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무슨……?”
콰지지지직-!
전격이 사방팔방으로 터져 나갔다.
난 정면에서 전격을 얻어맞고 뒤로 튕겨 나갔다.
“족장님!”
“멈춰!”
깜짝 놀라 다가오려는 부족원들을 제지하고서 난 전방을 응시했다.
파지직-!
골렘이 있던 자리.
그곳엔 무언가가 사나운 기세를 내뿜으며 떠 있었다.
‘정령?’
처음 든 생각은 이렌이 부리던 바람의 정령과 비슷하단 것이었다.
“이렌, 우선 너도 물러나라.”
“저는…….”
“어서!”
저것의 기운에 휘말려 같이 뒤로 튕겨 나온 이렌은 낙담한 표정으로 물러섰다.
나보다 뒤에 서 있어서 그런지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은 듯했다.
‘나도 위험할 뻔했어.’
방금 전은 꽤 위험한 상황이었다.
만약 놈의 힘이 나와 같은 전격이 아니었다면 나도 크게 다쳤겠지.
“넌 뭐 하는 놈이냐?”
난 가만히 허공에 있는 놈을 보며 말했다.
녀석은 여전히 위협적인 기운을 내뿜고 있긴 했지만 먼저 공격해 오지는 않았다.
‘골렘의 핵.’
어쩐지 녀석의 느낌이 아까 전 노렸던 골렘의 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저것은 처음부터 골렘의 내부에 있었던 것 아닐까?
골렘의 동력원으로서.
-용서하지… 않을 거야.
녀석의 목에선 증오와 독기가 여실히 느껴졌다.
난 어쩐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갇혀 있던 건가?’
골렘에게선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반면에 저것. 정령으로 추측되는 놈은 대놓고 살벌한 감정을 보이고 있다.
-너도… 날 이용하려는 거지!
파지지직-!
녀석의 말은 내 추측에 확신을 더해 주었다.
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공격해야 하나?’
먼저 공격해 오지 않는다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
애초에 이런 폐허에 멀쩡한 골렘이 있다는 것 자체가 특이한 일이다.
골렘이 보통 무언가를 지키는 ‘가디언’의 역할을 한다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저곳에 뭔가가 있다.’
본래 골렘이 있던 자리.
그리고 지금은 정령이 떠 있는 곳의 바닥에 무언가가 있을 확률이 높다.
“난 너의 적이 아니야.”
난 우선 대화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거짓말!
정령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지만 난 오히려 한 발자국 더 다가갔다.
“난 널 공격할 생각이 없어.”
파직-!
놈의 기운이 날카롭게 튀어 오른다.
다시 한 번 놈이 공격해 올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난 이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이 오지 마!
콰지지지직!
전격이 나에게로 다시 쏟아졌다.
하지만 난 피하지 않고 급하게 기운을 전신으로 퍼트렸다.
“크윽!”
슈우우-
전신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래도 아까보다는 피해가 덜하다.
[생명력이 감소합니다.]
[기운을 흡수합니다.]
동시에 떠오르는 메시지.
데미지는 일부 있지만 전격의 기운은 그대로 나에게 흡수된다.
첫 공격과 비슷한 위력이었지만 미리 대비하고 있었기에 결과는 천차만별이었다.
내 몸에서도 전격이 흐르기 시작했다.
-너, 넌 누구야!
정령이 심하게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난 망설임 없이 놈에게로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멈추라고 했지!
놈은 겁먹은 목소리로 계속해서 나에게 기운을 쏟아부었다.
[생명력이 감소합니다.]
[생명력이 감소…….]
계속해서 떨어지는 생명력.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난 다른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원래 시스템에 이런 기능이 있던가?’
그전까진 공격을 입든, 뭘 하든 이런 알림은 안 떴었던 거 같은데.
[기운을 흡수합니다.]
[기운을 흡수…….]
내 의문과 별개로 메시지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생명력이 감소하는 것과 동시에 점점 기운이 차오르고 있었다.
골렘을 상대하느라 바닥에 가까워졌던 기운이 순식간에 넘쳐흐를 정도로 차올랐다.
허용 한계를 넘어선 기운은 그대로 체외로 뿜어져 나와 내 몸을 전격으로 뒤덮었다.
놈과 거의 한 발자국 차이로 가까워진 순간.
