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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유료템으로 캐리한다-34화 (34/170)

34화

“본래 자네 상단은 길이 놓이지 않은 곳으론 배달하지 않지.”

난 훈련장에 놓아진 발리스타와 캐터펄트를 슬쩍 보았다.

“그렇지요.”

“어떤 경우라도?”

흔쾌히 대답했던 켈은 이번 물음엔 잠시 멈칫했다.

그가 머뭇거리기에 난 지체 없이 국을 한 그릇 더 퍼 주며 말했다.

“부족해 보이는군. 혹시 마음에 들면 좀 싸 가기라도 하겠나?”

“아, 네. 감사합니다.”

켈은 반사적으로 대답하고선 잠시 후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마경의 바깥은 아니겠지요?”

“아니네. 마경의 외곽쯤에 위치한 곳에서 받고 싶군.”

“알겠습니다. 다만 이번 한 번만입니다.”

“한 번이라도 고맙네.”

그의 솔직한 반응에 웃었다. 켈은 상인이다.

만약 전작에서였다면.

그들을 길이 나 있지 않은 영지 외곽으로 부르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시스템 상에 제한이 있으니까.’

하지만 이곳에선 가능하다.

그것을 방금 직접 확인했으니.

‘여튼. 그것과 별개로.’

그의 허술한 듯한 반응도 아마 계산된 행동일 것이다.

켈이 가끔씩 어수룩한 모습을 보여 주긴 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상인.

그것도 꽤나 높은 등급의 상인이다. 어중이떠중이 인간 상인과는 절대 비교할 바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런 모습은 어디까지나 나와의 관계를 고려해서 하는 행동일 거다.

그가 내 부탁에 망설였단 것만으로도 나를 좋게 생각한다는 뜻.

앞으로도 계속 거래를 할 생각이기에 좋은 일이다.

“그나저나 그 새가 정령입니까?”

켈은 의식이 있던 그날 저녁 먼저 돌아갔었다. 나머지 두 명이 짐을 들고 돌아갔고.

아마도 그들에게 얘기를 들었던 거겠지.

“그렇네. 자네 덕분에 좋은 친구를 얻었어.

-좋아! 주인 좋아!

“착하네.”

난 한 번 더 뇌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다시 켈을 보았다.

“손해를 보긴 했지만 보기 좋은 모습이군요. 앞으로 크게 되실 분에게 선물을 주었다고 생각하면 그다지 손해도 아니고요.”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선물이군. 잊지 않겠네.”

서로 겸양의 말을 하며 우리는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곧 켈은 빈 수레를 들고서 다시 돌아갔다.

어딘가에서 큰 건이 있어 한창 바쁘다고 했다.

그는 수레에 내가 나무 용기에 넣어 준 설렁탕을 들고 돌아갔다.

“쿠륵. 저들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겁니까?”

그사이에 갑옷과 무기 등을 다 나누어 준 건지 크룩이 다가와 물었다.

“용종이 어디서 사는지 아는 사람은 없어. 그들은 마법을 쓸 줄 알거든.”

“쿠, 쿠륵. 마법 말입니까?”

“그래.”

쿠륵은 믿기지 않는 듯 나와 켈이 빠져나가 천천히 닫히는 문을 번갈아 보았다.

마법은 엄연히 주술과는 다른 영역이다.

기본적으로 재능이 없으면 아예 익히는 게 불가능하고, 익히는 과정도 극히 어렵다.

다만 드래곤의 피를 진하게 이은 용종의 경우는 마법에 재능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트롤과는 비교도 하기 힘들 정도로 번식이 힘들어 피와 싸움에 연관되는 걸 극히 싫어한다.

그래서 자기들끼리 오지에 모여 살며 외부와 접촉을 극히 꺼리는 종족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상인으로서 활동하게 됐다.’

특별한 고객들을 대상으로만.

‘그게 게임에서의 설정이었지.’

그들은 현묘한 마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본진이 어디인지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난 그들에 대해 잠시 곰곰이 생각하다가 곧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자! 물건도 왔으니 훈련해야지?”

“알겠습니다! 크룩.”

상인이 같이 데려온 기술자들과 함께 병사들에게 공성 무기들의 사용법을 알려 주기 시작했다.

