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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35화 (35/170)
  • 35화

    이렌은 어느새 씻고 왔는지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몸으로 방에 들어왔다.

    “알겠습니다.”

    그녀는 내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를 데려온 케륵과 크룩 또한 각자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이렌, 네가 말했었지. 골렘이 다루던 힘과 이무기의 능력이 비슷하다고.”

    “그렇습니다.”

    “땅을 다루는 힘이라.”

    케륵과 크룩도 무언가 떠오르는 게 있어 보였다.

    대지 부족.

    첫 번째 전쟁 때 상대했던 대지 부족 주술사의 힘.

    땅을 마음대로 움직이고 바위기둥, 흙 파도 등을 부리던 그 힘이 아직도 선명하다.

    골렘은 훨씬 투박하긴 했지만 유사한 능력을 썼었다.

    ‘그리고 이무기까지.’

    이것이 과연 우연일까?

    “대지 부족에 대해 더 아는 것이 있나?”

    이번엔 굳이 이렌뿐만 아니라 케륵과 크룩도 차례차례 보았다.

    이렌은 고개를 저어 보였고, 크룩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케륵만이 입을 열었다.

    “대지 부족의 생존자를 심문해서 얻은 정보가 있습니다. 케륵.”

    “오, 그래?”

    안 그래도 케륵에게 따로 지시를 내린 바 있었다.

    대지 부족의 사람 중 뛰어난 이들을 따로 뽑아 두라고.

    그리고 뭔가 특별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지 물어봐 두라고.

    족장과 주술사 등등 뛰어난 이들을 전투에서 거의 죽였기 때문에 큰 기대는 안 하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내려오는 전승이 있습니다.”

    케륵은 천천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대지의 신의 아이들.

    그들에게는 본래 축복의 땅이 있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모두들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사악한 무리들이 그들을 쫓아냈다고 한다.

    그들은 축복의 땅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이곳에 터를 잡아 살게 됐다.

    하지만 언젠가는 신이 은빛의 용을 보내 그들을 데려갈 거라고 믿고 있다고 한다.

    “그게 이무기라는 건가?”

    은빛의 용. 흰색의 뱀. 비슷하긴 하네.

    무엇보다 ‘이무기’라는 이름도 걸리고 말이야.

    “하지만 너무 억지군.”

    그 용을 이무기와 연결시키는 건 너무 모순이 많았다.

    우선 다른 건 다 제쳐 두고, 이무기는 대지 부족을 점령할 때 코빼기도 비치지 않지 않았나?

    “케륵. 전승이라는 건 아무래도 시간이 흐르면서 많이 변형되기 마련입니다.”

    “그건 그렇지.”

    난 탁자를 톡톡 두드렸다.

    그래.

    문자가 아닌 말로 전승되는 신화.

    시간이 지날수록 원본과는 괴리감이 커질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들 벼락 부족도 마찬가지 아닌가?

    케륵이 ‘성산’이라 말하던 산에는 바로 벼락 신앙의 본거지가 있었다.

    지금은 아예 폐허가 되었지만 분명히 그곳은 과거 번영했던 공간일 터.

    하지만 이들은 그곳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골렘.’

    대지 부족. 대지 신. 골렘. 이무기.

    여러 가지 단어들이 머릿속을 떠다닌다.

    벼락 신과 대지 신.

    마지막 벽화나 골렘의 말을 생각하면 과거에 그들은 전쟁을 했던 걸로 보인다.

    “이렌, 그 이무기가 갑자기 나타났다고 했었지?”

    “그렇습니다. 전혀 전조도 없이 숲의 한 곳에서 튀어나왔습니다.”

    “흐음.”

    여러 가지 추측들이 떠오르고 사라진다.

    그중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남은 의문.

    그렇다면 누가 승리한 것일까?

    그리고 누구 하나가 승리했다면…….

    왜 둘 다 이렇게 영락한 꼴로 있는 걸까?

    “우선 돌아가도록. 그리고 준비를 더 철저히 하도록.”

    “알겠습니다.”

    모두들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어차피 준비는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오늘은 출진 전에 마지막으로 정보를 취합해 보는 자리였을 뿐.

    남은 의문들과 별개로 작전은 시행될 것이다.

    “후우.”

    풀리지 않는 의문들은 여전히 나를 괴롭힌다.

    나는.

    나갈 수 있을까?

    이 모든 것을 끝낼 수 있을까.

    적어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직 모든 게 너무 멀다는 것이다.

    이제 겨우 시작일 뿐.

    “제기랄.”