콰아아앙-!
세상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정령에게서 이제까지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힘이 뿜어져 나왔다.
[생명력이 감소합니다]
[생명력이 감소…….]
[생명력이…….]
쉴 새 없이 떠오르는 메시지.
이제까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속도로 생명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난 오히려 녀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놈을 끌어안았다.
“겁먹지 마.”
녀석은 계속해서 날 공격했지만 다행히 넘쳐흐르는 기운 덕에 데미지는 점점 감소했다.
그리고 이내 무언가가 변했다는 게 느껴졌다.
공포. 증오. 분노. 비애.
갖가지 부정적인 감정들이, 나에게로 순식간에 밀려들었다.
‘아!’
어렵지 않게 그 감정이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난 그를 더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괜찮아.”
우는 아기를 달래듯, 겁먹은 동물을 쓰다듬듯.
“이제 괜찮아.”
그저 같은 말을 반복하며 녀석을 어루만졌다.
-…….
정령은 말이 없었지만 난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부정적인 감정이 점점 흩어지는 것을.
그와 함께 가슴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어떤 감정이 끓어올랐다.
가슴을 헤집는 것 같은 비통한 슬픔. 동시에 안도감과 반가움 등의 감정들이.
‘뇌령?’
나는 왠지 그 순간 내 안에 있는 뇌령을 떠올렸다.
단지 시스템의 일부라고 생각했던 그것이 왜 생각났는지는 나 자신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종잡을 수 없는 감정에 혼란스러워할 때 다시 정령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쉬러 갈게.
찌르르-
가슴이 살짝 아려 오고.
순식간에 주변을 가득 메우던 기운이 사라졌다.
살짝 나와 함께해 주지 않을까 기대했었지만.
아마도 오랜 시간 갇혀 있던 만큼 자유를 찾아 떠난 것 같다.
찌릿-
그런데 순간적으로 목덜미가 따끔했다.
-이건 선물.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정령의 흔적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손을 뻗어 만져 보니 무언가가 만져졌다.
“족장님!”
그걸 더 자세히 확인해 보려 하는데, 부족원들이 나에게 다가왔다.
“후우.”
난 우선 포션부터 꺼내 들이켠 다음에야 바닥에 주저앉았다.
“괜찮으십니까?”
“어, 괜찮아.”
의외로 가장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어온 건 이렌이었다.
“죄송합니다. 골렘의 핵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서 죄책감 어린 표정을 지었다.
난 그걸 보고 피식 웃었다.
“네가 아니었으면 애초에 골렘도 쓰러트리기 힘들었을 거야. 자책하지 마라.”
그렇게 말하고서 그녀의 어개를 툭 쳤다.
“그리고 우선은 탐사부터 끝내고 얘기하자고.”
다행히 포션의 효과 덕분에 몸은 금방 회복되었다.
난 벌떡 몸을 일으켜서 구멍에 가까이 다가갔다.
골렘이 뚫고 나온 곳.
선물이라는 게 숨겨져 있다면 당연히 저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들어갈까.”
당연하지만 구멍엔 사다리나 계단 같은 건 없었다.
‘꽤 깊네.’
그냥 뛰어들기엔 힘든 높이다. 고블린들이 가져온 밧줄을 이용해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여긴 나 혼자 들어갔다 온다.”
“예?”
모두들 깜짝 놀란 얼굴로 보았지만 난 그들이 뭐라고 하기 전 손을 흔들었다.
“어차피 좁아서 여럿이 들어가는 게 더 불편해. 기다리고 있어.”
“케, 케륵. 알겠습니다.”
고블린들이 뒤로 물러난 걸 보고 바로 뛰어들려다가 뒤에 서 있는 이렌을 보고 멈칫했다.
“너도 여기 있어.”
“…네.”
그녀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섰다.
난 어쩐지 그녀가 귀엽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가, 고개를 젓고서 구멍 안으로 몸을 날렸다.
후우우욱-
순식간에 몸이 좁은 구멍을 따라 떨어진다.
‘뭐, 고블린이나 오크들도 가끔씩 귀엽다는 생각이 드니까.’
그런 잡생각을 하면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쾅-!
착지하는 순간 기운을 뿜어내어 속도를 확 줄였다.