끼루루루루-

뇌조는 그저 신난다는 듯 울음소리를 내었다.

* * *

“생각보다 싸움을 택하는 부족이 많지 않군.”

“그렇습니다. 오늘도 한 부족이 항복했습니다. 케륵.”

신전의 의자에 앉아서 케륵의 보고를 들었다.

흰 뱀. 이무기라고도 불리는 그 괴물을 잡기 위해선 먼저 마경의 바깥쪽이라도 일통하는 게 선행되어야 했다.

이무기를 자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놔두었던 몇몇 부족들.

그들을 모두 정리할 시간이다.

“그럼 얼마나 남은 거지?”

“이제 세 군데입니다. 고블린 부족 두 곳. 오크 부족 한 곳입니다.”

“흠, 그곳에 모두 사신을 보냈나?”

“케륵. 그렇습니다.”

처음에 바람 부족까지 오는 길에 일일이 전투를 해 가며 복속시켰던 것과 달리, 더 바깥쪽에 있는 부족들을 복속시키는 것은 한결 쉬웠다.

아무래도 저번에 몇 개나 되는 부족들을 힘으로 무릎 꿇렸던 게 꽤 소문이 퍼진 것 같다.

“전투를 진행한 두 군데도 거의 피해 없이 제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크룩 대사제가 포로들을 데리고 돌아오고 있습니다.”

“다행이군.”

이제 세 곳의 부족으로 향한 사신들의 소식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어차피 그 세가 강하지 않은 곳들이니 만약 저항을 택한다 해도 큰 피해 없이 제압할 수 있을 거다.

“바깥을 좀 걷고 싶네. 같이 가겠나?”

“영광입니다. 케륵.”

몸을 일으키자 의자의 손잡이에서 졸고 있던 뇌조가 황급히 내 어깨로 날아왔다.

-아빠!

“아빠 아니야. 주인님이라고 해야지.”

-주인님!

아니, 뭔가 이것도 이상한데.

연신 주인님이라 부르는 뇌조의 목소리에 깊은 고민에 휩싸이며 밖으로 걸어 나갔다.

밖으로 나가자 볕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펜릴도 내게 슬렁슬렁 다가왔다.

-어디 가십니까?

“그냥 산책.”

녀석은 하품을 하며 나를 따라왔다.

덩치도 큰 놈이 입을 쩍 벌리니 약간 무섭게도 보인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닌지 앞을 지나가던 고블린 하나가 깜짝 놀란다.

-제가 무섭습니까?

-귀여워! 늑대 귀여워!

-너한테 물어본 거 아니다.

펜릴은 내게 슬쩍 물었다가 뇌조의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뇌조는 맑게 웃으며 펜릴의 머리 위를 맴돌았다.

뇌조와 펜릴이 내게 말을 걸을 때 원래는 다른 사람에게 들리는 일은 없었다.

직접 정신을 통해 말을 거는 거니 딱 한 상대에게만 들리는 것.

하지만 저 둘은 어떤 원리인지는 몰라도 서로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저리 좀 가!

둘이 정답게 노는 것을 보며 계속 걸음을 옮겼다.

곧 내가 멈춰선 곳은 훈련장이었다.

그저 바닥을 평평하게 다져 놓은 곳이긴 하지만, 모두들 열심히 몸을 움직여 가며 크룩의 지휘 하에 훈련을 하고 있었다.

난 그곳에서 조금 떨어져 창을 휘두르고 있는 이에게 다가갔다.

창이 내질러질 때마다 주변에 바람이 불어온다.

“창을 잘 다루는군.”

“아! 족장님.”

그녀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녀의 창끝에 초록색의 정령인 바람이 휘감겨 있는 게 보인다.

“괜찮다면 창술을 좀 더 보여 주겠나?”

“알겠습니다.”

이렌은 다시 창을 잡고서 자세를 취했다.

그녀는 천천히 창을 움직였다.

후웅-!

창날이 허공을 격했다.

가끔씩 확 빨라지기도 하고, 어쩔 때는 굉장히 무겁게 느껴지기도 하며 완급 조절이 자유로웠다.

아직 무기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을 본 적은 없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뛰어난 창술이었다.

