범하게 적이 진군해 올 때를 대비해 파 놓은 함정들이 모두 무용지물이 되었으니까.

    놈은 미리 습격을 대비하고 있었던 건가?

    나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생각을 중간에 끊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전원 출격!”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

    케르르르르를!

    크라아아아아아!

    먼 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의 함성 소리가 들린다.

    “적을 격퇴하라!”

    “대족장님을 위하여!”

    “벼락 신을 위하여!”

    우리 병력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이무기의 눈도 그곳을 향했다.

    난 급히 움직이며 놈에게 벼락의 기운이 가득 담긴 창을 내려찍었다.

    콰드드득-!

    “어디 한눈을 팔고 있어!

    -감히……!

    내가 내려친 부분이 회색빛을 띠더니 창이 그대로 튕겨 나갔다.

    제기랄. 놈이 본격적으로 능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무슨 보스몹 2페이즈 보는 것 같네.

    “뇌룡 질주!”

    전신에 전격이 감돌았다.

    꽈앙-!

    부지불식간에 내려쳤는데도 놈의 몸이 다시 회색빛으로 변해 공격을 막는다.

    꽝!

    전력으로 기운을 이용해 다시 다른 곳을 내리쳤다.

    꽈앙!

    좀 더 빠르게!

    콱-!

    놈의 능력이 갈수록 내 공격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한 번에 전신을 경화시킬 수는 없는 건가?

    아니면 불필요하다고 여겨서 그러는 건가?

    “모두 준비!”

    곧 알게 되겠지.

    부스스-

    이무기의 뒤편. 절벽 위 풀숲에서 병사들이 튀어나왔다.

    그들의 손에는 ‘아틀라틀’이라는 투창기가 들려 있었고, 그곳에 기다란 장창이 장전되어 있었다.

    “투척-!”

    내 명령에 따라 장창들이 이무기의 몸에 강철비가 되어 쏟아져 내렸다.

    캬아아아아아-!

    이무기는 무수하게 날아오는 창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비명을 질러 댔다.

    놈의 몸 부분부분이 계속해서 회색빛으로 변했다가, 본래 색이 되었다가를 반복했다.

    난 아예 놈의 몸 아래쪽으로 내려가 배 부분을 찔러 댔다.

    크아아아!

    꾸우우우우웅-!

    놈은 내 공격이 제법 아픈지 빳빳이 쳐들고 있던 고개를 내려 지면에 달라붙었다.

    난 그때에서야 기운을 가라앉히며 뒤로 빠졌다.

    그리고 창이 멎어갈 때쯤 허공에서 펜릴이 튀어나왔다.

    놈은 바로 이무기의 몸에 올라타 이빨로 거칠게 물어뜯기 시작했다.

    나도 그사이에 이무기의 몸으로 뛰어들었다.

    어느새 이무기를 묶어 놓았던 말뚝도 놈이 몸부림치는 와중에 거의 뽑혔다.

    콰아아앙-!

    이무기의 몸 주위로는 돌기둥이 계속해서 튀어나왔다.

    나도 몇 번이나 얻어맞았지만 포션을 마셔 가면서 계속 회복했다.

    꽈앙-!

    기운을 가득 끌어 모아 놈의 미간에 창을 내리쳤다. 뼈와 부딪힌 것인지 이제까지와는 다른 소리가 났다.

    녀석은 거의 눈을 뒤집은 채로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아!

    이무기를 도우러 왔었던 병사들은 처음에 화려하게 등장한 것이 무색하게 사방에서 포위되어 죽어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무기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공격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샤아아아아아아-!

    그때 놈이 갑자기 몸을 크게 뒤틀더니 펜릴을 튕겨 내었다.

    나도 흠칫 놀란 순간 놈이 절벽 쪽을 보았다.

    드드드드드드드-!

    콰드득-!

    갑자기 내 몸에 무언가가 달라붙었다.

    일전에 골렘에게 당했던 그 능력.

    흙과 돌이 내 몸을 억죈다.

    콱-!

    게다가 이무기는 아예 자신의 몸으로 나를 꽉 붙들었다.

    난 창으로 놈을 계속해서 내리쳤다.

    드드드드-!

    하지만 그 와중에도 놈의 능력은 멈추지 않았다.

    절벽에서 들리기 시작한 진동이 갈수록 커져 갔다.

    쩌적-

    그리고 그곳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모두 피해-!”

    절벽 위에서도 소란이 인다.

    저들이 모두 제때에 몸을 뺄 수 있을까?

    그그그-!

    금은 갈수록 커지더니 쩌적- 하고 그대로 갈라져 버렸다.

    다행히 펜릴은 미리 빠져나간 듯하지만, 날 억죄는 놈의 힘은 갈수록 강해졌다.

    저게 떨어져 내리면 죽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히 죽는다.

    -두려운가?

    “이런 미친 새끼가!”

    꽈앙! 쾅!

    놈의 머리를 한 번 더 내리쳤다.

    콰르르르르르릉-!

    그리고 절벽이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그 위에 미처 피하지 못한 병사들도 같이.

    머리 위가 어둡게 변한다.

    후우우우우우우웅-!

    “같이 죽자는 거냐!”

    -그것 또한 재밌겠구나, 필멸자여.

    놈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꾸우우우우웅-!

    굉음과 함께 시야가 암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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