난 대충 피어오르는 먼지를 손으로 휘저으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흐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멈춰 섰다.
커다란 문이 있었다.
내가 걸어왔던 길은 거칠게 무너진 동굴의 형태였는데, 문의 옆으로 대리석이 깔린 길이 보였다.
본래 통로는 아마 저쪽이었던 것 같다.
‘본래 탑의 지하인가?’
위치를 생각하면 탑의 일부인 것 같다. 탑의 주변엔 이렇다 할 건물이 없었으니까.
‘어떻게 여는 거지?’
특이하게 문엔 손잡이가 없었다.
난 아무 생각 없이 그것에 손을 올렸다.
파직-
그때 손에 남아 있던 전격이 문에 반응해 튀어 올랐다.
쿠구구구궁-
그러자 문이 거칠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문이 천천히 안쪽으로 열렸고, 난 그 안을 볼 수 있었다.
“여긴…….”
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안으로 발을 들였다.
딱히 어떤 이미지를 생각하고 있던 건 아니지만, 내 예상과는 먼 공간이었다.
“신전인가?”
아까 전 보았던 통로처럼 대리석이 깔린 바닥.
곳곳에 조각되어 있는 벽화들.
무엇보다 공간의 정중앙에 놓여 있는 거대한 크기의 동상.
“벼락 신.”
바로 그의 모습을 새겨 놓은 동상이었다.
동상은 대리석을 깎아 만든 것 같은데 몸에 걸친 천의 주름까지 아주 세밀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위압적인 표정과 자세로 한쪽 팔을 뻗고 있는데, 그곳엔 벼락의 모습을 형상화한 듯한 것이 들려 있었다.
‘신이 맞긴 한 건가.’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긴 했지만 이렇게 동상을 보니 새삼스럽게 신기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신이라.”
왠지 기분이 더 착잡해졌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정보가 늘어날수록 이 세계에 대한 의문이 깊어진다.
“후.”
난 짧게 한숨을 내쉬고서 벽에 새겨져 있는 벽화들로 시선을 돌렸다.
동상과 마찬가지로 그것들도 엄청 섬세한 솜씨로 조각되어 있었다.
보통 대부분은 신의 위대함을 묘사한 그림들이었다.
기적을 행하고, 적을 물리치며 자신의 신도들에게 위대함을 뽐내는 모습들.
난 쭉 지나가며 그것을 보다가 마지막 벽화에 이르러서야 우뚝 멈춰 섰다.
‘이건?’
다른 벽화엔 숨이 끊어진 적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반면에 마지막 벽화엔 처음으로 살아 있는 적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골렘인가?”
처음 든 생각은 그것이었다. 거대한 바위의 형태를 한 괴물.
그 아래엔 아까 전 보았던 것과 비슷한 형태의 골렘들이 수없이 늘어서 있다.
‘그 골렘이 있던 것과 연관이 있을까?’
생각해 보면 ‘전격’의 정령이 골렘에 갇혀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그 정령을 가둔 것 이곳의 신도들이 아니었던 걸까?
뭔가 단서가 더 없을까 하는 마음에 열심히 살펴봤지만 그 외에 특이한 건 없었다.
난 아쉬운 감정을 느끼며 그 벽화를 똑똑히 기억해 두었다.
“자, 그럼.”
도대체 그 선물이라는 건 어딨는 걸까.
다시 한 번 주변을 둘러봤지만 동상과 벽화 외엔 딱히 눈에 띄는 게 없었다.
혹시 숨겨진 공간이라도 있는 거 아닐까 해서 방을 아예 샅샅이 훑었다.
“없네.”
그러나 그런 건 전혀 없었다.
난 한참을 둘러보다가 동상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선물이라면서 좀 편하게 주면 덧난답니까?”
괜히 화풀이로 동상을 바라보며 툴툴댔다. 물론 동상이 대답을 할 리는 없지만.
아니면 이 장소가 아니었던 걸까?
고민을 하며 아무 생각 없이 동상을 보고 있을 때였다.
콰지직-
“응?”
이상한 느낌에 슬쩍 눈을 움직이니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동상의 손에 들린 무기.
처음 봤을 땐 분명히 동상과 같이 대리석 재질이었는데.
그곳에 균열이 가며 돌가루가 떨어져 내렸다.