‘정령술에 창술이라.’

후욱-!

빠른 찌르기.

한낮인데도 허공에 초록색의 빛줄기가 남는다.

마치 물감으로 선을 그어 놓은 것처럼.

그녀가 다루는 창과 정령은 마치 한 몸처럼 움직였다.

보통 오크나 고블린이 싸움을 잘한다고 하면 그 뛰어난 신체 능력을 활용하여 본능적으로 싸우는 것뿐이다.

반면에 그녀의 창술은 언뜻 보기에도 절도가 있어 보였다.

“대단하군.”

그녀는 창술에 집중하느라 내 말을 못 들은 듯했다.

난 얼마 전 그녀를 정식 부족원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른 속셈도 없어 보였고, 골렘을 상대할 때의 희생적인 모습도 긍정적인 요소였다.

정식 부족원으로 받아들이기 전까진 그녀에게 무기를 주지 않았었기 때문에 창술을 이렇게 자세히 보는 건 나도 처음이었다.

“어떻습니까?”

그녀는 거친 호흡과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얼마나 열심히 휘둘렀는지 땀이 줄줄 흐르고 있다.

난 긍정적인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칭찬해 주었다.

이렌은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서 다시 창술을 단련하기 시작했다.

“흐음.”

다시 발을 떼어 찬찬히 부족을 거닐었다.

펜리르와 뇌조는 여전히 서로 투덕거리며 나를 따라온다.

그리고 부족원들은 모두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족장님!”

그때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니 정찰대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굳은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케르륵. 저는 얼마 전 A구역에 갔던 정찰대원입니다.”

“알고 있다. 어떻게 됐지?”

고블린은 무언가 망설이는 듯하더니 내 눈빛에 다시 입을 열었다.

“그곳은 철저히 파괴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곳곳에 하얀 비늘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뭐라고?”

순간적으로 놀란 마음에 몸에서 전격이 팍 올라왔다.

고블린이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나는 걸 보고 나서야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물었다.

“정확히 말해 봐. 어떻게 된 거지?”

“그, 그게… 족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접근했었습니다. 최대한 조심히…….”

고블린은 이어서 있었던 일들을 줄줄이 말했다.

이 고블린이 정찰한 A구역.

그곳은 바로 내가 이무기를 정찰하러 갔을 때 발견했던 고블린 마을이었다.

지속해서 이무기에게 제물을 바치며 살고 있던 마을.

난 그곳에 결계석을 선물해 주었다.

웬만한 등급의 인지 마법 및 주술은 모두 속일 수 있는 아이템이다.

“동굴 전체가 거칠게 파괴되어 있었다고?”

“그, 그렇습니다.”

“시체 같은 것도 보지 못했나?”

“예, 쥐새끼 한 마리 없었습니다.”

그 외에도 그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우선 이무기가 그 큰 덩치로 동굴을 뚫고 들어갔다는 건 결계가 간파되었다는 얘기다.

아니면 최소한 의심을 품을 정도는 된다던가.

어느 쪽이든 그리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곳에 살던 고블린들에게도.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리고 시체가 없었다는 것도 마음에 걸려.’

한 번에 집어삼키기엔 상당히 많은 수였다.

그들을 잡아가기라도 한 걸까?

단순히 식량으로 먹기 위해?

왠지 그건 아닌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난 우선 고블린을 케륵에게도 보고를 올리라고 보낸 후 고민에 빠졌다.

-왜? 아빠 왜?

키루루루-

어느새 다시 내 어깨에 앉은 뇌조는 얼굴에 자신의 머리를 비비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난 심각한 표정을 풀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다시 신전으로 걸어갔다.

마음 같아서는 직접 상황을 확인하러 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작전의 실행이 얼마 안 남은 지금 무리한 움직임은 금물이다.

혹여 그 이무기의 함정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어차피 이제 두 부족의 대답만 들으면 밀고 나갈 계획이다. 마경 바깥족의 영역은 대부분 내 밑으로 들어왔으니.

신전으로 들어가는 길에 부족을 슥 돌아보았다.

그러고서 내 방으로 돌아갔다.

* * *

“이무기의 약점에 대해 얘기해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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