    언제나 그렇듯.

    혼자 남아 질문을 곱씹었다.

    * * *

    삼백의 정병. 첫 원정과 비교해서 수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기세는 그때와 비교할 수 없었다.

    그때는 기존에 사용했던 무구들 착용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상인을 통해 구입한 장비들을 모두 통일되게 맞춰 입고 있다.

    “라이더들은 모두 앞으로!”

    삼십의 라이더들. 모두 펜릴의 수하들인 늑대를 타고 있다. 이십의 오크와 열 명의 고블린.

    그중 고블린들은 늑대의 위에 올라타서도 활을 쏘는 훈련을 거쳤다.

    아직 작은 크기의 표적을 맞추기엔 숙련도가 떨어지지만 우리의 이번 목표를 생각하면 부족하지는 않은 실력이었다.

    “사제들은 모두 대열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확인하라! 크룩!”

    “예!”

    크룩은 돌아다니며 사제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케륵과 크룩에게 각자 맡긴 권한으로 선발된 사제들은 병사들을 운용할 땐 장교의 역할도 같이 수행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인간어를 익히고 있었기에 대답도 인간어로 하였다.

    이것도 나름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는데, 언어는 인간의 언어로 통일하기로 했다.

    ‘어느 하나의 종족 언어로 통일하는 건 불공평하니.’

    오크어를 표준으로 하면 고블린이 불만을 품을 수도 있고, 고블린어를 표준으로 하면 오크가 불만을 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아예 그냥 내가 편하게 쓰기 쉬운 인간의 언어로 정한 거다.

    “전군! 출발!”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걸 보고서 대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난 가장 앞에서 펜릴의 위에 올라탄 상태였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행군이 시작되었다.

    펜릴도 가장 앞에서 걷고 있어서 그런지 나름 폼을 잡고 있다.

    -털 그슬리잖아! 조심 좀 해!

    -오빠! 털에서 연기 나! 히히.

    뇌조는 그런 펜릴의 털에 불을 붙이며 장난을 치고 있다.

    전격이 튀어오를 때마다 펜릴의 털에 연기가 나며 까맣게 변한다.

    펜릴은 그럴 때마다 깜짝 놀라서 뭐라고 쏘아붙이고 있고.

    뇌조는 기본적으로 어린아이 정도의 정신 연령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하는 짓이 딱 그 정도이니.

    그리고 정말 특이할 정도로 겁이 없다.

    ‘그리고 강하기도 하고.’

    몇 번 힘을 테스트해 보기 위해 실전에서 호흡을 맞춰 봤는데 상당히 도움이 됐다.

    “케륵. 우선 그곳으로 향하는 겁니까?”

    “그래.”

    난 고개를 끄덕였다.

    거점은 어렵지 않게 정했다.

    마침 뱀이 자리를 잡은 곳과 멀지 않으면서도 병력들이 모두 자리를 잡을 만한 공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떠돌이 상인에게서 남은 물건들도 수령해야 하니 그곳에서 한 번 더 정비를 할 생각이다.

    “흐음.”

    뱀을 잡을 준비는 모두 끝났다.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서 더는 미룰 수 없다.

    전술에 대한 고민을 하며 묵묵히 앞을 보았다.

    * * *

    “이곳이 임시 진지다! 모두 군기를 흩트리지 말고 휴식을 취하도록!”

    “예!”

    중간에 위치한 부족들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며 이동해서 그런지 모두들 힘든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병사들에게 식사와 휴식을 충분히 취하라 명한 후.

    난 가장 멀쩡해 보이는 집으로 들어갔다.

    케륵과 크룩도 함께였다. 뇌조도 따라왔고.

    단지 펜릴만 그 몸집 때문에 들어오지 못하고 집 옆에서 쉬고 있었다.

    “정말 폐허 같군.”

    창문으로 바깥을 보면서 얘기했다.

    처음 보고를 들었을 때는 고블린이 과장을 했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그 표현이 과장이 아니란 게 알 수 있었다.

    누군가의 손길을 받지 못한 마을은 빠른 속도로 폐허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앞서 도착해 조사를 한 정찰조의 말로는 흔적이 아예 없다고 합니다. 케륵. 아마 도중에 비도 내리고 했으니 흔적이 있었어도 이미 쓸려 나갔을 겁니다.”

    “집에 있는 물건들과 식량들도 대부분 남아서 썩고 있는 것도 이상합니다. 크룩.”

    둘의 보고를 들으며 턱을 쓰다듬었다.

    이곳은 바로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던 마을 중 하나였다.

    생명체의 흔적이 전혀 없어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았었다.

    그리고 정찰대가 수색을 전개한 결과 이런 마을이 한두 곳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우리는 그중에서도 가장 뱀이 머무는 곳과 가깝고 큰 부족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직접 와서 보면 무언가 단서라도 찾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아무런 정보도 없을 줄은 몰랐다.

    “정찰조를 좀 더 멀리까지 보내 볼까요?”

    “아니, 아니야. 우선 떠돌이 상인이 곧 올 테니 그들을 기다리지.”

    곧 있으면 상인들이 올 거다.

    난 다른 이들도 각자 휴식을 취하라 한 후 고민에 빠져들었다.

    이 빈 부족에는 누가 있었던 걸까?

    그리고 어째서 그동안 전혀 발견하지 못했던 걸까.

    ‘식량이 완전히 썩지는 않았어.’

    그걸 생각하면 이 부족이 방치된 건 고작 몇 주.

    특히 저장성이 좋지 않은 식량들도 일부 남아 있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만약 아예 부족을 이주한 거라면 식량을 비롯한 기타 집기들을 놔두고 갔을 리도 없고.

    말 그대로 그냥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놈과 관련 있는 건 아닐까.’

    난 탁자를 톡톡 두드리며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다.

    똑똑-

    “상인이 찾아왔습니다.”

    고민이 더 깊어지려던 찰나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밖으로 나가 보니 상인들이 물건을 잔뜩 들고 와 있었다.

    난 물건을 놔둘 곳을 따로 일러 주었다.

    “켈은 안 왔나 보군?”

    “예, 다른 곳에 볼일이 있어서요.”

    “그래, 수고했네. 이건 가는 길에 허기라도 채우라고 주는 선물이네.”

    난 얼마 전 시제품으로 개발하고 있는 음식 일부를 건네주었다.

    상인들은 밝은 얼굴로 그걸 받아 들었다. 그리고 곧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서 사라졌다.

    “너희들은 병력을 관리하고 있어.”

    “케륵. 알겠습니다.”

    “크룩. 예.”

    난 따라 나온 둘에게 병력의 관리를 맡겨 놓고 집으로 혼자 돌아왔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지도를 꺼내 들었다.

    “으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흑색의 점. 바로 흰 뱀의 위치다.

    녀석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이 순간에도 점이 활발하게 이동하고 있으니.

    그리고 예전에 지도를 봤을 때와 달리 대부분은 초록색 점으로 표시되어 있다.

    부족들을 모두 벼락 부족의 산하로 복속시켰기 때문이다.

    쿠루루루-

    그때 어깨 위에 올라타 있던 뇌조가 지도를 펼쳐 둔 탁자로 내려갔다.

    그녀는 지도를 유심히 보더니 갑자기 부리로 어딘가를 찍으려 했다.

    “안 돼!”

    -빨간색!

    재차 지도를 노리는 뇌조를 피해 지도를 확 들어 올리다 멈칫했다.

    “뭐?”

    -빨간색 점!

    난 황급히 다시 지도를 펼쳐 들었다. 지도를 샅샅이 살펴봤지만 딱히 눈에 띄는 건 없었다.

    “그게 어디 있는데?”

    뇌조는 총총 뛰어 지도의 어딘가를 부리로 가리켰다.

    -여기!

    고개를 숙여 유심히 그곳을 보았다.

    마을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잘 보이지 않아 아예 눈을 확 가까이한 후에야 무언가가 보였다.

    빨간색 점이 희미하게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상당히 부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누가 죽었다가 살아났다가 반복하지 않는 이상 있을 수 없는 모습이었으니.

    ‘그렇다면.’

    가능성은 하나다.

    “펜릴.”

    -예?

    난 바로 펜릴을 불렀다.

    웬만하면 내가 직접 움직이지 않으려 했지만 이 경우는 다르다.

    가장 은밀하고,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선 우리 둘이 딱 적당하다.

    “갔다 와야 할 곳이 있다.

    -말만 하시죠.

    창에 펜릴의 커다란 눈동자가 비쳤다. 난 지도를 가까이 대서 점이 있던 곳을 가리켰다.

    “길을 외워 둬라. 최대한 빨리 확인해야 하니.”

    -으음, 알겠습니다.

    잠시 후 펜릴은 다 외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난 조용히 케륵에게 다가가 내가 자리를 비운 것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대기하고 있으라고 했다.

    내 심각한 표정을 보고선 그도 별말을 하지 않았다.

    난 직후 펜릴의 몸 위에 올라탔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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